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 저녁에도 잠언서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교훈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읽은 잠언서 19장 2절 말씀에서는 두 가지 교훈을 한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교훈이 무엇인가요?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않다.”
소원이 다 좋은 게 아니라 무엇에 대한 열망, 소원, 갈망, 이 모든 것들이 모두가 다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떤 소원은 선하지 못한 것인데 어떤 소원이 선하지 못하다고요?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다고 하는 게 오늘 잠언서 19장 2절의 앞부분에 있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지식이 있는 소원이 있고 지식이 없는 소원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전제하고서 하는 말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도대체 지식이 없는 소원이라는 게 무엇일까요? 소원은 소원인데, 지식이 없는 소원은 무엇을 가리켜서 지식이 없는 소원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성경 이야기 가운데 예수님의 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한 번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부모님이 요청한 것이죠. **”주의 나라가 임할 때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간청을 예수님에게 드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해주신 대답의 말씀이 마태복음 20장 22절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예수님의 양 옆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할 때는 무엇을 보고서 그렇게 요청했을까요? 예수님의 양 옆에 앉을 때의 그 영화, 그 자부심, 그 영광스러움을 보면서 예수님의 양 옆에 앉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간청을 드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옆자리에 앉게 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냥 앉는 게 아니고 어쩌면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할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말 주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그런 모습이 있어야만 한다고 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왕관을 쓰기 위해서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하는 그런 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볼 때 **”참 저 사람은 참 좋겠다. 저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 너무 좋겠다”**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그냥 올라간 것이 아니라 엄청난 희생과 노력과 엄청난 고난 이런 것들이 다 있은 다음에 그 자리에 올라가게 된 것인데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을 보고 그 자리를 욕심내고 그것에 대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것, 어쩌면 지식이 없는 소원의 한 예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갈망을 하고 있지만, 그 갈망이 우리들에게 선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것을 모른 채 갈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겠습니다. 지식이 없는 소원인 것이죠. 이것을 꼭 갖고 싶어요. 이것을 꼭 얻고 싶어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인데, 그 갈망이 나에게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채 갈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경우는 몰랐지만, 그래도 주님의 양 옆에 앉겠다고 하는 것은 고난이 있어도 영광스러운 길이요,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 마지막에는 정말 좋은 결과로 빚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고, 그냥 그 무서움을 그 위험을 모른 채 그냥 구했다고 하는 그런 어리석음이 있을지 몰라도 나쁜 것까지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그 갈망이 오히려 우리를 파멸로 이끌고 우리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그런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줄도 모르고 갈망하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어떤 경우가 그럴까요? 우리 꼬마 아이들이 부모님한테 말하는 거죠. “나도 칼 가지고 놀래.” 조그마한 아이들이 “나도 칼 갖고 놀래.” 그 칼을 가지고 논다고 한다면 크게 다칠 것을 알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이죠. 그런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나에게 위험할 수 있구나, 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구나”**라고 하는 것을 모른 채 우리가 갈망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갈망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겠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찾는다고 한다면, 하와가 선악과를 보면서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그 선악과의 모습을 보면서 **”저것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소원이 생겼었고 갈망이 생긴 것을 예로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말씀해 주셨는데, 하와는 사탄의 그 속임수에 넘어가 버려서 이미 그 마음 가운데 이 선악과에 대한 갈망이 생기게 된 것이죠. **”내가 저것을 먹었으면 좋겠다. 내가 저것을 맛보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그 마음의 소원이 마음속에 생기게 된 것인데요.
그런데 그 소원은 있지만 과연 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어떠한 결과가 빚어질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었다라고 한다면, 그러면 그런 갈망을 아예 가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와는 지식이 없는 소원을 마음속에 품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 지식이 없는 소원이 무슨 소원이었습니까?
**”내가 이 선악과를 먹는다고 한다면 나도 지혜롭게 될 것이고 나도 눈이 밝아지게 될 것이고 나도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라고 하는 잘못된 지식, 그러니까 지식이 없는 그런 갈망에 따라서 그래서 그 소원을 따르다가 육체의 소원을 따르다가 선악과를 먹게 되었고, 그 결과 그의 인생이 파멸로 이르게 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것들을 우상처럼 바라보면서 갈망하는 것이야말로 지식 없는 소원이라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을 더 많이 벌기를 원하십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원하십니까? 사람들로부터 박수받는 것을 원하십니까?
우리가 갈망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사실은 이 세상에 썩어질 것들,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들에 대해서 갈망하는 것은 그야말로 지식이 없는 소원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런 지식이 없는 소원은 결국은 망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과연 내가 지금 바라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 소원인가? 정말 내가 추구해야 될 것인가? 정말 이것을 내가 모든 것을 바쳐서 구해야 될 것인가?**라고 하는 진지한 고민, 진지한 생각들을 우리가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거죠. 이 세상에 썩어질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참되신 하나님을 내가 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가운데 참된 지식을 가지고, 그래서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까지 내가 갈 것인가 그것을 항상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면서 참된 지혜가 어디서부터 오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데 참된 지혜가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들을 다 판단한다면, 그러면 그 소원은 지식 없는 소원이 아니라 지식 있는 소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엘리사의 종 게하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게하시는 나아만 장군이 가져왔던 그 수많은 선물들을 보면서 그 선물들을 얻고 싶은 욕심이, 그 소원이 게하시의 마음 가운데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엘리사의 종은 나아만 장군의 뒤를 쫓아가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마치 선한 일을 하는 것처럼, 정말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해서 나아만 장군으로부터 값비싼 물건을 얻게 되었는데, 그렇게 그 나아만 장군에게서 그런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엘리사의 종 가운데 들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물질이 하나님으로 생각이 드는 것,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죠. **”이것을 얻는다고 한다면 내가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평안할 것이다. 내 삶이 나아질 것이다”**라고 하는 잘못된 지식, 이 세상의 우상을 섬기는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결국 거짓말을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짓말했다가 결국 나중에는 나아만의 나병까지도 얻게 되는 그런 심판을 당하는 그런 안타까운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하는 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죠.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가? 기도를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도하고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 하나님께서 정말 인정하실 만한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엎드려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왜 받지 못한다고 되어 있어요?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기 때문에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달라고 하면 무조건 주는 그런 슈퍼마켓 주인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냥 달라고 하면 무조건 내주게 되어 있는 은행 직원이 아니란 말이에요.
어디다 쓸지 모르고 그냥 달라고 하는 대로 무조건 줄 수밖에 없는 그런 직원이 아니라,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잘 되기를 바라고 우리의 삶이 잘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진단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을 때, 그 소원으로 우리가 잘될 것인가, 정말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인가를 바라보고, 그렇지 않고 우리가 시기와 질투 가운데, 미움 가운데, 탐욕과 정욕 가운데 이기적인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소원은 아무리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밖에 없는 지식이 없는 소원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하지 않기 때문에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나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 자리에 우리들의 마음을 우리 자신들이 살펴보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이 두 번째 부분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줍니까? “발이 급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잘못 가느니라.” 성급하면 일을 제대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고 일을 망치게 된다. 성급함은 일을 그르친다고 하는 강력한 경고의 말씀이 오늘 하반절에 있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근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성질이 급해요? 세계에서 성질 급한 사람으로 1등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빨리빨리” 무조건 하면서, 정말 성질 급한 그 DNA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이 있는데, 우리들은 마음이 급하고 우물에서 숭늉을 찾으려고 하고, 그래서 가능하면 빨리 하고 빠른 결과를 얻고 조급해서 기다리지 못하는 모습들이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르고, 특히 우리 성도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한국 사람들의 기본적인 특징을 여전히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모든 일을 망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실수와 잘못들이 있었는데, 그 실수와 잘못들이 다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성급할 때, 조급할 때, 한 번 더 생각하지 못하고, 한 번 더 이야기 듣지 못하고, 함부로 결정하고 함부로 행하고 함부로 말을 하고 해서 모든 것들을 망쳤던 것들을 생각해 보면서,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한 번 기다렸더라면, 한 번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더라면, 한 번 행동하기 전에 잠깐 더 기도하고 잠깐 더 하나님 앞에 엎드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되는 적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모든 것은 때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두 가지 교훈이, 상반된 교훈이 있는 것이죠. 조급하고 성급하면 망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교훈이 있는가 하면,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면 영영 그 기회를 잡을 수 없다고 하는 때를 잘 잡아야 되고,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되고, 타이밍이 모든 것이라고 하는 또 다른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도대체 우리가 이것이 조급한 것인지 조급한 것이 아닌지, 정말 바른 때에 하는 것인지 조급한 것인지 그걸 결정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교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조급하지 말고 성급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하는 교훈을 우리가 잘 얻었으면 좋겠는데요. 성급하면 어떻게 되는가? 결국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조급하고 성급하게 할 것이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의 지혜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답답할 때 성질 부리지 말고, 답답할 때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주여,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의 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엎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다리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실망하고 낙담하는 거죠. 씨를 뿌렸어요. 근데 씨를 뿌렸는데 조급한 사람은 그다음 날 가보니까 열매가 맺혀 있습니까? 안 맺혀요. 그래서 낙망할 수 있거든요. 왜 우리가 낙망하는가? 왜 우리가 실망하는가? 조급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어떤 무엇인가 만져지지 않을 때, 실망스럽고 낙망스러울 때가 많이 있는데요. 우리의 마음 가운데 실망과 낙망이 생긴다고 한다면, 그때 우리 자신을 진단해야 되는 것. “내가 너무 조급하구나.” 마음속에 실망이 생깁니까? 그러면 “아, 내가 너무 조급했구나. 내가 너무 성급하구나” 생각하셔야 돼요. 왜? 더 기다려야 열매가 나오는 거예요. 더 기다려야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지금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좌절할 게 아니라, 한 번 해보고 안 되고 두 번 해보고 안 되고, 아니 열 번 해봐서 안 됐으니까. 그래서 실망하고 좌절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더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더 기다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부터 8절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 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아멘.
우리가 씨를 심고 물을 줬어요. 근데 열매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요. 물 주는 사람은 물을 줬으면 됐어요. 내가 지금 내 시대에 열매를 얻지를 못했어요. 물만 줬어요.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했어요.
나는 물을 주고 사라졌지만, 그러나 그 뒤에 누가 왔습니까? 아볼로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또 다른 걸 하는 거예요. 물부터 주는 게 아니고 심는 것부터 먼저 하든, 심었는데 안 나오면 그걸로 실망할 게 아니라, 그다음에 다음 사람이 와서 물을 주고, 물 주는 사람이 있고, 심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합치고 또 합쳐져서 결국 나중에 수많은 열매가 맺히게 될 텐데, 그 수많은 열매가 맺히는 그 공로가 누구에게 있어요? 마지막에 추수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물 주는 이를 사용하시기도 하고, 심는 이를 사용하시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결국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그 큰 그림을 바라보면서 실망하고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했을 때 우리는 실망하고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영광을 올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에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가 행한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는 게 아니에요. 지금 당장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고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는 복음의 씨앗을 심고 있다. 복음의 씨앗을 심고 있다. 나는 지금 복음에 물을 주고 있다. 우리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도 내가 이 일을 이렇게 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여러 가지 도전이 있을 겁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것도 시도해 보고 저것도 시도해 보는데 또 안 되고 또 안 되고, 도무지 내 인생에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경험들을 하게 될 때가 많아요.
그러면 “안 되나 보다” 하면서 실망할 게 아니고, 조급하게 성급하게 실망할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나의 이러한 경험과 이러한 실패와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더 큰 일들을 만들어 가실까?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저 모든 것을 다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나를 이런 경험도 하게 만드시고 저런 경험도 하게 만드시고 이런 일도 겪게 하시고 저런 일도 겪게 하셔서, 결국에는 나를 하나님께서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빚어가고 계신 그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지금 당장 열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고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신 섭리를 바라보며 신실하게 감사하고 찬송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옛날 요셉이 노예로 끌려가게 되었었고, 그 옛날 요셉이 감옥에 갇히기도 해서, 그 당시의 상황을 보면 아무런 꿈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고 아무런 미래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그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 상황 가운데서 요셉은 절망하고 실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나의 아버지 하나님, 나의 할아버지의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하셨고 약속해 주셨고, 그리고 내게는 꿈을 주시며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신 그 하나님,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지만, 그러나 결국에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어떻게 사용하실 것인가?’ 미리 낙망할 게 아니라, 미리 절망할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어느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기다리면서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발이 급해서 “지금 열매가 없네” 하면서 돌아설 것이 아니라, “지금 큰일 났나 보다” 거기서 주저할 게 아니라, 발이 급해서 지금 당장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거기서 주저앉을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발이 급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원수를 갚아버리려고 하는 것이죠. 나에게 잘못했던 사람, 나에게 악을 행했던 사람, 나를 미워했던 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를 억울하게 했던 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들에 대해서 원수를 갚아버려야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잘못한 만큼 갚아줘야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정의가 안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내 손으로 정의를 만들어 버리려고 그렇게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몰라요.
누가 나에 대해서 한마디로 얘기하면 마음속에 꽁 해가지고 “두고 봐라. 내가 언제 이것을 10배로 갚아줘야지” 하면서 기회만 보고 있다가, 그래서 적당한 때가 되면은 그 사람에게 10배로 갚아줘버리려고 하는 원수를 갚아버리려고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하지만 그렇게 지금 당장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 당장 공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성급하게 우리가 원수를 갚아버릴 것이 아니라, 성급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기다립니까?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이고, 내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고, 나의 피해 당했던 것들을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이고, 악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실 것이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실 거라고 하는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참된 믿음의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서 21절 말씀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믿습니까? “누구의 진노하심에 맡겨라?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성급하게 내가 원수 갚아버리고, 성급하게 내가 한 대 때리고 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고 기다리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누구에게 있으니? 하나님에게 있으니, 하나님이 갚으시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어떻게 하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하므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나에게 잘못한 사람, 나에게 악하게 했던 사람들을 참지 못하고 조급하게 내가 원수를 갚아버려서 승리하면 그게 승리한 게 아닙니다. 사탄에게 진 거예요. 내가 사탄의 종이 된 거예요. 조급함으로 나는 사탄의 자녀가 되고 만 겁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성도들이 사탄의 자녀가 되기를 선택하면서도, 내가 사탄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모르며 그렇게 지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조급하게 행하지 말아야 됩니다. 누구를 기다려요? 하나님의 원수 갚으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이 땅에서는 그들이 영원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그들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는 심판을 했기 때문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고요.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그 날을 기다리면서, 우리가 성급하게 하면 결국 잘못된 길로 가고, 결국 사탄의 노예가 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다리지 못하고 발이 성급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는 것이죠. 누가 그랬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어요. 뒤에서 애굽 군대가 쫓아오는 모습을 보고, 앞에가 홍해 바다로 가로막혀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상황 가운데서 마음이 조급했어요. “이러다 우리가 죽는 거 아니냐? 이러다가 우리가 망하는 거 아니냐?” 마음이 조급했어요. “죽을 것 같다” 하니까 마음이 조급해진 거죠.
그러면서 원망과 불평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조급한 사람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인데, 발이 성급한 사람은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상황 가운데서 마음이 급해서, 성급해서, 발이 성급해서 원망하고 불평해버린 거예요. 자신들의 지도자, 자신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며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오기 위해서 그렇게 수고하고 애쓴 자신들의 지도자들을 향해서 마음의 대못을 박아버리면서 원망하고 비난해 버리는 그런 악한 짓을 저지르고 만 것이죠.
그 순간에 조급하게 원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나 보자.”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봐야 되는 거예요. “성급하지 말고 기다려 봐라. 기다려 봐라. 잠깐만, 잠깐만.” 우리들의 인생 가운데 왜 우리가 넘어집니까? 왜 우리가 망합니까? 우리들의 마음이 성급하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는 겁니다. 우리들의 인생의 길에서 막다른 골목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길에서 실패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길에서 커다란 장애물 때문에 우리가 한 발짝도 못 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물론 마음이 답답하죠. 그 답답한 순간에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을 치고 들어와서 성급하게 만드는 거예요. **”야, 성급하게! 가만히 있지 말고 성급하게 생각해서 빨리 낙망해버려라. 빨리 원수 갚아버려라. 빨리 원망하고 불평하라”**고 우리들의 마음을 부추기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급하게 우리를 심판해 버리고 끝내신 것이 아니라, 끝까지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끝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다리시다가, 우리를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까지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우리들의 마음에 조급함과 성급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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