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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을 구한 아브라함(창 14:1-16)

교회에서 상처받고 쓰라린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데, 왜 굳이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하는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도 충분하고 오히려 더 말씀에 집중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가능하면 모이는 것을 추구해야 할까?

아무리 연약한 초식동물이라 할지라도 맹수의 공격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서로 모여 있는 것이다. 사자와 같은 맹수도 얼룩말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다. 그들이 원을 그리고 방어를 할 때에는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한다. 다만 그 무리 가운데서 떨어져나온 짐승은 쉽게 맹수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되어 있다. 영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마치 아무 힘이 없는 양과 같다(마 10:16). 이리와 같은 맹수의 공격에 취약하다. 그리고 사탄 마귀는 마치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벧전 5:8). 우리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종종 성도들 중에는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믿음을 저버리지는 않지만, 교회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혼자 성경보고 기도하면서 신앙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 우리의 믿음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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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과 고모라 지역으로 가서 살았다. 그때 마침 그돌라오멜을 비롯한 4개 부족 연합군이 공격해왔다. 그때 롯은 끌려가게 되었다. 만일 그 옆에 아브라함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브라함이 도와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롯은 아브라함을 떠났고, 그 결과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우리가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는 영적인 공격에서 함께 방어하기 위해서이다. 혼자 있으면 무너지기 쉽기 때문이다. 다윗은 모든 사람이 전쟁터에 나가고 혼자 있을 때, 범죄하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와는 혼자 있을 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게 된 것이 아닌가? 우리는 함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함께 예배해야 하고, 서로가 권면하면서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탄의 영적인 공격을 이겨낼 수 있다.

아브라함은 롯이 사로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머뭇거리지 않았다. 318명의 용사들을 이끌고 가서 롯을 구해냈다. 사실, 이 순간에 아브라함은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었다. 롯이 자신에게 잘못했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도와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또는 상대방의 세력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고 돕는 것을 주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도와주었다. 왜 그랬을까? 아브라함이 롯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롯이 전에 잘못을 했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은 롯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를 구원하였다.

우리에게도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계시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떠난 롯과 같이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았다.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어주셨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