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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과 히람 (왕상 5:1-12)

오늘 본문은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두로 왕 히람, 레바논 왕 히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그런 사명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사실 성전을 짓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 있었던 것이죠?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 사명을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죠.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막으셨기 때문에 성전 짓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 짓는 일은 자기의 아들 솔로몬에게 넘겨준 것이죠.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윗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성전을 지을 수는 없었지만 성전 건축에 필요한 제목들을 성전 건축을 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들을 준비하는 일을 다윗이 아주 열심히 해서, 그래서 수많은 재료들을 모아놓고, 그 재료들을 이용해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준비를 했던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성경적인 원리를 잘 깨달은 것 같아요. 성경적인 원리가 무엇이죠?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하는 게 아니라 각자에게 맡겨준 사명이 있는 겁니다. 각자에게 맡겨준 그런 역할들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그 역할, 내게 맡겨준 역할을 신실하게 잘 감당하면 되는 거예요. 내가 성전을 다 짓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그 성전 짓는 것까지는 허락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내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다윗을 생각하면서, 내가 성전을 짓기 위한 재료들을 준비하는 일은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성전 짓는 그 재료들을 충분하게 잘 준비해 놓은 것이죠.


성경적인 원리 우리가 늘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하나의 그 프로젝트를, 하나의 그 사명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 해야 할 그 역할들이 다 다른 겁니다. 바울 사도는 심는 일을 한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아볼로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물을 준 것이죠. 혼자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명이 다른 여러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의 성경적인 원리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우리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 다르게 만드셨어요. 다 장점이 다르고 할 수 있는 게 다르고, 능력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그 사명인가를 생각하면서, 나에게 맡겨주신 그 사명들을 잘 감당하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면서 늘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렇게 서로 사명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왜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느냐고 비난할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에게 그 사명을 맡긴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그 사명을 나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내가 잘한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교만할 필요도 없고, 내가 하지 못한다고 하는 그 사실 때문에 절망하거나 좌절할 것이 없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명들을 이루어 나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헌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서로가 존중하며 서로가 인정하며, 나는 심었지만 너는 물을 주고, 너는 물을 주지만 나는 심고,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이루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겸손하게 우리의 사명들을 잘 감당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다윗은 자신이 성전을 짓는 것까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 성전을 짓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다윗은 수많은 성전을 지을 재료들을 준비하면서, 솔로몬에게 그 사명을 맡길 수가 있게 된 것이죠. 그렇게 해서 다윗이 준비한 물품 중에 어떤 물품들이 있었을까요? 역대상 22장 2절에서부터 5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명령하여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다윗이 또 문짝 못과 거멀 못에 쓸 철을 많이 준비하고, 또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은 놋을 준비하고,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 다윗이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다윗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다윗은 이 성전을 짓는 그 재료들을 솔로몬이 아직 미숙하고 어리니 자신이 최대한 대로 많이 준비해야 되겠다 하면서 많이 준비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 본문에 이 말씀을 우리가 살펴보게 되면 다윗이 백향목을 조금만 준비했습니까? 많이 준비했습니까? 많이 준비했어요. 엄청나게 많이 준비했어요. 성전을 지을 수 있을 만큼 많이 준비했는데, 오늘 열왕기상 5장에 보면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에게 레바논 왕 히람에게 백향목을 또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오늘 열왕기상 5장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백향목을 엄청나게 많이 준비했다고 했는데, 왜 솔로몬은 히랍 왕에게 더 많은 백향목을 보내달라고 요구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혹시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생각해 봐야 되겠죠? 모르겠어요. 다윗이 충분히 많이 준비한 것 같은데, 왜 백향목을 더 달라고 얘기했을까요? 아마도 다윗이 생각했던 성전보다 솔로몬이 생각한 그 성전의 규모가 훨씬 더 컸기 때문에, 다윗은 이 정도면 괜찮겠다 생각하고 준비한 것보다, 솔로몬이 생각하기에 더 많은 백향목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백향목이 필요해서 이렇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솔로몬은 두로 왕 히람에게 지금으로 치면 레바논 지역이 되겠죠. 레바논 지역을 다스리는 히람 왕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달라고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이 레바논이라고 하는 나라는, 지금도 이스라엘 북쪽에 레바논이라고 하는 나라 있잖아요? 그 레바논이라고 하는 나라의 국기를 보면 그 국기에 무엇이 그려져 있죠? 나무 하나가 그려져 있습니다. 초록색 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그게 바로 백향목 나무가 레바논 국기에 그려질 정도로 레바논의 특산물이 바로 이 백향목입니다. 이 백향목이 건축하는 데 정말 필요한 아주 좋은 나무이기 때문에, 이 레바논 지역에서 이런 백향목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많이 나와서 솔로몬은 이스라엘에 없는 그 나무를 수입하기 위해서 히람과 대화를 통해서 수많은 물자를 확보하게 된 것이죠.


이 당시에 저 북쪽에 있는 레바논 지역에서부터 예루살렘 지역에까지 그 백향목들을 수없이 많이 운반해 올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 정말 놀라운 거죠. 오늘날처럼 덤프트럭이 있습니까? 없어요. 오늘날처럼 그런 커다란 선박이 있었겠습니까?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운반을 했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 백향목을 바다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줄로 뗏목 엮듯이 줄로 묶어서 저 레바논 근처의 지중해 바다에서부터 밑으로 쭉 그 백향목을 배로 끌고 와 가지고, 지금의 욥바 혹은 텔아비브 지역까지 바닷길을 이용해서 그 백향목을 가져오면, 거기서부터 다시 항구로 끌어와서 거기서부터 예루살렘까지 또 옮겨가야 되는데 그 무거운 백향목을 어떻게 다 옮겨가죠? 야, 대단합니다. 평지가 아니고 오르막길 서서히 오르는,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이 계속해서 오르는 오르막길인데, 그걸 사람들이 메고 갔을까요? 짊어지고 갔을까요? 아니면 밑에 통나무를 해 가지고 굴려서 갔을까요? 참 옛날에 건축물을 진다고 하는 것 오늘날처럼 그런 차량도 없고 배도 없는데, 어떻게 지었을까 생각하면, 정말 고대 사람들의 그 지혜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가 있겠는데, 아무튼 그렇게 해서 피라미드도 짓고 무슨 석상들도 짓고 했는데, 예루살렘 성전을 위한 백향목을 저 레바논 지역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이동시키게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백향목을 수입해 오는 것이 공짜였을까요? 대가를 지불해야 했을까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솔로몬에게 히람 왕은 요청합니다. 무엇을 달라고 요청합니까? 궁정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을 달라고 요청한 것이죠. 우리가 백향목을 줄 테니까, 그러면 궁정에서 쓸 음식 재료들을 음식물들을 솔로몬이 제공해 달라, 줄 것을 요청해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물물 교환을 한 거예요. 무역을 한 겁니다. 이게 바로 경제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우리 모두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 서로 물물 교환을 하면서, 지금 이 시대에는 그 물물 교환이 발달해서 화폐를 이용해서 서로 구매하는 시스템이 발전시키게 됐는데, 아무튼 이 시기에 솔로몬과 히람 왕은 평화의 관계 속에서 서로가 물건을 주고받으며, 그래서 그런 물물 교환을 통해서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솔로몬의 지혜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때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까요?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위해서 백향목이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에게 백향목이 없어요. 부족해요. 그러면 저 북쪽에 있는 레버논에 있는 백향목을 가져오기 위해서, 지금은 이 열왕기상 5장에서는 물물 교환을 통해서 가져왔는데, 물물 교환의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백향목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게 어떤 방법일까요? 가서 빼앗아 오는 것이죠. 전쟁을 통해서 빼앗아 오는 방법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솔로몬은 군사들을 일으켜서, 저 히람 왕과 전투를 하고, 그래서 군사력을 이용해서 그 물건들을 빼앗아 오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지혜의 왕답게 평화의 방법을 사용한 것이죠.

전쟁이나 무역이나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점에 있어서는 비슷해요. 물물 교환도 우리가 백향목을 가져온다고 한다면 공짜로 가져오는 게 아니고 무엇을 지불해야 되죠? 레바논 그 궁정에서 사용할 음식물을 제공해 주어야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로 백향목을 받아올 수 있는 겁니다. 전쟁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전쟁은 가서 빼앗아 오면 되는 것이니까, 공짜로 빼앗아 오는 건가요? 전쟁은? 아니에요. 전쟁도 치러야 될 희생이 있는 겁니다. 전쟁을 하게 되면, 우리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것이고, 거기서 수많은 백성들이 다치게 되는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물자가 필요하게 된 것이고, 전쟁을 하든 물물 교환을 하든 공짜는 없습니다. 전쟁을 해서 빼앗아 온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희생을 치르지 않고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가져오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평화의 방법을 사용하든, 전쟁의 방법을 사용하든, 똑같이 그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전쟁의 방법이 지혜로운 방법입니까? 평화의 방법이 지혜로운 방법일까요? 어느 방법이 지혜로운 방법이죠? 두 말하면 잔소리입니다. 평화의 방법이 지혜로운 방법이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방법으로 전쟁을 통해서 서로 다치면서 피를 흘리면서, 백향목을 구해 온 것이 아니라, 평화의 방법을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무역을 통해서 백 항목을 얻게 된 것이죠. 열왕기상 5장 12절의 말씀에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 서로 약조를 맺고 평화 조약을 치르고 맺고, 그래서 평화롭게 물물 교환을 하고, 경제를 만들어 가는 게, 그게 지혜의 방법인 것이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셨던 지혜의 방법이라고 하는 점을 오늘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화의 방법이 아니라 싸우게 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싸우는 방법을 통해서도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우리를 향해서 아주 명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의 말씀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어떻게 된다?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평화의 방법으로, 서로 도우면 승리하는 거예요. 이룰 수 있는 거예요. 번창하는 거예요. 잘될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서로 물고 뜯으면 나만 죽는 것이냐? 저 사람만 죽는 것이 아니라, 나도 죽는 거예요. 같이 죽는 거예요. 서로 같이 망하는 거예요. 그러기에 어떤 길이 지혜로운 길입니까? 싸우는 길이 아니라, 평화의 길이 지혜로운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의 말씀에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평화의 사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늘 고민하세요. 어떻게 하면 싸우는 방법이 아니라 평화의 방법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사람과 어떻게 하면 화평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어차피 내가 희생해야 될 부분들이 많이 있어요. 평화의 방법도, 전쟁의 방법도 희생이 없는 게 아니라, 다 희생이 있어요. 그런데 희생의 방법 중에 전쟁의 방법은 함께 망하는 길이고, 화평의 방법은 함께 승리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어떤 일들을 만날 때마다 무엇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지혜의 방법인가? 무엇이 같이 승리하는 방법인가? 이 화평의 방법들을 선택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화평의 방법을 모색해야 되는데요. 특별히 더더욱 성전을 세우기 위해서는 화평의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죠. 솔로몬은 지금 무엇을 지으려고 하는 겁니까? 성전을 지으려고 하는 거예요. 성전을 짓는 거룩한 집을 세우기 위해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전쟁이 아니라 화평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고요. 다윗은 왜 성전을 지을 수 없었습니까? 다윗이라고 하는 그 훌륭한 왕,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던 다윗은 왜 하나님의 집, 거룩한 집 성전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까? 역대 상 22장 6절에서부터 8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피를 많이 흘린 다윗에게는 너는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전쟁에 특화되었던 이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지 못하게 만든 것이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늘 마음속에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그 옛날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습니다. 거룩한 집을 지어 나가는 사람들이죠.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이라고 하는 공동체를,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그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 나갈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이 거룩한 공동체를 거룩한 하나님의 집을 세워 나갈 수 있는가? 다윗과 같아서는 성전을 세울 수가 없는 것이죠. 다윗처럼 피를 흘린 사람들은 성전을 세울 수가 없는 겁니다. 물론 만들려면 만들 수도 있겠고, 그래서 지었다고 한다면 그것이 성전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다윗이 성전을 짓는다고 한다면 그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실 수가 없는 겁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집을 세워 나가는가? 어떻게 거룩한 곳을 만들어 갈 수 있는가?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죠. 히람 궁전에 왕궁의 음식물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한 해만 주는 것이 아니라, 매년 음식물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그 비용 지출이 엄청나게 커 보일 겁니다. 하지만 그게 경제적인 선택인 것이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방법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무엇이 바른 방법인가? 평화의 방법, 화평의 방법,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늘 우리 마음 가운데 싸움을 부추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평화의 사도가 되기를 원하지만, 그래서 화평을 추구하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러주시지만, 정반대로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싸움을 부추깁니다. 싸우는 사람은 누구의 자녀일까요? 사탄의 자녀예요. 잘 기억하세요.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싸움을 하는 사람은 사탄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탄이 우리로 하여금 싸우게 만들 때 어떤 전략을 쓸까요?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싸움을 부추기면서 이 싸움은 정당한 싸움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을 위한 전쟁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죠. 이 싸움은 거룩한 전쟁이라고 속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돼요. 싸움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에요. 싸움으로써 하나님의 집을 세울 수가 없어요.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고, 우리를 자꾸만 사탄이 속여서, 그래서 나는 의로운 전쟁을 하고, 거룩한 전쟁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됩니다. 싸움은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야고보서 1장 20절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어떻게 한다고요? “이루지 못함이라.” 화를 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는 거예요. 화내는 것으로도 못 이루는데, 싸우는 것으로 이길 수 있겠어요? 하나님의 싸우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의를 세워나갈 수가 있겠어요?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가 있겠어요? 거룩한 집을 만들 수가 있겠어요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거짓말이에요. 싸우는 방법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을 만들어 갈 수가 없는 겁니다. 피를 흘린 다윗을 향해서 너는 하나님의 집을 지을 수 없다. 주님께서 선언해 주시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주님 앞에 늘 기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분별해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옛날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듯이, 오늘날 저희들에게도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하신 길, 화평의 길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살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속에서 이기적인 동기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좋은 명분을 표면에 내세우지만 사실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싸우는 것이고요. 겉으로 드러내기에는 정말 정당한 그럴듯한 것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싸우는 것이고, 사람들로부터 박수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시기와 질투와 미움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지 아니하는 그런 악한 본성 때문에 우리는 싸우는 것이지,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늘 우리들의 본성에서부터 잘못된 생각들이 문득문득 뛰쳐나올 수가 있습니다.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던 사람들의 마음에서도 때로는 분노가 뛰쳐나올 수 있고, 싸움이 뛰쳐나올 수도 있고 종종 우리 가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들이 닥치게 되면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게 아니라 그런 사탄의 유혹에 우리가 잠시 넘어져서 잠시 잘못된 생각을 하더라도 그때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서서 우리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주님, 마음을 바꾸어 주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혜의 방법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가는 가운데, 우리 자신이 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위해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해 주셨는데,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가 되게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는데, 그 화목의 은총을 받은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회복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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