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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기둥과 불 기둥 (출 13:17-22)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기적적으로 해방이 되어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이야기가 출애굽기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방되자마자 가나안 땅으로 바로 간 것이 아니고, 광야라고 하는 그 기간을 거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다시 말하자면 풍성한 땅, 정말 좋은 땅을 향해서 가게 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가 출애굽기의 말씀 가운데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직선거리로 짧은 길로 인도하신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가자지구 해변가 길을 통해서 평탄한 길로, 이스라엘 민족을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인도하신 것이 아니라, 광야의 길로 인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광야의 길로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이며, 그리고 그렇게 광야의 길을 가는 동안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셨는가”라고 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간단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어쩌면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의 길을 거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게, 어쩌면 우리 인생의 모습을 그려주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것도 저 천성을 향해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는 저 천성을 향해서 가는 순례자들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지금 우리가 가는 이 길이 마치 광야의 길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평탄한 길이 아니라 굴곡이 있고 참 힘들고 어려운 이 과정을 거쳐 가야만 하는 것이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출애굽기의 말씀을 읽으면서, 광야를 지나는 그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울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에 기록된 이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먼저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먼저 주목해 보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바로 출애굽기 13장 17절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블레셋 사람들의 길로 가다가 블레셋 사람들과 만나서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라고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민족을 빠른 길로 그리고 가까운 길로 인도하지 않고 빙 돌아가게 만드셨는가? “왜 광야의 길로 걸어가게 만드셨는가?”에 대한 이유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블레셋 민족을 만나서 전쟁을 하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이 무너져 내려버려서, 그리고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이 실망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 가난 땅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애굽 땅으로 돌아갈까 봐,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광야의 길로 인도하셨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묵상해 볼 때,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 광야의 길로 가게 된 것이 왜 광야의 길로 가게 되었는가? 왜 어려운 길로 가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고, 그런데 그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선하신 뜻이 그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을 설명해 주는 말씀이 출애굽기 13장 17절의 말씀일 겁니다.

왜 이스라엘 민족이 이렇게 힘든 길로 가게 되었는가? 왜 삥 돌아가게 되었는가? 왜 광야로 가게 되었는가? 이스라엘 민족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고생 좀 해보라고, 그래서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하신 목적이 있어서, 그래서 더 나쁜 결과를 가지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과 계획 가운데 광야의 길로 인도하셨다고 하는 게 오늘 본문에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의 길로 가게 된 것은 어쩌다 보니까, 그냥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없이 아무런 방향도 없이 가다 보니까, 재수 없이 광야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가다 보니까 이런 고생을 하게 된 것이고, 가다 보니까 그래서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길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고 인도하신 것이고, 그런데 그것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온 세상을 움직이시는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 때문에 그 목적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의 길로 인도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읽으면서 우리의 인생의 길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늘 꽃길만 걸어가는 게 아니에요. 인생의 길을 꽃길을 걸어가고 싶은데 우리의 인생의 길이 꽃길만 걷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죠. 광야에 가면 물이 없어요. 마실 물이 없어요. 그곳에는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어요. 그곳에는 밤이면 춥고 낮이면 너무나도 더워서 요즘 우리가 요즘 고온에 참 힘든 상황 가운데 있는데 지금 우리가 지금 더운 것보다도 더 더운 너무나도 힘든 그런 상황 가운데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이죠.


지난 성지순례를 갔을 때 광야에서 하룻밤 숙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지순례의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여러 가지 유적지들도 본 것도 있지만 광야에 가서 그 광야가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광야를 체험할 수 있도록 광야에서 하룻밤 자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광야에서 자본 적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광야를 체험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방갈로가 있어서 잠을 잘 때는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었고 그리고 거기에 식당이 있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아 그러면서 지냈기 때문에 광야를 체험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낮에 그 광야를 한번 지나가 보면서 방갈로가 없는 이 광야에서 잠을 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참 힘들었을까? 식당이 없는 그 광야에서 지낸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것을 생각하면서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며칠씩 물이 없는 그곳을 지나가면서 먹을 것이 없는 그곳을 지나가면서 우리는 불평하기가 쉽고 그리고 낙망하기가 쉬운데 그런데, 그 길을 걸어간 것이 우연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까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선하신 목적과 계획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을 그 길로 인도해 주셨다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 위기를 직접 경험하는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마치 무엇과 같은가?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독수리가 새끼를 기르는 이야기를 혹시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독수리가 새끼를 부화한 다음에는 그 새끼가 둥지에서 자랄 때 어느 정도 자랐다 싶으면 어미 독수리가 그 둥지를 흩어버린다고 해요. 처음에는 잘 아이가 자랄 새끼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포근한 둥지를 만들어 놓았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그 둥치를 막 흩어버려서 거기가 불편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거기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그 둥지에만 있지 못하도록 그 둥지를 흩어버버려서 그 둥지를 떠나게 만든다고 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새끼를 데리고 날개로 업어서 그래서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그 새끼를 떨어뜨린다고 해요. 그러면 그 새끼가 아직 날지도 못하는데 막 떨어지는 가운데 바등바등거리면서 안 떨어지려고 하는데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떨어질 것 같은데 독수리가 날아가서 떨어질 때쯤 되면 그 새끼를 채가지고 다시 올라가서 또 떨어뜨리고 그런 훈련들을 하는데 아마 새끼 독수리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게 무슨 일인가? 왜 우리의 부모가 나를 이렇게 죽이려고 달려드는가? 아마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왜 나를 이런 고통 가운데 집어넣는가? 생각하기가 싫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과정들을 거쳐서 정말 새들 가운데서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독수리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구나. 그것이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구나. 나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나로 하여금 이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나중에 자기도 자기 새끼한테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죠.

신명기 8장 15절에서부터 16절의 말씀 가운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무리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내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내게 먹이셨나니, 이는 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가? 낮추기도 하고 주리게도 하시고 고난을 당하게도 하시고 어려움 가운데 집어넣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너를 완전히 박살 내버려서, 도무지 일어나지 못하도록 완전히 박살 내버리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마침내 복 주시기 위해서 마침내 은혜를 내려주시기 위해서, 저 선한 길로, 더 좋은 길로 가게 만드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하나님의 목적을 신명기 8장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고난의 길을 걸어갈 때마다 내 인생이 광야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우리는 그 가정 상황 가운데서 불평하고 원망하거나 낙망하고 쓰러질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냥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의도하지 않고 잘못된 목적과 또는 잘 생각하지 못해서 그래서 실수가 있고 잘못된 일들이 일어나게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목적이 있고 의도가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될 것인데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 광야와 같은 상황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기억하고 오히려 힘을 얻고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욥이라고 하는 사람이 겪었던 고난은 너무나도 큰 고난이었지만 욥은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요기 23장 10절 말씀에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나는 이해할 수 없어요. 나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나를 불속에 집어넣고 단련하는 그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그래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고난의 과정을 겪은 다음에 결국에 내가 무엇이 되는가? 정말 멋진 도자기가 되는 것이고 멋진 순금이 되어 나올 거라고 하는 그 믿음의 고백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의 말씀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당할 시험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감당할 만한 것이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려워요. 우리가 만나는 고난은 견디기가 힘들 정도로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죠. 하지만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고난이 그 어려운 일들이 목적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를 파괴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완전히 박살 내버리기 위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선한 목적,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마침내 복을 주시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순금으로 만들고 마침내 우리를 도자기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 의미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방 주사처럼 우리로 하여금 면역력을 갖게 만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더 훈련시켜서 그래서 더 높은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선하신 결국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신다고 하는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믿음의 고백을 해야 되는데요.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하는 말씀을 늘 기억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출애굽기 13장 21절에서부터 2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광야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의 길로 인도하실 때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그냥 내팽개쳐 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광야의 길을 가는데 어떻게 가셨는가? 하나님께서 먼저 그 앞을 가셨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앞서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해 주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앞에서 인도하십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앞에서 인도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런 장소적인 의미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무섭다고 한다면 먼저 해줄 것을 기대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아주 무서운 곳이 있다. 그러면 제 아내는 항상 뭐라고 얘기합니까? 저더러 먼저 가서 확인하라고 그래요. 벌레가 나올지 모르겠다고 먼저 좀 한번 뒤져보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지 않습니까? 무서운 것이 있으면 남편에게 부탁을 해요. 여러분은 남편이 아내에게 부탁하나요? 아이들도 무서운 게 있으면 엄마 아빠가 먼저 해보라고 그래요. 그래야 안심하고 괜찮은지 그래서 해보는 것이지 그런 개념이에요. 우리가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가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부모님처럼 먼저 가시는 거죠. 마치 자전거를 탈 때 그 앞에서 혹은 뒤에서 안심시켜 주듯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다고 하는 이야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는 그 길을 그냥 혼자 가도록 내버려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그 길을 가셨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고 보호하셨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주시기 위해서 우리는 늘 보는 것을 보아야만 안심이 되는 우리들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 민족을 안심시켜 주신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성막을 만들어서함께 하신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성막을 만들고 그 성막에 언약궤를 두고 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진영 가운데 정중앙에 두게 만들어서 그 성막을 볼 때마다 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만들고 안심시켜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앞에서 인도하시는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을 통해서 아 저걸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날마다 기억하면서 그래서 가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죠. 따라서 오늘 우리들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지금 우리가 나 혼자 걸어가는 것 같지만 아니에요 하나님이 함께하셔요. 힘들고 어려운 그 길에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기억해야 돼요.


다니엘의 새 친구들이 풀무불 가운데 들어갔을 때 그냥 그들을 그가 그릇에 내팽겨 주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한 분이 그 곁에서 함께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길에 나 혼자 걸어가는 것 같지만 나 혼자 헤매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는 이 사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그래야 하나님이 그 옛날 구름 기둥으로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의 삶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구름 기둥, 그리고 불기둥으로 함께하셨던 그 우리 주님께서 신약시대에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 인생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어요. 거하신다고 하는 말이 장막을 폈다고 하는 말이고, 그 옛날 성막을 만들어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함께 했던 것처럼 임마누엘 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과 함께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과 함께 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까? 죄 많은 우리 인생 가운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만일 우리 죄 많은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한다면 우리는 불타 없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하지만 놀라운 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씻어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씻으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그 일을 우리 주님께서 하신 거,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가운데 고난의 길을 가운데 있을 때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함께 하신 그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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