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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성대 (왕상 4:20-28)

오후 시간마다 열왕기상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 말씀을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솔로몬이 다스리던 시대에 이스라엘은 그 시대에 강대국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4장 20절에서부터 28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부강했는지, 그 이스라엘이 얼마나 그 시대에 선진 강대국이 되어 있는지를 묘사해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첫 번째로 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유대 민족의 그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열왕기상 4장 20절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무엇과 같이? “바닷가에 모래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였으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어느 정도 되었다? 그 숫자를 정확하게 기재하지는 못하고, 비유로서 얼마나 많았는지 비유하고 있는데,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많았다 이 말입니다. 바닷가에 가면 모래알이 몇 개나 되죠? 살 수 없습니다. 셀레야 셀 수가 없습니다. 정말 많은 그런 인구가 팽창하게 되었다고 하는 얘기인데 일종의 과장법적인 표현이죠. 인구가 설마 그렇게 많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이스라엘 민족의 그 인구가 너무나도 많이 엄청나게 많아졌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많아졌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보면 뭐 생각나는 거 없습니까? 이스라엘 유다 민족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구가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많아졌다”라고 하는 이 표현을 보면서 떠오르는 게 있으십니까? 예. 아, 대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생각이 난대요. 놀랍습니다. 이게 성경 일독의 효과입니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해주셨던 약속,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해 주셨다고 하는 그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점을 보여주는 말씀인 것이죠.


그런데 그 약속이 언제 주어졌던 약속입니까? 언제 주어졌어요? 아브라함에게 아들 하나 없을 때, 아니 바닷가의 모래는커녕, 아기 한 마리도, 한 마리가 아니고, 아들 하나도 없어서, 우리는 아기가 없나 보다. 그렇게 실망하고 정말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 되어버린 그 아브라함 가정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해주신 약속이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많게 해 주실 거라고 약속해 주신 거예요. 그 약속을 누가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해주셨을 때, 다음 내년 이맘 때 내게 아들이라고 아들이 있을 거라고 그 약속을 들려주셨을 때 사라가 그 약속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누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정말로 모래와 같이 많아진 거예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그 약속이 허망해 보이고, 그 약속이 우리들의 꿈만 같은 그런 약속처럼 들려졌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역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고 계시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해 들려주시는 그 말씀을 우리가 읽을 때, 때로는 아무런 감동이 없을 겁니다. 도대체 이 약속의 말씀들이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나?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의 약속은, 전혀 천지가 개벽한다고 할지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고, 우리를 위하여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로 하여금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오늘 바라보며,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때로는 모든 것이 다 막혀버리고, 때로는 내게 아무런 소망 하나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그 상황에서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될 게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세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계시고, 우리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우리 위에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평생 동안, 지금까지도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우리의 평생 동안에 흔들리는 이 세상의 것들을 보면서,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게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인구가 이렇게 늘어가는 것은 아주 큰 축복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자자손손 많은 후손들이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인 것이고, 또한 주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어떻게 유다 민족 이 이스라엘 민족이 이렇게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질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그 나라가 솔로몬 왕이라고 하는 훌륭한 왕 밑에서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언제 인구가 줄죠? 전쟁 때 인구가 줄어드는 겁니다. 언제 인구가 줄어들죠? 기근이 일어나고 또 흉년이 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러면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언제 인구가 줄어들죠? 전염병이 돌고 여러 가지 힘든 재난들이 있으면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어떤 것은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분야도 있지만, 어떤 분야는 좋은 지도자가 있어서, 그래서 나라를 평안하게 만들고 태평성대를 만들어 나갈 때에야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따라서 지금 이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자연재해나 흉년이나 기근이나 전염병이나 지진이나 이런 것들이 없도록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솔로몬이라고 하는 왕이 있어서, 그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전쟁을 하지 않도록, 다른 나라가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든든하게 나라를 지키고, 그래서 평안한 이 세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수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고, 또한 동시에 솔로몬이라고 하는 아주 지혜의 왕, 그리고 평화의 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스라엘은 어떤 상태가 되었습니까? 영토가 늘어나고 그 주변 국가까지 정복해서 다스리는 그런 상태까지 되었습니다. 열1기상 4장 21절 말씀을 보니까, “솔로몬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 모든 나라를 다스림으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국가들을 다 통치했어요. 그 통치한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 강”에서부터! “그 강”이 무슨 강이죠? 무슨 강인가요? 요단 강인가요? 아니요. 요단강이 아니고 메소포타미아 강을 의미합니다. 그 강 그러면 메소포타미아 강이에요. 메소포타미아 강이 어디에 있어요?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부터 어디까지 저 블레셋까지. 저 애굽까지, 그러니까 지금 아랍 세계 전체를 다 통치하고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시대가 솔로몬의 시대였던 것이죠. 그래서 좋은 지도자 한 명 세워지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좋은 지도자가 필요한 것과 동시에, 그 좋은 지도자를 보필하면서 함께 일할 수많은 동역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참된 지도자 정말 좋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해 주게 하는 그런 본본이라고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제나 이렇게 좋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가 아니죠. 다윗과 솔로몬 때는 이런 일이 가능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는 점점 쇠락해버려서,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이스라엘이 오히려 조공을 바쳐야 됐었고, 오히려 침략을 받았어야 됐고, 그래서 솔로몬 이후에 그 유다와 이스라엘의 상황을 본다고 하면, 정말 나라가 점점점점점점 쇠약해져 버려 가지고, 결국에는 나라가 없어져버리는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인데, 결국 지도자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따라서, 그 나라의 운명이 나의 운명이 바뀐다고 하는 사실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지혜의 사람 솔로몬이 왕으로 있으니까,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이고,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 것이죠.

그런데 만일 지도자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잘못된 지도자가 세워진다고 한다면, 무속에 빠지고 술에 빠져 사는 사람이 한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고 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좋은 지도자를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좋은 지도자를 세우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서 열환기상 4장 22절에서부터 23절의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의 하루의 음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30고루요 굵은 밀가루가 60고루요. 살진 소가 10마리요. 초장의 소가 20마리요. 양이 100마리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 였더라.” 장어도 많이 가져갔더라. 등등, 당시 이 솔로몬이 그걸 다 먹었을까요? 솔로몬이 혼자 다 먹었나요? 아니요. 솔로몬의 그 궁정에서 사용되는 모든 음식의 양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만큼 솔로몬 행정부가 엄청나게 비대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겠는데요. 그 비용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하루의 음식이 그 정도였다고 하니까 1년 치 예산이면 얼마나 될까요? 엄청나게 궁정에서 먹어 치운 액수가 엄청나게 많을 겁니다. 이거 좋은 얘기예요? 나쁜 얘기예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할 겁니다. 행정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왜 이렇게 하루에 양을 몇 마리, 소 소가 몇 마리 하루에 그렇게 많이 먹는 비대해하게 행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이것은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일이며,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큰 강대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솔로몬 한 사람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고, 그 주변에 수많은 직원들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그 사람들이 다 먹어야 되는 거예요. 다 일해야 되는 거예요. 비용이 많이 드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도 큰 걱정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크게 움직이려고 한다면, 크게 비용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만일 비용을 줄이자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용을 줄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어떻게 되죠? 강대국은 되지 못하는 조그마한 구멍가게는 할 수 있지만 강대국을 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만큼 무슨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경비가 필요한 것이고, 여러 가지 부대 비용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면 뭐가 필요한가요? 지금은 아니겠지만 옛날에는 소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 소를 운영해야만 하는데 그 소가 있어야 농사도 짓고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하는데 근데 소를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인가요? 쉽지 않은 일인가요? 쉽지 않은 일이에요. 소가 있으면 구유가 더러워집니다. 소를 유지하기 위해서 여물도 줘야 되고 또 여러 가지 것들을 치워야 되고 할 일이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소를 치워버리면 어떨까요? 소를 지워버리면 깨끗하겠지만, 그러나 소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잠언서 14장 4절 말씀에서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솔로몬이 다스리던 그 나라에서는 솔로몬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솔로몬을 도와서 수많은 관리들이 있었고, 직원들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저 강가에서부터 저 메소포타미아 강에서부터, 저 애굽에 이르기까지 그 큰 나라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제대로 잘 돌아갈 수 있게 만든 것이죠. 그런데 그 경비가 아까워서 야 이 경비가 너무 많다. 줄이자. 줄이자. 줄이자. 그러면 한 나라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부터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근시안적인 방법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솔로몬 왕국이 어떻게 부강해질 수 있었는가? 어떻게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가? 그러한 거시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의견들을 낼 때가 많이 있어요. 다양한 의견들을 내고 이야기하고, 우리가 의견을 수합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것이고 민주적인 절차 속에서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비용이 너무나도 많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비용에 대해서만 너무 민감해하고 이것이 비용이 너무 많다. 이것은 너무 과도한 것이다. 여기에만 우리가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이걸 통해서 어떠한 큰 일을 할 수 있는가? 이 수많은 행정부 요원들을 다 운영하면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큰 강대국이 되고, 온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었는가? 그 능력과 효율이나 이런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그저 하루에 먹는 양이 왜 이렇게 많은가? 경비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거기에 대한 민감하게 생각한다고 하면, 한 나라를 그렇게 움직여 나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이 사회도 마찬가지고 항상 우리가 균형이 잡힌 시각을 가지고, 무엇이 정말 바르게 이 사회를 움직여 나갈 수 있는지, 무엇이 이 공동체를 잘 유지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그러한 깨어 있는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아무튼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솔로몬이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은 어떤 시절을 보냈는가? 태평성대를 이루었다고 하는 게 오늘 본문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솔로몬과 같은 지도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가정의 지도자가 솔로몬이라면 좋을 텐데, 우리 교회의 지도자가 솔로몬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좋을 텐데, 그리고 이 나라의 지도자가 솔로몬과 같은 지도자가 되면 좋을 텐데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그런 간절한 갈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세상의 지도자들은 전부 다 다 자격 미달일 때가 많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고 이 사회에서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소망을 두고 이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그런데 그 사람이 보여준 행실은 우리들의 기대를 실망하게 만드는 그런 모습만 보여주는 게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평화의 왕, 평강의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이사야서 9장 6절에서부터 7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하면서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묘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니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자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를 보존하실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 세상의 지도자들은 다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사람이 싫어서 저 사람을 세우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가 있고, 이 사람이 싫어서 저 사람을 세우면 또 다른 문제가 있고, 사람이라고 하는 지도자는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고 연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과도한 기대, 사람에 대한 기대를 과도하게 할 것이 아니라 같이 협력하면서 부족한 것들은 같이 만들어 나가면서, 주님께서만이 우리의 참된 문제의 해결자 되시고 우리의 삶에 영원한 소망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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