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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낙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

– 이국진

기도하면서 우리가 낙담하여 기도를 중단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끈질기게 매어달리면 결국 재판관이 항복하고 들어준 것처럼 하나님에게서도 항복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과부처럼 끈질김이 있어야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 하나님도 재판관처럼 무심한 하나님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의 간구를 당장 들어주지 않고 오래 끄시는 분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8절을 의문문(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으로 보지 않고 평서문으로 보아, 하나님은 바로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래 꾸물거리는 분으로 이해하곤 한다. 1

하지만 우리가 낙담하지 말아야 하는 진짜 이유는 하나님은 재판관과는 다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우리의 기도가 결코 메아리처럼 울리다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불의한 재판관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무시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는 이유는 아직 우리가 하나님을 덜 괴롭혔기 때문도 아니다.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헛되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마디의 기도도 하나님께서 놓치지 않으시기 때문에 낙망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기도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시고 소중하게 여기시며 받으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낙망하지 않아야 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불의한 재판관과 같다면 우리는 낙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해야만 하나님께서 그때에야 겨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우리는 낙망하게 될 것이다. 과연 얼마나 우리가 오래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재미를 던져서 바구니를 터트리는 경기를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열심히 오재미를 던지는데, 어떤 바구니는 너무나도 단단하게 매여 있어서 결코 터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던지고 또 던지다가 지쳐서 포기하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불의한 재판관과 같다면 열심히 끈질기게 매어 달리게 되겠지만 어느 정도 하다가 안 되는 모습을 보고 포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불의한 재판관과 같지 않다.

아쉽게도 종종 이 비유는 기도를 그냥 대충해서는 안 되고 죽기 살기로 기도하면 결국 응답이 된다는 가르침으로 해석될 때가 있다. 과부의 강청함이 결국 재판관의 손을 들게 했던 것처럼, 우리의 강청기도가 하나님을 항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을 종종 듣게 된다. 과부가 자신의 한을 억제하지 않고 미칠 듯이 그 아픔을 토해낼 때 상상할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는 기도할 때 하는 둥 마는 둥 그렇게 기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진지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도의 응답이 우리의 열심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은 철저하게 비성경적이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를 하는 내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에게 42,195km를 달려와야 과자 한 봉지를 주겠다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100일에서 하루가 모자랐다고 기도의 정성이 부족하다며 우리를 내치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바라보며, “옳지, 잘한다”를 연발하면서 박수치고 너무나도 좋아하는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하지 않으시려고 까다로운 조건들을 내미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퍼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기가 밤새도록 기침을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그 옆에서 밤새도록 간호하면서 아기의 코가 막혔는지 열이 너무 오르지는 않는지 노심초사하면서 돌보는 어머니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소리까지 놓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면서 혹시나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듣지 않으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거나 실망하고 낙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렸을 때 내게 다가와 무엇인가를 사달라고 졸랐다. 그럴 때 어떤 것은 내가 사주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에는 우리 아이들의 요구대로 다 사주지는 못했다. 때로는 돈이 없어서, 때로는 돈이 있지만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집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자신들은 가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대단히 실망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이 다시는 나를 아버지라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지는 않았다. 그 다음 날이 되면 우리 아이들은 내게 또 달려와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어제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자기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고, 내가 아이들을 미워해서 사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필요가 있을 때면 언제나 내게 달려왔던 것이다.

기도하면서 낙망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은 그러니까 끝까지 매어달리면서 기도하면 모든 것이 100% 내가 기도한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응답하시는 분은 아니다. 낙망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절망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리 아이들이 나를 끝까지 아버지로 알고 항상 나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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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mes A. Metzger, “God as F(r)iend? Reading Luke 11:5-13 & 18:1-8 with a Hermeneutic of Suffering,” Horizons in Biblical Theology 32 (2010),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