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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우리에겐 긍휼이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긍휼이 없다. 우리가 증오하는 대상을 향해서 분노를 쏟아내고 혐오하는 죄를 짓는 사람들을 향해서 미움을 쏟아낸다. 성경에서 그들의 행위를 죄라고 규정하고 있으니, 당연히 미워하고 비난을 쏟아내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쏟아낸 증오와 비난은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먼저 남을 대접해야 한다고 하셨다(마 7:12)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비난과 증오를 쏟아내면, 고스란히 우리가 쏟아낸 대로 당하게 되어 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에 걸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물론 방역을 철저하게 잘한다면, 그러한 전염병에 걸릴 확률이 줄어드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방역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전염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방역을 철저히 해도 전염병에 걸릴 위험은 있다. 마스크를 24시간 내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에는 마스크를 쓸 수 없다. 마스크를 썼다 하더라도 전염의 위험이 100%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전염병에 걸린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고, 그렇게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향해서는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빨리 낫기를 소망해야 하는 것이 옳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는 것이 옳다. 설사 그들이 재소자일지라도 그렇고, 정치적으로 나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렇고, 신앙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전염병은 신앙이나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빨리 낫고 건강해지는 것이 우리 모두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의 주도적인 역할과 방역 당국의 방임 속에서 코로나19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은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공공의 적이며,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고,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구상권 청구하는 징벌적 책임이 뒤따르게 만들었다. 그들이 전염병의 피해자인데, 다른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해자이자 범죄자로 둔갑시켜버린 것이다. 이들은 우리들의 생활을 망쳐버린 주범이기에 한없이 증오를 퍼부어대도 무방한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대열에 기독교인들이 동참했다.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크리스천들인데, 그러한 정체성을 상실한 채 말이다. 이태원에서 난잡한 문화를 즐기는 이들에게 전염병이 발병하면 그들을 비난했고, 이단 집단에서 전염이 발병하면 그들을 비난하면서 구속하라고 요구하고 단체를 폐쇄하라고 요구했다. 이단을 박멸하고 난잡한 문화를 없애버리는 데 이것처럼 좋은 기회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은 사려 깊지 못한 반응이었고, 긍휼의 마음이 없는 반응이었다. 간음한 여인을 향해서 돌을 드는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간음한 여인을 향해서 든 돌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게 되어 있다. 그 누구도 죄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전염이 발생한 교회를 향해서 성난 시민이 계란을 던졌다고 한다.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먼저 남을 대접해야 한다고 하셨는데(마 7:12) 교회가 전염에 걸린 피해자들을 향해서 비난과 증오를 쏟아낸 그대로 당한 것이다. 이 교회당 벽을 향해 던져진 계란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우리에게 긍휼의 마음이 없었다는 사실을, 전혀 주님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은 분노하고 화를 쏟아내 버려도, 우리는 긍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아프면 낫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아무리 이단에 빠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통사고의 현장에 있다면 도와주어야 하고, 아무리 나와 정치적인 입장이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려움에 처했다면 돌보아주어야 한다. 그게 긍휼이다.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다. 죄를 지었다고 심판해버리고 끝내버리지 않으셨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다. 그런 놀라운 긍휼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들인데, 안타깝게도 우리들에겐 긍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