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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선물 (롬 1:8-15)

복음이란 (롬 1:1-7) +++

우리가 로마서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 가운데 있는데요.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로마서는 바울 사도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비는 그런 인사말까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 사도는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의 전파 됨이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정말 하나님 앞에 너무나도 감사한다고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서, 기도할 때마다 로마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의 제목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는데, 왜 감사할 수 있었는가? 왜냐하면 이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널리 소문이 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은 정말 대단한 믿음이다. 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참 진짜 믿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그런 소문이 온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고 하는 그런 표현을 8절 말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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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로마 교회 성도들은 어떤 믿음을 가졌길 래, 이렇게 감사하는 조건이 되었을까요? 오늘 로마서의 말씀을 살펴보면, 도대체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어떤 믿음 어떤 특출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측해 보면, 그들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는지에 대해서 추측해 보면 충분히 추측할 수가 있겠는데요.

그것은 바로 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엄청난 핍박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굳게 지키고 있다고 하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일 거라고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로마라고 하는 도시는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황제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로마 제국의 황제가 있는 곳이었고, 그곳에서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승배하는 황제 승배가 만연한 곳이 바로 로마라고 하는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그 로마라고 하는 도시에 살면서 시저(Caesar)가 가이사가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로마 황제가 우리의 신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믿음을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핍박이 있었을 것이고, 엄청난 불이익이 있었을 것이고, 크리스천들에 대한 왕따가 있었을 겁니다. 특별히 우리가 로마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당시에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쓸 당시에 황제가 누구냐 하면, 글라우디오 황제라고 하는 사람이 로마를 다스리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로마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을 다 추방시켜버렸습니다. 유대인들과 크리스찬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고 신앙적인 일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 그래서 모든 유대인들을 다 축출해 버렸기 때문에, 로마에 살던 크리스찬들 로마에 살던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도망가야 했었고, 그리고 숨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해서 정말 신앙생활의 여건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야 했었는데, 이렇게 핍박이 심하면 어떤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까? 믿음을 져버리게 되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좋은 시절에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핍박이 오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믿음을 잃어버리기가 너무 쉬운데, 로마 교회는 어떻게 했는가? 그 교회 성도들은 그런 핍박 환란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있었다고 하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바울 사도는 너희들의 믿음이 온 세계에 퍼졌다. 그러니까 너희가 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고 이렇게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도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이라고 충분히 추측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내가 로마로 가고 싶다 싶다고 하는 그런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9절과 10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 우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다고 한다면 나는 로마로 가고 싶다. 나는 정말 로마로 가고 싶다고 하는 그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데, 바울 사도는 왜 로마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11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떠한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다시 말하자면 바울 사도는 로마를 방문해서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은사라고 하니까, 이게 뭔가 이해가 잘 안 되실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좀 더 쉽게 번역을 한다면 ‘영적인 선물을 나눠주고 싶다’라고 하는 그런 표현입니다. 내가 로마로 가고 싶은데, 로마로 가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너희들에게 가서 영적인 선물을 나누어주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영적인 선물을 나누어 주어서, 여러분들로 하여 견고한 믿음을 갖을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강건한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내가 영적인 선물을 나눠주고 싶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적인 선물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영적인 선물 그러면, 신령한 은사라고 한다면, 바울 사도가 어떤 특출난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선물들 몇 개를 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거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마치 비단 주머니에 금 구슬, 은 구슬, 이런 거 가지고 있다가, 정말 필요할 때 나누어주는 그런 사람처럼, 바울 사도가 어떤 영적인 은사를 저희가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런 영적인 은사를 많이 가지고 있는 바울 사도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런 은사들을 하나씩 나누어주는 거라고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 전체의 교훈으로 본다고 한다면, 어떤 개인이 하나님의 은사를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선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개인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영적인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얘기는 무슨 얘기냐 하면,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 성도들을 방문 함으로 말미암아 위로하고, 격려하고, 이렇게 같이 사랑을 나눔으로써, 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믿음을 더욱 더 가지게 되고, 또 용기를 얻게 되고, 우리들이 신앙생활하는 것이 정말 동지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얻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어딘가 길을 걸어가는데, 만일 한밤중에 혼자 걸어간다고 하면 여러분 불안하십니까? 아무 문제가 없습니까? 아마 불안하실 겁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밤중에 혼자 슈퍼마켓 가서 무엇을 사오라고 한다든지, 여성분들에게 어디 가서 해오라고 한다면, 밤중에 혼자 길을 나서는 것이 굉장히 싫을 겁니다. 그런데 혼자 가려고 하는 그 사람에게, 내가 같이 갈게 하면서 손잡고 가준다고 한다면,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같이 가는 동지가 있기 때문에 힘을 얻기도 하고 자신만만하게 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신앙생활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지금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어떤 상황입니까? 많은 박해를 받고 있는 겁니다. 많은 박해를 받고 있는데, 그 상황 가운데서 정말 믿음이 흔들리는 겁니다. 우리가 정말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인데, 이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정말 힘들고 어렵구나라고 하는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서, 정말 힘든 것이죠. 그런데 그 상황 가운데 바울 사도가 와서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같이 신앙생활을 공유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신앙을 나누게 될 때, “아, 동지가 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위로를 얻기도 하고, 담대한 믿음을 갖게 되기도 하는 겁니다.

요즘 우리 중고등학생들이 신앙생활을 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학교에 가면, 학교에서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 몇 명 없습니다. 근데 온 반 아이들이 손 가락질 하면서, “너 교회 나가? 아이고, 저 바보 같은 놈. 너, 아직도 교회 다녀?” 모든 반 아이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 믿는 학생을 향해서, 그렇게 왕따를 시키고, 비아냥거리고 한다면, 정말 믿음이 있는 학생이라고 할지라도,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이 자기를 향해서, 너 교회 나가 하면서 비난하게 되면, 정말 학교에서 자기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드러내기가 정말 어려울 겁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을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거 정말 비난받는 일인가? 하면서 마음이 흔들리기 쉽고, 그래서 교회에 나가는 것을 등한시 하려고 하는 경향이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의 마음 가운데 들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만일 그 안에 혼자가 아니라, 다른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다가와서 “너 교회 가니? 나도 교회 다녀” 그렇게 그 이야기를 듣게 될 때, 나만 교회 다니는 게 아니구나. 내 친구도 교회를 다니는구나. 거기서 엄청난 위로를 받는 것이죠. 거기서 엄청난 힘을 얻는 거죠.

지금 바울 사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얘기입니다. 지금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황제 숭배를 하면서 이교도의 신앙 가운데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박해하고, 예수님을 믿지 말라고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상황 가운데서, 정말 우리가 이렇게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불안한 그 상황 가운데 있는데, 바울 사도가 계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내가 너희들에게 가서 같은 믿음의 동지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힘을 얻게 하고 용기를 얻게 하고, 너희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해주기 위해서 내가 너희들에게 가고 싶다라고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를 처음 갔을 때였습니다. 신학교에 처음 가서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는데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그리고 진짜 참된 교리가 무엇인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을 많이 배우면서, 그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그렇게 신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서, 교회로 돌아가게 되면 혼란스러운 거예요.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면, 내가 학교에서 신학교에서 배웠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들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목사님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자기는 신학교를 다닐 때 공부 하나도 안 했다고, 나는 늘 땡땡이 깠다고, 그래도 나는 목회 잘하고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면 목회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신학교에서 배운 건 다 잊어버리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제 마음 가운데 많은 혼란이 생겼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성경 말씀, 그리고 교리들, 이것이 진짜 같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라고 하는 사실을 내가 배웠는데, 그런데 정작 그 배운 것을 가지고 교회 안에 들어오면, 교회 안에서는 그 가르친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성경을 읽어 놓고, 자기 하고 싶은 얘기 마음대로 해버리고, 신변잡기나 이야기해버리고, 성경을 무시하고, 교리를 무시하는 이야기들이 교회 안에서 많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지금 이거 잘못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사 안수를 받고 군목으로 활동하고 목회를 하면서도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과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학교에서 배운다로 하면 신학교에서 가르쳐준 대로 한다면 망할 거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될 때, 엄청난 혼란스러움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제 인생 가운데서, 제 목회에 경험 가운데서, 제 목표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주게 되는 계기가 제 인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미국으로 가서 유학을 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미국에 가서 여러 목사님들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그분들의 이름을 하나씩 말씀드리자면, 지금은 캘리포니아 얼바인에서 목회하시는 베델한인교회에서 목회하시는 김한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그분은 코네티컷 하트포드라고 하는 조그만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목사님을 만났어요. 필라델피아에서는 기쁨의 교회 박성일 목사님을 만났어요. 또 당시에,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당시에 볼티모어 갈보리 교회에서 목회하시던 노진준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들을 보니까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목회를 하는, 성경의 교리대로 목회를 하는 거에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제가 엄청난 위로를 받았어요. ‘아, 이게 맞구나! 하나님의 말씀이 맞구나!’ 이 말씀대로 하면 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게 맞구나. 그분들을 매개로 해서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에 대해서 배우가 되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옳은 것이고, 지금 내가 걸어 가고 있는 것이 잘못된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을 내가 걸어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면서, 제 인생의 제 목표의 엄청난 전환점이 되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제가 필라델피아에서 목회하면서,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목회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필라델피에 있는 장덕상 목사님과 교제를 하면서, 잘못된 이 세상의 목사님들이 흔히 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대로 가르쳐야 되겠다고 하는 그 같은 뜻을 가진 목사님들을 만났다고 하는 것이 제게 엄청난 위로가 되고, 엄청난 힘이 되고, 그래서 그 일을 계속해서 진행해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 바울 사도가 로마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내가 로마에 가서 영적인 선물을 너희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는 바울 사도가 어떤 신비한 무당과 같은 능력이 있어서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거 곶감 나눠주듯이, 선물 나눠주듯이 나눠주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 곁에 서서 당신이 가는 그 길이 잘못된 길이 아니라, 내가 가는 그 길이 예수님을 믿는 게 잘못된 길이 아니라, 그 길이 구원의 길이오, 십자가의 길이 망하는 길이 아니라, 그 길이 바른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서로가 같은 믿음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확인하게 될 때, 동지가, 영적인 동지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때, 로마 교회 성도들이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믿음 가운데 견고하게 설 수 있게 해주기를 원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함께 신앙생활 하면서,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1대 1의 관계인 것이지, 사람들하고의 관계는 아니거든요. 하나님과의 1대 1의 관계가 신앙이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면 영과 진리로 드리면, 그것이 참된 예배인 것이지요. 그래서 코로나 상황이 되었을 때, 아주 심할 때, 우리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내가 만일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비상 상황에서는 숨어서 예배할 수도 있고, 혼자 예배할 수도 있고, 온라인으로 예배할 수도 있고, 그렇게 다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무엇을 권하고 있습니까? ‘그냥 하나님과의 1대 1의 관계니까 너 혼자 신앙생활 잘하면 된다.’ ‘너 혼자만 하나님 앞에 예배 잘 드리면 된다’라고 성경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이기를 힘쓰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함께 모여서 신앙생활해라. ‘너희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라’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왜 모여야 합니까? 왜냐하면, 함께 모여서 같은 신앙을 가지고, 함께 예배하게 될 때, 힘과 위로와 용기를 얻는 것이죠. 같이 모여서 우리 성도가 성도를 향해서 한 번 웃어주고, 등 한 번 두드려주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거기서 힘과 용기를 얻는 거예요. 같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데, 그 성도가 믿음으로 견뎌내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에게서 감동을 받고, 힘과 용기를 얻는 거예요. 나보다도 더 심한 상태에 있는 저분이 믿음으로 이겨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구나’라고 하는 그런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는 주님께서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놓으셨는데, 이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는 함께 모여서 함께 예배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그런 믿음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상담을 하게 될 때, 우리 교우들에게 상담을 할 때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가능하면 한 가정은 같이 지내라고 권면을 합니다. ‘우리 아이를 기숙학교에 보내는 것이 좋을까요?’ 라고 물어보면, 그렇게 기숙학교로 보내기보다는 집에서 같이 사는 게 훨씬 더 낫다고 권고를 합니다. 물론 청년이 되면 이제는 독립해서 따로 살아야 되고, 따로 살면서 혼자 지내야 또 짝도 찾고 결혼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청년이 되기 전, 청소년 시절까지는 부모와 같이 한 집에서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제가 권면을 해 드립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같이 사는 것 자체가 사랑이에요. 같은 집에서 숨 쉬고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사랑을 주고받는 거에요. 물론 그런 형편이 안 되어서 떨어져서 살아야 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저희 가정도 미국에 있는 동안에, 한때는 헤어져서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시간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상황이라고 한다면, 가능하면 퀄러티 있는 시간으로 우리 자녀들과 함께 보내라고 권고하고 싶은데요. 제 아내는 어떻게 했냐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아이를 붙들고 한 시간 내내 침대에서 뒹굴었어요. 큰 아이가 먼저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큰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서 오라고 하면서 침대로 가서 둘이 깔깔깔깔 거리면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힘든 것은 없었는지, 재미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이런 저런 얘기 하면서, 한 시간 내내 뒹굴면서 있다가 보면, 둘째 아이가 와요. 그럼 또 둘째 아이를 붙들고 또 한 시간 내내 침대에서 뒹굴면서 다른 걸 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하고 책망하고, 그렇게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이 있어주고, 공감해주고 웃어주고 그렇게 하는 걸 통해서, 이 아이들이 사랑을 충분히 느끼고, 그런 사랑을 느꼈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영적인 선물을 로마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울 사도가 어떤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성도가 되어서, 같은 교회 공동체가 되어서, 함께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이죠. 웃어주며, 귀 기울여주며, 마음을 읽어주고, 믿음의 공동체를 나누어 갈 때, 힘들게 어렵게 살던 그런 사람들이 같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고,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데 바로 그 일을 위해서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이렇게 영적인 선물을 나누어주겠다. 내가 너희들과 함께 가서 함께 지내겠다. 그래서 너희들을 견고하게 해주겠다고 말하면서, 덧붙인 표현을 보면, 좀 아주 특이한 표현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그게 바로 12절의 말씀인데요. 12절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어떻게 안위함을 받으려 한다고요? “피차” 그러니까 지금 바울 사도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너희들에게 주겠다’가 아닙니다. 뭐냐 하면 “피차” 안위를 얻자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무슨 얘기냐 하면 이 영적인 선물을 나누어주는 것은, 바울 사도만 줄 수 있는 어떤 특권층이기 때문에,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을 너에게 나누어 준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너희들에게 가는 것이 너희 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인데, 그것이 너희들에게만 힘과 용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여러분들 때문에 나도 위로를 받고, 나도 힘을 얻을 수 있겠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교류적인 것이죠. 내가 사랑을 베풀면, 내 사랑을 다 빼앗겨버리고, 나만 너덜너덜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을 베풀면 그 사랑이 배가 되어서, 내게 돌아오는 거에요. 내가 사랑을 베풀면 베풀수록, 나는 더 행복해지는 것이고, 내가 사랑의 손길을 내밀면 내밀수록, 나는 더 기쁨이 넘치게 되고, 서로 그렇게 상호작용으로 피차 안위함을 얻는 것이지, 바울 사도가 뭔가 대단한 인물이어서가 아닙니다. 바울 사도도 이 로마에 가서 로마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얻는 거죠.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이렇게 믿음을 지키고 있는 성도들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면서, 바울 사도도 엄청난 은혜를 받는 겁니다. 엄청난 힘을 얻는 겁니다. 바울 사도 엄청난 용기를 얻는 겁니다.

저도 이렇게 목회를 하면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나누어주는 것 이상으로 사실 저는 성도님들을 바라보면서 제가 얼마나 많은 힘과 위로와 그리고 소망을 얻는지 모릅니다. 성도님들 가운데 정말 힘든 가운데 있는 성도님이 계신데, 그분이 낙담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함을 잃지 않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성도님을 바라보면서 제가 위로와 힘을 얻게 되는 거죠. 저 상황이라고 한다면 절망할 법도 한데,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는 성도를 보면서, 저도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변화되어가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도들이 그렇게 변화되는 모습에 저도 위로와 힘과 용기를 얻는 것이고, 목회하는 것이 이게 잘못된 것이 아니구나. 정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사람의 모습이 변하는구나. 그것을 보면서 저도 엄청난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것이죠.

우리 교회는, 너희를 너희 중에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오직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한 분만이 아버지이시고, 너희 가운데 선생이라고 부르지 마라. 오로지 참된 선생님은 하나님 한 분만이 참된 선생인데, 우리는 다 양들이고, 우리는 다 학생들이고, 우리는 다 어린 양들인데, 우리가 서로 누가 누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사랑으로 힘과 용기가 되어주는 것이죠.

바울 사도는 로마에 가고 싶어 하는 두 번째 목적을 13절에서부터 15절 말씀 가운데 표현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은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 사도가 로마로 가고 싶어 하는 두 번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지금까지 이곳에서 마게도니아 지방에서 그리고 소아시아 지방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이제는 지경을 더 넓혀서 저 이탈리아까지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하는 그런 소망을 13절에서부터 15절에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바울 사도는 왜 이렇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을까요? 그렇게 전하기를 원한 그 이유를 14절에 표현하고 있는데, 뭐라고 표현하냐면, ‘왜냐하면 나는 복음의 빚진 자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빚진 자가 뭐죠? 채무자죠. 채무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빚을 갚아야 되는 거죠. 채무자는 어떻게 해야 되죠? 채무를 되 갚아야 하는 것이 채무자입니다. 빚진 자. 근데 바울 사도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냐면, ‘내가 복음에 빚진 자다.’ ‘여러분들에게 내가 빚을 졌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여러분들에게 빚진 빚을, 여러분들에게 되갚아야만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도대체 바울 사도는 언제 빚을 졌습니까? 로마에 있는 성도들, 언제 본 적이 있다고 빚을 졌다고 이야기하는 겁니까? 그것은 로마 사람들을 예전에 만나서 어떤 빚을 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바울 사도가 생각하기에 자기가 구원받은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 말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바울은 원래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가 모인다고 하면 그곳에 가서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교회를 핍박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일에 열정적인 던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에게 응당한 맞는 대우가 있다고 하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심판이겠죠.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그의 목숨을 빼앗아가 버리고 천벌을 내리시고 지옥불에 쳐넣어야 마땅한 사람이 바울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대적하는 그 바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요. 예수님이 나타나서,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내가 나를 핍박하느냐?’ 말씀하시고, 거기서 바울 사도를 완전히 변화시킨 거에요.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어 주신 겁니다.

그래서 그 바울 사도는 그때부터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 바뀌게 되었는데, 바울 사도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왜 구원을 받았는가? 내가 왜 하나님의 사도가 되었는가? 가만히 생각 해보니까, 내가 구원받은 이유는, 내가 마땅히 죽임을 당해야 마땅했지만, 그런데 내가 구원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복음을 전하라고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할 대상이 있기 때문에 내가 구원받은 겁니다. 그러니까 그 복음을 전할 대상이 나를 구원하게 만든 사람들이에요. 로마인은 복음을 아직 듣지 못한 사람 때문에, 내가 구원받은 거예요. 아직 예수님을 듣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내가 구원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 때문에 내가 목숨을 건진 겁니다. 내 목숨을 살릴 사람이 누군가? 하나님이 물론 살려주셨겠지만, 하나님이 살려주신 이유가 뭔가? 바로 저 사람 때문에, 나를 살려주었기 때문에 내가 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될 채무 빚을 지고 있다. 내 구원의 채무,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있었지만,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에게 가서 거기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사명들을 늘 잊으면서 삽니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들이 사명을 잊은 것처럼, 우리도 늘 잊으면서 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하나님의 빛을 온 이방 세계에 전하게 하고,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에게로 이끄는 그런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 나라로 세워준 겁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렇게 복음의 빛을 전 세계에 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선민이고 너희들은 선택되지 않은 민족이라고 하면서, 무시하고 멸시하고 이방인들을 박해하고, 오로지 자기들이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자신들의 사명을 착각한 채 살아온 것이죠.

마치 학교에서 반장을 뽑는다고 한다면, 반장을 왜 뽑습니까? 반장이라고 하는 사실 자랑하라고 뽑는 것이 아니라, 그 반에 학생들을 위해서 봉사하라고 반장을 뽑는 것인데, 봉사는 하지 않고 교만하다고 한다면, 그 사명을 착각한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번에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되는데, 대통령 선거를 왜 합니까? 자랑하라고 대통령 뽑는 게 아니고, 정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힘들고 어려운 사람 좀 도와주고, 온 모든 사람들이 잘 살게 만들기 위해서 골고루 공평한 세상 만들게 하기 위해서 대통령을 뽑는 것인데, 이권만 챙기고 자신들의 사람들만 다 챙기고, 모든 계획 알아내서, 그래서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그런 일을 하는 대통령이라고 한다면, 뽑으나마나 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사명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 내게 있는 그 모든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이 건강이면 건강, 경험이면 경험, 물질이면 물질, 내가 가진 재능, 그 어떠한 성품과 내가 가진 것,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냥 주신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만나는 사람들이고, 내 남편이든 아내든 부모님이든 자녀들이든 학교에서 만난 사람이든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이든, 교회 성도들이든, 그 누구든지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용기를 북돋우어주고, 사랑을 베풀라고 주신 것인데, 그것이 아니라, 이기적으로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모습일 겁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11월 20일이면 임직식을 하게 될 텐데요. 새로운 직분자를 세운다고 하는 것은 ‘그저 내가 이래뵈어도 장로야.’ ‘이래 뵈어도 집사고 권사야.’ 자랑하라고 세우는 거 아닙니다. 죽을 때,. 묘비명에 그냥 성도라고 새기는 것보다, 장로라고 새기면 더 좋고 권사라고 하면 더 좋아서, 그것 때문에 세우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신다고 한다면 내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우리 주님께서 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주시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그것을 그냥 허비해 버리라고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베풀 때 피차 위로 받고, 피차 힘을 얻고, 피차 기쁨이 넘치는 그런 놀라운 은혜의 역사들이 넘쳐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