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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는 삶(엡 1:3-6)


2026년 새해가 되어서 에베소서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당분간 이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데요. 에베소서는 에베소라고 하는 지역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라고 하는 동네는 어느 동네인가? 지금의 튀르키예 나라의 서쪽 해안에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 옛날에는 터키라고 그랬었죠. 그 나라 서쪽 해안에 있는 항구 도시가 에베소라고 하는 인데요.

이 에베소라고 하는 지역에는 우상 숭배가 만연해 있던 곳이어서, 사도 바울이 이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참 어려움도 있었지만 많은 열매가 있었던 곳이 에베소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은 이방 여신을 섬기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복음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마술사들이 마술책을 불살라 버리기도 하면서 정말 엄청난 은혜가 넘쳤던 곳이 에베소 교회였는데요.

사도 바울이 그 교회에 이 편지를 쓰면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한다, 에베소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 에베소서입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어디에서 썼을까요? 감옥 속에서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썼기 때문에 에베소서를 가리켜서 **’옥중 서신’**이라고 하죠. 옥중 서신이 몇 권 있는데 어느 어느 것인지 아십니까?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김대중 옥중서신, 그건 아니고) 빌레몬서 이렇게 해서 4권의 성경책이 옥중 서신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에베소 교회를 생각하며 편지를 쓴 것을 생각할 때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바울 사도의 형편이 그렇게 좋은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감옥의 형편이 너무나도 쉽지 않은, 너무나도 참 힘든 상황 가운데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감옥에 바울 사도를 집어넣어도 바울 사도가 가지고 있던 그 선교의 열정, 복음의 열정을 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조그마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내 주저앉아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죠.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누가 한마디 하면 그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가 옆에서 뭐라고 얘기하면 그것이 너무나도 힘들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참 너무나도 많이 있는데,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는 상황 가운데서 주저앉아 버리거나 절망해 버린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바울 사도의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편지를 쓰면서 에베소 교인들을 가르치려고 했고, 그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그 열정이 전혀 식지 않았다는 것이 아주 놀라운 일이죠.

어떻게 바울 사도는 감옥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열정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열정이 계속 살아 있었겠습니까? 도대체 그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에베소서 1장 1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에베소서 1장 1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바울 사도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인데 어떻게 내가 사도가 되었는가? 어떻게 됐다고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내가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왜 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세워주셨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죠. 만일 바울 사도를 임명한 사람이 사람이라고 하면, 아마 이내 실망하고 포기할 수 있었을 겁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 이게 아닌가 봐” 하면서 포기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바울 사도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이 일을 시켰다고 한다면, 그 어떠한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좌절하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비록 감옥에 갇혔지만, 누가 나를 세웠는가? 하나님께서 세우셨는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실수가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어쩌다가 잘못해서 내가 이곳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 내가 감옥에 들어왔는데, 이것은 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고 하는 그 사명감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감옥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써서 사명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오늘 우리가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만 이렇게 세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하나님께서 세우셨죠? 우리 모두도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에베소서 1장 3절에서부터 5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거예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들을 선택하셨는데 언제 선택하셨어요? 창세 전에, 세상을 만들기 그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시고 계획하시고 만세 전에 세상을 만들기 전부터 이미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한번 격려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선택하셨대요.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는데 언제 선택하셨는가? 창세 전에, 이 세상을 만들기 전에 우리를 먼저 생각하시고 선택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 세상을 만들 때 우리들을 먼저 생각하시고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거예요. 우리가 창세기 1장의 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이 세상을 만드시고 맨 마지막에 사람들을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기가 쉽냐면 하나님께서 먼저 이 세상을 다 만들어 놓고 그 만들어놓은 세상에 필요한 사람을 거기에 맞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뭐 그렇게 이해하셔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에베소서 1장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게 있다면 그 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는 먼저 우리를 생각하셨다는 거예요. 먼저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에 맞게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거예요. 세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우리를 끼워 넣은 게 아니라, 우리를 먼저 택하시고 우리에게 맞도록 이 세상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 이게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정확한 예는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뽑히게 된다면, 그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집무실을 거기에 맞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최근 짧은 기간 안에 두 번이나 만드는 것을 봤는데요. 대통령 한 분 뽑히니까 용산에 있는 대통령실을 그분에 맞게 만들어 놓았어요. 좋든 나쁘든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니까 청와대도 이번에 또 만들어요. 그분의 스타일에 맞게 여민관에다가 집무실을 만들어 놓고 그분에게 맞추어서 집무실을 만드는 것, 이게 어쩌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통 생각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셨는가, 바로 우리를 먼저 염두에 두시고 우리에 맞게 이 세상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이 에베소서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에베소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마음속에 생각해야 될 것이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수가 있고 바울 사도가 경험했던 것처럼 감옥에 갇히는 것과 같은 황당한 일들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장애물과 수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면, 그것도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면 좌절하거나 쓰러질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을 접하든지 간에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구나”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담대하게 일어서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가 감옥에 갇혀서 이 편지를 쓸 때 아마 바울 사도의 마음 가운데 답답함이 있었을 겁니다. 답답하지 않았을까요? 답답했을 거예요. 내가 편지를 써서 보낸다면 편지는 나의 모든 것을 다 담아내지 못해요. 문자로 표현된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나의 따뜻한 감정을 다 담을 수도 없습니다. 문자에 적어서 보내는 것보다 내가 직접 찾아가서 사람들의 따뜻한 손을 잡아주고 등을 두드려주면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지내며 교제하는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바울 사도의 마음 가운데 어떤 간절한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내가 감옥에서 나가서 그들과 함께 만났으면 좋겠다, 그들을 두드려주면서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는데 나가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글을 적는데, 글이 내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제한적인 사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바울 사도가 그렇게 편지를 썼기 때문에 누구도 유익을 얻습니까? 우리도 유익을 얻는 거예요. 바울 사도가 그냥 말로만 행동으로만 한 게 아니라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썼던 그 편지가 100년이 흐르고, 500년이 흐르고, 1,000년, 2,000년이 흘러서 오늘 우리들이 읽고 함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만드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 우리들이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면, 2026년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 그 이름을 기억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담대하게 믿음으로 서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이 세상을 만들기 전에 우리를 먼저 생각하시고 염두에 두시고 이 세상을 만드셨는데,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읽은 말씀 에베소서 1장 6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는데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 있는데, 무엇을 하라고 택하셨다고요? 찬송하라고. 불평하고 원망하라고가 아니라 찬송하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삶을 살라고 우리를 만드셨다는 거예요.

이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이사야 43장 21절 말씀에서도 똑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만드셨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가? ‘찬송’이 정답이에요. 믿습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2026년을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금년 한 해 어떤 마음으로 살 것인가를 결심했으면 좋겠는데, 찬양하는 삶, 우리의 마음 가운데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고 찬송하는 삶이 2026년 한 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찬송하라는 이야기는 북한의 기쁨조처럼 독재자가 시키는 대로 독재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억지로 찬양해야 한다는 그런 의미의 찬양이 아닙니다. 조폭 대장이 부하들에게 노래 부르라고 하는, 조폭을 즐겁게 하기 위해 억지로 노래 불러야 하는 그런 상황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자녀들이 행복한 것, 우리 자녀들이 기쁘게 사는 것, 그게 부모님들의 마음이에요. 부모님의 마음은 우리 자녀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라 절망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늘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고 우리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만일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속상할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마음이 속상했다는 것을 보여준 성경 말씀이 있는데, 그게 바로 창세기 6장 5절과 6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있었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인데,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냐 하면 늘 죄를 짓는 거예요. 늘 악한 일만 하는 거예요. 계획하는 것이 악하고 늘 서로 싸우고 다투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볼 때 하나님께서 한탄하셨다는 이야기는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마음이 속상하시다는 거예요.

우리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속상합니다. “우리 아이가 왜 저럴까? 왜 우리 아이가 저렇게 잘못된 길로 갈까?” 속상한 마음, 그러면서 나오는 그 한탄의 소리가 무엇입니까? “내가 저러려고 배 아파서 아기를 낳았나, 저런 녀석을 보려고 낳았나” 하고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속상하신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언제 기뻐하시는가? 우리가 행복한 걸 원하시는 거예요. 기쁘게 사는 걸 원하시는 거예요. 감사하며 사는 걸 원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정말 기쁨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1월 1일 신년 때 우리 미국에 있는 딸아이들이 전화해서 영상 통화를 하게 됐는데요. 보니까 우리 둘째 딸아이네 부부가 뉴저지에서 디트로이트 미시간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큰딸의 부부와 함께 같이 밥 먹는 그 시간에 전화를 했더라고요. 그 영상을 보면서 저와 제 아내의 마음이 기뻤을까요, 우울했을까요? 기뻤어요. 우리 아이들이 조개를 막 삶아 먹으면서 “아빠, 엄마 우리 조개 먹는다!” 그러면서 막 자랑을 하는데 우리가 대답했죠. “그러냐, 우리는 더 좋은 거 먹는다, 굴 먹는다” 그러면서요. 우리 아이들이 저 미국 땅에서 엄마 아빠도 없는 그 땅에서 언니와 동생이 서로 사이좋게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감사해요. 너무 기뻐요. 너무 행복해요.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요? 얼마나 싸워대는지… 4살 반 터울인데 동생이 지지를 않아요. 언니가 그냥 화가 끝까지 나서 “이 자식아, 내가 너 죽여버리고 싶어!” 막 그러면서 죽여버릴 거라고 하던 그 모습을 볼 때 너무나도 괴롭고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서로 의지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그 모습을 잠시라도 보니까 그게 너무 행복해요. 우리 아들이, 우리 딸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잖아요. “다 저렇게 해서 행복하게 살아라.” 이게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가? 여러분들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바라는 게 뭐예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게 돈 많이 갖다 주는 걸 바라나요? 그게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걸 제일 기뻐하잖아요. 우리 아이들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기뻐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부모의 마음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행복하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2026년에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힘들고 고통스럽게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쳐서 주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그런 삶이 오늘 금년 한 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양하는 삶을 살겠다, 기뻐하는 삶을 살겠다, 감사하며 살겠다”라는 그런 결단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떻게 기뻐할 수 있죠? 어떻게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찬양하는 삶 살아야 되겠다” 하면 그렇게 되나요? 그게 아니에요.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는 겁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주님을 채우면 감사가 나오게 돼요. 우리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자리 잡고 있으면 행복이 넘쳐나게 돼요.

우리가 놀러 가서 정말 멋진 광경을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오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것을 보면 좋고 기쁘기 때문에 나오는 것처럼, 가장 완벽하신 하나님, 온전하신 하나님을 우리들의 삶 가운데 모시고 주님이 우리 마음속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고 찬송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아닌 것이 우리들의 마음의 주인이 되어 버리면,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우상이 될 가능성이 많은데 우상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자리 잡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불평이 나오고 절망스러운 생각이 생기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자꾸만 생겨납니다. 재물이 우리들의 우상이 되어 버리거나 자녀가 우리의 우상이 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명예가 우상이 되어 버리거나 사람들이 박수 쳐주고 인정하는 게 우상이 되어 버리거나… 이 세상에서의 성공이 우상이 되어 버리거나 그렇게 된다면 결국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세상의 썩어질 것들, 결국 사라질 것들을 우리가 최상의 가치로 여기게 되는 그 순간 우리들의 마음은 고통과 절망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는 겁니다. 주님을 우리 안에 가득 모시고 주님이 우리의 마음의 주인이 되어 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게 됩니까? 에베소서 1장 4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시게 되면 우리의 삶이 거룩한 삶이 될 것이고, 없는 삶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삶이 된다면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는, 찬양이 넘치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원하기는 2026년 한 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면서 거룩을 지향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대신에 우상들이 자꾸만 들어올 때가 많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돼요? 빨리 정신 차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가야 됩니다. 회개하고 “주님 도와주옵소서, 저희들의 마음 가운데 오셔서 좌정해 주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기쁨을 얻게 해 주옵소서”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살아가다가 힘든 마음이 생긴다면, 분노가 마음속에 가득하다면, 짜증이 나고 불만이 가득 차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주님이 아니라 다른 것이 우상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빨리 정신 차리고 빨리 주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모시고 주님 안에 들어가게 될 때 우리의 삶이 바뀐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금년 한 해도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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