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들의 인기는 아주 대단하죠. 예를 들어서 손흥민 선수 같은 인기 선수들은 가는 곳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서 환호하고 환송해 주고, 또 사인받으려고 하고 악수라도 한 번 하고 싶어 하고 사진이라도 한 번 찍으려고 그러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해외에서 뛰다가 한국에 들어온다고 하면 공항에 어쩜 그렇게 정보를 잘 알고 수많은 인파가 나가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고 소리칩니다. 또 국내에 있다가 다시 해외에 나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가서 환송하죠. 그런 모습 혹시 보셨습니까? 직접 가신 분도 계신가요? 가셔도 됩니다. 정말 그런 대단한 열기, 대단한 팬심, 그런 모습들을 볼 수가 있는데 정말 그 선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손흥민 선수와 악수라도 한 번 한다거나 사진을 한 번 찍는다면 정말 좋아하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다가 어느 날 그 손흥민 선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니폼을 선물로 주는 그런 행운을 겪게 된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무나도 좋겠죠. 아마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부러워할 겁니다. “야, 저 사람은 너무 좋겠다.” 운동이 끝난 다음에 자기가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서 어떤 한 아이에게 줬는데, 그 아이가 막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 아이를 보면서 “야, 저 아이는 정말 너무 좋았겠다” 그렇게 참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예수님의 인기가 그와 못지않았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가는 곳곳마다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그런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손흥민 선수의 인기보다 훨씬 더 뛰어넘는 수많은 인파가 예수님 주변으로 엄청나게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어서 “예수님께서 내게 손 한번 만져줬으면 좋겠다”, “예수님께서 우리 아이들에게 기도해 주었으면 좋겠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치유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던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정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어서 예수님은 정말 쉴 시간도 없었고, 심지어 식사할 그런 시간마저도 별로 없었던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0절 말씀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식사하는 것도 힘들었다는 것이죠. 마가복음 6장 31절 말씀을 보니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식사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바빠서,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잠깐 저리 가서 좀 쉬다가 와라” 말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것이죠. 오늘날 손흥민 선수가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그래도 예의는 지키더라고요. 식사하려고 하면 “식사할 때는 좀 가만 놔두자, 프라이빗한 시간은 그냥 즐기게 해주자”면서 예의를 지켜가면서 그렇게 접근하는데, 예수님의 주변에는 정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어서 정말 눈코 뜰 새도 없었고 쉬기도 어려웠고 심지어 식사할 자리도 쉽게 할 수가 없었다는 게 성경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수많은 사람이 다시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손을 만져주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거기에 있던 한 사람이 이렇게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저 사람은 너무 좋겠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서 만져주시니 얼마나 좋았을까?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니 얼마나 좋았을까? 멀리서 나도 봤으면 좋겠다. 나도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기대하고 있다가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온 것 같아요.
정말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다 좋은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얼마나 좋았을까?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그리고 예수님을 젖을 먹이기도 하고, 정말 예수님과 함께 있는 그 예수님의 어머니 얼마나 좋았을까? 예수님의 어머니야말로 정말 복된 여인이라” 그렇게 소리를 질렀어요. 어쩌면 이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아주 높게 보죠. 아주 마리아를 존경하고 존중해 주는데,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뭐라고 부르냐면 **’테오토코스(Theotokos)’**라고 부릅니다. 헬라어로 테오토코스라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하는 뜻이에요. 마리아가 누구냐?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그런 호칭으로, 테오토코스라고 하는 그런 명칭으로 마리아는 정말 복을 받은 여인이다, 마리아는 정말 행복한 여인이다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인데요. 예수님과의 그 친밀한 관계 가운데 있었던 그 자리가 너무나도 복되다고 하는 그런 팬심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은 아주 놀라운 말씀입니다. 어떤 여인이 주님을 잉태한 그 배, 주님을 젖 먹인 그 삶이 얼마나 복된 여인이고 그 여인이 얼마나 축복을 받은 여인인가라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누가복음 11장 28절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요? 아니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여인이 복된 것이 아니라, 나를 잉태하고 젖 먹인 여인이 복된 것이 아니라 누가 더 복 있는 사람인가? 누가 더 은총을 받은 사람인가?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정말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간에 이 말씀을 깊이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늘 세상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때가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를 복된 사람으로 생각합니까? 누구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합니까? 많은 것을 이룬 사람, 높은 지위에 올라간 사람을 복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신앙적으로 본다고 한다면 교회 내에서 여러 가지 직분을 맡은 사람을 복되다고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종종 우리 성도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아요. “우리 집안은 말이에요, 우리 집안에는 목사가 몇 명이고 장로가 몇 명이고 권사가 몇 명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우리 어머니한테 많이 들었어요. 우리 어머니의 형제지간들은 모두가 다 목사가 됐고 장로가 됐고 권사가 됐고 사모가 되고, 정말 모든 형제자매가 신앙의 자리를 어느 정도씩 이룬 사람들로 다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많으셨어요. 제가 목사가 된다고 하니까 너무나도 좋아해서 “우리 가문에 또 한 명의 목사가 탄생했구나” 하셨죠. 목사, 장로, 권사 집안이라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기분 좋아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일까요? 정말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일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고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무엇보다 나을까요? 불신자들로 가득한 것보다 낫겠죠. 정말 믿음도 없고 방탕한 사람,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집안보다 주를 위해서 헌신한다고 하는 목사가 있고 장로가 있고 권사가 있고 사모가 있는 집안이 그 집안이 정말 복된 집안이라, 정말 자부심을 가질 만한 집안이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러니까 마리아가 별로 복이 없다고 말씀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물론 마리아도 복된 여인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누구보다 복될까요? 강도의 어머니보다 낫겠죠. 실컷 아기를 낳고 길렀는데 그 아이가 정말 패륜아이고 정말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강도짓을 저지르는 그런 자녀들을 기른 어머니가 아니라,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것 자체가 복된 어머니라는 것은 분명한 이야기고 분명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단계에서 더 나아가서,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목사가 되는 것, 장로가 되는 것, 우리 가정에 이런 신앙의 인물들이 태어나는 것들 그런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는데 그게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훨씬 더 복이 있다고 하는 이 예수님의 말씀. 오늘 우리가 이번 한 주간 동안 살아가면서 깊이 묵상하고 또 묵상해 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종종 높은 것을 성취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서 무척 부러워합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하면 부러워하고, 어떤 사람이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한다면 부러워하고, 어떤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올라갔다고 하면 박수 쳐주고 부러워하는데 물론 부러워할 만한 것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올라간 그 사람이 만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고 악을 행하고 그리고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과연 그 지위에 올라갔다는 것이 복된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제사장이 있는데 제사장이라는 그 직분이 어떤 직분입니까?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직분이에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아론의 후손들로 하여금 제사장을 세워주는, 그리고 성별하고 그들에게는 거룩한 옷을 입히고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주는 그 제사장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은 거룩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고, 정말 존경받을 만한 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그 제사장에 올라간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고 한다면 제사장의 자리로 올라간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예를 우리가 어디서 봅니까?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에게서 보는 것이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도 역시 제사장이었을 겁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하는 두 제사장이 있는데, 그 두 제사장은 정말 하나님의 그 가정에서 태어나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이 세상에 세속적인 일을 하도록 그렇게 되어 있지만 자신들은 제사장의 혈통 가운데서 태어나서 제사장의 직무를 담당하도록 그렇게 대를 이어서 제사장이 되었지만, 그러나 정작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제사를 폄훼하고 그리고 온갖 추악한 짓을 저지르면서 하나님의 제사를 망가뜨리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그런 악한 일을 하게 될 때, 과연 그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선지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선지자가 된다는 것도 정말 고귀한 일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구별하여서 세우신 선지자라고 한다면 정말 좋은 선지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아합 왕 시대 때 선지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언한 것이 아니라 거짓 예언을 한 거예요. 아합 왕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시지도 않았는데 거짓 예언을 하면서 “아합 왕이시어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겁니다, 나가서 전쟁하십시오.” 거짓 예언을 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패망의 길로 가버린 그 선지자, 선지자가 됐다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무슨 이득이 있어요? 아무런 유익이 없이 그냥 패망의 길로 가는 선지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 세상의 직분들도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떤 사람이 왕이 되었다고 한다면 정말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갔으니까 수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 올라간 사람일 겁니다. 하지만 왕이 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 왕이 정말 왕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왕으로 세워주신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그 왕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짓만 하고 있다고 한다면 왕이 되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수많은 왕이 백성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히려 자기가 보호해야 될 백성들을 죽여버리는 것을 개의치 않고 마음대로 악을 저지르는 그런 나쁜 왕이 되어버렸다고 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예를 들자면 사울 왕이 그런 모습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세워주셨지만 그 사울 왕은 백성을 보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신하인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어요.
다윗 왕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다윗 왕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좋은 왕이 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신하를 죽이고 자신의 신하의 부인을 빼앗아버리는 사악한 짓을 벌였다고 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헤롯 왕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지난 성탄절 날 살펴보았지만 헤롯 왕은 왕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사명이 무엇이겠습니까? 백성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베들레헴에 있는 아기들을, 아무 죄 없는 아기들을 죽여버리는 거예요. 왜? 자신이 영원한 권력을 집권하기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백성을 죽여버리는 그런 사악한 왕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최악의 경우를 살펴본다고 한다면 바로 가룟 유다라 할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예수님의 12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발된 거예요. 그러니까 사도의 위치로 세워진 것이죠. 정말 대단한 인물로 세워진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12명의 한 사람으로 세워진 그 가룟 유다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 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버린 그런 역사의 죄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는데요. 그 가룟 유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죠? “저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제게 더 좋을 뻔하였느니라.”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보시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를 보면서 무엇을 가지고 판단하실까? 내가 목사라고 하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게 하나님께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어떠한 위치에 올라가 있다고 하는 게 하나님께서 보실 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얼마나 많은 부를 가지고 있느냐 어떤 상태에 있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귀를 기울이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 그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시는가? 우리가 어떤 직책에 있는가를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어떤 지위에 있는가를 보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 자리에서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를 보시고 계시는 것이죠.
선한 사마리아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 가운데 누가 존귀한 자입니까? 누가 복된 자입니까? 제사장과 레위인이 정말 존귀한 신분, 귀인의 신분에 있었던 사람들일 텐데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명에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사람들이었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그런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 강도 만난 사람 옆을 지나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지나가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이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인가? 그것으로 사랑을 베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이 사마리아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복된 사람이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예요. 요셉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신분이 노예예요. 아마 우리들은 그 노예의 신분인 이 요셉을 보면서 정말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릅니다. “너는 노예밖에 안 되잖아, 네 신분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그렇게 깔봤을 겁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요셉은 그 노예의 신분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이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면서 그곳에서 성실하게 사명을 감당해 나간 거죠.
감옥에 빠져 들어가서 죄수가 되었을 때도, 그 죄수의 신분 가운데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전과자야, 저 사람은 죄수야”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그 요셉은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가운데 누가 복된 사람이었는가? 누가 복된 사람이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는 자가 복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죠. 로마서 10장 13절에서부터 15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들어야 하는데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읽어야 될까요? 성경을 날마다 읽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내년에도 성경 읽기를 또 한다고 그랬는데 또 하니까 지겨운가요? 아닙니다. “새해가 또 시작되는구나, 금년에 하다가 중단했었는데 내년에는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 되겠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고, 모르면 행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묵상하면서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한마디 한마디 생각해 보며 하나님께서 내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귀하게 들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을 읽으면 그것으로 끝내면 될까요? 읽기만 하고 듣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오히려 이거 듣기만 하고 읽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영적인 마약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약이 무엇입니까? 그냥 취해버리는 것이죠. 우리는 착각하기가 쉬운데요, 설교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고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동의를 하면 내가 다 된 줄 알아요. “나는 사랑에 대해서 들었으니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죠. 아니요, 우리는 어떻게 사랑합니까? 사랑에 대해서 배웠으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희생을 다해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하고 따뜻한 말을 이야기해 줘야 되고, 그냥 듣고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듣고 지나가는 것을 원하는 것은 사탄이 제일 바라는 거예요. “그래 마음껏 들어, 마음껏 들어, 그러나 움직이지는 마.”
정말 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금년 한 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든지 간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듣고 행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2026년 한 해는 순종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실 그걸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에게 있어서 가장 복된 자리가 어느 자리일까요? 저 천상에서의 자리일 것 같아요. 하나님과 함께,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서 그저 그곳에서 함께 교제하면서 천상에서의 삶을 누리는 것이 가장 복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냥 그 자리에 그냥 계시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았어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네가 저 이 세상에 내려가서 이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가장 낮은 곳에 오셨고,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서도 금년 한 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한 해 우리가 살아오면서 대단한 일을 이루었기 때문에 만족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우리는 이룬 것이 없어서 그저 우울한 상태에 있습니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이고요,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고 있는가를 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금년 한 해를 주 안에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새해에는 더욱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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