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span>달란트 비유</span>

3.5.6 상급

– 이국진

하나님 앞에 충성한 자들에게 상급이 주어진다는 것은 성경 전체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사상이다. 십계명 가운데 제2계명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 20:3-6)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있을 것은 성경 처음부터 주어진 원리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그 결과로 비참한 상태로 떨어지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비참한 상태를 기록한다. 또한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받는 복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복되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자들이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갈 때 패륜아가 아버지를 떠난 결과로 결국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나 먹으며 비참한 상태에 떨어진 것과 같은 상태로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 때문에 복을 받는 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면, 그것은 율법주의 또는 공로주의가 된다. 달란트의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이 비유를 해석하고 적용하면서, 오로지 충성한 자들만이 상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그러기 때문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단순히 복을 받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리게 되고 율법주의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배용덕 교수는 달란트의 비유를 해석하면서, 이러한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달란트 비유에 등장하는 상급에서 “상응성”과 “은혜성”을 동시에 주목한다. 1 충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이 있다는 면에서의 상응성이고, 그 상급이 우리의 공로를 훨씬 뛰어넘는 과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은혜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이 사랑스러워서 아주 조그마한 칭찬할 거리가 있더라도 과분한 사랑으로 격려하는 장면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자식은 공로를 통해서 부모의 사랑과 돌봄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부모는 아이가 잘 하면 칭찬을 할 것이고 나쁜 길로 가면 책망하기도 하겠지만, 아이는 자신의 행동으로 부모의 사랑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부모는 그 자녀를 사랑한다. 따라서 충성된 종과 게으른 종의 비유에서 주인이 신실했던 종들에게 보상하고 나태했던 종들에게는 책망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 것을 온전히 드러내지는 못한다. 오히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 글의 주소: http://iwbs.org/?p=325

목차로 돌아가기

다음 글 읽기 – 3.6 므나의 비유

이전 글 읽기 – 3.5.5 결산

[저작권 안내: copyright information] 이곳에 수록된 내용은 이국진 목사의 저작물입니다. 이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여 판매할 수도 있지만, 이 시대의 상황을 고민하며 심사숙고한 후에 온라인으로 공개하여 일반인들이 마음껏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곳에 있는 내용물을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마음껏 사용하도록 허용합니다. 이 글을 통해 유익을 얻었다면, 웨스트민스터 사역에 적은 금액이라도 구독료 개념으로든 선한 사역 후원의 개념으로든 후원을 해주신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기업은행 304-082989-01-013 (웨스트민스터)

--[註]---------------------------
  1. 배용덕,『예수님의 비유』(서울신학교),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