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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여성 안수

[스크랩] 여성안수금지라면 여자신학생은 왜? – 코람데오닷컴과 최갑종 교수의 서면 인터뷰

질문 1: 바울은 고린도전서 14:34와 디모데전서 2:12에서 너무나 명백하게 여성도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과 남자를 가르치고 주관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데 어떻게 교회에서 남녀성도들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당회를 인도하여야 하는 여성목사가 가능한가? 답변: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고, 가르치거나 남자를 주관하지 말라”는 바울의 교훈으로부터 여성안수를 반대하고 있다는 결론을 유추해 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여성도들에게 예배에서 이미 기도나 예언에 참예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고전 11:5)과, 바울의 선교사역에 여러 여성사역자들이 있었다는 사실(롬 16:3,7; 행 18:26)과 정면으로 대립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 말하지 말고 잠잠하면서 어떻게 교회에서 기도와 예언을 할 수 있으며, 바울과 함께 복음의 동역자가 되거나 교회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엄밀하게 말해서 고린도전서 14:34-36, 디모데전서 2:8-15의 본문들은 여성안수금지를 위한 규범적인 본문이 아니다. 다만 고린도교회와 에베소교회의 여성도들 중에 복음의 자유를 남용하거나 곡해하여 남자와 여자의 구분, 남편과 아내의 질서까지 부정하여 가정과 교회를 혼란스럽게 함은 물론, 선교의 문까지 닫게 하는 위험을 가져오고 있는 자들에게 준 바울의 특별한 교훈이다. 우리가 이들 본문들을, “예배 시에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전 11:3-16)는 권면이나, 혹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문안하라”(롬 16:16; 고전 16:20)는 권면처럼,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정황에 비추어 해석하여 그 의미와 메시지를 오늘날 적용시키려하지 않고, 보편적이고 규범적인 구절들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사실상 오늘 교회 안에서 여성이 가르치고 말하는 모든 행위들은 일체 중지되어야 한다. 교회는 여성가대원, 여주일학교교사, 여전도사들을 일체 세우지 않아야 할 것이며, 신학교는 여신학도를 입학시키지 않아야 함은 물론, 목사 후보생을 가르쳐야 하는 여성신학교수들을 세워서도 아니 된다. 여성들은 교회에 올 때 반드시 머리에 수건을 써서 자신의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도록 당부하여야 하며, 교회 안에서 여성도들은 어떤 경우에서든 말하지 말고 잠잠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질문 2. 구약에서 제사장은 오직 남자에게만 주어졌고, 목사는 어떤 의미에서 구약의 제사장직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떻게 여성이 제사장직인 목사가 될 수 있는가? 답변: 구약에서 선지자가 이스라엘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변자이라고 한다면,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의 대변자였다. 그들의 주된 사역은 이스라엘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중보자적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약의 중보자적 제사장 사역은, 마치 구약의 모든 속죄제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화목적, 속죄적 죽음을 예표하였던 것처럼, 장차 이스라엘백성은 물론, 전 인류를 대변하는 대제사장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잠정적 사역이었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장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직을 완전히 수행함으로써 사실상 성취되고 종결되었다.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계시고 있으며, 우리는 누구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인종과 신분과 성별을 초월하여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히 10:19-22). 그래서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을 가리켜 “제사장”으로 부르고 있다(계 1:6; 5:10; 벧전 2:9). 종교개혁자들이 로마카톨릭 교회의 사제직을 반대하여 “만인제사장직”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남성목회자만이 제사장직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은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 질문 3. 예수 그리스도는 공사역 기간 동안 남자만을 12제자로 선발하였으며, 이들이 나중에 신약교회의 기초를 마련한 “사도들”이 되었기 때문에, 사도직을 계승하고 있는 목사는 당연히 남자만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답변: 예수 그리스도가 왜 남자만을 12제자로 뽑았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신약성경은 이점과 관련하여 어느 곳에서도 명쾌하게 답을 주지 않는다. 예수님 자신이 남자이므로 3년 동안 늘 함께 동고동락하며 순회전도사역을 감당하여야 할 제자 중에 여성을 포함시킬 경우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당대의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상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성들도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였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처형을 당할 때 남성제자들은 다 도망을 갔지만 몇몇 여성들이 십자가의 현장을 끝까지 지켰으며, 예수님의 무덤을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도 여성들이었고, 부활한 예수님을 제일 먼저 목도한 자도 여성이었고,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워진 자들도 여성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부활한 예수님의 목격자와 증인으로 세워진 사도직은 그 후대에 계승되지 않고, 제일 마지막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도 바울로 종결되었다(고전 15:8-9). 그럼으로 예수님 당시 사도직은 오직 남자에게만 주어졌고, 목사가 사도직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만이 목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정당한 주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질문 4. 남자인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여자인 이브가 나중에 아담의 배필로 지음을 받았으며, 여자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아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브의 후손인 여자가 목사가 되는 것은 부당하지 않는가? 답변: 창세기 2장에 따르면 이브가 아담을 통해 배필로 지음을 받은 것이 분명하고, 창세기 3장에 따르면 이브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창세기 1:26-28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똑같은 권한과 사명을 받았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이새의 아들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먼저 난 것이 필연적으로 축복의 우선권과 지배권을 가지지 않았다. 또한 여자가 남자의 “배필”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남자에 대한 여자의 피종속권(被從屬權)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종종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배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49:25; 출 18:4; 신 33:7,26,29). 그리고 창세기 3장에 나타나 있는 여자에 대한 뱀의 유혹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남자인 아담의 권위에 대한 유혹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유혹이었다. 이것은 적어도 타락이전에는 이브가 아담에게 종속관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타락이 아담과 이브 사이에 있었던 사랑과 조화의 관계를 갈등과 불평등의 종속관계로 바꾸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는 이브를 가리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로다”라고 하였지만, 범죄한 이후에는 선악과를 먹게 된 책임을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한 여자”(창 3:12)에게 돌렸다. 이브는 “남편을 지배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남편으로부터 다스림을 받게 되었고”, 거기에다 더 많은 해산의 고통을 지게 되었다(창 3:16). 이처럼 아담과 이브, 남자와 여자 사이의 불평등과 갈등 및 종속관계는 하나님이 세우신 본래의 창조질서에 속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인간의 타락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 이것은 아담과 이브,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갈등과 종속관계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타락의 문제가 해결될 경우 언제든지 해소될 수 있는 잠정적인 것을 뜻한다. 그럼으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 여자의 차별 없이 “새로운 창조”가 되었고(고후 5:17), 인종과 신분과 성별의 차이가 없는 새 창조시대, 새 언약시대가 도래한 상황에서, 여전히 옛 창조 시대에 타락을 통하여 주어진 것을 근거로 하여 여성의 사역을 제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질문 5.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인간을 남녀로 창조하심으로써, 설사 동일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 본질과 신분에 있어서 남녀가 서로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기능에 있어서는 이미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따라서 남자에게 주어지는 목사의 역할을 여자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다고 말할 수 없지 않는가? 답변: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남자가 여자가 되려고 하거나, 여자가 남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창조질서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목사의 직분이 남자에게만 주어진다고 보는 것이 옛 창조질서에서는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로운 창조질서에서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목사의 주된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의 전파와 교회의 권징과 성찬의 집례 및 봉사와 선교와 교육 등이라고 할 때, 이들이 남자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창조질서에 속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본질(신분)과 직능은, 나무와 열매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엄격하게 서로 나누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신분과 대통령의 직능이 어떻게 서로 나누어질 수 있는가? 대통령의 신분이 없으면 대통령의 직능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한편으로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의 신분으로 창조되었음을 인정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어떤 직능은 남자에게만 주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것은 결국 동등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여자의 신분을 제한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신약성경은 오순절 성령이 남녀의 구분 없이 꼭 같이 주어졌고, 남녀가 꼭 같이 예언하고, 기도하고, 꼭 같이 복음전파사역에 참여하였다고 말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남녀의 직능상의 차이를 두지 않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오늘 교회 밖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과학, 군사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남녀의 직능상의 차별을 철폐하고 있다. 그런데 남녀의 차별을 철폐하는데 사회보다 더 앞장을 서서 선도해 나가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성경이 분명히 말하지도 않는 성직에 있어서 남녀의 직능상의 차별을 계속 두려고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질문 6: 디모데전서 3:2에서 감독의 자격을 “한 아내의 남편”으로, 디도서 1:6에서는 장로의 자격을 “한 아내의 남편”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감독과 장로와 같은 성직은 초대교회에서 남자에게만 허락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목사와 같은 성직은 당연히 남자에게만 허락되어야 하지 않는가? 답변: 디모데와 디도가 목회하였던 당시 사회는 모든 것을 남자중심으로 하는 가부장적문화사회였다. 그래서 건덕상, 혹은 선교적 동기에서 디모데와 디도가 목회하였던 교회에서는 감독과 장로를 남자들에게만 허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 시대의 모든 초대교회가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고린도와 로마교회에서는 여성인 브리스길라가 감독이나 장로이상의 교회지도자로 있었고, 뵈뵈는 겐그리아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빌립보교회의 지도자였다. 더구나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감독이나 장로의 자격을 “한 아내의 남편”뿐만 아니라, 각각 자녀를 두고 있는 자로 말하고 있는데(딤 3:4; 딛 1:6), 이것이 자녀가 없는 자는 감독이나 장로가 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만일 이들 본문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자녀가 없는 사도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로 나서지 않아야하며, 오늘 날 자녀가 없는 목사와 장로는 모두 교회에서 사표를 내어야 하지 않는가? 그럼으로 이들 본문에 근거해서 여성의 안수를 반대하는 것은 성경본문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출처 : 코람데오닷컴(http://www.kscoramdeo.com)  14,869 total views  14,869 total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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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약의 여성 리더십 – 박유미

박유미 교수(안양대학교) 들어가는 말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 문제가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이다. 작년에 일어난 강남역 여대생 살인사건과 올해 일어난 왁싱방 여성 살인사건 등을 통해 여성이 한국 사회에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존중받지 못하고 살았으며 여성의 목소리가 얼마나 무시되어왔는지에 대해 각성하고 여성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많은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운동이 교회의 여성들 특히 청년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여성 지도자들이 도처에서 활발하게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현 정부에서는 장관의 30%를 여성으로 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 사회는 더 이상 여성이 지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니며 오히려 여성 지도력의 확산을 바람직한 현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교회는 여성의 리더십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아직도 여성은 교회에서 남성의 보조자로서 사역하거나 잠잠해야하는 존재로 자리매김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교회에서 전도사로 교사로 권사로 집사로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문제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하면 잠잠하라는 말로 여성의 의견이나 역할을 배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렇게 사회와 교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에 대한 차이를 현재 교회의 젊은 여성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면서 젊은 여자 청년들이 교회에서 점점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약 여성 지도자들을 살펴봄으로서 하나님께서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서 원하시는 여성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교회의 여성과 여성 지도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1. 종교적 영역에서의 리더십: 여선지자들 A. 미리암 선지자 : 모세의 동역자 우리는 미리암하면 모세와 아론의 누이이며 모세를 비난하여 문둥병에 걸린 비운의 여자로 오랫동안 여겨왔다. 하지만 비록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구약 본문에서 보여 지고 평가되는 미리암은 이런 평가와는 좀 거리가 있다. 미리암이란 이름은 출15:20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녀는 여선지자로 그리고 아론의 누이로 소개된다. 즉, 미리암에 대한 최초의 소개는 그녀가 여선지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설명이 아론의 누이이다. 아론의 누이이면 족보상 아론과 모세가 형제이기 때문에 모세의 누이가 된다. 이렇게 볼 때 그녀는 비록 이름은 여기서 처음 등장하지만 출2:4-10에서 등장하는 모세의 누이가 바로 미리암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미리암은 물에 떠내려가는 모세가 걱정되어 멀리서 동생을 지켜보고 있다가 아기가 우는 것을 본 공주가 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기색을 알아채고는 재빠르고 대담하게 공주에게 다가가 유모를 구해오겠다고 제안을 한다. 이런 미리암의 대담하고 기지에 넘치는 행동을 모세 구원 사건의 절정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미리암은 모세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안식처인 자신의 어머니 품에서 자랄 수 있게 만든 인물로 하나님이 모세를 지도자로 준비시키는 일에 일조를 담당하였다. 이렇게 간난아이 모세를 도왔던 미리암이 출애굽시이에는 여선지자로서 모세와 함께 사역한다. 출15:20-21에서 미리암 선지자의 역할은 모든 여자들이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녀는 소고를 잡고 찬양을 인도하며 그들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모든 여자들은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며 함께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미리암의 노래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하고 “왜냐하면”으로 그 뒤에 이유가 나오는 형식의 여호와 찬양시로 미리암은 전쟁이 끝나고 승리의 영광을 여호와께 돌리기 위해 이스라엘의 여자들을 모아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며 여호와를 찬양한 것이다. 이런 미리암의 노래는 여자들이 부른 다른 승리의 노래들과는 다른 차이점이 있다. 삿11:34에서는 입다의 딸이 아버지를 환영하고 삼상18:6이하에서는 여자들이 사울과 다윗을 환영하는데 반해 출15:20-21에서는 미리암은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다. 즉,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투 대장이나 장군들을 칭송하는 다른 노래들과 달리, 미리암은 여호와만을 찬양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하나님으로부터 영감 받은 선지자로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미리암으로부터 시작된 선지자적 찬양의 전통은 후에 삼상10:5과 대상25:3, 5의 예루살렘 성전 찬양제도에서 나타난다. 이렇게 미리암은 놀라운 구원 사역을 최초로 찬양한 선지자이며 백성을 이끈 지도자이며 모세의 좋은 동역자로 활동하였다. 이런 미리암 선지자가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민12장의 사건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미리암이 이스라엘 안에서 모세의 지도력을 나누자고 요구할 만큼 큰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모세가 구스 여자와 결혼한 것이라고 화자는 소개한다. 그래서 미리암과 아론은 이 사건에 대해 모세를 비방하였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모세에 대항하여 한 말은 구스여자의 결혼 문제와는 상관없는 지도력의 문제였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아니하셨느냐”라고 하며 모세만 하나님의 선지자요 지도자가 아니라 자신들도 하나님의 선지자요 지도자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즉, 이들의 말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오직 모세와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도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 말을 보면 대제사장인 아론과 더불어 미리암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며 한걸음 더 나아가 모세와 지도력을 나누자고 요구할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였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직접 개입하셔서 아론과 미리암을 장막 문으로 부르신 후(5절) 그들과 모세와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신다. 일반 선지자에게는 꿈과 환상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지만 모세와는 얼굴을 대면하고 명백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세는 일반 선지자들과는 다른 특별한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일로 인해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그 벌로 미리암은 나병에 걸리게 된다. 그동안 미리암만 나병에 걸린 것에 대해 미리암을 매우 부정적으로 해석해 왔다. 그리고 모세를 대적한 모든 죄를 미리암에게만 돌렸다. 하지만 11절의 아론의 반응을 보면 아론은 비록 자신이 나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미리암의 나병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모세에게 중보기도를 간구하였다. 아론은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라고 하면서 미리암만이 아니라 자신도 벌을 같이 받는 것으로 인식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미리암만 나병에 걸렸을까? 그 이유는 아론이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부정의 상징인 나병에 걸릴 경우 제사를 수행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즉, 대제사장의 부정의 문제는 이스라엘 제의에 심각한 위협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아론과 미리암을 대표하여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아론의 간곡한 요청에 모세는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였고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에 대해 7일간 부정하니 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금지만하셨다. 이것은 모세가 기도 했을 때 하나님께서 미리암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께서 바로 나병을 치유시켜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7일 동안 진 밖에 있었던 것은 나병에 걸린 사람이 나병이 치유되었을 경우 7일 동안 장막 밖에 있어야 하는 부정의 규례를 따르기 위한 것이었다(레14:1-9). 7일간의 부정기간도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비유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아버지가 자식을 훈계하는 수준에서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의 잘못을 용서해 주셨다는 의미이다. 이들이 비록 한때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 모세에게 도전하였지만 진심으로 뉘우치는 아론의 기도를 통해 이들을 용서해 주시고 여전히 백성의 지도자로서 인정해 주신 것이다. 이렇게 미리암이 격리되어 있는 일주일 동안 백성들의 행군은 중단되었다(15절). 백성들은 미리암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15절의 행군을 중단한 주체가 백성들로 그들은 여전히 미리암을 약속의 땅에 함께 들어갈 그들의 선지자로 여기고 미리암과 동행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20:1에는 미리암의 죽음이 기록된다. 1절에서 미리암은 게데스에서 죽었고 백성들이 그녀를 장사지내주었다. 성경 본문에서 죽음과 무덤의 위치가 언급되는 것은 특별한 지위를 표시하는 것으로 민20:1의 미리암의 죽음의 기록은 공동체에서 그녀의 위상을 알려주는 것으로 미리암이 죽는 순간까지 백성들의 선지자로서 역할 하였음을 나타낸다. 미리암 선지자는 처음에는 모세를 도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스라엘을 이끄는 선지자였지만 한 순간 욕심으로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여 하나님께 책망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깨우심과 징벌로 잘못을 깨닫게 되었고 죄에서 돌이켜 죽는 날까지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을 이끈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 미6:4에서는 미리암을 모세와 아론과 같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세 명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하며 미리암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리암은 민수기12장의 사건 때문에 많이 폄하되거나 무시되어왔지만 구약의 전통에서 그녀는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이끄는 세 명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고 아론과 마찬가지로 모세의 중요한 파트너요 동역자였으며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B. 훌다 선지자 : 요시야왕의 동역자 훌다 선지자는 왕하22:14절에 등장하는 여선지자로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훌다 선지자는 요시야 시대 선지자로 요시야 개혁의 열쇠가 되는 율법책의 발견과 함께 등장한다. 유다왕 요시야는 왕위에 오르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니 아니하였다(왕하22:2)”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평가는 이전에 히스기야 왕이 받던 평가로(왕하18:3) 많은 학자들이 요시야를 제2의 히스기야로 여기고 있다. 그 시대 대제사장인 힐기야는 요시야의 명령으로 성전을 수리하던 중 율법책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그 율법책을 요시야의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고 사반은 그 율법책을 요시야에게 읽어주었다(10절). 그 율법책을 들은 요시야는 즉시 그의 옷을 찢었다. 그리고 자신의 제사장과 서기관과 시종을 불러 이 율법책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고 명령을 한다. 왜냐하면 조상들과 자신들이 이 책의 내용을 듣지 않고 행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책에 따르면 진노가 내릴 것인데 정말로 그런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했던 것이다. 요시야왕의 명령에 따라 그들이 찾아 간 곳이 바로 여선지자 훌다이다. 그녀는 예루살렘 성의 신도시인 둘째 구역에 살고 있었는데 이 장소적 배경은 그녀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선지자였음을 나타낸다. 이들이 왜 여선지자인 훌다에게 갔는지에 대한 많은 논란들이 있다. 그 당시 예레미야나 스바냐 선지자가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더욱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본문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넬슨은 본문이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절대로 특별히 취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그녀의 지위는 성별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며 이것은 여선지자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활동했기 때문에 훌다에 대해서 특별한 해설마저도 필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하였다.1) 다만 제사장이 포함된 왕의 대규모 사절단이 주저하지 않고 그녀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는 것을 보면 당시 훌다는 무척 잘 알려지고 국가의 신임을 받는 예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왕의 말을 훌다에게 알렸고 훌다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준다. 훌다의 예언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유다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유다에게 재앙을 내리겠다는 것으로 유다의 멸망에 대한 예고이다. 둘째는 요시야왕 개인에 대한 예언으로 요시야왕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소리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요시야왕 때는 이 재앙이 일어나지 않고 요시야왕은 평안히 묘실로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시야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징벌의 유예라는 호의를 베푸셨기 때문에 요시야는 임박한 심판을 보지 않고 평안하게 선조들의 묘실로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예언은 아합 때는 엘리야가 전하였고 히스기야 왕 때는 이사야가 전하던 예언의 내용이다. 그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선지자들이 왕에게 전한 내용을 훌다가 요시아왕에게 전하는 것을 보면 훌다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선지자였다고 볼 수 있다. 훌다의 예언을 통해 율법책의 말이 사실인 것과 유다에게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알게 된 요시야왕은 백성들을 모아 언약 갱신을 하고 유다 안의 모든 이방신상과 산당을 제거하고 유월절을 준수하는 등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이런 요시야의 노력에 대해 왕하23:25은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라고 평가한다. 이렇게 강력한 종교개혁을 한 요시야 왕의 옆에서 그의 영적 지도자로 같이 있었던 선지자가 바로 훌다이다. 요시야왕은 훌다의 예언을 통해 율법책의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훌다는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의 동역자이며 든든한 후원자가 된 것이다. 이런 훌다 선지자의 사역은 히스기야 왕 때 활동하던 이사야 선지자의 역할과 비슷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열왕기서는 요시야왕을 제2의 히스기야왕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요시야에 대한 회개와 간구와 응답도 히스기야의 기도와 응답과 매우 유사하다. 히스기야 왕 때는 앗수르의 랍사게가 유다를 쳐들어와 선전포고를 함으로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하나님께 기도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유다를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왕하19:20-34). 그리고 히스기야가 개인적으로 병에 걸려 얼마 있다 죽으리라는 예언을 받고 기도했을 때도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병을 고쳐주신다고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고 후에 바벨론 사신들에게 왕궁의 보물을 보여준 뒤에는 이사야를 통해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셨다. 이사야의 예언 내용도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히스기야 개인의 죽음에 대한 유예와 유다에 대한 멸망인데 이것은 요시야의 회개와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는 형식과 요시야 개인에 대한 죽음의 평안과 유다의 멸망이라는 내용면에서 유사점이 많다. 즉, 히스기야 왕 때 이사야가 히스기야의 영적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였다면 요시야 때는 훌다가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개입 없이 종교개혁을 먼저 시행하였지만 요시야왕은 훌다의 예언의 말씀을 통해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을 보면 훌다의 영향력이 더 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사야와 훌다와 같은 선지자와 그 말씀에 순종하는 히스기야와 요시야와 같은 신실한 왕들 때문에 심판이 유예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훌다 여선지자는 비록 성경에는 간단하게 나타나지만2) 요시야 왕 때 활동한 선지자로서 요시야왕의 종교 개혁에 든든한 후원자요 동역자로 많은 영향력을 준 영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정치적 영역에서의 리더십 A. 드보라 사사 겸 선지자: 이스라엘의 지도자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들은 모두 독특한 나름대로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독특한 사사가 바로 드보라 사사이다. 드보라가 독특한 이유는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과 선지자라는 것이다. 이런 독특성이 드보라가 사사냐 아니냐 하는 논란을 가져오게 하였지만 이글에서는 선지자직을 겸한 드보라 사사의 독특성을 알아보고 바락과의 관계성 속에서 그녀의 리더십의 특징을 알아보고자 한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이 또다시 하나님께 범죄하여 가나안 야빈에게 억압을 받는 상황 속에서 등장한 사사로 삿4:4에서 처음 소개된다. 4절은 동사가 없는 명사문장으로 “드보라, 여자, 여선지자, 랍비돗의 아내(여자), 그녀 이스라엘의 사사”라고 길게 드보라를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5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드보라에게 나아와 재판을 받았다고 보고함으로 화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성인 드보라가 사사라는 것이 전혀 어색하거나 문제가 되지 않고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사사는 사사시대의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을 적들로부터 지키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였다. ‘사사’라는 단어가 ‘다르리는 자, 재판하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에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고 선지자로서 종교적 지도자의 역할까지 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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