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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사건 – 달란트 비유

김재수 교수의 <포도원과 품꾼의 비유>에 대해 글을 좀 썼더니, 당장 문자가 왔다. 사실 이 글보다 더 문제가 된 것은 <달란트 비유>였다나. 그래서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보기로 했다. 한 박자 늦으면 결국 못하는 법이니까. 물론 그분의 글을 읽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예상이 되었다. 이미 신약학계에서 달란트 비유에 대한 도발적인 해석들이 많이 나왔었기 때문이다. 김재수 교수는 학문의 세계에서만 회자되던 이야기를 대중 속에 던진 셈일 것이다. 실제로 읽어보니 정말 그랬다.

1. 우선 김재수 교수가 말하려는 바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중요한 교훈임에 틀림없다.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부당하다면 그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가 새겨들어야 한다. 소수라고 해서 다수의 힘에 굴복하지 마라. 정말 우리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이고, 특히 우리 청소년들에게 나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2. 하지만 <포도원과 품꾼의 비유>를 해석한 것이 아니라, 그저 화두로 삼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달란트 비유>도 정당한 해석을 한 것이 아니라 화두로 삼은 것일 뿐이다. 맥락에서 벗어난 인용이랄까? 우리가 흔히 증오하는, 어떤 덩치만 컸지 사실상 쓰레기인 언론이 늘 하는 작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마태복음이 이 비유를 제시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른 콘텍스트 속에서이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이라는 19:30과 20:16을 <달란트 비유> 앞뒤에 배치해 마태복음이 수미쌍관(首尾雙關) 구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을 완전히 무시한 해석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은 제 아내가 아니었었습니다. 그건 제 어머니였었습니다.”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뒤를 빼고 앞 구절만 인용하면서 불륜에 빠진 남성이라고 비난하는 행태랑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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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유를 해석할 때에는 무엇이 닮은 점(類似點, tertium comparationis)인지, 무엇이 닮지 않은 점(對照點, tertium contrarietatis)인지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조점 때문에 비유 해석을 망쳐버려서는 안 된다. 김재수 교수는 주인이 하나님일 리 없다고 질문을 던져본다. “달란트 비유 속의 주인은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 빼앗아서 가진 사람에게 주는 사람입니다. 쓸모없다고 판단하면 어두운 곳으로 내쫓는 사람이구요. 과연 하나님이 이런 분일까요?” 그래서 기존의 해석보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어놓는다. 주인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포악한 대지주를 가리키는 것이고, 나쁜 사람인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 체제(status quo)에 순응한 사람들이 아닌 오히려 시스템에 항거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더 위대한 것이고, 그를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비유라는 것 자체가 닮은 점이 있기 때문에 비유가 성립되지만, 전혀 닮지 않은 점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재판관을 닮았다. 과부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재판관의 무자비한 면을 닮지 않으셨다. 또한 하나님은 밭의 주인을 닮았다. 씨를 뿌리고 나중에 추수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인류를 심판하실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밭에 가라지가 뿌려지는지도 몰랐고, 알곡을 다치지 않으면서 가라지를 뽑을 재간도 없는 그런 무능한 주인과는 닮지 않았다. 닮지 않은 면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고 섣불리 결론을 내릴 게 아니다. 사실 비유의 해석은 대조점과 유사점을 성공적으로 분석하는 데 달려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웹버전 <땅의 이야기로 들려주신 하늘 이야기, http://bit.ly/예수님의비유>에서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4. 김재수 교수가 하고 싶은 말에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귀한 메시지가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크게 보아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비유의 해석이라고 내어놓을 때 벌어진다. 사실 해석을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비슷한 비유에 빗대어 설명한 것뿐이다. 그건 <매일성경>이 지향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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