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최악의 경우와 하나님의 경우

– 이국진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간청이 이루어질 수 없는 최악의 경우를 예로 든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경중법(輕重法, qal wahomer)을 사용해서 하나님과 기도에 대한 논증을 하고 계신 것이다. 경중법이란 작고 하찮은 것에서 진리라면 그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에서는 얼마나 더 진리이겠는가 하는 식의 설득방법이다. 아무런 힘도 없고 이름도 없는 나약한 한 여인이 뻔뻔하고 양심적이지도 않은 악한 재판관에게 나아가 자신의 간청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여인이 낙심하지 않고 꾸준히 간청할 때에 재판관이 하는 수 없이 그 간청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공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그 자녀들의 기도를 외면하실 리가 있겠는가? 절대로 그럴 리 없다. 간청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최악의 경우라 할지라도 결국 그 응답을 받게 된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빨리 응답해 주시겠는가?

이 비유는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간청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끈질기게 간청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끈질기게 간청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고 계신다(마 6:8). 그리고 그 하나님은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시다(마 7:9-11). 하나님은 뜸들이고 지체하면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려고 궁리하시는 분이 아니라, 속히 들어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눅 18:8). 우리는 과부가 왜 간청을 들어주지 않는지 답답한 마음으로 재판관에게 나아갔던 것처럼, 하나님께 나아갈 필요가 없다. 나의 강청이나 열정과 노력을 보여야만 하나님께서 겨우 응답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을 닮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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