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땅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시내 광야 시내산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시내산의 위치가 정확하게 어디냐라고 하는 논쟁이 요즘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어딘가는 그렇게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어디에 있든지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 땅에서 나와서 한 90일 정도 지났을 때, 시내 광야에 이르렀고, 그리고 거기에 있는 시내산에 도달하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도달하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참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을 겁니다. 그 가운데 특히 많은 생각 많은 느낌이 있었던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겠습니까? 모세일 겁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다시 오게 되었을 때 모세는 너무나도 참 많은 감격이 있었을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바로 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바로 왕의 눈을 피해서 미디안 광야로, 저 알지 못하던 타양으로 도망가서 거기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모세였었는데요. 거기서 양을 치면서 수십 년 동안 아무런 특별한 비전이 없이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던 그 모세를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오라고 하는 엄청난 사명을 주신 장소가 바로 시내산입니다. 어느 날 모세가 양을 치르고 가고 있는데 그 시내 산에서 놀라운 현상을 하나 보게 된 것이죠.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어 불이 붙었지만, 나무가 전혀 타지 않는 그런 신비한 현상을 보면서 모세의 마음 가운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도대체 이게 어떤 현상인가 하면서, 그 나무에게로 다가갔다가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내 민족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오라고 그렇게 사명을 주셨는데, 그때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서, 저 애굽 땅에 가게 된 바로 그 장소가 시내산인데, 정말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다시 시내 산에 오게 되었을 때, 이 모세의 마음 가운데 참 많은 느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처음 불러주셨을 때 하셨던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출애굽기 3장 12절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데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이 내가 너를 보내는데 너 혼자 가게 만드는 거 아니다. 너 혼자 그 무거운 일을 지고 가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네가 가는 곳에 내가 함께 있을 것이고, 네가 가는 곳에 내가 늘 동행할 것이고, 너를 바로 앞에 마치 하나님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너희가 이 산에 와서 나를 예배하게 될 텐데, 그때 “아, 정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셨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겁니다.
모세가 다시 시내산에 돌아오면서 이 출애굽기 3장 12절의 말씀을 기억했을까요? 기억하지 못했을까요? 기억했을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고 그랬는데 정말 함께하셨구나. 어쩌면 이 모세의 삶 가운데서 모세의 여정 가운데서 정말 위기가 많이 있었을 겁니다. 바로 왕이 죽이려고 달려들었기도 했고 바로 왕이 거부하면서 정말 아무것도 안 되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정말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을 것이고, 정말 수많은 역경 어려운 시련들을 많이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내팽개쳐 버린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그 순간순간에 심지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는 것 같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던 자리가 바로 시내산이라고 하는 자리였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바로 그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다시 부르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냐 하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출애굽기 20장의 말씀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로운 법을 하나 주셨어요. 십계명이라고 알려져 있는 제1계명에서부터 십계명까지 출애굽기 20장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새로운 법을 모세에게 주면서 돌판에 새겨주면서 이 법을 따라 살라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장면이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20장의 말씀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첫 번째 계명에서부터 열 번째 계명까지 다 살펴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은 없고요. 예전에 2018년도 19년도에 “복음의 눈으로 본 십계명”이라고 하는 주제로 시리즈 설교를 쭉 한 내용이 있고, 그 설교가 지금 홈페이지에도 “십계명 강해”라고 하는 제목으로 올라가 있으니까, 혹시 못 들으셨던 분들은 한번 찾아서 들어보시면 좋고 이미 들으셨던 분들도 시간이 꽤 지났잖아요? 그러니까 한번 기회 되실 때 다시 한번 십계명의 말씀을 읽어보면서 하나님께서 무슨 의미로 어떠한 의미로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셨을까 하나씩 하나씩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십계명에 대해서 다 살펴볼 수는 없겠고요.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십계명을 주셨을까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향해서 가고 있는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왜 이 십계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었을까 도대체 이 십계명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나님께서 이 십계명을 주셨을 때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 십계명을 어떤 마음으로 받들 수 있게 되었을까 이 점에 대해서 오늘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 것인데요.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민족에게 십계명을 주었을까요? 그것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따랐던 그 법이 더 이상 소용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법을 지키면서 살아왔었죠? 애굽 나라에 바로 왕의 법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애굽 땅에서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누구의 법을 따라야 했어요? 바로 왕의 법을 따라야 했던 거죠. 애굽 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애굽의 종살이로 있을 때에는 애굽의 법을 따르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애굽의 법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애굽의 법을 혹시 알고 계십니까?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성경에 다 표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 알 수는 없지만 몇 가지만 골라서 말씀드리자고 한다면 이런 법이 있었어요. 이스라엘 민족은 매일매일 벽돌을 구워서 바쳐야 된다. 노예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요구하는 대로 벽돌을 구워다가 바쳐야 되는 그런 의무를 수행해야만 했었던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이었어요. 또 무슨 법이 있었습니까? 너희들 가운데 자녀가 태어나면 딸은 괜찮지만 아들은 죽여라. 우리가 그때 태어났으면 못 살았어요.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 아들들을 다 죽여버리라고 하는 출산이라고 하는 가장 기쁜 순간에 가장 절망적인 일을 해야 되는 그런 엄청난 그 무서운 법 아래서 살아야만 했던 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들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이스라엘 민족이 이 법을 지킬 필요가 있나요? 없습니다. 왜 안 지켜도 되죠? 더 이상 애굽 나라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그렇게 남의 나라의 지배 속에서 살아왔던 경험이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은 적이 있죠? 일본의 지배를 받았었어요. 이 가운데는 일제시대 때 사셨던 분들도 계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일제시대 때는 무슨 법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말 못 쓰고 일본어를 배워야 돼 일본어로 공부해야 됐어요. 일제시대 때는 어떤 법이 있었어요? 신사 참배를 해야 했어요. 일제시대 때 무슨 법이 있었어요? 황국에게 충성해야만 됐었어요. 그 일본 천왕에게 일본 천왕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됐고 공물을 바쳐야 됐었고 그리고 군대로 끌려가야 됐었고, 그 일본의 체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것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난 다음에 해방이 된 때가 언제입니까? 1945년 8월 15일 그러고 보니까 얼마 안 남았어요. 8월 15일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해방된 우리나라 민족에게 해방이 되었을 때 이제는 더 이상 일본의 법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게 무엇이죠? 우리나라의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제헌절이에요. 얼마 전에 있었던 제헌절 7월 17일 날 1945년 8월 15일 해방되자마자 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몇 년 지나서 7월 17일 날 제헌 국회가 모이고 그 재헌 국회가 모여서 이제 우리가 해방된 우리나라의 법을 만들자 하면서 새로운 법을 선포하게 된 것이죠. 그 옛날 일제시대 때 살던 법과 제헌 국회가 만들어져서 새로 선포한 법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옛날 일본 시대에는 천왕을 섬기면서 살아야 했지만 이제 새로운 헌법이 나와서 모든 주권이 누구에게 있어요? 국민에게 있어요? 우리가 다 갖고 있대요.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 어떤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때 왕에게 주권이 있었고 왜정 시대 때는 천왕에게 주권이 있었지만 이제 새로운 나라가 되면서 우리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진 나라로 바뀌게 된 것이고, 옛날에는 억압을 당하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지만 새로운 나라가 되어서 이제 기본권이 보장되는 세계가 되었고, 예전에는 총독 한 사람의 말에 따라 움직여야 됐지만 이제는 삼권 분립이 돼서 서로가 입법행정사법이 서로 견제하면서 그래서 민주적인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나라로 바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예전에는 식민지의 나라로 그 법이 있었지만 지금은 독립 국가로서의 법이 만들어진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이것과 마찬가지예요. 지금까지 애굽에 살면서 고통 가운데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겁니다. 이제는 바로가 우리의 왕이 아니라 누가 왕이에요? 하나님의 왕이에요.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제 나의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법, 하나님 나라의 새 계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것이고요.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보게 되는 십계명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관계하시는 방법이 마치 옛날에 조약을 맺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 인간들과 관계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옛날 고대 근동지방의 나라들 사이에 조약이 자주 맺어졌었는데요. 강대국이라고 하는 나라와 약소국이라고 하는 두 나라가 서로 조약을 맺게 됩니다. 요즘에도 우리나라가 누구랑 조약을 맺죠? 미국하고 트럼프하고 관세 협상을 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대표단이 미국에 가서 관세 협상을 하고 와야 되는데 관세 협상을 할 때 우리나라가 불리한 입장에 있나요? 유리한 입장에 있나요? 불리한 입장에 있어요. 군대도 파견되어 있고 우리가 또 수출도 해야 되고 하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서 그래도 최소화해서 합의를 하고 와야 되는 그런 상황에 있었던 것처럼 그 옛날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조약을 맺을 때가 많이 있었는데 그때 어떻게 조약을 맺었냐면 강대국이 약소국 왕과 함께 조약을 맺으면서 조약을 맺을 때 짐승을 쪼개 놓았습니다. 짐승을 쪼개 놓고 그리고 조약을 맺을 때 약속의 왕이 그 짐승들 가운데로 지나가면서 계약을 맺는 것이죠.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쪼갠 짐승들 사이로 약속의 왕이 지나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서명하는 거죠. 도장을 찍는 거죠. 무엇으로 도장을 찍습니까? 내가 만일 이 약속을 안 지키면 나도 이 짐승들처럼 죽어도 괜찮다. 목숨을 내놓고 지키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짐승들 사이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게 그 옛날 중동 지방에 있었던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조약을 맺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이죠.
그러한 방식이 성경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조약을 맺는 것 같은 그런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중에 하나가 어떤 장면이냐 하면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조약을 맺는 장면.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을 맺는 장면이 창세기 15장에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짐승을 쪼개서 양 옆에 배열해 놓으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짐승을 쪼개서 양 옆에 배열해 놓았는데 그날 밤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신 거예요. 어떤 환상을 보여주셨습니까? 그 쪼갠 고기 사이로 누가 지나가요? 횃불이 지나가요? 이 횃불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횃불이 지나가는 거죠. 그 옛날 강대국과 약소국이 서로 조약을 맺으면 약속이 그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것인데, 그래서 조약을 맺는 것인데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약속은 어떻게 맺었는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묻는 거예요.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을 내가 어떻게 믿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아들 주신다고 했는데 아들이 안 생기잖아요?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아들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가나안 땅을 준다고 했는데 어떻게 내가 가나안 땅을 받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까? “도대체 내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그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면서 아브라함에게 확신을 준 거죠.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목숨을 걸고 이 약속을 반드시 너에게 지켜주겠다고 하는 그런 엄청난 놀라운 약속을 주신 것이 창세기 15장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오늘 시편 오늘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께서 이 십계명을 주시면서도 그 옛날 고대 근동 지방에서 있었던 조약의 형식을 빌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말씀을 해 주고 계십니다. 옛날에 그 서로 조약을 맺을 때 강대국과 약소국이 조약을 맺을 때 그 조약문을 보면 여러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제일 먼저에는 무엇을 써놓았냐 하면 강대국이 약소국을 어떤 나라의 침공에서부터 건져준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마치 6.25 때 우리가 너네 도와주었지 하는 것처럼 강대국이 약소국을 이렇게 도와주었고 저렇게 도와주어서 다른 나라의 침입으로부터 너희들을 보호해 주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그러니까 너희들은 곡물을 매년 얼마씩 바쳐야 돼. 그러니까 너희들은 처녀를 몇 명씩 갖다 바쳐야 돼 하면서 조항들이 그 뒤에 따라 나오는 게 당시에 조약을 맺는 그런 문서들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요. 십계명을 줄 때도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너희를 건져낸 하나님이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2절 말씀에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죠.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내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희를 구원해 냈어. 너희를 살려주었어. 그러니까 이제는 너희들이 이 계명 2계명 2계명에 따라 살아야 된다고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그렇게 살면 어떻게 해 주시겠다는 겁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어떻게 해주겠다는 거예요 내가 너희들을 계속해서 보호해 줄 것이다. 내가 너희들의 하나님이 계속될 것이고 너희들은 나의 백성이 계속해서 될 것이다. 그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 10개의 말씀을 잘 지키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거죠.
출애굽기 19장 3절에서부터 6절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 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으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말씀을 잘 지키면 내 소유가 될 것이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 내가 너희들의 하나님이 계속되어 줄게.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이 계명을 잘 지키면 너희가 내 백성, 내 소유, 제사장 나라가 계속되도록 유지가 되겠다고 하는 이 약속을 해주시는 것이 십계명의 말씀이죠.
그러니까 그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 십계명을 봤을 때 무엇을 상상했겠습니까? 강대국과 약소국이 서로 조약을 맺는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약속을 맺고 있구나. 조약을 맺고 있구나.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순종해야 되겠구나라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이 십계명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조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너무나도 은혜로운 조약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 옛날 강대국은 내가 너희를 보호해 줄 테니까 니네들이 갖고 있는 거 내놔 물질 내놔 3분의 1을 내놔 반절 내놔 내가 너희들을 지켜줄 테니까 처녀들 다 내게 데리고 와 그러면서 자꾸만 빼앗아 가는 것이 강대국의 조약이었고, 할 수 없이 그들의 눈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보호받기 위해서 할 수 없이 했던 것이 그 당시 나라의 약속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 십계명은 어떤 내용의 말씀입니까? 우리를 착취하고 우리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십계명이 아니라 사실 이것은 우리가 지키기 쉬운 놀라운 은총의 법칙이고, 그 옛날 애굽 땅에서 살던 법과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축복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사랑의 법이 이곳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말씀은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들과만 맺어진 계약이 아니라 사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역시 이 말씀이 유효하다고 할 수가 있어요. 왜 유효합니까? 우리도 이스라엘 민족과 똑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노예였어요. 무슨 노예였어요? 이 세상 법칙의 노예였고 죄의 노예였고 사망의 노예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사망의 노예, 죄의 노예였던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셨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건져주신 것이죠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 2절 말씀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생리,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가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이 세상의 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법대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빵을 가지고 자르셨어요. 둘로 쪼개어요. 그 옛날 짐승을 쪼개놓고 약조를 했던 조약을 맺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빵을 쪼개시면서 우리가 함께 새 언약을 맺자. 그런데 그 찢어진 방을 가리키면서, 그런데 너희가 죽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 하나님께서 친히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자시내 몸을 내어주셔서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고 그뿐만 아니라 포도주잔을 서로 나누면서 지난 시간에 갈릴리 예수 영화를 어 시사회를 가봤는데 그런 의미를 잘 밝혀줘서 너무 좋았는데요. 포도주를 나눈다고 하는 것은 신랑과 신부가 서로만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신부로 죄의 신부로 살던 우리를 예수님의 신부로 맞이해 주면서 그러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자리로 초대해 주신 것이 우리 주님이시고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제는 더 이상 죄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무슨 법을 따라 살아요? 하나님의 법 새로운 법 새 계명을 따라 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 35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어떻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옛날 애굽의 법대로 따라 살고 싶습니까? 매일매일 벽돌 구우면서 아기들을 강 속에 던지면서 무한 경쟁 속에서 서로가 증오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사탄이 시키는 대로 살다가 망해져가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의 법을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법 그 옛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너희는 이제 더 이상 애굽의 법을 따라 살 것이 아니라 내 법을 따라 살아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행복이 넘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그 새로운 법,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내 계명을 따라 새 계명대로 살라 미워하는 법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아끼며 살라고 요구하신 그 주님의 사랑의 법을 오늘 우리 모두가 다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늘 넘어지기 때문에 회개하고 또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