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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경외(잠 19:23)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생명에 이르게 된다,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고 평안히 거하게 된다고 하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이 되겠습니다. 잠언서 19장 23절의 말씀 원문에는 어떻게 돼 있는가 궁금하시죠? 한번 보겠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 단어로 되어 있는데요. ‘두려움’, ‘무엇 무엇에 대한 두려움 즉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생명으로’라고 하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동사가 없는 문장입니다. 하지만 동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서 번역을 해놓았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사람으로’라고 하는 말과 ‘이르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하는 말을 원문에는 없지만 집어넣었는데, 그것은 없는 것을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좀 더 밝히 드러내기 위해서 집어넣은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책 가운데 보면, 한국말 표현을 보면 작은 글씨로 되어 있어요.

혹시 ‘사람으로’라고 하는 말과 ‘이르게 하는 것이라’라고 하는 말이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 성경책을 갖고 계십니까? 글씨가 똑같은가요? 제 것은 작은 글씨로 돼 있어요. 이렇게 작은 글씨로 써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원문에는 없지만 그 의미를 잘 이해하게 만들기 위해서 첨가한 본문이기 때문에 그렇게 넣은 것이죠. 어떤 것이냐,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생명으로 인도한다, 이게 첫 번째 부분의 말씀이고요. 두 번째 부분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만족한 채 그는 쉴 것이고 나쁨이, 재앙이 그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재앙이 그에게 닥치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그는 만족한 채 쉼을 쉬게 될 것이고 그 어떠한 재앙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오늘 잠언서 19장 23절의 말씀입니다. 한국말 성경이 번역이 잘 되었죠? 제대로 잘 번역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번 던져봐야 될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두려워하는 것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두려워하는 것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것 자체는 가치 중립적인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것이죠. 만일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좋은 것일 겁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두려워할 게 있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물, 불, 칼 이런 것들은 두려워해야 합니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까?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죠.

물속에 잘못 들어가면 목숨을 잃어버릴 수 있고, 불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면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릴 수가 있고, 칼을 잘못 쓴다고 한다면 우리의 신체가 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은 두려워하는 마음 가운데 소중하게 잘 다루지 아니하면 큰 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아예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용은 하지만 적당하게 두려움을 가지면서 잘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한다고 되어 있는데, 경외한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가요? 경외, 경외가 무슨 뜻입니까? 경외라고 하니까 우리가 평상시 잘 안 쓰는 단어잖아요. 지난 일주일 동안 살면서 친구랑 이야기하면서, 가족끼리 얘기하면서 “너 경외 왜 안 해?” 이런 얘기해 보신 적 있습니까? 우리 삶 가운데서 경외라고 하는 말을 평상시에 쓰면서 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경외라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까 히브리어 원문 맨 처음에 보여드렸듯이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을 번역해 드렸는데요.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경외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왜 우리로 하여금 생명에 이르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듣고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가 복된 길로 가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생명으로 이끄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안연하게 만드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삶 가운데 재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가 망한 사람의 예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지난 주일날 오후에 살펴보았던 여로보암의 예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이스라엘의 열 지파의 왕으로 세워주셨는데,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송아지 우상을 세워놓고 우상 앞에서 절하며 모든 민족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드는, 그런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몰랐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셔서 여로보암이 망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게 된 것이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가 망한 사람들의 예를 또 어디서 찾아볼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엘리의 두 아들들을 살펴볼 수가 있을 겁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하는 두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물건들을 막 빼돌리고 모욕하며 하나님의 제사를 폄훼하는 그런 악행을 저질렀는데요.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이죠.

내가 이런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징계하시겠구나, 나를 심판하시겠구나 그것을 두려워하며 내가 겁을 내면서 전혀 그 일을 하지 않았어야 되는데, 안타깝게도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제사를 무시하고 폄훼하면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 그런 위치에 누가 갈 수 있는가,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하나님은 어느덧 사라져 버리고 그저 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그런 잘못된 속성들이 많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누가 범죄했습니까?

일반 평신도들이, 일반 백성들이 범죄한 것이 아니라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하는 제사장들이 그런 악한 일을 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성직에 있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악한 일을 저지르다가 망하게 된 것처럼,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있다가 망하게 될 위험성이 얼마나 큰가라고 하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내가 목사로서, 장로로서, 권사로서 교회 일을 하다가 교회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려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냐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악을 저지르다가 멸망해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보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오늘 잠언서 19장 23절 말씀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고, 아무런 걱정거리 없이 만족함 가운데 쉴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재앙을 당하지 않게 된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고, 그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조심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길로 가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누가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바로 요셉입니다. 어느 날 요셉의 여주인인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성적으로 유혹하게 될 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그 상황 가운데서 아무도 보지 않고 단둘이 있는 그 상황 가운데서 그저 둘 사이에만 비밀이 지켜질 수 있다고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 그런 상황 가운데서 요셉은 자기 여주인 보디발의 아내에게 대답을 합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이런 죄를 행하여 하나님 앞에 악행을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요셉은 깨닫고, 내가 이 순간에 악을 범한다고 한다면 주인에게 발각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계시는 그 하나님께서 나를 쳐다보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이 두려워서 나는 이런 죄를 저지를 수 없다. 요셉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살았어요.

비록 그는 그 일로 인해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억울한 일들을 당하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요셉이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지켰기 때문에 살아날 수가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을 성경에서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히브리 산파들에게서 찾을 수가 있는 것이죠. 바로 왕은 히브리 산파에게 명령을 합니다. 그 당시 바로 왕의 명령이 얼마나 무서운 명령입니까?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그런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애굽 왕 바로 왕이 히브리 산파들에게 지엄하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가서 히브리의 여인들이 아이를 낳을 때 그 아이가 남자아이거든 죽여버려라”라고 하는 명령을 내렸을 때 그 말을 따르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어요. 바로 왕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내 인생이 끝장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자 앞에서 나쁜 일인데도 입 하나 벌리지 못하고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가 망하는 길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히브리 산파는 아무런 권력이 없었지만 그 바로 왕의 명령 앞에서 굴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명령 앞에서 한 생명을 죽일 수 없다고 하는 그 사실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아이들을 살리는 그런 놀라운 결정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히브리 산파들을 축복하시고 복 내려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누굽니까? 산헤드린 공회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향해서 명령하기를, 너희는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만일 우리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죽여버릴 거라고 그렇게 협박하고 있는 그 가운데서 베드로는, 요한은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가 너희가 판단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나아갔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두려워해야 되는가? 오늘 성경 말씀 잠언서 19장 23절의 말씀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말씀하고 있는데요. 이 말씀을 정반대로 다르게 표현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다른 여호와가 아닌 것을 경외해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그들은 족하게 지낼 수 없고 결국 재앙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그런 말씀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해야 된다고 하는 이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28절의 말씀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해야 되는데, 이 세상의 권력자들 이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고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두려워하는 경향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고 눈을 가지고 있고 귀와 또 느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오감으로, 우리의 그 모든 것으로 보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만 두려워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정말 두려워할 것은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언제 두려워했습니까? 바로 홍해 바다가 앞에 펼쳐져 있고, 뒤에서 애굽 군대가 쫓아올 때 그 자신들의 목숨이 빼앗길까 봐 두려워했었던 것이죠. 하지만 모세는 그들을 향해서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출애굽기 14장 13절 말씀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것들은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 같고 우리를 완전히 망하게 만들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두려워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호수아서 1장 9절 말씀에서도 여호수아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성경에 나온 모든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는데요. 누가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다니엘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을 위협하는 바벨론의 왕의 그 지엄한 명령, 다른 신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하는 그 두려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러나 왕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왕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래서 그 다니엘은 사자 굴속에 던져지게 되었지만, 그래서 사자 밥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천지를 주관하신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살려주신 줄로 믿습니다. 또 누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다니엘의 새 친구들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다니엘의 새 친구들을 향해서 너희가 저 신상에게 절을 하라고 이야기했을 때 다니엘의 새 친구들은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절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를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고,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왕이여 아시옵소서 우리는 절할 수 없다”고 하는 이 세상 사람들, 이 세상의 권력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선 사람들이 된 줄로 믿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에스더라고 하는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왕 앞에 나아갈 때 “죽으면 죽으리라.”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나갈 때 내가 죽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나갈 때 하나님께서 가냘픈 여인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내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이 세상이 두려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따라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에게 생명이 어디서부터 오는가, 우리가 재앙이 없이 복된 삶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 그것은 이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순종해 나가는 길이 복된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담대하게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이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그 말씀은 그러니까 무대뽀로 아무렇게나 막 행동해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두려워할 상황이 있는데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그냥 내가 위험을 일부러 찾아 들어가고 일부러 위험한 상황 속으로 뛰어들어가도 괜찮다고 말씀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종종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요. 내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것을 해도 괜찮다 하면서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서 그 위험 속으로 막 들어가는 사람을 뭐라고 이야기할까요? 불이 있는데 불 속으로 막 들어가고 물이 있는데 물속으로 막 뛰어들어가고 일부러 막 들어가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은 미친 사람이라고 하는 거, 귀신 들린 사람이라고 하는 거죠. 귀신 들린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피할 것은 피하고 신중하게 고려해 가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신이 나간 사람, 미친 사람 혹은 귀신이 들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불에도 뛰어들어가고 물에도 뛰어들어가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는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막 물속에 뛰어들어가도 괜찮고 불속에 뛰어들어가도 되고 위험한 상황 속으로 막 들어가고 내가 막 어떤 칼에 찔려도 괜찮다고 하면서 막 들어가고 하는 그런 위험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탄이 어느 날 예수님에게 유혹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이후에 사탄이 와서 예수님을 유혹하는데, 놀랍게도 사탄이 성경 말씀을 들이대면서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성경 말씀을 보니까 구약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명하여 내 발이 땅에 닿지 않게 상하지 않게 보호해 주실 거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까 “여기서 뛰어내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를 보호해 주실 거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뛰어내리라고 말씀했어요.

성경 말씀에 뛰어내리면 안 다치게 해줄 거라고 하는 말씀이 있으니까 뛰어내리라고 하는 성경 말씀을 들이댔을 때 뛰어내리는 것이 옳습니까? 안 뛰어내려야 됩니까? 안 뛰어내려야 되는 것이죠. 그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고 피할 길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이지, 우리가 일부러 나쁜 곳으로 들어가고 일부러 뛰어내리고 일부러 물속에 들어가고 일부러 불속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나 구원하지 않나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결단코 아닙니다.

그건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요? 정말 부모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그런 나쁜 못된 자녀들이 그렇게 하잖아요. “엄마 아빠가 날 정말 사랑하는가 본다”고 하면서 집을 나가버리고, “엄마 아빠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가” 해서 막 자결을 해보려 하고, 그래서 정말 “우리 아빠가 내 아빠가 정말 우리 엄마가 내 엄마인가” 하면서 일부러 악한 곳에 들어가면서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하는 그런 어린아이들의 잘못된 모습과 같은 행동을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시고, 발을 상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고, 부르트지 않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신데 일부러 우리가 이 세상을 향해서 잘못된 길로 가면서 악한 일을 해가면서 나쁜 곳으로 뛰어들어가면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거라고 그렇게 오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를 향해서 권면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두려워해야 될 것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편안히 쉬게 될 것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이 말씀을 오늘 또 기억하면서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 옛날 요셉처럼, 그 옛날 히브리 산파들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신실하게, 신실하게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늘 실패할 때가 많죠. 실패할 때가 있을 때마다 주님 앞에 다시 한번 나가서 회개하고 주님께서 힘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다시 한번 주님과 함께 동행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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