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하나 읽었습니다. 무슨 내용이 진행되었는지 읽으시면서 이해가 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로보암을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했던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여로보암을 향해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죠.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던 여로보암을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거라고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선지자가 바로 유다에서부터 온 선지자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벧엘에 사는 늙은 선지자가 한 명 있었는데요. 그 늙은 선지자가 그 이야기를 아들들에게서 듣고서 그 사람을 찾아 떠났습니다. 급하게 따라가서 초대를 한 것이죠. “하나님의 사람이여, 선지자여, 우리 집에 와서 떡을 먹고 물을 마시고 그리고 쉬다 가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처음에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말씀하시기를 그곳에서 떡도 먹지 말라, 물도 마시지 마라,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그렇게 나에게 특별하게 명령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늙은 선지자가 거짓말로 이야기를 한 것일까요? 아무튼 이 유다에서 온 선지자에게 속여서 대답을 하는데, “나도 선지자인데 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라고 하는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들었다”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니까, 유다의 선지자가 따라와서 먹고 마셨는데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셨고, 결국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돌아가는 길에 사자에게 물려 죽게 되고 장사되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니까 좀 헷갈리긴 하는데 그림으로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림 잘 그렸죠? AI로 그린 그림입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이 당신을 초대하여 대접하라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내게 아무것도 먹지 말고 바로 유다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했다”고 대답을 했는데, 결국 이 이야기 끝에 벧엘의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에, 속이는 말에 끌려서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돌아가서 음식을 먹었다가 결국 목숨을 잃게 되는 그런 안타까운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됐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들에게는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오르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다시 돌아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그게 뭐가 문제라고, 그게 무슨 나쁜 일이라고… 가서 먹으면 될 텐데, 배고프면 먹으면 좋고 괜찮은 건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금하셨을까? 이해가 됩니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속이면서까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이 유다의 선지자를 그렇게 초대하려고 했고 밥을 먹이려고 했고, 그래서 죽게 만들었는가? 왜 늙은 선지자는 이런 일을 자행했는가라고 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그랬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의 질문이 있다고 한다면 어떤 질문이 있을까요? 이 이야기 가운데서 누가 더 잘못했을까? 속인 사람이 잘못입니까? 속은 사람이 잘못입니까? 속인 사람이 더 잘못인 걸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속아서 넘어간 이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죽임을 당하고 심판을 당했다고 하는 이야기… 도대체 왜 이렇게 하시는 것일까라고 하는 질문이 떠오르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 이야기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라고 하는 질문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될 질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유다의 선지자로 하여금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그곳에서 물도 마시지 말고 그리고 그곳에서 머뭇거리지도 말고 바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혹시 아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왜 하나님께서 그러셨을까? 아마도 추측해 본다면 이렇게 추측을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것은 추측이기 때문에 정답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텐데요. 어쩌면 먹는 것이라는 것은 화해의 상징이고 함께 교제하고 함께 길을 간다는 것이고 함께 같이 협력한다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북쪽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아주 강력하게 선포하기 위해서 “너희들과 교제할 수 없다, 너희들과 발길을 끊겠다, 너희들과 단절한다”라고 하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말고 돌아오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는데,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난 다음에 다시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먹는다면 모양새가 별로 멋있는 모양새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복음을 전하다가 그 동네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버리고 그 성에서 나오라고 말씀해 주신 것과 아마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예전에 사울 왕이 사무엘 선지자의 심판의 메시지를 들었을 때 사울 왕은 사무엘에게 간청합니다. “저와 함께 가주세요. 저랑 같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면서 간청했을 때,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한 다음에 사울이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가다가 사무엘의 옷이 찢어지는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어쩌면 아무것도 먹지 말고 바로 오라고 하는 얘기는 하나님의 심판의 단호함, 하나님께서 북쪽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에 대한 그 심판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까지밖에 생각할 수가 없겠습니다.
두 번째로 왜 이 늙은 선지자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이 유다의 선지자를 초대하려고 했을까 혹시 아십니까? 모르겠어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추측에 의해서만, 상상에 의해서만 생각해 볼 수밖에 없게 되는데, 아마도 이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반적인 뜻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죠. 나그네를 외면하지 않고 대접하는 것,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하는 것, 친절을 베풀고 사랑을 베풀고 환대하는 것 자체는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이 하나님의 사람이 우리 동네에 왔다면 그냥 밥도 안 먹이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극진하게 대접하고 사랑으로 대접하는 게 어쩌면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이었기 때문에, 이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당연히 우리가 이런 일들은 해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천막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자기 집 앞으로 지나가는 세 명의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가서 간청한 것이죠. “그냥 지나가지 마십시오, 그냥 지나가지 마십시오. 우리 집을 지나게 되었으니 우리 집에 와서 제가 대접하는 음식을 먹고 가십시오” 하면서 그렇게 간절하게 아브라함이 대접하고 환대해 주었는데, 성경은 가르치기를 그 아브라함의 행위가 무엇이었는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것이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그 전체적인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안다면 이렇게 대접하는 것은 내가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을 행할 수 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축복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그 사람들이 내 초대에 응하는 것은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관점들이 성경에 많이 나와 있는데, 어쩌면 이 벧엘의 늙은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선지자를 내가 초대하고 대접할 수 있다면 그게 내게 축복이 될 거라 생각해서 그 일을 하면서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실수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유다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는 그 늙은 선지자의 이야기를 듣고 “과연 그러한가” 하고 재차 하나님 앞에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실수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좀처럼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됩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우리가 잘 분별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유다의 선지자는 속고 말았습니다. 왜 속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준다고 하니까 그냥 믿고서 따라갔다가 속아 넘어가게 된 것이죠. 그런데 속은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는가 하면, 사실은 속은 게 잘못입니다. 속은 게 괜찮은 건가요? 속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건가요? 그게 아니죠. 사실 죄의 본질이 무엇인가? 속아 넘어가는 게 죄의 본질입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타락하게 된 이야기,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서도 하와는 사탄이 속삭이는 말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은 거예요.
속이는 자가 있었는데 그 속이는 자가 속이고 있을 때 그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게 잘못이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속아 넘어가는 것은 괜찮다 생각할 게 아닙니다. 보이스피싱이 있는데 그 보이스피싱으로 인해서 내가 속아 넘어가서 그 보이스 피싱범들에게 끌려가서 내가 나쁜 짓을 하게 된다면, “나는 속았으니까 아무 잘못이 없나요?” 속았으니까 잘못이 없는 게 아닌 거죠. 속은 게 잘못인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수많은 사람이 잘못된 이단 종파에 빠져서 속아 넘어가서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때로는 반사회적인 잘못된 일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 속아 넘어갔기 때문에 죄가 없는가? 죄가 없는 게 아니죠. 잘못인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늘 분별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우리가 분별해야 되는 거예요.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분별해야 되는 거예요. 누구처럼? 사도행전 17장 11절에 나오는 베뢰아 사람처럼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면 그게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고 있는 저 말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우리가 분별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젊은 선지자가 나오든 늙은 선지자가 나오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하면 그냥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가 하고 다시 살펴봐야죠. 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지체하지 말고 바로 돌아오라”는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과 정반대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한다면 그렇구나 하고 따라갈 게 아니라,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다시 한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악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죠.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그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늙은 선지자가 하는 이야기만을 듣고 따라가게 될 때, 결국 죽임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게 됐지만, 자기만 죽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깨달으면 안 되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죠? 바울 사도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핍박하는 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 줄 알았어요.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실까? “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게, 저 교회를 핍박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구나,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신다”라고 확신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다닌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던 그것이 잘못된 깨달음이었고, 알지 못해서 내가 그렇게 했구나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디모데전서 1장 13절의 말씀 가운데 이렇게 바울 사도는 고백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내가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바울 사도가 무지 중에 그렇게 했다고 고백을 했는데, 사실 그 무지 중인 상태에 있을 때 바울 사도의 확신이 무엇이었습니까? “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핍박해야 된다”라고 생각했던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오늘날도 마찬가지예요.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을 잘못 알고 잘못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을 엉뚱한 데로 가르쳐서 수많은 사람을 선동시키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거짓 목회자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고, 그런 거짓 목회자에게 속아서 자신의 인생을 망칠 뿐만 아니라 사회를 망치고 이 나라를 망치는 그런 엉터리 같은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죠.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목사라고 하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게 아니에요. 무엇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은 뭘 해야 됩니까?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되는 거예요. 매일매일 읽고 묵상하고 말씀의 실력을 키워나가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고,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실력을 키워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진공 상태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무균실 가운데 예수님께서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계속해서 끊임없이 예수님을 향해서 속삭이는 소리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사탄이 와서 유혹하는 것이죠. “떡을 먹어라.”
늙은 선지자가 젊은 선지자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와서 떡을 먹으라” 했던 것처럼, 사탄이 예수님에게 떡을 먹으라고 요구했던 것이고, “내게 절하면 이 세상을 주겠다”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는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한 것이고요. 사탄에게 절하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절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순종한 것이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려고 할 때 또 누가 나섰습니까? 베드로가 나서서 말렸습니다. “안 됩니다, 예수님 이럴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가 이야기할 때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을 말렸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야 되는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되는데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랬을 거 아니에요?
그럴 때 “그렇구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그래 내가 죽으면 안 되겠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아셨던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십자가의 길을 가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성령의 음성이 우리들 가운데 들릴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육체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죠. 똑같은 일을 만났을 때 정반대되는 소리들이 들리는 겁니다. 성령님의 소리는 무엇입니까? “사랑하라, 용서하라, 더 낮아져라, 섬기는 자가 되라”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 육체의 소리는 어떤 소리로 들립니까? “이 시간에 네가 잠잠하고 있으면 너를 계속 무시할 거야. 이 시간에 본때를 보여줘서 다시는 나한테 도전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짓밟아버려라.” 정말 멋있는 소리 같아요, 이게. 좋은 소리 같아 그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네가 네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하면 너는 계속 무시를 당할 거야”라고 하는 그런 소리, 육체의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17절의 말씀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똑같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반응을 나타낼 수도 있고, 오늘 이 젊은 유다에서 온 선지자처럼 사탄의 소욕에 이끌려 가다가 멸망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닫아버리고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금년 2026년 한 해 주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더 따르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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