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은 교사 주일입니다. 그래서 1부 예배 시간에는 교사들에게 축복도 해주고 기도도 해주고 그렇게 했는데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많은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그 걱정거리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 신앙을 자꾸만 잃어버리고 복음에서부터 떠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주일학교가 차고 넘쳤고 밖에 나가서 전도를 하면 수많은 어린이들이 교회 안으로 몰려 들어왔었는데, 지금은 많은 교회가 주일학교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래도 주일학교가 있는데, 예전에 비해서는, 옛날 20~30년 전에 비해서는 주일학교가 상당히 많이 약해져 버리고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믿음에서부터 떠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심방하면서 기도의 제목들을 들어보면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 때문에 눈물로 기도하는 그런 성도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요.
도대체 이렇게 미래 세대가, 우리들의 자녀 세대가 신앙을 잃어버린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왜 옛날에는 주일학교가 차고 넘치고 정말 엄청난 부흥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주일학교가 텅텅 비고 자녀들이 믿음을 잃어버리고 자녀 교육이 잘 되지 않고 이렇게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그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회가 변해버려서 그런 것일까요? 교사가 옛날처럼 열정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도대체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아마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연구를 한다면 학자들은 다양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문제의 원인들을 분석할 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리고 그러한 분석들이 유익할 수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어느 한 순간도 우리 미래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심지어 과거 세대에 주일학교가 부흥이 되고 수많은 우리 주일학교 학생들이 몰려들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때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던 것이죠.
교회에 오기는 오는데 참된 복음에서부터 벗어나 있는 문제, 교회에 왔는데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지식만을 얻고 가는 문제. 사탄은 우리를 공격할 때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공격할 때 사탄이 쉬거나 또는 그 공격을 늦추거나 하는 경우가 없고 항상 어느 세대든지 우리 성도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복음 전파가 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는데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몰려드는 그 상황에도 우리가 안심할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상황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문제들, 참된 복음에서부터 벗어나게 하는 문제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아예 오는 것 자체가 없고 미래 세대가 자꾸만 믿음을 잃어간다고 하는 데 문제가 있는데요.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교회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교회라 하는 것은 어떤 곳인가요? 교회라고 하는 곳은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어서 영적인 성장을 도모해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어떤 곳이라고요? 한번 따라서 해봅시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어서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곳.” 그게 교회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교회에 오면 선생님이 있고 학생이 있고 지도자가 있고 따르는 사람이 있고 목사가 있고 교사가 있고 배우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사실 교회의 바른 정의를 생각하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것이 그게 교회의 진짜 모습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여기서 설교를 합니다마는 저는 이곳에서 설교하는 이유가 제가 여러분들보다는 거룩하고 여러분들보다는 더 완벽하고 죄를 덜 짓고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일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겠는데 선생님들이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선생님이 거룩하고 완벽하고 죄가 없어서 우리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세워지게 되는데요.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우는 것은 그들이 일반 성도들보다는 좀 더 괜찮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워지는 것이 사실은 아닙니다. 교회의 정의는 무엇이냐 하면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것, 서로가 서로를 도와서 영적으로 성숙해지도록 만들어주고 그런 의미에서 성도님들도 목사를 돕는 것이고 목사도 성도님들을 돕는 것이고 선생님이 학생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선생님을 돕고 모두가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어야 할 그런 상태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 23장 8절 말씀이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우리 가운데 선생님이라고 칭함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너희 가운데 “나는 선생이고 여러분들은 배워라”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선생의 자리로 올라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고, 야고보서의 말씀에 의하면 너희는 선생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우리 교회에는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있고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어서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배워서 함께 영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것이 교회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물론 오늘은 교사 주일이고 우리 교회에는 교사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사 선생님들이 실제적으로 우리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그러한 교사들의 헌신과 수고와 눈물 때문에 우리 학생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해져 나갈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교회는 지도자도 있고 교역자들이 있고 목사가 있어서 그래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믿음을 훈련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이 무슨 말씀이 있냐면 그런데 너희들은 다 선생입니까 학생입니까? 다 학생이라는 거예요. 너희들 가운데 누가 선생이라고 나서지 말라는 거예요. 선생이라고 칭함을 받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교회 내에서는 목사라고 하는 직분을 없애버려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교사라고 하는 직분을 없애도 괜찮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고 주일학교 교사 선생님 같은 직분을 세워서도 안 된다고 하는 그런 말씀도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 말씀에 보면 가르치라고 하는 말씀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성경은 한 곳만 봐서는 안 되고요,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다양한 말씀들을 함께 동시에 묵상해야 되는데 오늘 마태복음 23장 8절에서는 너희는 선생이라고 칭함을 받지 말라고 가르쳐주고 있으면서 또 다른 곳에서는 너희가 가르치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28장 19절과 20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19절, 20절 말씀에 보면 그러니까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고 또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래서 선생도 있고 제자도 있어야 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이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가르치지 말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마태복음 23장 8절에서 너희는 선생이라 칭함을 받지 말라 말씀하시고, 또한 9절에서 아버지라 칭함을 받지 말라 말씀하시고, 10절에서는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선생의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 연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그 교사가 학생들보다 더 거룩하거나 학생들보다 더 완벽하거나 더 좋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목사가 이 강단 위에서 설교를 합니다마는 목사가 이곳에 서 있는 이유는 성도님들보다는 좀 더 거룩하고 좀 더 완벽하고 좀 더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들보다는 좀 더 영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똑같아요. 다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일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쉽게 분노하고 쉽게 탐욕스러운 마음이 생기고 쉽게 범죄하는 그 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선생님이나 제자나 똑같은 것이고 성도나 목사나 똑같다고 하는 것이 성경 전체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다 신앙적으로 부족하고 도덕적으로 연약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곧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다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주님 앞에, 우리의 참된 지도자이시며 참된 선생님이신 우리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할 그런 연약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의로운 사람인 것인 양 포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치 자기는 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위선적으로 행동하고, 더 나아가서 스스로를 속이면서 나는 무엇인가 된 줄로 생각하게 되는 경향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그랬는데요.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바리새인들, 랍비들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분명히 나은 점이 있었어요. 나은 점이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리보다는 나았고 창기들보다는 나았고 일반 평신도들, 일반인들, ‘암 하아레츠‘라고 불렀는데 그런 일반인들보다는 그래도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더 많이 지켰어요. 더 열심히 종교적인 행위를 했어요. 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완벽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은 괜찮은 줄 알고 교만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낮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난했고 마치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면 자신은 이제 완벽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했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율법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행해라 저렇게 행해라”라고 했는데 주님께서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안타깝게도 신약 성경까지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바리새인들처럼 행동해 왔고, 바리새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잘못 가르쳐 왔다고 하는 데 우리들의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사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율법을 가르치고 바리새파적인 행동을 하면서 주일을 성수하라고 말하고 예배 시간에 늦지 말라고 말하고 기도할 때 눈 뜨지 말라고 말하고 율법들을 자꾸만 이야기하면서 우리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 가르침을 들은 우리 학생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냐면 그런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대로 행하면서 결국 바리새인들을 양성해냈어요. 우리 아이들이 그러한 가르침을 들으면서 ‘아, 예배 시간에 늦지 않는구나, 성경을 읽는구나, 기도 시간에 눈 뜨지 않고 내가 헌금을 하고 내가 전도를 하고 이런 일들을 하면 그러면 내가 괜찮은 사람인 줄’ 생각하고 그래서 교만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손가락질하고, 나처럼 기도를 잘하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 “너는 왜 기도 시간에 제대로 기도하지 않느냐”고 비난하고 욕하고 영적인 교만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가 양성해냈던 그런 잘못들이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선생님들의 그런 가르침을 들을 때 그 가르침을 잘 받아들인 학생들도 있지만 때로는 그 가르침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졌어요. 무슨 질문을 던졌습니까? “그런데 왜 선생님은 늦어요? 그런데 왜 선생님은 눈 떴어요?” “내가 눈 뜬 거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면서 선생님을 향해서 오히려 더 비난하는 모습을 가져오게 된 것이고, 그래도 그 정도는 귀여운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위선적인 모습을 보면서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교회에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이야기하고 의로움을 이야기했는데 그래서 선생님들이 그렇게 가르쳤는데, 정작 교회의 모습을 보니까 서로 어른들끼리 싸우는 모습, 교회가 편이 갈려서 서로 이전투구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입으로는 사랑하라고 말하고 용서하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라고 말했던 그 선생님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순 엉터리라고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이 믿음의 길에서부터 떠나버리게 된 것,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슬픈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누가 필요합니까?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합니까? 왜냐하면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그래요. 거룩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썩어 문드러졌고, 괜찮은 일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뒤에서 호박씨 까고 있고 결국 더러운 인생들밖에 없는 우리들이기에,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없기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고 우리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져야만 했고, 누구든지 그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한다면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을 얻는 놀라운 복음의 소식이 우리에게 주어진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사가 우리 학생들을 향해서 가르쳐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강단 위에서 전해야 될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율법을 어떻게 지키고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철저하게 믿음 생활을 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물론 가르쳐야만 하겠지만, 그런데 더 가르쳐야 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가 죄로 인해서 멸망하게 되었으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우리 주님께서 저 높고 높은 보좌 위에서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하는 구원의 소식을 전해주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가르치면서 우리들의 열정과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우리들의 그 열정을 끌어내는 메시지를 전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해줄 때 우리는 보통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다윗은 어떻게 골리앗을 이겼는가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거죠. 어떻게 다윗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소년이, 그리고 변변한 무기도 없고 변변한 어떤 대단한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았던 조그마한 소년 다윗이 어떻게 키가 장대한 골리앗이고 그리고 중무장한 그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겠는가 라고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학생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갑옷이 없었지만 자신에게 있는 물맷돌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믿고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걸 가지고 나간다면 여러분도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가르치면 은혜가 됩니까 안 됩니까? 은혜가 돼요. 이해가 되긴 되는데 해보면 돼요 안 돼요? 우리들의 눈 앞에 있는 골리앗이 안 쓰러지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우리 주일학교 학생들이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아 그렇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되겠구나 우리가 그 어떤 큰 장애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되겠구나 내게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내게 주어진 것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되겠구나’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는 착한 그런 학생들이라고 한다면 그나마 낫지만, 우리 학생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속에서 질문이 떠오르는 겁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 골리앗 못 쓰러뜨렸어요? 선생님은 왜 그 모양 그 꼴이에요?” 다윗처럼 하면 골리앗 쓰러뜨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그 선생님은 왜 그 모양 그 꼴로 살고 계셔요? 그렇게 설교하는 목사님은 왜 그 정도 교회밖에 못 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서 혼란스러운 것. 예수님께 고침 받은 병자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 병자는 주님을 불렀고 주님을 믿었고 주님이 하라고 하는 대로 순종했고 결국 병 고침을 받았으니 여러분도 주님을 부르고 믿고 순종하고 따르면 고쳐질 거라고 말씀하는 그 선생님 앞에서 우리 아이들이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런데 왜 선생님은 맨날 골골거려요?” 그래도 좋은 학생들은 ‘내가 그만큼 다윗처럼 일하지 않아서 다윗처럼 믿음이 없었고 다윗처럼 담대하지 못했고 다윗처럼 열심히 달려가지 못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헌신의 길로 나가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순 엉터리구나, 해보니까 안 되는구나, 아니 선생님도 못 하는 걸 나한테 시키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성경에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쓰여 있는 이유는 우리가 다윗처럼 골리앗을 무찌를 수 있기 때문에 쓰인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는 이스라엘 군인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골리앗이 나타나면 무서워서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고 그 앞에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오금이 저려서 전혀 움직이지도 못했던 그 이스라엘 군인들처럼 우리는 조그마한 어려움을 만나도 쓰러질 수밖에 없다. 자신만만했던 사람들이 커다란 질병 앞에서 속수무책이고 우리 가정에 조그마한 문제만 만나도 당황해버리고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연약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벌벌 떨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한 소년이 등장한 겁니다. 구세주가 등장한 겁니다. 그 구세주가 등장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골리앗 앞에 나아가면 죽을 수도 있는데 그 골리앗 앞에 담대하게 나가서 물맷돌로 그 골리앗을 쓰러뜨려 무너뜨리는 그 다윗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얻은 것처럼, 우리에게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그 사실을 말해주기 위해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 있어서 누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구세주입니까? 우리는 살아가는 가운데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구세주로 정치인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이런 정말 말도 안 되는 이 삶을 바꾸어 줄 새로운 정치인 구세주가 나타나지 않을까, 정말 더러운 정치판에 그래도 좋은 언어를 구사하면서 품위 있는 언어를 구사해 주는 저 사람이 우리들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정말 우리나라가 가난에 찌들고 힘든 이 상황 가운데 우리들의 이 가난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의 구세주가 될까, 남북이 분단된 이 상황 가운데서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까, 어떤 정치인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까 우리가 소망을 걸지만 그런데 우리가 늘 얻는 결과는 정치인들로부터 배신을 당한 이야기들만 듣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돈이 우리의 구세주라고 생각하면서 돈이라고 하는 구세주에게 우리의 모든 것을 겁니다. 돈이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 같고 좋은 차를 타면 사람들이 그때부터는 내 앞에 굽신거리는 것 같고 돈만 있으면 해결될 것 같아서 그 돈을 얻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을 하는데, 그래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주일도 쉬지 못하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돈만 얻고 싶은데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돈을 얻은 것이 아니라 질병만 얻고 몸만 상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해결할 수 없는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우리가 망해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모든 죄와 허물을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우리가 영원히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복음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주일학교에서 혹은 교회 예배 강단에서 들려야 될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이 정도 거룩하니까 여러분도 이 정도 따라오세요”의 메시지가 아니라, 사실은 나도 죄인이고 사실은 나도 늘 넘어지고 연약한 죄인인데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 놀라운 구원을 내가 받았고 그러한 은혜가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수 있는 구원의 소식이라고 하는 사실을 나누는 것, 그것이 우리 주일학교에서 그리고 예배 강단에서 우리의 구역에서 들려져야 될 복음의 메시지인 줄로 믿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선생이라 칭함을 받지 말고 우리의 참된 선생님, 우리의 참된 아버지, 우리의 참된 지도자는 오직 주님밖에 없다”고 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렇게 살면 너희도 나처럼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하는, 내가 한 단계 높은 선생의 위치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성도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 죄인인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나도 구원받고 우리 아이들도 구원을 받고 우리 모두가 구원받게 되었다고 하는 구원의 좋은 소식들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그 누구도 선생인 양 그렇게 자기 자신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 참된 주님만을 바라보라고 하는 그 메시지 앞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교회에서 수많은 목사와 교사들이 마치 자기 자신은 도가 튼 사람인 양 자기 자신을 미화하고, 그리고 “이렇게 살면 성공할 거라”고 복음을,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복음이 아닌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자기 자신을 잘 따르면 그리고 목사에게 무엇인가 잘 하면 복 받을 것이라고 하는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그런 거짓 복음을 가르치면서, 그래서 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추앙하고 사람을 아버지처럼 붙들고 사람을 선생님처럼 섬기고 사람을 지도자처럼 섬기면 그러면 무엇인가 복이 떨어질 것처럼 잘못 가르치는 예가 우리 가운데 너무나도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제자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하는데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아니라 마치 그 학생들을 가르친 그 선생님이 마치 내가 따라야 될 구세주인 양, 나에게 가르쳐준 그 사람이 정말 우리가 따라야 될 모범인 양 착각하게 만들어서 결국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지고, 성경적인 것이 아닌 이 세상의 잘못된 것들을 가르침에도 학생들이 분별하지 못하고 그냥 따라가다가 함께 멸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 여러분들의 영적인 선생이나 영적인 아버지나 영적인 지도자로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하루에 열두 번씩 넘어지고 쓰러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으면 늘 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연약한 사람도 불쌍히 여기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의 참된 소망이라고 하는 사실을 서로가 서로에게 상기시키고 서로가 서로에게 주님을 바라보게 만들면서 함께 영적인 성장을 해나가는 귀하고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소망은 좋은 지도자를 뽑는 데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며, 좋은 정치 지도자를 뽑는 데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며, 더 많은 돈을 얻는 데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며, 더 많은 건강을 얻는 데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참된 소망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신 거예요.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하나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내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밖에는 우리가 소망할 것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귀한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 교사 세미나를 하는 가운데 강사 목사님이 오셔서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농담을 하나 해주셨는데, 어떤 성도님이 성경을 읽는 가운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어서 목사님에게 갔습니다. “목사님, 제가 성경을 읽는데 성경 말씀은 너무나도 좋고 너무나도 귀하고 다 좋은데 성경 내용 가운데 이해가 안 되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물어봤대요. “도대체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 됩니까?” 했더니 그 성도님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어떻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하였을까요?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고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어떻게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을 하나님께 주저하지 않고 바쳤을까요? 그건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그 성도님한테 물어봤대요. “성도님, 자녀가 있으시죠?” “예, 있습니다.” “자녀가 몇 살인가요?”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인데요.” “그러시냐고, 한 3~4년만 더 길러 보시라고. 아브라함의 마음이 이해가 될 것”이라고 그런 농담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미워도 못 바치는 게 아들이고 포기할 수 없는 게 부모의 마음이에요.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셨고 우리를 회복하시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 아들을 하나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그 하나님밖에는 우리에게 다른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시각을 주님 앞에 드리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우리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주님을 바라보게 만들고, 우리 성도가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나는 옛날에 이 정도로 했으니까 너도 이 정도로 해라”가 아니라, 어제 <부부의 세계>라고 하는 드라마를 내가 보진 않았지만 이런 장면이 있었다고 그래요.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그 누가 완벽한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살 수 없는데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밖에는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고 다시 한번 기억하게 만들어서 주님을 바라보는 그 일에 우리가 함께 손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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