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1:4 “만대를 불러내었느냐?”의 의미

이사야 41:4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만대라는 말이 뭘까? 한글로만 되어 있는 번역을 보니 이해가 쉽게 안 된다. 한자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만대(萬代)일 것 같다. 자손만대에 길이길이 빗날 위대한 업적이라는 표현처럼 사용하는 단어가 만대이다. 그런데 생뚱맞게 이 단어가 튀어나오니 감을 잡기가 어렵다.

만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세대들(世代, generations)을 나타내는 단어인 “도로트”(“도르”의 복수)이다. 그러니까 이 구절의 표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세대들을 불러내신(존재하게 하였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분이 바로 하나님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없는 자들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고 존재하게 만드신 하나님이다. 그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말씀하신다(사 41:10). 오늘 무슨 일들 만나든 어떠한 상황을 겪게 되든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없다. 창조주이시며 우리들을 존재하게 만드신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사무엘하 22:10 (=시편 18:9) “하늘을 드리우고”의 의미

사무엘하 22장에서 다윗은 자신을 환난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10절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다,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였도다.” 하늘을 드리우다니? 도대체 하늘을 드리운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국어사전을 보면, 드리운다는 말은 “아래로 처지게 늘어뜨리다” 또는 “(그림자 또는 그늘을) 뒤덮이게 하다” 또는 “(공적이나 이름을) 후세에 전하여 자취를 남긴다”는 의미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늘을 드리우신다는 말은 “하늘을 아래로 늘어뜨리셨다”는 표현인가? 아니면 “하늘을 그림자가 덮이듯 뒤덮이게 하셨다”는 뜻인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다.

영어번역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하셨다(He parted the heavens and came down)”(NIV, NAB) 또는 “하늘을 여시고 강림하셨다(He opened the heavens and came down)”(NLT)로 번역하였다. 그러니까 이해가 된다. 하늘이 갈라질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것은 그림 같은 묘사로 하나님께서 마치 문들을 활짝 열어 제키듯이 하늘을 열어 제키고 땅으로 강림하시는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나타>라는 히브리어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이 동사의 뜻에는 “가르다” 혹은 “열다”라는 의미가 없다는 게 문제다. <나타>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넓게 펼치다, 늘이다, 뻗다”이다. 그러니까,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펼치시고 강림하셨다”로 해석해야 맞는 해석이다. 영어의 번역은 하늘을 펼치시는 그 행동이 마치 여는 것처럼 가르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역을 한 것 같다.

하늘을 드리운다는 표현은 멋진 표현 같기는 하지만 뜻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대신 “하늘을 펼치시고 강림하셨다”로 표현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인데, 아예 의역을 해서“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하셨다”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다윗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은 저 하늘 저 편에서 그냥 남의 집 불구경 하듯이 계셨던 것이 아니다. 몇 시간 동안 행적이 모호한 채 숨어계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시고(펼치시고) 강림하셔서 다윗을 도왔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 앞에 우리도 기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히브리서 13:21 “그 앞에 즐거운 것”의 의미

히브리서 13:20-21은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히브리서는 문장 하나가 길게 되어 있어서 우리가 이해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사실 1세기에 쓰여진 문장들은 대부분 한 문장이 정말 길게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대 희랍 문서를 보면 어떤 것은 몇 페이지에 걸친 분량이 한 문장인 경우도 있다.

이때에는 주어와 목적어와 동사가 각각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 이 구절에서 주어는 “하나님”이다. 주어인 하나님을 길게 수식하고 있는데,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이 문장의 주어인 것이다.

이 문장의 목적어와 동사는 “너희를 온전하게 하시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비록 우리 말 번역은 “이루시기를 원하노라”가 마치 전체 문장의 동사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온전하게 한다는 동사 뒤에 있는 것은 온전하게 하는 목적(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기 위하여)을 표현하는 전치사구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긴 문장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시기를 원한다는 축복의 메시지이다.

그런데 이 문장을 번역한 표현들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첫째,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이렇게 번역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모든 좋은 것으로 너희를 온전하게 갖추어주시기를 원한다.” 둘째,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이란 표현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은 이렇게 번역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만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시는.” 이 구절은 “하나님”을 수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그 하나님의 뜻을 너희가 행할 수 있도록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모든 좋은 것으로 갖추어주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만한 선하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 세상이 엉망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절망할 것이 없다. 결국 하나님께서 선하신대로 기뻐하시는 대로 이루실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9:28 “죄와 상관없이”의 이해

개역개정 성경에서 히브리서 9:28은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두 번째 나타나실 때에 “죄와 상관없이” 나타나실 것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

공동번역은 이 부분을 “인간의 죄 때문에 다시 희생제물이 되시는 일이 없이”라고 의역하였고 쉬운 성경은 “죄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번역하였다. 영어성경에서도 NAB는 “죄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not to take away sin)고 번역하였고, ESV는 “죄를 다루기 위해서가 아니라”(not to deal with sin)고 번역하였고, NIV와 CSBO는 “죄를 지려고가 아니라”(not to bear sin)고 번역하였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성경이 이 부분을 번역할 때,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시는 목적은 죄를 없애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단순히 “죄 없이”(χωρὶς ἁμαρτίας)로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죄 없이”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이라는 표현이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이 표현이 히브리서 4:15에 정확하게 똑같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χωρὶς ἁμαρτίας).” 그렇다면 히브리서 9:28의 의미는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을 위해 죄를 없애기 위하여 단번에 희생제사를 드리신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로 다시 오실 것인데,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나타나실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

우리는 다음 주일(4/19)부터 3주간에 걸쳐서 직분자 선출을 위한 공동의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에 직분자 선거를 했으니까 5년 만에 다시 직분자 선거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한동안 직분자 선거를 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하게 된 것이니 아마 우리 교인들의 마음속에 가지는 기대가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번 직분자 선거에서 누구를 뽑아야 할 것입니까? 우리 교단 헌법에 의하면, 장로의 자격은 “만 35세 이상 된 남자 중 입교인으로 흠 없이 5년을 경과하고 상당한 식견과 통솔력이 있으며 딤전 3:1-7에 해당한 자로 한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 3:1-7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1)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2) 책망할 것이 없으며(3)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4) 절제하며 (5) 신중하며 (6) 단정하며 (7) 나그네를 대접하며 (8) 가르치기를 잘하며(바르게 진리를 가르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 (9)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10) 구타하지 아니하며 (11) 오직 관용하며 (12) 다투지 아니하며(사람들과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뜻) (13)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1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15)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16)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이러한 말씀은 최소한의 규정에 해당하는 것이며, 장로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자들로 선출해야 합니다. 총회 헌법이 규정한 장로의 직무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1.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찰한다: 치리 장로는 교인의 택함을 받고 교인의 대표자로 목사와 협동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림하며, 자교회 혹은 전국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찰한다. (교회의 영적인 문제를 다룬다는 뜻)

2. 도리 오해(道理誤解)나 도덕상 부패를 방지한다: 주께 부탁 받은 양무리가 도리 오해나 도덕상 부패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당회로나 개인으로 선히 권면하되 회개하지 아니하는자가 있을 때에는 당회에 보고한다.

3. 교우를 심방하되 위로, 교훈, 간호한다: 교우를 심방하되 특별히 병자와 조상자(遭喪者)를 위로하며 무식한 자와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간호할 것이니 평신도보다 장로는 신분(身分)상 의무와 직무(職務)상 책임이 더욱 중하다.

4. 교인의 신앙을 살피고 위하여 기도한다: 장로는 교인과 함께 기도하며, 위하여 기도하고 교인 중에 강도의 결과를 찾아본다.

5. 특별히 심방할 자를 목사에게 보고한다: 병환자와 슬픔을 당한 자와 회개하는 자와 특별히 구조 받아야할 자가 있는 때에는 목사에게 보고한다.

■ 집사의 자격은 총회 헌법에서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집사는 선한 명예와 진실한 믿음과 지혜와 분별력이 있어 존숭(尊崇)을 받고 행위가 복음에 합당하며, 그 생활이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만한 자 중에서 선택한다. 봉사적 의무는 일반 신자의 마땅히 행할 본분(本分)인즉 집사 된 자는 더욱 그러하다(딤전 3:8-13).”

디모데전서 3:8-13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1) 정중하고(존경받을만한 위엄이 있어야 한다는 뜻) (2)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3)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4)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5) 깨끗한 양심에 (6)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제대로 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들은 (7)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8)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역시 이것은 집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조건을 말하는 것이고, 집사는 다음과 같은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총회 헌법에서 집사의 직무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집사의 직무는 목사 장로와 합력(合力)하여 빈핍 곤궁한 자를 권고하며 (위로한다는 뜻) 환자와 갇힌 자와 과부와 고아와 모든 환난당한 자를 위문하되 당회 감독 아래서 행하며 교회에서 수금한 구제비와 일반 재정을 수납 지출(收納支出) 한다(행 6:1∼3).”

■ 권사에 관한 총회 헌법의 규정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1) 권사의 직무와 권한. 권사는 당회의 지도아래 교인을 방문하되 병환자와 환난을 당하는 자와 특히 믿음이 연약한 교인들을 돌보아 권면하는 자로 제직회 회원이 된다.

2) 권사의 자격과 선거와 임기

① 자격 여신도 중 만45세 이상된 입교인으로 행위가 성경에 적합하고 교인의 모범이 되며 본 교회에서 충성되게 봉사하는 자.

② 선거 공동의회에서 투표수 3분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단, 당회가 공동의회에 그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③ 임기 권사는 안수 없는 종신직원으로서 정년(만70세)때까지 시무할 수 있다. (단, 은퇴 후 에는 은퇴권사가 된다.)

교회의 직분은 명예직이 아니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직분입니다. 피택된 분들은 6개월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게 될 것이며, 이 훈련에서 합격한 분들이 최종적으로 임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훈련에는 우리 교회가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훈련과 또한 장로 임직의 경우에는 노회에서의 고시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직분자 선출을 위한 공동의회와 그 이후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 교회가 더욱 성숙해지고 교인들 모두에게는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헌신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천지창조

[질문]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이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천지”가 단지 자연계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계를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초신자이고,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께 여쭤보았는데, 자연계라고만 대답하시네요. 그런데 자연계라면 성경 말씀이 틀린것 같아서 질문합니다. 목사님, 여기서 말하는 것이 자연계만을 의미하는지요? 아니면 영계까지 포함한 것인지요? 

[답변] 창세기 1:1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볼 때,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대유법(代喩法)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사물의 일부분이나 특징으로서 전체를 나타내는 표현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는 단순히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을 창조하신 것을 나타내지만, 그 실제적인 의미는 우주 전체 삼라만상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질문하신 분의 담임 목사님께서 자연계의 창조를 나타낸다고 한 것도 문자적인 의미에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성도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영계의 창조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특히 영적인 존재들(천사들)도 피조물인 것임에 틀림없고 하나님 외에는 모두가 하나님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창세기 1:1은 영계를 포함하는 것이라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더 나아가 그 목사님이 말씀하신대로 여기서 말하는 것이 “자연계”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고 해서 성경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의 해석에 따르면 자연계를 창조했다는 말이지, 영계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4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야고보서 4:4에서 ‘간음하는 여자들이여’라는 말이 있는데, 원래는 여자만이 아니라 남녀 모두를 가리키는 말인데, 우리나라 성경을 번역하면서 당시에 남자들이 첩을 두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남자를 빼버렸다면서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 질문에 약간 당황을 하였습니다. 얼른 영어 성경을 살펴보니까, You adulterous people!(너희 간음하는 사람들이여) 이라고( ESV) 번역되어 있더군요. 물론 그 단어 각주에는 “여인들이여”라고 써 있기는 하지만말입니다.

나중에 사무실에 들어와서 헬라어 성경을 살펴보았는데, 원문은 여성형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제게 질문을 하신 분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설명은 잘못된 설명이고, 한글성경이 원문을 정확하게 번역한 것임이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원문이 여성형이라고 되어 있다고 해서, 남성들이 야고보서 4:4의 권고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간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영적인 신부인 우리들이 영적인 신랑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지적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남자이든지 여자이든지 들어야 할 말씀이고, 세상과 짝하고 있는 한 간음하는 여자들이라는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영어 성경에서는 원문의 의미를 살려 여성만을 의미하지 않고 남녀 모두를 의미하는 단어인 people을 사용하여 번역하고 있지만, 그것은 의역이지 직역은 아닙니다. 직역은 “여인들이여”가 맞습니다.

타인에게 ‘바보’라 말하면 지옥불에 떨어질까?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바보”라 말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마 5:22). 헬라어 “모레”는 “바보같은, 어리석은, 미련한”이란 의미를 가지는 형용사다. 마 5:22에서는 호격 명사처럼 사용된다. “바보야!”라고 부르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마 23:17을 보면, 예수님께서 직접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바보같은 맹인들아!”라고 부르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마 5:22 사용 단어와 마 23:17 사용 단어는 정확하게 같은 단어다. 다른 사람을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경멸하면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라 경고하신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바보 같고 눈이 먼 너희들아”라고 부르는 것은 자가당착처럼 보인다. 놀랍게도 성경은 여기저기서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바보라 부르고 있다(시 14:1; 갈 3:1; 고전 15:36).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성경 해석의 제1원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항상 문맥 안에서 본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형제에게 바보라 말하는 사람은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하신 것은 살인을 직접 저질러야만 죄가 아니라, 이미 마음에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이 있는 것부터 잘못임을 지적하는 문맥에서 사용됐다. 바보라 말하기만 해도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겉으로 나타난 행동보다도 그 마음의 태도가 중요함을 말씀하시는 맥락에서 이 말씀을 하셨다.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사랑스런 애인에게 “이 바보야!”라고 사랑스럽게 말했다면, 지옥불에 떨어질 죄를 지은 것이라 할 수 없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녀의 행복만을 위해 갖은 고생을 하는 어머니를 향해, “엄만 바보야!”라고 말한다고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그들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약 3:9-12)는 게 산상수훈에서 다른 사람을 바보라 부르지 말라고 한 이유다.

이에 반해 예수님이, 그리고 성경에서 일단의 사람들을 향해 바보라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올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데 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인이나 갈라디아 교인을 향해 어리석은 사람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를 죽여 버리고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마음의 태도에서 나오는 표현이 아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른 길로 돌아오기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할 때 사용된 표현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모순이나 자가당착적 표현을 보게 된다.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던 예수님께서 비판하시는 모습이라든가, 온유해야 한다고 하신 주님께서 화를 내시는 모습 등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자가당착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 한 구절에만 근거해 무조건 정죄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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