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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는 일(잠 19:8-10)

오늘은 잠언서 19장에서 세 절의 말씀을 함께 읽었는데요. 8절과 9절과 10절의 말씀이 각각 그 내용이 다 다릅니다. 잠언서의 특징이 그렇죠. 어떤 논리적인 연결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잠언을 모아놓은 책이기 때문에 연결이 되기보다는 하나씩 하나씩 매 절마다 이렇게 독특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오늘은 그 세 절을 살펴보게 되겠는데, 8절, 9절, 10절을 살펴보게 되겠는데 그 내용들은 이미 우리가 이전에 잠언서를 강의하면서 살펴보았던 내용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오늘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다시 한 번 예전에 함께 생각해 보았던 그 주제를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그래서 우리들의 삶의 교훈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잠언서 19장 8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의미인가를 좀 봤으면 좋겠는데요.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받느니라 그렇게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사랑한다,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쉽게 와닿는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8절의 말씀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고요.

9절 말씀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말씀입니다. 9절 말씀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거짓말을 하는 게 괜찮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 얘기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괜찮아 보이는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거짓말을 해도 벌을 받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오히려 잘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겠는데, 우리가 항상 기억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되는 것이죠. 지금 짧은 기간 동안에는 거짓말이 효과가 있는 것 같고, 짧은 기간 동안에는 거짓말이 무엇인가 유익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좀 더 길게 본다고 한다면, 영원의 관점에서 본다고 한다면 벌을 면치 못한다고 하는 이 말씀을 우리가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10절 말씀에서도 이렇게 표현하고 있죠.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종이 방백을 다스리는 것은 정말 적당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 절의 내용들이 각각 다른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는데 간단간단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선 잠언 19장 8절을 먼저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그랬는데 이 말씀은 쉽게 이해가 잘 와닿는 것은 아닙니다. 명쾌하게 그 의미가 이렇게 와닿는 그런 표현은 아닌데요. 그래서 한 번 원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서 봤는데요. 한 번 그림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잠언서 19장 8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며”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거기서 지혜를 얻는다고 번역한 이 ‘지혜’라고 하는 말의 히브리어 단어가 레브라고 하는데, 이 히브리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냐면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는 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마음을 얻는 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는데, 아무튼 그렇게 보시면 되겠고요.

‘자기의 영혼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영혼’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생명’이라는 의미의 네페쉬라는 단어를 영혼이라고 번역해 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 ‘영혼’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생명’으로 번역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더 잘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다고 하면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지혜를 얻는 자는 생명을 사랑하는 자다. ‘영혼을 사랑하는 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네페쉬라고 하는 이 히브리어 단어가 ‘생명’을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다. ‘지혜를 얻는 자, 명철을 얻는 자는 누군가? 생명을 사랑하는 자다.’ 그렇게 번역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다음 구절이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는 자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복을 얻는다’고 했을 때도 이 ‘복’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토브(또는 토부),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명철을 지키는 자는 누군가? 좋은 것을 얻는 사람이다. 이 두 구절을 같이 연결해서 생각한다면 ‘지혜를 얻는 자 곧 명철을 얻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좋은 것을 얻게 될 텐데 그 좋은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러니까 잠언서 19장 8절의 말씀은 어떤 의미냐 하면 지혜를 얻는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된다라고 간단하게 요약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혜를 얻는 사람이 생명을 얻는다고 하는 말이 잠언서 19장 8절의 말씀입니다.

치워도 되겠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는 왜 생명을 얻게 될까요? 왜냐하면 지혜롭게 행동하는 사람이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거죠. 당연한 거죠. 사실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잠언서에서 말하고 있는 지혜가 무엇이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지혜가 있는 자가 생명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런 명철함이 있는 사람이 살아남을 것이다.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는 게 잠언서 19장 8절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어리석은 자는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은 미련한 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미련한 자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지금 당장에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에는 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에는 권력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하나님을 무시하기 때문에 무슨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라도 때로는 거짓말하거나 모함을 하고 술수를 써가면서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악한 일을 해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막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지금 당장 부귀영화를 얻을 수도 있겠고 권력을 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정말로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 토브, 좋은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네페쉬,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결국 무엇을 얻게 됩니까? 망하게 되는 것이죠. 결론은 딱 하나입니다. 잠언서 전체를 통틀어 들려주시고 있는 교훈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은 결국에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그렇게 생명을 얻는 것이 그 사람에게 좋은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19장 8절의 말씀 가운데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우리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지금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다면—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돈을 써가면서 잘못을 행해 가면서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한 일을 해 가면서—그래서 내 세력을 넓히고 무엇인가 얻고, 그래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권력을 누린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그 사람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인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차라리 어리석은 사람이고, 결국 그 사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 망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고,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잠언서 19장 8절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를 얻을 것을 권면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할 줄 알아야—그게 지혜입니다. 그 지혜를 가져야 살아남는 것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고 악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을 사용하고 권력을 사용하고 사람들을 착취하고 잘못된 일을 하면서 내 목적을 이루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안하무인으로 악을 행하면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사람들이 박수쳐 주는 것을 받으면서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결국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래서 명철과 지혜로 행동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서 19장 9절 말씀에서 그렇게 명철하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잠언서 19장 9절의 말씀입니다.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거짓말을 할까요? 안 할까요? 안 하는 겁니다. 하지만 미련한 자는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거짓말을 하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고, 거짓말을 하면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고, 거짓말을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단기적인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죠.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다 아니라고—거짓말이라고—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거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내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면서도 뻔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되는가? 그냥 잘 살아남는 것 같아요. 괜찮은 것 같아요. 거짓말하면 그런 대로 괜찮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악을 행하며 거짓말을 하며 사는 사람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저와 여러분이 기억하고, 오늘도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서—내가 비록 손해가 난다고 할지라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한다고 할지라도—무엇이 우리들에게 유익입니까? 오히려 진실하고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그게 유익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잠언서 19장 10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어리석은 자가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어리석은 자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참된 지혜가 없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는 이 세상 성공으로 자기 자신을 치장하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봅니까? 그 사람의 믿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실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치한 것, 많은 부귀영화를 보면서 박수를 치기 때문에, 미련한 자가 자기 자신을 꾸미기 위해서 온갖 것으로 사치하는 것이죠. 이것이 마치 무엇과 같은가? 종이 방백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어리석은 사람이고 종인데 그런데 성공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고,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저 사람은 뭔가 성공한 사람이라고 보여지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그것이 제대로 된 것인가? 옳은 것인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것인가? 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세상의 성공이나 가지고 있는 것이나 이런 것에 우리들의 마음이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죠. 성공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고, 자신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보다 빼어난 점을 가지고 자랑하려고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그러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께서 전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의 성공이나 물질의 많고 적음에 우리들의 시각이 빼앗길 것이 아니라, 과연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가, 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진실로 신실한 사람인가,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를 바라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해 주십니까?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치를 누리는 것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고 높은 위치에 올라간다고 하는 것이 결코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해 주신 비유의 말씀 가운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어리석은 부자는 추수 때 많은 것을 수확한 다음에 그 마음에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많이 챙겨 놓고 이제는 내 영혼아 편히 먹고 쉬고 즐기자”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향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겁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네 목숨을 찾아가시면 네가 쌓은 그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아무리 많은 것을 쌓았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지 않다면 자기 자신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은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과 같고 종이 방백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가—우리의 삶 가운데서 정말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이 가장 소중한 삶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죄성이 너무나도 강해서 늘 이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기가 쉬울 수밖에 없는데요. 그때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신 이유가 있다면, 바로 우리들의 그 연약함 때문이죠. 그 연약함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엎드리고 또 엎드리는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의 삶,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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