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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피조물 (고후 5:17)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모두가 다 그렇죠.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들이 있는데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는 이유, 그것은 아주 간단한데요. 그것은 바로 지금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이 모습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인가가 좀 생겼으면 좋겠다. 이런 지긋지긋하고 정말 고통스러운 것을 끝내버릴 새로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고, 새로운 인물이 나왔으면 좋겠고, 좀 뭔가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갈망의 배후에는 지금 현재 이 순간에 대한 불만족이 깔려 있습니다.

2020년을 보내고 2021년을 맞이하는 지금 이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년을 기대합니다. 내년에는 좀 좋았으면 좋겠다. 새해니까, “좀 뭔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그런 갈망이 더 다른 어떤 때보다도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깊이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금년은 정말 정신없이 쫓겨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일상이 무너져버렸고,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들의 삶이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것 같은, 아이들은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우리들의 삶은 제약을 당해 버렸고, 정말 어느 한 곳 안심하고도 갈 수 없는, 그런 지긋지긋한 삶이 우리를 괴롭혀 왔기 때문에, 송구영신 예배를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어떤 생각이 있냐면, 내년에는 좀 새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좀 새로운 것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소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간절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과거에 대한 향수 같은 것도 있습니다. 옛날을 생각하면서, 옛날이 좋았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짙게 있으면서, 옛날에 일했을 때 참 좋았는데, 과거에 저랬을 때 참 좋았는데 하면서, 과거에 대한 시간, 과거의 인물들에 대한 향수 이런 것들이 자꾸만 소환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현재가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일 지금이 좋다면 만일 지금이 만족스럽다고 한다면, 새로움에 대한 갈망도 없을 것이고, 과거에 대한 향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면서 현재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뭔가 참 마음에 들지 않고, 정말 괴롭고 고통스러운 그 현실 가운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지긋지긋한 이 현재를 없애버릴 새로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을 꿈꾸게 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과거에 좋았던 때를 회상하면서 그때가 좋았다고 하는, 과거의 향수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나타나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지금 현재가 그만큼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과거를 동경하게 되는 것인데요. 과거를 동경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그 과거가 좋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과거도 그 당시에는 현재였잖아요? 현재가 시간이 지나버려서 과거가 된 것인데요. 과거가 과거가 아니라, 과거가 현재였을 그때는 좋았냐면, 좋았지 않았어요. 현재였던 과거에는 정말 힘들었고, 정말 고통스러웠고, 정말 지긋지긋해서 빨리 새로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현재를 우리가 살면서, 이미 지나가려 버렸던 과거의 현재, 그때 그 과거가 되어 버린 그 옛날의 현재는, 그때 느꼈던 고통이나 아픔들은 어느 정도 다 망각해 버렸고,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지금 이 현재가 너무나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과거가 좋게만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구관이 명관이라고 하는 말을 종종 하게 되는데요. 구관이 명관이라고 하는 그 말을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정말로 옛날 사람이 지금 현재 사람보다 훨씬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지금이 고통스러우니까, 이 고통스러운 것에 대한 탈출구로서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고, 지금 고통에 대한 이 탈출구로서 과거가 좋았다고 하는 막연한 생각 가운데, 그 과거가 훨씬 더 좋았다고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나오는 그런 생각들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신앙의 자세가 무엇이냐면, 그것은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현재를 살아갈 때, 우리는 어떠한 마음 자세로 살아가야 되는가? 현재를 바라보면서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럽고 또 여러 가지 참 슬픈 일들을 많이 만나는 우리들의 현재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성경 전체의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원망하거나 불평할 것이 아니라, 괴롭다고 슬퍼하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이 시간을 감사하며 살고, 만족해하며 살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자족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삶의 자세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6절에서부터 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바라보고서 불편하게 생각하고, 나 자신을 비교하면서 절망 가운데 지낼 때가 많고, 그래서 조그마한 것을 바라보면서 늘 원망하고 늘 투덜거리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불만족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긴 한데요. 그렇게 인생을 살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하면, 매일 매 순간 매 순간마다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고 하는 점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에서부터 1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서,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그래서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거나 과거의 회상에 향수해져서 그 과거만을 자꾸만 따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현재로 주신 이 삶을 보면서, 항상 기뻐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바른 자세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일 힘든 상황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020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아픔도 그리고 수많은 어려움들 일들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족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충분하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또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인생을 살아야 되는데요. 그렇게 우리가 항상 자족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역사를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우연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땅에 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허락하신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 주시는 거라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무엇을 줍니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기를 원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라고 한다면,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나에게는 왜 이런 것을 줬냐고 그렇게 원망하며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이것을 주셨다고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면서 오히려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 올려드리며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때로는 그 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는 것과 같을지라도, 그래서 죽을 것만 같고 망할 것만 같은 그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늘 만족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기쁨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무리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산다고 해서 우리의 문제들이 당장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질병은 있는 것이고, 여전히 재정적인 문제는 발생하게 될 수가 있고, 여전히 가정적인 문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성격의 문제라든가, 또 여러 가지 관계의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위기의 상황들이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지게 되어 있는데, 그러한 것들을 바라볼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좀 이런 것들을 다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소망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이 얼마나 흥분이 되게 하는 말씀입니까?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있는데, 오늘 성경 말씀이 무슨 말씀을 하냐면, 누가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누가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가? 그 사람은 누가 될 수 있느냐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것들은 우리를 새롭게 하지 못합니다. 돈이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없으며, 권력이 우리를 새롭게 할 수가 없고,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새롭게 하거나 만족하게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머리를 깎으면 하루가 시원해질 수가 있고, 우리가 여행을 하면 일주일이 행복해질 수도 있겠고, 결혼을 하면 1년이 행복하다고 하잖아요? 집을 사면, 1년이 행복한다고 그랬나요? 결혼하면 한 달이라고 그랬나요? 아무튼 그 모든 것들이 잠시 잠깐 행복하게는 해주지만, 영원히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데, 오늘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은 무슨 말씀을 하냐면,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고 이전 것은 완전히 지나가 버렸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걸까요?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정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일까요? 예전에 우리 목사님들이 부흥회 시간에 예를 들었던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전에는 전과자였는데, 그 전과자가 감옥에 들어가서 그래서 성경 말씀을 접하게 됐고,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결국은 그 사람이 감옥에서 신학 공부를 해가지고, 결국 목회자가 됐다고 목사가 됐다고, 전에는 전과자였는데 도둑이었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변해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되었다고 하는 그런 놀라운 이야기를 해줍니다. 전에는 깡패요 조폭 두목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예수님을 믿어서 이제는 목사님이 되었다고 하는 그런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줄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야, 그렇구나. 예수님을 믿게 되면 사람이 변화가 일어나는구나.” 마치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바울 사도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러 다니게 된 것처럼, 아무리 이 세상에 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나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구나.”라고 하는 그런 정말 흥분된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었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다음이 문제였어요. 여러분들이 종종 그런 뉴스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대도 조 아무개라고 하는 분 얘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그분이 엄청난 도둑이었습니다. 아주 유명한 도둑이었는데 물방울 다이아를 훔치고, 아무튼 아무튼 세간에 이름을 날렸던 도둑이었는데, 어느 날 그분이 개과천선을 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돼서, 목사님이 됐다고 하는 소식이 들렸고, 그래서 그분이 부흥회마다 다니면서 내가 전에는 도둑질을 했었으나, 지금은 내가 예수님을 만나게 돼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나요? 나중에 뉴스를 보니까, 그분이 다시 또 도둑질을 해서 또 잡히게 됐다. 일본에 가서 또 도둑질하다가 남의 담장을 넘다가 또 잡히게 됐다. 한국에 와서 또 도둑질하다가 또 잡히게 됐다고 하는 그 이야기를 듣게 될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질문이 던지게 되는 거예요. 과연 새롭게 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 17절의 말씀은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들의 문제가 완벽하게 다 해결돼 버리고, 그래서 이제는 완벽한 인간이 되어 버려서, 이제는 더 이상의 문제도 없고 더 이상 나쁜 일도 없고, 완벽한 인간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 자녀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가 기도원에 가서 은혜 좀 받았으면, 성령을 받아서 얘가 변화가 됐으면, 선교라도 가서 선교 현장에 가서 변화를 받았으면, 수양회에 가서 좀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으면, 그래서 이 아이가 완전히 새롭게 되길 원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동안에 우리가 완벽하게 180도로 완전하게 변해서, 더 이상 죄를 짓지도 않고 더 이상 악을 행하지도 않는 완벽한 하나의 진짜 정말 멋있는 완벽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새로운 사람이 된다고 하는 이야기는 이제는 더 이상 아무런 죄를 짓지도 않는 완벽한 인간으로 ai와 같은 그런 완벽한 인간으로 바뀐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무슨 의미냐면 우리가 전에는 사탄의 종이었으나, 사탄의 자녀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이제는 사탄의 자녀가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신분상의 변화를 의미하는 겁니다. 신분상의 변화가 되었지만, 그것으로서 완벽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사람이 아기를 낳으면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아기는 100% 인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90%만 인간이 아니라 아기는 100% 인간입니다. 그 자체로 인간 완벽한 인간이라고 다 하나도 모자랄 것이 없는, 그냥 그대로 인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그 모든 기능을 다 할 수 있느냐 하면, 하지 못하는 거죠. 아기가 태어나면 젖을 빨아야만 하는 것이고, 조금 자라게 되면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점점점점 음식을 먹고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해서 성장해 나가야, 그래야 이제는 제대로 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성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된다고 한다면, 그 순간 완전히 우리가 완벽한 사람으로 확 바뀌어버려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더 이상 아무것 문제도 없는 완벽한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됐다고 하는,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그러나 늘 넘어지는 겁니다.

다윗과 같은 위대한 인물도 죄악을 범했던 것처럼, 성도라고 해서 더 이상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성도도 역시 화를 내고 성도도 역시 나쁜 짓을 하고 그런 모습들을 보일 수밖에 없는, 연약한 모습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신부는 어떻게 되었는가? 사탄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의 완전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아직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전까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또 넘어질 때도 있고, 또 쓰러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제 2021년이 우리들의 코앞에 다가왔는데요. 2021년이 다가왔을 때, 우리들의 앞에 오는 새해는 새해가 전혀 새롭지 않은 새해가 될 것입니다.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하는 얘기는 무엇입니까? 2021년이 된다고 해서 우리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하는 의미이죠. 새해이기는 한데, 여전히 예전에 있었던 문제가 또다시 반복될 것이고, 예전에 있었던 고통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고, 더 이상 슬픔과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년에도 슬픈 일도 많이 있을 것이고 고통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신분은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는 그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다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때에 우리를 부르신다고 한다면, 우리의 종착지는 저 지옥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으로 갈 수 있는 영생의 생명을 얻는 신분으로 변화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이 신분에 맞는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결단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입었다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가 넘어진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있는 것이고 우리가 실수하더라도 그걸로 끝장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하고 계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품어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2021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그 말씀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혹시 넘어졌다고 할지라도 완벽하게 완전히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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