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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예정(엡 1:7-14)

새해가 되면서 에베소서의 말씀을 가지고 당분간 에베소서의 말씀을 살펴보겠다고 예고를 드렸는데요. 곧바로 후회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서 1장의 말씀을 보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읽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명쾌하게 들어오던가요?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지요? 잘 모르실 겁니다. 제가 성경을 웬만큼 연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운데, 우리 성도님들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싶어 약간 후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이 말씀의 메시지를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파악하려고 했지만, 대답보다는 질문이 더 많이 떠오르고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쉬운 본문만 하고 지나갈 것은 아니고,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모든 말씀을 다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크게 이야기하면 에베소서 1장 1절과 2절은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나오는 3절에서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을 찬양하자’라고 하는 권면의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3절에서부터 14절까지의 메시지 핵심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을 찬양하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특별히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다른 말을 하는 것보다도 이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들려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메시지들이 있을 텐데, 수많은 메시지 가운데서 바울 사도가 그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메시지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했을 때, 이 에베소 교회의 상황은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아주 좋은 상황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려운 상황이었을까요?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잘 알듯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고 때로는 참 마음 아픈 일들도 많고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있을 텐데, 바울 사도가 이 편지를 쓰면서 제일 먼저 던졌던 메시지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일 것이라 생각이 들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늘 권고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들은 늘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어려운 일들이 펼쳐지고 당장 우리들의 눈앞에 절망적인 상황들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보면서 슬퍼하거나 우울해하고 좌절해 버리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간에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요? 바로 찬양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내가 찬양의 삶을 살아야 되겠다, 찬양하자”라고 하는 마음의 자세를 우리가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옛날 시편 기자들은 시편을 보면 자기 자신을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는가 어찌하여 괴로워하는가.” 이 세상의 것들을 보면서 그렇게 낙망하고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라고요? “내 주 하나님을 바라라, 내 주 하나님을 바라보아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송하고 경배하며 사는 삶, 그것이 우리 모두가 회복해야 될 자세임을 믿습니다. 2026년 한 해를 시작하는 가운데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늘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우리 모두가 다 회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찬송하라고 권면하면서, 왜 찬송해야 하는지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왜 찬송해야 하는가? 그냥 뜬금없이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찬양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찬양의 이유가 무엇이죠? 그것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은 긍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긍휼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셨다는 것이죠.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부족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해버리고 끝내신 것이 아니라, “이 나쁜 놈들” 하면서 책망해 버리고 끝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우리를 회복시키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신 그 하나님의 긍휼하심,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보며 주님을 찬양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실 때 우리를 어떻게 자녀로 삼아주셨는가? 그것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에베소서 1장 4절 말씀에 보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언제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는데 그 시점이 언제냐 하면, 지금 선택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 보고 “이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확인해 보고 우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아직 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아니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고 계시고 우리를 선택하셔서 이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를 만드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셨는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준 근거가 무엇인가? 우리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가, 우리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가, 얼마나 많은 공로를 남겼는가에 근거해서 우리를 선택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을 때, 그때 미리 우리를 예정하시고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슨 근거로 우리를 선택하셨을까요? 우리의 무엇을 보고 선택하셨을까요? 그것이 근거가 아니라 무엇으로 우리를 선택하셨다고요? 하나님 마음대로입니다. 가장 쉬운 표현이자 약간 속된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판단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는가 하면 “하나님 마음대로” 선택하셨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고, 선택하기 싫은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냥 하나님의 마음에 달려 있는 그런 선택을 하셨다고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9절의 말씀이죠.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하나님께서 “좋겠네, 이 사람을 우리 자녀로 삼으면 좋겠다”라고 기뻐하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서, 하나님을 기준으로 두고 선택하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죠.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지, 우리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 9장 20절에서 21절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토기장이가 있는데요, 그 토기장이가 똑같은 진흙을 가지고 어떤 진흙으로는 아주 고급스럽고 멋진 귀한 제품을 만들 수도 있고, 어떤 것은 그냥 평범한 그릇을 만들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 진정욱 집사님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진흙의 차이가 있어서 그럴 수 있겠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토기장이에게는 선택하고 싶은 대로 만드는 그런 권한이 있는 것이라고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고요. 로마서 9장 15절 말씀에서도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되겠다” 싶으면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는 거예요.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일방적으로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인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무슨 이런 원칙도 없이 그냥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뽑힌 우리로 봐서는 그것이 너무나도 큰 은혜인 거예요. 우리에게 자격이 없는데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것을 더 명확하게 드러낸 예가 에서와 야곱의 예라고 하겠습니다. 로마서 9장 13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언제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선택하셨고, 에서는 선택하지 않으셨나요?

야곱과 에서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리브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네 태중에 두 아이가 있는데 그중에 야곱은 내가 선택했고 에서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야곱이 무엇인가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이에,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게 오늘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실 때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그냥 자녀 삼아 주셨나요? “그래 그래 그냥 너는 내 자녀 돼”라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사실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를 그냥 자녀 삼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주셔야만 했던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피를 다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그런 희생,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된다고요?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어떻게 해야 한다? 찬송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권면합시다. “찬송하며 삽시다. 감사하며 삽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의 공로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냥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자랑할 수 없고 겸손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절, 9절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만일 우리의 선함에 근거해서 우리가 선택되었다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어낸 것에 의해서 우리가 선택되었다면 자랑할 만하겠죠. “내가 이래 봬도 이런 일을 했고 이런 업적을 쌓았으니까” 하며 자랑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공로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태초에 우리를 선택해 주셨다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느낌을 받아야 합니까? 당황스러워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올림픽에 나갔는데 거기서 금메달을 받았다면 자랑스러울까요, 당황스러울까요? 자랑스럽지요. 왜 자랑스러울까요? 지금까지 흘린 땀이 있고 노력이 있고 수고를 했으며,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내가 더 많이 노력하고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서 금메달을 획득했다면 당연히 자랑할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금메달을 땄어요. 기뻐하고 자랑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자랑해야지요. 그런데 그 사람이 금메달을 따는 순간에 자랑한 것이 아니라 “이게 뭐지? 내가 왜 금메달이지?” 하면서 당황스러워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혹시 그게 누구인지 아십니까? 우리나라 복싱 선수 박시헌 선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보시죠?

1988년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88 서울 올림픽 때, 마지막 날 복싱 경기 라이트 미들급 결승전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의 박시헌 선수와 미국의 로이 존스 주니어 선수 두 사람 간의 복싱 경기가 열렸습니다. 복싱 경기를 하는데 두 선수가 펀치를 날리고 맞붙고 하는데, 어느 한 사람이 상대를 **K.O.(케이오)**로 때려눕히면 승부가 금방 갈리겠지만, K.O.가 되지 않고 펀치만 주고받은 경기는 판정승에 의해 승자가 결정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더 잘했느냐 하면 미국의 로이 존스 주니어 선수가 훨씬 더 잘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로이 존스 주니어 선수는 86번의 유효 펀치를 날렸습니다. 박시헌 선수는 그에 비해서 유효 펀치를 32번밖에 못 때렸어요. 누가 판정승하는 게 맞습니까? 예, 로이 존스 주니어가 승리하는 게 맞지요.

로이 존스 주니어가 승리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심판이 양 선수의 손을 붙들고 이제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데, 박시헌 선수는 ‘나는 졌으니까 은메달이겠구나’ 생각하고 있고, 그 옆의 로이 존스 주니어는 기분이 들떠서 ‘내가 승리하겠구나, 금메달을 따겠지’ 하며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표가 나는 순간 무슨 발표가 나느냐 하면 “박시헌!” 하고 박시헌 선수의 손을 번쩍 들어준 것입니다. 그 순간 박시헌 선수가 “내가 왜 금메달이지? 내가 왜 금메달이야?”라며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고, 관중석에서는 온갖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로이 존스 주니어는 너무나 황당한 나머지 그냥 들어가 버리고 말았죠.

알고 보니 그 당시에 동독과 미국이 메달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동독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하나 더 따면 동독보다 순위가 올라가니까, 동독에서 심판들을 매수해서 한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주게 하여 미국의 순위를 낮추려는 작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해 심판진 가운데 한 명은 영구 제명당하고 두 명은 징계를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금메달을 딴 박시헌 선수는 그 경기 이후 커리어가 잘 나간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짐 때문에 선수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하고 은퇴했습니다. 그 뒤로도 마음의 부담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는 등 참 힘들게 인생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가 2023년 5월에 미국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박시헌 선수가 플로리다 펜사콜라에 있는 로이 존스 주니어의 체육관에 찾아가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금메달을 로이 존스 주니어에게 주었습니다. 사진 한번 봅시다. “이 금메달은 내 것이 아닙니다. 당신 것입니다.” 35년 동안 짓눌렸던 그 마음을 내려놓으면서 “당신이 그때 진짜 금메달 주인공입니다”라며 전달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의 구원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잘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깨끗하고 완벽한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세상 사람들이 “저 크리스천들은 위선자다, 나쁜 놈들이다, 속이 다르다”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사실 그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고 늘 마음속에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들인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손을 들어주시고, 저 천국의 면류관을 우리들에게 씌워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금메달을 가지고, 면류관을 가지고 “내가 구원받았다”라고 외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금 면류관을 벗어서 주님 앞에 겸손하게 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매일매일 우리들의 삶은 어떤 삶이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 나와 같은 죄인이 이런 구원을 받는 것이 가당치 않은 일이며, 사실 이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며 면류관을 벗어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마지막 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순간 우리는 더 확실하게 깨달을 것입니다. 마치 닫혀 있던 집 안에 창문 하나를 열면 햇볕이 들어오면서 깨끗한 줄 알았던 방안이 먼지로 가득 차 있음이 드러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빛 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그 순간 우리들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가가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기를 “내가 여기에 들어오게 된 것이 내 공로가 아니요, 내가 잘 살거나 믿음 생활을 잘하거나 헌신을 잘해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죄인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면류관을 벗어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예정이요 축복이었음을 고백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해야 하는 것이고, 오늘 이 에베소서 1장에서 들려주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구원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은 그럼 어떻게 될까요? 한번 그림을 봤으면 좋겠는데요.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선택하셨다면, 현재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도 있을 테고 처음에는 불신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결국 회개하여 최후에 구원받아 천국에 갈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불신자의 모습으로 살다가 심판을 향해서 가는 사람이 있고, 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선택받지 못해 겉모습만 신자인 채로 심판으로 가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예정하셨으니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구원받겠지”라고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것이죠. 종종 우리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면 내가 이 세상에서 무슨 짓을 해도 구원받을 것이고, 예정하지 않으셨다면 내가 아무리 믿음 생활을 잘해도 결국 심판받을 게 아닌가”라고 착각하시는데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예정하심은 영적인 차원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예정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지만, 우리들의 실제 삶에서는 그것이 ‘믿음’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죠. 애굽 왕 바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왕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강퍅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정하셨지만, 실제로 그가 강퍅하게 행동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잘못된 모습을 보인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면, 그 선택하심이 있으니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회개하는 삶, 찬양하는 삶,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삶을 진실하게 걸어가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2026년 한 해를 살아가는 가운데, 자격 없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부응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빚어주셔서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신실하게 우리의 믿음을 만들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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