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람의 계획,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읽은 잠언 19장 21절의 말씀에 기록하기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이런 계획을 세우고 저런 계획을 세우고 아주 대단한 계획들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결국 이루어지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누구의 뜻이 이루어진다고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정말 우리 기독교 신앙의 아주 근본적인 고백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께서 온 세상 천지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에, 이 세상은 누구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가? 사람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끌어가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고백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성경 여기저기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잠언 16장 9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장 1절 말씀에서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예레미야 10장 23절 말씀에도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지금 걸음을 걸어가고 있는데, 내가 걸음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시다?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움직인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멋진 계획을 수립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사람이 수고하고 애쓴다고 할지라도, 어떤 일의 성공이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달려 있습니까?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며, 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우리의 계획에 따라, 우리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뜻대로 움직인다?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3절에서부터 16절의 말씀에서도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우리가 계획을 세워놓고 그 계획을 자랑하면서 우리가 이것을 하겠다, 저것을 하겠다 말하고 있지만, 우리의 인생이 무엇과 같은가? 마치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다라는 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허망한 일일까요? 계획을 세우는 것이 다 부질없는 일일까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그런 의미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냥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이 어차피 하나님의 뜻대로 될 거니까 될 대로 돼라. 내가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계획 세울 필요 없다. 내가 뭐 한다고 그렇게 나댈 필요 없다. 그냥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만을 기다릴 뿐이지, 우리가 수고하거나 계획하거나 노력하거나 하는 것들은 다 부질없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바른 결론이라고 말할 수가 없겠습니다.
우리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지만,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 어느 한두 구절의 말씀만 보고 그 말씀에 따라서 결론을 내릴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종합적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성경의 이쪽 부분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의 말씀,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들려주시는 이 하나님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가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니까 우리가 계획 세울 필요가 뭐가 있겠나, 우리가 수고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어차피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가 무슨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것, 우리가 수고하는 것 그거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만, 사실은 그렇게 결론을 내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다른 곳에서는 우리가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계획 세우는 거 그거 쓸데없는 일이다. 수고하는 거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봤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냥 부질없는 짓이다”라고 성경 전체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는 계획을 세우는 것의 중요성, 우리가 수고하는 것의 중요성, 우리가 얼마나 준비하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잘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잠언 6장 6절에서부터 8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우리가 개미에게 가서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개미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누가 감독하지 않아도,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일할 수 있을 때 일을 열심히 해서, 일할 수 없을 때를 위해 지금 미리미리 계획하고 준비하고 나중을 위해서 대비해 놓는 그런 지혜를 개미에게 가서 배워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되는가? 성경 말씀에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걱정할 것이고(또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너는 그날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요, 쓸데없는 짓일까요? 준비해야 돼요. 언제? 지금, 아직 힘이 있을 때, 아직 할 수 있을 때,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일할 수 있을 때 지금 열심히 잘 준비해야 합니다. 이제 나중에 내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때, 예전만큼 일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미리미리 대비해서 우리의 인생의 겨울이 오게 될 텐데, 그 인생의 겨울에 여름에 준비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주 지혜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잠언 21장 5절 말씀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여기서 ‘부지런한 자의 경영’이라고 했는데, 이 경영이라고 하는 말이 ‘계획’이라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똑같은 단어예요. 똑같은 단어를 어디에서는 ‘계획’이라고 번역을 했고, 어디에서는 ‘경영’이라고 번역을 해놓아서 우리가 볼 때는 이게 다른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게 같은 단어예요. 부지런한 자의 계획은 어떻게 될 것이다? 풍부함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람이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그 얘기는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것이 허무한 것이요 아무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21장 5절 말씀에서는 부지런하게 계획을 세운 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 계획을 잘 세워서 그 계획에 따라서 수고하며 애쓴다면 그러면 풍부한 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4장 28절에서 30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어차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니까 계획을 세우지 않고 무대포로 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면 세워주시는 거고 말면 말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된다? 미리 계획도 세우고,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우리의 가진 힘과 능력과 역량으로 이것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가 따지고 계산하고 머리를 써서 잘 준비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본다고 한다면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 19장 21절의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좋은 거예요.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잠언 19장 21절에서 사람이 아무리 많은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를 우리가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계획을 세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계획을 세웠습니까? 요셉이 계획을 세운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7년 동안의 풍년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7년 동안의 기근이 있을 것이라는 것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대비해야 될 것인가를 계획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해결해 주시겠지 하면서 그냥 손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7년의 풍년 기간 동안에 열심히 곡식을 모아들이고 쌓아두고 저장해 두어서 다가올 7년의 흉년 기간을 위해서 대비해 놓는 그 지혜가 요셉에게 있었던 것이죠. 여호사밧 왕은 어떻게 했는가?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미리 전쟁에 대해서 준비를 했습니다.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배치했고, 곳곳에 국방 성읍과 창고 성읍을 세웠고, 군사력을 체계적으로 관장하면서 정말 강력한 상비군을 유지함으로 말미암아, 남유다 여호사밧 왕 시절에는 결국 주변 나라가 싸울 생각을 못하고 조공을 바치는 강력한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하고 평화 시에 전쟁을 준비하는 그런 지혜로운 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계획을 잘 세워야 하는데, 우리가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시편 127편 1절, 2절과 같은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시편 127편 1절, 2절의 말씀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최선을 다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없다고 한다면 다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가 정말 열심히 노력하지만, 우리가 가정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그리고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신다면 아무리 수고해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최선을 다했다가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고 한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야, 내가 잘해서 이렇게 잘됐구나”라고 하는 교만한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이러한 은총을 입게 되었다고 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수고하고 계획을 세웠어요. 계획을 세워서 정말 많은 계획을, 정말 탁월한 계획을, 아주 훌륭한 계획을 세워서 그 계획대로 잘 진행해 나갔는데, 그래서 결국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한다면 “야, 내 계획이 좋았구나, 내가 탁월했구나, 내가 이만큼 잘했구나” 그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열심히 최선을 다했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에는 절망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고,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신다는 사실을 안다고 한다면, 우리는 내일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성공할까 실패할까, 내일 잘될까 망할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불안한 마음이 있을 수 있는데요. 그런데 성경적인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내일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가 아니라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했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죠. 하지만 내가 수고한 것이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두려워하고 염려하면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성공하는 게 제일 좋고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리는 게 좋고, 우리가 계획한 대로 그대로 잘 이루어지는 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들의 생각과 달라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시련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장애물을 주시기도 하고 어려운 일도 주실 수 있고, 그것이 누구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실패한다고 한다면 그러면 절망할 필요가 있습니까? 절망해야 합니까? 아니요. 왜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까?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고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계획한 대로 그대로 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계획한 것과는 정반대로 실패하고 망해버릴 수도 있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 어떤 것을 통해서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가장 좋은 길로,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계획을 잘 세웠습니다. 바울 사도는 아주 훌륭한 엘리트였기 때문에 모든 일을 할 때 그냥 즉흥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들을 잘 세우고, 어떻게 하면 선교 사역을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계획을 잘 세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세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고 모든 일들이 하나씩 둘씩 다 막혀버린 적이 있어요. 지금의 튀르키예 지방인, 성경 표현대로 말하자면 아시아라고 하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모든 계획을 세워서 진행해 나가고 있는데 이상하게 모든 것들이 다 막혀버리는 겁니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이것도 안 되고 모든 길들이 다 막혀버리는 그 순간에, 바울 사도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이 드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이곳에서 전하지 못하게 만드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내 길을 여기서 막으시는구나”라고 그렇게 느낄 정도가 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바울 사도는 깨달았습니다. 나로 하여금 어디로 가라고? 저 유럽으로 가라고, 마케도니아로 가라고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의 발걸음을 옮기셔서 지금까지는 소아시아 지역에서만 복음을 전했지만 소아시아 정도가 아니라 마케도니아로 가서 거기서,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고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 그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바울 사도의 발걸음이 유럽으로 향하게 되는 그런 엄청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바울 사도는 또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놀라운 계획을 하나 세웠습니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수많은 반대를 해왔기 때문에 내가 이번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대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다 풀어주어서 내가 유대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를 아주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어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유대교와 그렇게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정말 유대교에서 우리가 믿었던 바를 그대로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일 뿐, 나는 유대교를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그렇게 오해를 풀기 위한 작전을 세우게 됐습니다.
그래서 나실인의 서원을 하면서 머리도 깎고 그러면서 내가 나실인 서원도 하고 예물도 드리고 하는 그런 모든 행동을 통해서 나는 정말 율법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계획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데, 그 계획이 잘 성공을 했습니까? 성공한 게 아니고 오히려 더 오해만 사게 되었어요. 바울 사도가 이방인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고 하는 오해만 받게 되어서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잡히게 되고 결국 재판을 받게 되고 죽임을 당할 위기 가운데 있게 되는 상황 가운데 모든 일들이 다 막혀버린 것 같지만, 그러나 그 길이 망하는 길이 아니라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엄청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바울 사도를 인도하시는 그 역사를 보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 잠언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뜻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고 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금년 한 해, 2025년을 살아오면서 우리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졌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계획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로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까? 어떤 길로 왔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주장하고 계시고 섭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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