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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의 성탄(마 2:13-18)

오늘이 무슨 날이죠? 성탄절이에요. 성탄절이 무엇이죠? 성탄절이 무엇이냐면 예수님의 생일인 것이죠. 예수님께서 태어난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 성탄절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진짜 생일은 아닙니다. 오늘의 진짜 생일은 누구의 생일이죠? 아마 노해경 집사님 생일 같아요. 맞습니까? 아,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예수님의 생일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예수님의 생일이 정말로 언제였는지, 언제 태어나셨는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죠.

하지만 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만든 것일까요? 왜 이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12월 25일이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짓날이 되면 밤의 길이가 이제부터 점점 짧아지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제 어둠이 점점 물러가고 빛의 길이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 의미가 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신 그것과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해서, 동짓날과 비슷한 날인 12월 25일을 예수님의 생일로 기념하면 어떻겠는가 하여 지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탄절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들에게 구원의 길을 새롭게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얻을 수 있는 방법,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방법,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아니하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예수님이 제시되신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되는 놀라운 길이 열리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이 새로운 방법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예수님이 오셔서 그 예수님을 우리가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이 새로운 방법이 기쁜 소식일까요, 좋은 소식일까요, 아니면 나쁜 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좋은 소식이죠.

하지만 불신자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정말 좋은 소식이구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당황스러운 소식이고 이건 황당한 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불신자들이 왜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반기지 않고 이것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생각하기를 “우리가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 우리가 선하게 살면 지옥에 가지 않고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신 이야기는 “그거 가지고 안 돼,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지금 와서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당황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착하게 사는 것 말고 하나 더 해야 된다고? 예수님을 더 믿어야 된다고?” 하면서 당황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죠.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 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해서 수능에서 만점을 맞았습니다. 수능에서 만점 맞으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나요, 없나요? 있어요. 그래서 자신 있게 대학에 나를 합격시켜 달라고 얘기했는데 대학 측에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만점 받아도 소용없어요. 예수님 믿어야 대학 합격시켜 줘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학생이 황당하겠습니까, 좋아하겠습니까? 황당하게 생각하는 것이죠. “내가 지금까지 착하게 살려고 했는데, 그래서 나는 구원받을 줄 알았는데, 그거 가지고 안 돼? 예수님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이야기하게 될 때 많은 사람이 황당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게 바로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생각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들에게 추가적인 것을 더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천국 갈 수 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착하게 살아서 다 구원받을 수 있는데, 그거 가지고 안 돼. 예수님을 추가적으로 더 믿어야 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모두가 다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완벽하게 착할 수 있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데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완벽하게 선하게 살아서 하나님 앞에 100점 만점 합격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게 우리들의 문제인 것이죠.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서서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 나는 완벽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 못 합니다.

“먼지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불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고, 모두가 다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다른 방법을 주신 것이죠.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사람이 다 멸망하게 생겼어요. 모든 사람이 다 망하게 되었어요. 죽게 되었어요. 죄로 인해서, 그 마음의 사악함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 죄 때문에 단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사람 없이 다 멸망받게 되었을 때, “그래 너희들이 죄지었으니까 지옥에 가버려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가 멸망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제는 우리가 선을 쌓아서 착한 일을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 새롭게 구원받을 길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보내어 주셔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좋은 소식입니까, 나쁜 소식입니까? 좋은 소식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심장 이식 수술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혹시 주변에 심장 이식 수술받은 사람을 알고 계십니까? 저는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심근경색에 걸려서 심장에 문제가 생긴 분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상태대로 그대로 있으면 얼마 사시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심장 이식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심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심장 이식을 받을 수 있는 그 심장이 쉽게 생길까요? 안 생겨요. 누가 자기 심장을 꺼내 줄 사람이 있을까요?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심장이 생겨서 그 심장을 이식받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순번을 정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심장이 나타나질 않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이 들린 거예요. 심장이 딱 맞는 심장이 생겼다는 거예요. 좋은 소식입니까, 나쁜 소식입니까? 좋은 소식이에요. 그 심장을 이식받을 수만 있다면 내가 더 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느 날 연락을 받았어요. 저 먼 동네에 어떤 사람이 사망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해서 그 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 집사님이 너무나도 기뻤어요. 그 부인도 너무나도 기뻐하고 이제는 심장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겁니다. 심장을 떼서 가지고 와서 이식을 해줘야 하는데 몇 시간 만에 이식을 해줘야 하는가? 심장을 뗀 지 2시간 만에 이식을 해줘야 하는 거예요.

저 멀리에 있는 분의 심장을 헬기로 가지고 와서 그 사람에게 이식 수술을 하기 위해 이제 심장을 떼어냈습니다. “준비하십시오.” 그래서 그 사람의 배를 갈라서 심장을 떼어내고, 심장이 도착하면 바로 이식해 주는 수술을 하기 위해 딱 준비하고 있는데 연락이 온 거예요. 날씨가 안 좋아서 헬기가 뜰 수 없대요. 그래서 그 심장이 이쪽으로 오려다가 이쪽으로 안 오고 그다음 순번인 다른 가까운 데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다가 나중에 또 소식이 들린 거예요. 이번에 심장이 진짜로 생겼다고 해서, 나중에 이분이 심장 이식 수술을 받게 됐어요. 그래서 그분이 건강한 몸을 얻게 되어서 지금도 살아 계셔요.

만일 우리들이 이런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이렇게 심장 이식을 받지 아니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심장이 주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고 한다면, 우리들에게 기쁜 소식입니까, 나쁜 소식입니까? 기쁜 소식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받아들여야 될까요? “나는 심장 이식 안 하겠다”고 거부하는 것이 좋을까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예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심장을 우리들에게로 이식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가만 내버려 두면 우리는 영적인 심근경색에 걸린 것처럼 죽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고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영적인 심장 이식 수술을 해주시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우리가 영접하고 믿고 예수님의 심장을 우리의 심장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될까요, 안 믿어야 될까요? 믿어야 하는 거예요. 그 옛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그 기쁜 소식을 들을 때 나와는 상관없다고 하면서 거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이며 그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의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놀라운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내가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 예수님 믿어요.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했어요.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해요.”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로마서 10장 10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다고 시인하기만 하면,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만 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로마서 10장 10절 말씀을 보면서 착각하기가 쉬워요. 그런데 사실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그냥 내가 말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 내가 예수님 믿어요라고 그렇게 고백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서, 바로 10장 10절 앞에 있는 9절 말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하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시인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우리 옛날 필라델피아에 있던 그 집사님처럼 “심장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심장 이식 수술을 받으면 됩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그렇군요” 고개만 끄덕끄덕거리고 “네, 아주 좋은 소식입니다” 그렇게 고개만 끄덕거리면 될까요? 아니요. 어떻게 살아납니까? 그 심장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내가 수술대 위에 올라가서 내 안에 들어 있던 죽은 심장은 꺼내버리고, 살아있는 새로운 심장을 내 속에 받아들이는 수술을 할 때 그 사람이 살아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말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내 삶의 주인으로, 내 인생의 주인 자리에서 있던 내 자아를 내버리고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수술대 위에 올라가서 이제는 내 주인이 내가 아니라, 이제는 나의 주인이 돈이 아니라, 이제는 나의 주인이 성공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예수님의 그 심장을 우리의 몸에 받아들이는 것이 그게 믿음인 것이죠.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은 정말 기쁘고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단순히 유대인들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오신 것이고,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아주 훌륭하고 똑똑하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 아니라 아무런 힘도 없고 나약한 사람들, 부족한 사람들, 실패한 자들에게까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누구든지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해주시는 놀라운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오신 소식은 아주 기쁜 소식인데요. 누가복음 2장 10절, 11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지금까지 내가 착하게 살려고 해서, 열심히 노력하려고 해서 구원받을까 했더니 그게 안 돼서 실패한 사람들, 내가 완벽하지 못한 상황에 있지만 그 누구든지 이제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영접하면, 내 심장을 내어놓고 이제는 예수님의 심장을 우리에게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누구라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이 놀라운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소식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그 심장을 내게 주옵소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고백하며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놀라운 결단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헤롯이라고 하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헤롯은 예수님이 이런 기쁨의 선물로 우리 가운데 왔을 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헤롯은 어떻게 했나요? 그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이죠. “아니, 내가 왕인데 나 말고 다른 왕이 태어났다고?” 하면서 이 헤롯 왕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죽이려고 하면서 속임수를 쓴 거죠. 어떤 속임수를 썼습니까? 동방 박사들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나도 가서 경배하려고 할 테니까 그 예수님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나에게 알려주면 나도 가서 경배할 테니까 나에게 알려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동방 박사들이 알려줬을까요, 안 알려줬을까요? 안 알려줬어요. 쿠팡보다 나아요. 개인정보 보호를 하고서 그냥 가버렸어요.

하지만 이 헤롯이 포기하지 않았어요. 선을 행하면서는 조금만 어려우면 못 하겠다고 말하고, 복음을 위해 일하다가는 조금만 힘든 일이 있어도 “나 더 이상 못 해먹겠다”라고 말하는 게 우리들의 마음인데, 악을 행하는 사람은 조그마한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악을 행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헤롯 대왕은 어떻게 했는가? 예수님이 태어난 베들레헴 주변의 마을들에 있는 모든 아기를 다 죽여버리는 그런 사악한 결정을 하게 된 것이죠.

악을 포기하지 아니하면서 이렇게 헤롯 왕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달려들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호하셨습니다. 왜 이 헤롯 왕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일까요? 왜 그러는 것일까요? 선물인데, 정말 이 헤롯 왕도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인데, 왜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그게 사실 헤롯 왕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행복한 삶이 열릴 것이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심장을 꺼내서 우리의 심장을 빼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려고 하기보다는 자꾸만 예수님을 거부하려고 하는 그런 행태가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도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헤롯이 누구예요?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부복하면서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세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내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속에서부터 제거해 버리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그 말씀을 외면해 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왕이 되어서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그런 악한 마음들이 오늘 우리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들여다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원하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생명의 좋은 소식들을 거부하지 아니하고 주님 앞에 우리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성탄의 기쁨이 단순히 어느 한 날 우리가 웃고 즐기고 선물을 주고받고 노래를 하고 즐기는 그날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삶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그래서 실제로 우리의 삶 가운데 매일매일이 성탄절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깨닫게 되는 그런 놀라운 기쁨의 삶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헤롯처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동방의 박사들처럼, 그리고 주님 앞에 나와 경배했던 목자들처럼 “예수님이 저희들의 삶 가운데 오시옵소서”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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