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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교회사 강좌 4강 : 기독교 황금시대

중세교회사 제4강 기독교 황금시대라고 하는 주제로 같이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중세를 가리켜서 기독교 황금시대라고 그렇게 부릅니다. 그렇게 기독교 황금시대라고 부르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그 당시 유럽이 그야말로 기독교 국가로서, 정말 모든 것들이 기독교적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져 있고요. 성당이 세워져 있는 것이죠. 모든 시민들이 다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겁니다. 교구들이 다 나뉘어져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에 여러 지방 도시 조직이 있듯이, 전주가 있고, 전주 완산구가 있고, 덕진구가 있고, 뭐 이렇게 익산이 있고, 이런 지역 구분이 있듯이, 중세시대는 교회의 교구들이 그야말로 어떤 한 행정구역처럼 되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 교회 중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생활하고, 교회 중심으로 모든 것들이 움직였던 시대가 바로 중세 시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심지어 왕들도 교회 성도들이었고, 따라서 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사회 전반에 다 영향을 미치는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기독교적으로 움직였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황금시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요.

제가 대구에서 사역할 때는 그런 걸 잘 못 느꼈었는데, 대구에서 사역하다가 전주에 와서 사역을 하다 보니까, 전주라고 하는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제게는 기독교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대구에서는 불교의 도시처럼 느껴졌었거든요. 시내에 여러 절들도 많이 있고, 불교 관련 산업들도 굉장히 많이 발달되어 있고, 그리고 4월 초파일이 되면 대구 시내 곳곳에서 연등행렬을 하면서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볼 때, “정말 대구는 불교가 왕성한 그런 도시구나”라고 하는 것을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전주에 오니까 분위기가 확 다, 전주에 오니까 분위기가 확 다르더라고요. 전주에 오니까 예수병원이 있고, 예수대학이 있고, 엠마오 사랑병원이 있고, 가는 곳곳마다 교회 십자가의 첨탑들이 많이 보이고, 식당에 들어가도 전부 식당 주인들이 다 어느 교회 집사님, 장로님, 권사님들이 다 있고, 교회 달력이 걸려 있고, 액자가 걸려 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전주는 정말 기독교의 도시구나”라고 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중세는 훨씬 더 더했던 것이죠. 그야말로 모든 그 나라 전체가 기독교적인 그런 시대여서 신앙적인 일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협력하는, 심지어 전쟁도, 십자군 전쟁에서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이슬람 저 세력들을 무찌르러 가자” 했을 때, 유럽 전체가 들고일어나서, 십자군 전쟁에 참여할 정도로, 그야말로 기독교 황금시대라고 말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인가요? 그렇지 못한가요? 기독교 국가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는 여러 종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죠. 그리고 종교적인 것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배척을 받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전주시에 무슨 체육관을 쓰겠다, 아니면 공연장을 쓰겠다 그러면, 다른 단체들한테는 참 잘 빌려줘요. 근데 교회에서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쓰겠다고 하면 안 빌려줍니다. 공연장 같은 거 안 빌려주는 거죠. 기독교도들의 목소리가 우리 전주 시내에서, 우리나라에서 별로 영향력이 없습니다. 막 우리 기독교인들이 막 목소리를 많이 높이고 있는데, 그런 목소리들이 별로 이 사회에 영향력이 없는 것이죠. 심지어 요즘 분위기는 교회로 사용되었던 건물들이 카페로 바뀌게 되고 식당으로 바뀌게 되고 또 술집으로 바뀌게 되는 그런 모습까지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탄하고 있는 그런 상황까지 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는 바가 뭐냐 하면 우리나라도 기독교 황금시대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소망들이 간절하게 표출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라고 하는 그런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면서, 복음을 많이 전하던 일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나십니까?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지금도 참 우리나라를 어떻게 “기독교 입국을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그런 간절한 소망을 피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요.

사실은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렇게 바람직한 것이었는가?”라고 생각해 보면, 그렇게 바람직한 것도 아니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크리천 정치인들을 많이 뽑아주거나, 기독교의 우호적인 사람들을 정치권으로 더 많이 집어넣는 일들을 하자고 막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우리 기독교가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을 당하기만 하는, 그런 우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그래서 중세 기독교 황금시대가 과연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중세 기독교 황금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오늘 살펴봄으로 인해서, “우리가 지금은 어떻게 해 나가는 것이 좋겠는가?”라고 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중세 시대는 기독교의 힘이 아주 파워가 굉장히 강해졌는데요. 특별히 기독교 중에서도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이 누구겠어요? 교황이라고 하는 인물의 그 세력이 엄청나게 강했던 시절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세속적인 정치 세계에서, 왕들이 권력을 가지고 그 나라에 대한 그 권력을 행사하던 그런 왕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종교적으로는 그 여러 성직자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정점에 있는 교황이 어쩌면 종교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종교적인 그 파워를 행사하던 시기가 중세 시대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교황의 힘이 정말 강해지고 또 강해지고 또 강해졌는데, 그 가운데서도 교황의 힘이 가장 강력해진 때가 언제였냐면 인노센트 3세라고 하는 교황 시절에 이 교황의 파워는 엄청나게 강해졌습니다.

이 사람이 인노테스트 3세인데, 이렇게 똑같게 생긴 것은 아니고, 그냥 누가 그린 거예요. 누가 그렸는데, 1198년부터 1216년 동안 교황으로 재직하던 사람이 교황 인노센트 3세라고 하는 교황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황제와의 관계 속에서, 황제의 권위보다 “황제 권세보다 교황의 권세가 훨씬 더 상위에 있다 높은 곳에 있다”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해서, 그걸 설득시키고 실제적으로도 그것을 우위를 점하도록 만들어버렸던 교황이 인노센트 3세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교황에게는 황제가 누가 황제가 되었으면 좋겠는가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것이며, 교회는 해에 해당한다면 이 세속적인 권력의 왕은 달 달과 같아서, 달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빛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서 빛을 반사시켜서 발휘하는 것처럼, 이 세상의 황제는 자기 자신의 권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힘에 의해서 그 빛을 반사하듯이 교황의 인준을 받아야 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이 황제의 그 힘보다 교회의 힘이 훨씬 더 더 높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의 힘이 훨씬 더 높게 만들어 놓으셨다고 말해서, 결국 그 말이 그리고 그것을 실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잘 행동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황제가 교황 앞에 머리를 숙이게 만드는, 황제가이 교황 앞에서 함부로 까불지 못하고 복종하게 만드는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 사람이 바로 인노센트 3세 교황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독일과 시칠리아의 황제 문제에 있어서 인노센트 3세는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 교황의 권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한번 독일 시칠리아 그걸 한번 보십시다.) 독일은 우리가 잘하는 그 독일이고 시칠리아는 어디죠?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섬을 가리켜서 시칠리아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독일과 시칠리아의 황제가 1명이었습니다. 그 황제가 이렇게 계속해서 이제 황제를 이렇게 이제 계속 연달아 내려오게 되겠는데, 프레드릭 바바로사라고 하는 독일의 황제가 있었는데, 그 독일의 황제는 알렉산더 3세 교황하고 아주 사이가 별로 안 좋았어요. 자꾸 싸우는 거야. 항상 이 권력이라고 하는 것이 싸우죠. 누가 더 힘이 세냐? 이런 걸로 가지고 싸우는데, 이 세속적인 힘과 종교의 힘이 막 싸우면서 프레드릭 바바로사 하고 알렉산더 3세 사이에는 막 이렇게 경쟁이 많이 돼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이제 그 프레드릭이 죽고 헨리 6세가 왕위를 이어받았고요. 근데 그전에 이 프레드릭 바바로사가 알렉산더 3세 교황 하고 막 사이가 안 좋으니까, 프레드릭 바바로사는 교황을 따로 이렇게 막 밀어 가지고 칼릭스투스 3세 교황을 밀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알렉산더 3세 교황이 마음에 안 드니까, 우리가 원하는 교황을 따로 세우자 해가지고, 칼릭스투스 3세 교황을 막 미는 등 그래서 사이가 별로 안 좋았었어요. 그런데 이제 프레드릭 바바로사가 죽고 헨리 6세가 왕이 됐다가 그 사람이 죽고 이제 또 왕을 세워야 되는데, 헨리 6세를 이어서 왕을 세워야 되는데, 프레드릭 바바로사의 지원을 받았던 칼릭스투스라든지 그다음에 그 귀족들인 호헨스타오펜 귀족들이 누구를 지지했냐면 필립이라고 하는 사람을 지지해서, 필립이 헨리 6세를 잇는 황제가 되는 것을 원했어요. 하지만 알렉산더 3세의 뒤를 이어서 교황이 됐던 이노센트 3세는 오토 4세를 지지한 거죠. 그러니까 헨리 6세 밑으로 필립을 황제로 세우느냐? “오토4세를 황제로 세우느냐?”라고 하는 이 세속 권력의 싸움 가운데, 이노센트 3세가 오토4세를 밀어주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족 가문인 호헨스타오펜 귀족들이 미는 필립 황제가 황제가 된 게 아니라, 오토 4세가 황제로 올라서게 된 것이죠. 교황의 힘을 업은 사람이 그래가지고 오토4세가 이노센트 3세랑 이렇게 짝짜꿍을 해가지고 오토4세가 황제가 됐는데, 그다음에 이노센트 3세랑 좋은 관계를 유지했냐면 유지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오토사세는 황제로서 자신의 권력을 막 키워나가고 싶은데, 또 이노센트는 이 황제의 권력이 이탈리아에서 커지는 것을 싫어해가지고 결국은 둘이 서로 싸우게 됐어요. 그러면서 오토4세를 이렇게 파문시키고 프레디릭이라고 하는 사람을 지지하면서 결국은 어떻게 됐는가? 이 교황의 뜻대로 프레드릭이 황제가 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이죠. 이 프레드릭이 합법적인 황제다라고 선언하는 바람에, 결국 이 프레드릭이라고 하는 사람은 교황을 지지하고, 그러면서 원래는 이 프레드릭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 교황 하고 반대되는 가문의 출신인데, 오히려 이 사람을 지지함으로 말미암아, 이 프레데릭이 교황에게 복종하기로 하고 해서 결국 이 황제를 세우는 일에 이 이노센트 교황이 적절하게 개입을 해서, 성도들에게 파문을 이렇게 이야기를 해가지고, 결국 이노센트 교황의 권위는 높아지고 황제가 교황에게 복종하는 관계가 맺어져서, 독일에서 이 이노센트 교황의 권위가 많이 높아지게 되어버린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프랑스에서도 교황의 권력이 세지게 되었는데요. 프랑스 예를 한번 봅시다. 프랑스에 황제였던 존엄왕 필립 2세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존엄왕 필립 2세가 자신의 부인이 죽자 덴마크 공주였던 두 번째 부인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부인과 살다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그래서 두 번째 부인을 폐위시켜 버리고 세 번째 부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존엄왕 필립 2세가 그런데 교황이 그걸 보니까 이거 “간음하지 말라”라고 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을 황제가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교황이 합법적인 부인에게로 돌아가라고 요구를 했어요. 그러니까 이 황제가 교황의 말을 들으려고 했겠습니까? 안 들으려고 했겠습니까? 안 들으려고 하는 거예요. 자기는 세 번째 부인이 좋아. 두 번째 집 부인은 싫고. 그러니까 교황의 말을 안 듣고 그냥 세 번째 부인에게 부인과 계속 같이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황이 무슨 일을 벌였는가? 프랑스 전체에 성례식을 성찬 금지 명령을 내렸어요. 왜? 너희들의 왕인 황제인 존엄왕 필립 2세가 교황의 말을 안 들으니, 프랑스 나라 전체에다가 징벌을 내려서 “프랑스에 있는 국민들에게는 성찬식을 시행하지 말아라.”라고 명령을 내린 겁니다. 그러니까 프랑스 국민들이 다 성도들인데, 성당에 가서 예배를 드려도, 미사를 드려도 신부님들이 성찬식을 안 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당시 프랑스 국민들이 너무나도 안 좋아가지고, 결국 그 민심이 황제로부터 떠나기 시작한 겁니다. 결국 황제가 국민들로부터 인기가 시들해져 버리니까, 할 수 없이 황제가 교황의 말에 굴복해서, 결국 세 번째 부인을 버리고 두 번째 부인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과정을 통해서 황제가 그냥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교황이 황제에 대해서 “결혼, 네 아내 세 번째 결혼은 그건 가짜야. 두 번째로 돌아가.” 이런 것들을 명령했을 때 그 명령의 황제가 교황에게 복종하는 것을 통해서, 결국 그 권력의 우선순위가 누가 더 높아져 버렸어요? 황제가 훨씬 더 높아져버려 교황이 높아져버린 거죠. 황제가 자기 힘을 가지고 있어 봤자, 교황의 힘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가 돼서 결국 프랑스에서도 교황의 힘이 아주 극대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에는 존 래클랜드 황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존 레클랜드 황제라고 하는 사람은 결혼 생활이 좋았느냐 하면, 아주 복잡했어요. 그러니까 이 결혼 생활에 대해, 결혼생활이 아주 복잡하니까, 황제가 그 교황이 (자꾸 제가 말을 헷갈리네요.) 교황이 황제한테 “그렇게 결혼생활 문란하게 하면 안 된다”라고 하면서 간섭을 해야 돼요? 해야지 말아야 돼요? 프랑스 예를 생각하면 반드시 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교황 이노센트 3세가 존 레클랜드 황제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간섭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왜 간섭을 안 했을까요? 아까 맨 처음에 독일 시칠리아 얘기할 때, 오토 4세를 교황이 지지했는데, 그 지지할 때 영국의 지원이 필요했어요. 그러니까 영국의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서, 존 레클랜드 영국 왕에 대해서 나쁜 말을 안 하고 그냥 봐준 거예요. 그러면서 결국은 존 래클랜드를 잘 이용해서 오토4세를 독일에서 세울 수 있게 만들어준 거죠. 그런데 이제 나중에 이 존 래클랜드하고 이노센트 교황하고 사이가 틀어지게 됐는데요. 무엇 때문에 그 사이가 틀어졌냐면, 영국에서 제일 큰 성당인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 문제 때문에, 둘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겁니다. 캔터베리 대성당의 대주교를 임명해야 되는데, 두 사람의 후보들이 있었습니다. 황제가 지지하는 사람 그리고 또 다른 귀족들이 지지하는 사람 해서, “두 사람의 주교 가운데 누구를 세울 것인가?”라고 하는 그런 이슈가 있을 때 교황 인노센트 3세는 그 두 사람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두 사람 다 싫다” 그러면서, 스티븐 랭턴이라고 하는 사람을 대주교로 임명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존 래클랜드 황제는 기분이 나쁘잖아요? 그래서 교황이 임명한 스티브 랭튼을 거부해서 결국 둘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노센트가 또 무엇으로 황제를 압박해요? 파문시켜 버리고 황제를 폐위한다고 말하고, 그다음에 영국에 있는 성도들은 존 레크랜드 황제의 말에 불복종하라 하고, 성도들에게 명령을 내버립니다. 그러면서 아까 프랑스 왕을 또 참전시키면서 영국과 싸우게 만들고 하니까, 존 래클랜드 황제가 막 교황하고 한번 싸워보려고 했다가 결국 자기 백성들이 다 성도들이니까, 그 성도들이 교황의 말을 듣지 황제의 말을 안 듣거든요. 그러니까 결국은 이 래클랜드가 결국 교황한테 굴복해서 결국 이 영국도 황제의 권위에 복종하게 돼서, 결국 교황의 권위가 일반 세속 왕들의 권위를 능가하도록 그렇게 만들어버린 교황이 누구냐? 이 이노센트 3세가 그런 일들을 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영국 프랑스 독일뿐만 아니라, 스페인 포르투갈 보헤미아 헝가리 덴마크 아이슬란드 불가리아 아르메니아 등등 여러 나라들의 문제에도 교황이 직접 직접 개입을 해가지고 그 황제들을 다 굴복시켜서, 결국 중세시대 때는 누가 최고의 권력을 가지게 돼요? 교황이 최고의 권력을 가지게 되는 그런 관계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교황이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됐고 교황 한마디의 말이면 이 중세 유럽이 교황의 말에 따라서 모든 것들이 다 움직이게 되는 기독교 황금시대를 가져온 것이 이런 식으로 해서 가져오게 되었다 이 말입니다.

교황의 말이, 교회의 수장의 말이 세상에서 말발이 먹히는 그 사회가 좋아 보이십니까? 어때 보이세요? 좋아 보이죠? 나중에, 이제 이 이노센트 3세는 라테란 공회를 통해서 여러 가지 법들을 제도들을 만들어내는데요. 화채설도 만들고 고해성사 종교 재판 새로운 수도의 금지 새로운 유물 인정 금지 등등 그런 것들을 결정하는 일들도 이 이노센트 3사가 했는데 지금 우리들은 중세시대 때가 굉장히 그리울 거예요. 왜 그리워요? 교회가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다 들으니까. 우리도 그런 게 많이 좀 그립잖아요? 우리 교회가 지금 여기서 교회를 하고 있는데, 우리 교회 주변에 좀 정리가 좀 잘 됐으면 좋겠는데, 제가 시장한테 딱 전화를 걸어, 시장님, 우리 교회 주변이 이게 더러워 가지고 이게 참 복잡한데, 시장님 명령 좀 내려가지고 좀 싹 쓸어버리게 좀 해주세요. 그러면 시장님이 예 알겠습니다. 목사님 하면서 싹 쓸어주면 좋아요 안 좋아요? 그게 좋아요? 그게 너무나도 좋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걸 갈망해요. 권력이라는 게 참 우리의 갈망의 대상이 되는 거죠. 하지만 정말 그게 좋았느냐? 그 중세 기독교 황금시대가 “정말 우리들에게 좋은 시대였느냐?”라고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 점을 우리가 보아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가만히 보면 이 교황이 이노센트 교황이 이노센트 3세 교황이 성경적인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 이 세상에 잘 이루어지게 만들기 위해서 그 교황의 권력을 쓴 것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이 사람한테는 당신이 재혼했으니까 원래 아내 버리고 딴 여자한테 갔으니까 당신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그 황제를 압박했던 그 교황이 다른 나라 왕에게는 프랑스 왕에게는 한마디도 얘기를 안 해요. 왜? 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그 사람한테는 그런 얘기를 안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현령비현령 같은 거예요. 보면은 그런 일들이 우리 가운데서도 많이 일어나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되어 있으니까, “이 말씀대로 해야 됩니다”라고 주장을 하는데, 알고 보면 결국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저 사람을 치고, 저 사람 저 사람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하는데, 그것을 쓴 것뿐이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그 말씀 그 열정 때문에 그것을 한 것이 아닌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이 교황의 권력을 가지고 “교황이 이런 모든 일들을 했던 것들이 정말 기독교에 유익한 일이었을까?”라고 질문을 해본다고 한다면, 그것에 많은 퀘스천(question)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가 여기서 좀 질문을 던져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번 표를 보여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믿음의 공동체를 만듭니다. 우리 성도들이 모여서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고요. 또 교회가 모여서 교단이라고 하는 공동체를 만들기도 하고 아무튼 믿음의 사람들이 형성한 그 공동체가 있는데, 그 공동체를 지켜내는 것이 믿음의 싸움일까? 예를 들어서 그 교회를 대적하는 어떤 대적이 있어서 그 대적이 교회를 계속 박해하고, 그리고 그 공동체가 그 대적과 신앙적인 이유 때문에 싸워 나가고 있어서, 그 대적과 싸워서 우리 공동체를 지켜내는 것이 과연 믿음의 공동체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무엇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일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신중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거예요. (이제 이건 이제 지워줘도 되겠는데) 결국 보면 교황이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는 일에 성경을 이용하고, 성도를 이용하고, 그리고 교회를 이용했던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 애매한 차이를 좀 아시겠습니까? 교회 우리 신앙이라고 하는 건, 제가 우리 교회에 담벼락에도 좀 몇 개 붙여놨습니다마는,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의 순수한 믿음이었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언젠가는 내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나의 우상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교회 내에서 어떤 권력을 잡는 것이 나의 우상이 되기도 하고, 모든 것들이 신앙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사실은 그게 하나님 앞에 진실한 신앙이라기보다는 사실은 내 권력을 키워나가고, 그렇게 해서 교회를 이용해 먹는 그런 일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자주 발생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마치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인 것이죠.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정말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걸 통해서 바리새인들이 얻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원했었던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면서 바리새인들의 신앙이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니라,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행한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무것도 없다고 평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 교황이라고 하는 사람이 교회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게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키워나가고 종교적인 파워를 유지하는 그런 일에 앞장서는데, 교회의 모든 것들을 이용해 먹은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래서 교회 기독교의 황금시대가 과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되는 데 있어서 정말 좋은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중세 교회를 통해서 배워 나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지난번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그 십자군 전쟁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십자군 전쟁의 명분은 뭐였어요?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교도들을 쫓아내 버리고 거기에 우리 기독교도들이 다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성지를 탈환하자고 하는 그런 선한 목적을 그렇게 제시했지만, 사실은 그게 정말 신앙의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뒤에 있는 여러 가지 악한 동기들이 작용을 해서 결국 그 악한 동기들에 의해서 순진한 성도들이 이용을 당하고 피해를 당했던 일들이 중세 시대 때 많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 중세 때의 이 모습은 중세가 황금 기독교의 황금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빛이 좋아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선 것이 아니라, 타락의 모습이었던 것이고 결국 이 중세는 우리 종교개혁자들이 개혁을 해야만 했었던 그러한 부족한 상태였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 위험성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충분히 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단독 단독자로 서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공동체적인 어떤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도 하고, 내 어떤 권력을 더 세워 나가기도 하고, 사적인 이익들을 추구해 나간다고 한다면, 신앙의 이름을 가지고서 사실은 악한 일을 하게 되는,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는, 그런 잘못으로 빠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바른 믿음, 신실한 믿음 가지고 나아가는 일에 우리가 신중을 기해야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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