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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넓은 마음 (왕상 4:29-34)

지난 시간에 우리는 “지도자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라고 하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솔로몬처럼 지혜의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을 때, 나라는 부강하고, 그 영향력은 전 세계에 펼쳐지는, 그런 놀라운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을 살펴보게 된 것이죠. 어느 공동체든지, 작은 가정 공동체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아주 큰 나라라고 하는 그런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그 공동체의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어느 공동체든지 만일 지도자를 뽑아야 된다고 한다면,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고 한다면, 신중하게 정말 잘 선택해서, 지혜의 사람, 전체적으로 이 공동체를 이롭게 할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런 지혜의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그것이 아주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지도자를 선출하고 뽑는 그 과정 가운데서는, 사람들이 언제나 탐욕 속에서, 이기적인 마음 속에서, 사람들의 그 정서를 자극하고, 가짜 뉴스를 통해서 여러 가지 잘못된 정보들을 통해서, 상대방을 욕하고 또 비난하면서, 그래서 정권을 탈취하려고 하는 정권을 차지하려고 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참 지혜롭게 어떻게 하면, 좋은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결국 그 공동체는 참 엄청난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인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또는 정말 엄청난 재난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신중하게 지도자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교회 공동체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죠. 교회 공동체도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세울 것인가? 어떤 사람을 리더십에 둘 것인가? 비전을 보고, 지혜가 있고, 정말 현명한 사람들을 뽑을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뽑을 것인가? 그것에 따라서, 그 공동체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신중하게 우리가 선택하며 나아가야 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아주 영화스러운 나라로 정말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는데요. 솔로몬이, 솔로몬이 어떤 지혜를 가지고 있었는가? 솔로몬이 어떤 지혜 어떤 종류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이 열왕기상 4장 29절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4장 29절의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에 모래같이”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가지고 있는 그 지혜, 솔로몬이 지혜로웠다고 하는 것의, 그 특성을 세 가지로 살펴볼 수가 있겠는데요. 첫 번째는 지식이 뛰어난 것이고, 두 번째는 지혜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세 번째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첫 번째로 솔로몬은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가? 지식이 많았습니다. 지식이 많았다. 지식과 지혜가 좀 다른 건가요? 똑같은 건가요? 약간 다르죠. 예,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지식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었는가? 4장 32절과 33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잠언 3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5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그야말로 박학다식했다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 지식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고, 지식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훨씬 더 지혜로운 판단을 하기가 쉬운 것이죠. 아무래도 정보가 제한적이고, 아는 게 부족하다고 한다면, 현명한 판단, 현명한, 그런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지혜로워지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될, 첫 번째 단계가 무엇이냐 하면, 지식을 넓혀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말할 때도, 영적인 지혜, 영적으로 우리가 깨어 있기 위해서, 성경을 많이 알고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아는 것이 필요할까요? 필요하지 않을까요?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경 통독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성경 통독을 한 번만 하는 게 아니고, 매년 할 뿐만 아니라, 평생토록 성경을 읽고 읽고 또 읽어서 성경에 대한 그런 지식이 많이 있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물론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신앙이 좋아진다거나,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믿음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지식과 참된 믿음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영적으로 바른 판단을 내리고, 영적으로 현명해지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기본적으로 많이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에 보면 여기에는 이런 말씀이 있고, 성경에 또 다른 면에는 정반대의 말씀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데, 성경의 그 모든 내용들을 잘 알면 알수록, 우리는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에 근거해서, 그래서 지혜로운 판단을 영적인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알아가는 것은 영적으로 지혜로워지는데 선결 과제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열심히 읽읍시다.

뿐만 아니라 성경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이 많아야 되는 겁니다. 공부를 해야 되는 겁니다. 무엇 하나 할 때, 그냥 몇 가지 단편적인 지식, 제한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결론을 내린다고 한다면, 그러한 판단은 잘못된 판단일 가능성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해야 돼요. 뭘 하든지 지식이 많이 있지 아니하면, 우리는 잘못된 판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많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많은 지식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지식이 깊어질 수가 있겠습니까? 배우는 것이죠. 배우는 겁니다. 배우는 것밖에는 지식이 넓어질 방법이 없는 겁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날 때는 아무런 지식을 가지고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죠? 원초적인 본능만 가지고 태어날 뿐이죠. 하지만 그 뒤로부터 계속해서 우리는 지식을 습득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아는가? 우리는 어떻게 지식을 얻는가? 배웠기 때문에 아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자꾸만 배우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계속해서 배우고 또 배우고 또 배워야 그래야 지식이 넓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솔로몬은 수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지식을 갖고 있었는가? 그야말로 모든 분야를 두루두루 섭렵할 정도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지혜를 주셨으니까, 갑자기 뻥 하면서 지혜로워졌습니까? 그게 아니에요. 솔로몬이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한 거죠.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를 해서, 그래서 모든 분야에 대한 지식을 다 섭렵하게 될 때, 이 솔로몬이 물고기에 대해서 논하면, 물고기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하고, 나무에 대해서 논하면 나무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짐승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하면 다 짐승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정보들을 다 배웠기 때문에 그래서 솔로몬의 지식이 그만큼 넓어졌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지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다양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 번째는 어떤 사람인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 뭔가 일을 하라고 하면, 그렇게 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싫어하면서, 그 일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뭐라고 무엇을 하는가? 배우기도 싫어해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는데,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하려고 하지 않고, 일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이야기를 하면, 뭐라고 대답하느냐? “저는 잘 모르는데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요. 저는 이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한 지식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고 있고, 모르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일을 주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그러한 정보들을 다 가지고 태어났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다 배워야 아는 거예요. 그냥 아는 게 없어요. 배워야 아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은 잘 모릅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하지 않아요. 뭐라고 얘기하는가? “연구해서 해보겠습니다. 배워서 해보겠습니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기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지금 해야 되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가지고 공부해야 될까? 어떻게 배워야 될까? 계속 연구하면서, 유튜브로 배워가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배워가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자꾸 물어봐서, 그래서 그 지식을 또 자기의 것으로 삼고, 또 배우고 또 배워서, 그런 사람들은 자꾸만 지식이 늘어나고, 그래서 할 수 있는 능력들이 더 많아지고, 그래서 할 일들이 많이 생겨서, 그래서 그 사람은 계속해서 더 역량을 키워나가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정말 솔로몬이 어떻게 이런 수많은 지식을 알게 되었습니까? 나무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 하고, 짐승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서 하고, 저건 내 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면서, 그냥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옆에서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거예요. 내가 해봐도 될까요? 내가 한번 해볼까요? 배우면서 그래서 자신의 지식을 계속 넓혀갈 때, 놀랍게도 솔로몬은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위대한 왕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을 지금까지 늘 만나왔는데, 전자와 같은 사람을 만날 때 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워요. 너무나도 안타까 저는 모릅니다.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앞날은 너무나도 깜깜한 거예요.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아무도 없어요. 다 엄마 뱃속에서 그냥 알몸으로 나온 거예요. 알몸으로 나왔지만, 전에 해본 적이 하나 없었지만, 그 일을 해보기 위해서, 물어보고 연구하고 배우고 하면서, 지식을 늘려가면서 한 번도 핑계를 대지 아니하고, 더 많은 지식을 만들어 나가게 될 때, 그 사람의 지식은 계속해서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가 배워가는 속도보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이 너무나도 빨리 새로운 것들이 많이 만들어져 갑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요. 우리가 배워 나가는 속도보다, 우리가 배워야 할 분량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이것을 일일이 따라가면서 다 배울 수 없는 그런 연약함이 우리들에게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보면서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배우지 않을 거야. 내가 아는 거기에만 머무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계속 그 자리에만 있을 겁니다. 아니 그 자리에만 계속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는 자꾸만 유동되고 변화되어 가고 확장되어 가기 때문에,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엄청나게 크게 변화하는 그 세상 가운데서 더 작아지고 더 작아지고 더 작아져서, 한 나라는커녕 한 공동체도 이끌지 못하고, 아니 한 가정도 이끌 수 없는, 너무나도 연약한 모습으로 퇴락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많이 배워야 돼요.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핸드폰도 배워요. 귀찮지만 배워요. 새로운 문물들을 배우고 또 배우고 또 배우고 그래서 자꾸만 지식을 넓혀가야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솔로몬이 가지고 있던 지혜의 특성이 무엇이냐 하면, 지식에 더불어서 지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죠. 어떻게 하면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첫 번째 지식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배우려고 하는 열정이 있어야 되고,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렸는데, 지혜는 어떻게 우리가 얻을 수 있는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너 지혜로워져라 하고 딱 했기 때문에 그날부터 어느 날 솔로몬이 갑자기 내 지혜로워졌다. 이게 갑자기 변화된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지혜롭게 하셨지만, 그렇게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 솔로몬이 지금까지 성장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지혜로운 길로 걸어가는 선택들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지혜로워진 것이죠.


그런데 지혜는? 지혜는 어디서부터 옵니까? 지혜는 어떻게 우리가 얻을 수 있나요? 그것은 겸손함에서, 지식은 배우려고 하는 열정에서 얻는 것이지만, 지혜는 어디서 얻는가? 겸손함에서 얻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교만한 사람은 지혜로워질 수가 없는 것이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이고, 내가 판단하는 것이 그것이 최고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는 그 순간,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지혜가 확장될 수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인생입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인생인 것이죠.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고려할 수 없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100% 맞다고 확신한 것이 사실은 100% 확실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만을 보고 있기 때문에 100%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겸손하게 귀를 열고, 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망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망하는 사람입니까? 자기 말만 많이 하고 사람들이 옆에서 조언을 하고, “이러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얘기해도 전혀 막무가내로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인 것이죠. 지혜는 어떻게 얻습니까? 내가 겸손해져야 지혜로워지는, “아, 이게 아니구나. 내가 틀릴 수 있구나. 내가 판단을 잘못할 수 있었구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에도, 심지어 나보다 무식한 사람이 하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며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죠.


세 번째로 솔로몬은 어떠한 지혜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는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그 사람이 현명하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옹졸하고, 그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닫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의 완성은 무엇일까요? 사랑이 완성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뛰어난 지식을 알고 있고, 아무리 뛰어난 모든 원리를 다 파악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 가운데 사랑의 마음이 빠져버린다고 한다면, 너그러운 마음이 빠져버린다고 한다면, 그 지혜는 그 지식은 헛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부터 3절 말씀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이 모든 것의 완성이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지식과 모든 지혜 위에,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헛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될 지혜는 무엇입니까? 배움의 마음을 통해서 지식을 얻으려고 해야 할 것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품고 그리고 안아주는 그런 믿음의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놀랍게도 솔로몬은 이 모든 것을 다 갖췄어요. 누가 주어서? 하나님께서 주셨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런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도 기도해야 되겠죠? 그렇습니까? 야고보서 1장 5절 말씀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어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의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혜를 주옵소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기도의 제목보다도, 지혜를 간구하는 그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 옳다고 믿는데요.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기도해야 될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 지혜를 주셔서, 오늘 하루 살아가는 동안에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주셔서,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저희들의 눈에 파수꾼을 세워주셔서, 선한 것을 보게 해 주시고, 귀에 파수꾼을 세워 주셔서, 잘못된 이야기, 남들을 비난하고 욕하는 그런 말에 현혹되는 그런 귀가 아니라, 정말 바른 것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무엇을 행하든지, 어떠한 일을 하든지, 지식과 지혜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매일매일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만 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오늘 우리가 이것에 대해서 살펴보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식이 풍성해지기 위해서 어떤 마음이 있어야 된다고요? 배워야 하는 마음이 있는 거죠. 우리가 지혜롭게 하기 위해서, 어떠한 마음이 있어야 된다고요?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되고, 또 우리가 사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지혜롭게 또 지식을 위해서 넓은 마음을 위해서 우리가 부단히 노력하는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의 태도를 바꾸어 나가면서 정말 지혜로운 자들이 다 되는 그런 귀하고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어리석은 사람이 내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공동체를 박살내버리는 것이죠. 나는 선한 의도라고 생각했는데, 지혜롭지 못한 그 말로 인해서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오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고 정말 나는 정의롭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박살 내버리는 경우도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주님 우리가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가운데 또한 신실하게 우리가 지혜롭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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