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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길 특권 (왕상 11:9-13)

특권과 권리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특권은 무엇이고 권리는 무엇일까요? 권리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정당한 자격, 정당한 권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권리들이 있죠? 존중받을 권리가 있죠.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어떤 권리가 있는 것이죠? 투표할 권리도 있고 행복하게 살 권리도 있고 거주 이전의 자유도 있고, 또한 직업 선택의 자유(권리)도 있고 언론에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권리들도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권리는 빼앗을 수 없는 권리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특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어떤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지위에 있기 때문에 특별하게 임시적으로 주어진 권리를 가리켜서 특권이라고 하겠는데요. 예를 들자면 특권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국회의원들에게는 면책특권 이 있습니다. 국회에서 발언한 내용으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죠. 또 국회의원에게는 어떤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까? 불체포특권 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죠. 죄를 지었어도 함부로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체포될 수 있는 그런 불체포특권이 있는데, 불체포특권이라고 하는 것이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좋은 거예요. 종종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쁜 게 아니라 사실은 좋은 거예요. 왜 좋습니까? 그런 불체포특권이 있어야 어떤 신변의 위협을 겪지 않으면서 소신껏 발언할 수 있고, 국민을 위해 그 어떤 발언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말 한마디 하면 잡아가고, 어떠한 조그마한 죄로 인해서 잡아가 버리면 결국 권력을 가진 사람이 국회의원을 옭아매서 함부로 말을 못 하게 만들어 국민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런 특권들을 주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는 어떤 특권들이 주어집니까? 형사소추를 받지 아니할 특권 을 주는 것이죠. 일반인들은 죄를 지으면 형사소추를 당하는데,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에 소추를 받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통령이 형사소추를 당해 감옥에 가거나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면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없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에만 특별한 특권을 주는 것이죠.

그래서 권리가 있고 특권이 있는 것인데, 권리는 빼앗길 수 없는 것 이지만 특권은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는 것 을 특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 그럼 질문 한번 던져 보고 싶은데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은 권리인가요? 특권인가요? 권리인가요? 특권인가요? 권리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그런데 신앙적인 관점 에서 본다면 권리가 아니라 특권 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특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엇일까요? 은혜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 권리예요 특혜예요? 특혜예요. 내가 당연히 받을 수 있어서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놀라운 은총으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특권 이고 특혜 가 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도 한편으로 보면 권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4절에서 5절 말씀에 보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이를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우리가 노력해서 당연히 받을 권리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로 구원받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누리는 그 모든 것들이 내 권리 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 내가 누리는 것이 내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 이라고 하는 것을 가장 잘 깨달은 성경 인물이 한 사람 있다면 누굴까요? 입니다. 욥은 자신이 누리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다 빼앗기고 난 다음에 “왜 내 거 뺏어 간 거야, 왜 내 권리를 뺏어 간 거야, 왜 내 재물을 뺏어 간 거야” 하고 항변한 것이 아니라, 욥은 어떻게 고백했습니까? 욥기 1장 20–22절 말씀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 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가 당연히 일해서 얻은 보수내가 누릴 권리 라고 주장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요 특권 이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잠시 누릴 수 있었던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다 가져가신다 한들, 그것은 내가 주장할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특권이었다” 고 기억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솔로몬 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고, 그 지혜 때문에 부귀와 영화 가 넘쳐났습니다. 그걸 지지난 시간에 함께 살펴보았지요. 솔로몬은 어떤 왕보다도 많은 금은보화와 재물을 누렸어요.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이렇게 부귀영화를 누린 것은 솔로몬이 당연히 누릴 권리 였을까요? 아니면 은혜로 받은 특권 이었을까요? 대답이 왜 잘 안 나오죠? 권리입니까, 특권입니까? 특권 이죠. 아마 헷갈릴 겁니다. 왜냐하면 부귀와 영화가 그냥 온 게 아니라, 솔로몬의 노력 으로도 만들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로웠기 때문에 부귀가 넘쳤고, 지혜로웠기 때문에 영화가 넘쳤다고 말하려면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지혜로운 것은 자기가 ‘잘나서’ 지혜로워진 것인가요? 아니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기 때문 입니다. 그러니 지혜에 따른 부귀와 영화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로 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다는 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난 시간에 솔로몬이 어떻게 하나님을 떠났는가를 살펴보았는데,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이방 여인들을 첩과 후궁으로 맞아들였고, 천 명 이나 되는 후궁과 첩을 두었다고 기록된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이었지요.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 사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인데, 그 법칙을 깨버린 거예요. 뿐만 아니라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지 말라 하셨는데 그것도 깨버린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솔로몬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자 하나님께서 그동안 솔로몬에게 주셨던 특권 들이 자동적으로 사라질 상황에 놓이게 된 겁니다.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 있고, 대통령에게 형사소추를 받지 않을 특권이 주어져 있지만, 국회의원이 낙선 해서 이제 더 이상 국회의원이 아니면 그걸 누릴 수 있나요? 없어요. 대통령이 그런 특권이 있어도 탄핵 당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면 그 특권을 누릴 수 있나요? 없어요. 솔로몬은 어떤 상황입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특권을 누렸지만, 이제는 하나님에게서 떠나 버렸기 때문에 그동안 주셨던 특권을 누릴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못 누리는 겁니다. 오늘 읽은 열왕기상 11장 9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남으로…”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특권을 주시는 하나님에게서 떠났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 내게 있는 특권도 동시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지요. 지금까지 특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에게서 떠났으니 솔로몬이 가지고 있던 모든 특권이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만 남았다 는 것이죠.

안타까운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그러지 말라고 경고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네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그렇게 하지 마라. 하나님께 순종하라. 하나님만 섬겨라.”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을 외면 해 버렸어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어떻게 나타나셨을까요? 직접 나타나셨을까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을까요? 아니면 주변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게 하셨을까요? 어떤 것일까요? 잘 몰라요. 왜냐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셨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 말씀하셨을 수도 있고,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셨을 수도 있고, 여러 사건과 상황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든 두 번씩이나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신실하게 살아라” 하셨습니다. 다윗이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고 따르면 하나님께서 영원히 너와 함께하실 것” 이라 유언했는데, 그 유언에서 떨어져 나가 버린 솔로몬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운 것이죠.

왜 솔로몬은 두 번이나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았을까요? 그 말이 안 들렸을까요? 들었으면서도 모른 척 한 것일까요? 왜 솔로몬은 두 번씩이나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아 버렸을까요? 그가 우상을 섬겼기 때문 입니다. 우상을 섬기면 어떤 현상이 발생합니까? 우상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 주님을 닮아가듯, 우상을 섬기면 우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우상은 어떻게 생겼죠? 귀는 있지만 듣지 못하고, 눈은 있지만 보지 못해요. 그 우상을 닮아가는 겁니다. 시편 135편 15–18절 말씀에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이 없나니, 그것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들과 (우상과) 같으리로다 ”고 했습니다.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자는 우상과 같아진다 는 거예요. 우상처럼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겁니다. 우상을 섬기면 진리 에 눈을 감고, 말씀 에 귀를 막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그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겁니다. 성경 말씀이 내 곁에 있어도 그 말씀이 내게 아무 힘을 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는 것이고, 결국 호흡 이 없는 우상처럼 영이 메말라 죽어 가는 불쌍한 인생이 되는 것이죠.

결국 솔로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패망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11장 11절 말씀: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가 이러한 일을 행하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한 내 언약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 나라를 빼앗길 것을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것이죠. 어쩌면 이게 우리의 모습 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우상을 따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솔로몬처럼 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줄 알고 돈을 우상으로 섬기기도 하고, 때로는 명예자존심 이 우상이 되어 그것을 위해 달려가기도 하고, 하나님을 섬긴다 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향해 쫓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존심이 우상이 되고, 이기심이 우상이 되고, 탐욕과 명예욕, 물질과 권력, 때로는 정치 이데올로기 까지 우리의 우상이 되어 우리의 귀를 닫아 버려, 누가 무슨 진리를 얘기해 줘도 귀에 전혀 들리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렇게 우상을 섬기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결국은 어떻게 될까요? 망하는 거죠. 솔로몬처럼 될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망할 수밖에 없는 솔로몬을 향해 하나님께서 은혜의 말씀 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열왕기상 11장 12–13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리라.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사실 솔로몬이 행한 악을 생각하면 완전히 다 망해 버려야 정상일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요? 다윗과의 언약 을 기억하신 거예요. 그리고 솔로몬에게 은혜 를 베푸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소망 입니다. 사실 우리가 행한 대로 산다면 다 망해야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를 지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그 주님의 은혜 때문에 오늘도 우리가 다시 새로운 소망 을 갖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그 하나님의 은혜 를 생각하며, 주께서 나를 위해 베푸신 그 은혜를 기억하면서, 오늘도 다시 우리의 삶을 살펴보고 주님께로 돌아가며, 다시 은혜의 자리,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믿음의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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