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우리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였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북쪽의 10개 지파를 다스릴 수 있는 왕이라고 하는 신분을 얻게 되었지만, 그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 아닌 것이죠. 무엇을 했습니까? 우상을 세우고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는데요. 너무나도 아쉬운 것이죠. 언제나 강조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만 섬기라고 말씀하시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만 섬겨라. 하나님만 섬겨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이유가 무엇이죠? 하나님이 독재자라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조폭 깡패라서 그렇습니까?
그게 아니라 바로 우리들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의 삶이 복된 삶이 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이 복된 삶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며 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인데, 안타깝게도 북쪽 10개 지파를 다스리던 여로보암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가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이제는 남쪽 유다를 다스리게 되었던 르호보암 왕의 이야기를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북쪽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실패했지만 남쪽 유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며 순종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22절의 말씀을 보니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안타깝게도 르호보암은 그 이전에 자기 조상들보다도 더 크게 악을 저질렀다, 더 뛰어나게 했다, 악을 저지르는 데 더 탁월했다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그랬나요? 23절 말씀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 우상을 많이 세운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24절 말씀에 보면 무슨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그 땅에 남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남색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이방 신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문란한 음행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남녀 창기들이 그 이방 신전 안에 있었고, 이방신을 섬기는 그런 방법으로 남색을 하거나 여색을 하거나 아무튼 이런 음란한 짓들을 많이 하면서 우상을 섬기던 일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땅에 그런 일들이 많이 자행되었다 이 말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이방 신상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일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 누구를 닮았습니까? 누구를 닮았냐면 바로 원래 그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 원래 가나안 땅에 살던 가나안 민족들의 행태를 그대로 닮아서 한 것이지 이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인데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을 찾아보면 두 가지 이유를 들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래요. 아주 수백 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이 땅 가나안 땅을 네게 주겠다” 약속하신 그 약속의 말씀에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드린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또 하나의 이유가 무엇이죠? 그것은 바로 가나안 땅 민족을 심판하시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면서도 당장 준 것이 아니라 400여 년이 지난 이후에서야 한참 뒤에야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만드신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아직 가나안 땅 민족의 족속 그 가나안 민족들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다.
아주 나쁘긴 나쁘지만 하나님께서 심판해 버리고 쫓아내 버릴 정도까지 그 정도는 아니니까 하나님께서 좀 더 참겠다, 더 참아보면서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수준에까지 악이 충만하게 차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들어서 가나안 민족을 심판하시고 그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그 가나안 땅에 살게 만드신 거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살면서 가나안 민족처럼 되어버린 겁니다. 죄를 너무 많이 지어서 그래서 쫓겨났던 그 가나안 민족과 똑같은 일들을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이 충분히 상상이 가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 민족도 그 땅에서 쫓겨나는 것이 당연할 겁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의 죄악을 심판하셔서 물리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민족처럼 똑같이 되어 버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그 땅에서부터 쫓아내시는 일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경고하시기 위해서 누구를 들어 쓰셨는가? 이집트 애굽 왕 시삭을 들어 쓰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니까 애굽 왕 시삭이 가나안 땅으로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애굽 왕 시삭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을 치고 성전의 보물을 빼앗아가고 왕궁의 보물을 빼앗아가고, 솔로몬의 금 방패를 빼앗아 가는 그래서 완전히 애굽 나라에 의해서 침략을 당하고 약탈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오늘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예루살렘이 어딥니까?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어떻게 약탈을 당할 수 있죠? 약탈을 당할 수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하나님의 집인데 약탈당할 수 있어요, 없어요? 약탈당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집이지만 하나님의 집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곳이 성전인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성전이 있으면 뭐예요? 거기서 예배가 사라져버리고 거기서 우상숭배가 이루어지고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허울뿐인 성전일 뿐이고 거기서는 아무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빼앗겨버리고 보물을 빼앗겨버리고, 그리고 애굽 왕이 무엇까지 빼앗아가 버렸는가 금 방패까지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라고 하는데 방패를 만들 때 금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무엇으로 만들면 돼요? 놋으로 만들면 되고 철로 만들면 되고 나무로 만들어도 되고 그래요. 하지만 솔로몬 시대 때는 무엇까지 금으로 만들었어요? 방패까지 금으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것은 무엇을 상징하냐면 그만큼 솔로몬 시대 때는 부귀와 영화가 어마어마했다, 은금을 별로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부귀와 영광이 넘쳐났었던 시대가 솔로몬의 시대였다라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 솔로몬의 금 방패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방패를 빼앗아 가 버렸고 할 수 없이 르호보암은 방패를 만드는 데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놋으로, 구리로 만들었다고 하는 그 이야기는 그야말로 르호보암 때에 와서 솔로몬의 영광이 다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아무런 힘도 아무런 능력도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나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빼앗기기 일보 직전인 나라라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인가요? 예고편입니다. 예고편. 앞으로 더 무슨 일이 닥치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성전이 무너지고 완전히 박살 나게 되는 재앙이 닥치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을 예고로 보여주신 거예요.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르호보암 왕과 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당연할까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그런 회개의 역사가 있었어야 되는 것이 당연할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결국 죄악을 저지르고 악을 행하다가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다가 결국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중에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군대에 의해서 망하게 되고 남쪽 유다는 어느 나라에 의해서 바벨론 나라에 의해서 망하게 되어서 완전히 박살 나 버리는 그런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리고 그 예고편이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오늘 이 말씀을 우리가 묵상하면서 오늘 우리들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당시 기록된 이 말씀은 우리를 위한 교훈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 말씀으로 새겨주셨는데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벗어나 있는 길이 있는 것은 없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없는지, 하나님의 예고편이 있는데도 애써 모른 척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인 양 그냥 외면하며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니지. 하나님의 예고편이 우리들에게는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축복의 예고편이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예고를 당할 때마다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믿음을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오늘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원하기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2026년 한 해 우리가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겼는지를 진단해야 합니다. 야곱이 세겜 땅에서 위협을 당하게 되었을 때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돌이킵니다. 우리가 무엇에서 잘못했는가? 우리가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겼는가? 야곱은 가족들을 향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 신상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섬기고 있었던 것, 우리를 망가뜨릴 것들을 나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내가 예수님을,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실은 이 세상에 썩어질 것에 우리가 목매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돌이키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예고편이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악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면 머지않아 큰 심판이 있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 그 거룩하게 신실하게 서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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