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는 먹을 것이 풍부합니다. 슈퍼마켓에 가면, 언제든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는 너무나도 풍성한 시대에 살고 있죠.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는 먹을 게 별로 없었습니다. 별로 먹을 게 없어서 간식거리가 없었어요. 정말 간식거리를 먹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이, 정말 아주 드물게 간식을 먹을 수가 있었는데요. 먹을 것이 없다 보니까, 아껴 먹어야 했습니다. 어쩌다가 껌이 하나 생기면, 껌을 씹다가 벽에 붙여놓고, 상 밑에 붙여놓고, 그리고 다시 씹었어요. 그런 경험이 저만 있습니까? 다 그랬습니까? 더러워 죽겠네요. (정말) 그랬어요. 그것만이 아니고, 떡이라든지 과자라든지, 이런 것들이 어쩌다 생기면, 그것을 아껴 먹고 싶어서, 제가 그것을 숨겨두고, 보물함 같은 데다가 숨겨놓고, 그것을 나중에 먹겠다고 숨겨놓았다가 나중에 보니까 썩었어요. 썩었는데 버리지도 못하고, 그걸 먹다가 배탈 나고, 그런 시대에 살았던 라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음식을 아끼는 것은, 그렇게 먹지 않고 남겨두면 되는 게 아니라, 음식은 빨리 먹어야 아끼는 겁니다. 아끼다가 썩어버렸고, 아끼다가 먹지 못하게 되는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음식을 아끼는 것은, 먹지 않고 숨겨두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아직 먹을 수 있을 때 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는 것이 아끼는 것이죠. 그냥 숨겨두는 것은 오히려 허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먹지 않고도 썩지 않게 만들 그런 방법을 인류는 개발해 냈는데요. 무슨 방법으로 오래 보장하는 보관하는 방법을 배웠을까요?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거나 혹은 냉장 방법을 이용해서 음식을 오랫동안 보존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껴 먹을 수가 있었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저장하거나 보존하는 방법도 한계가 있어서, 이것을 오랫동안 아낄 수 있는 아주 획기적인 방법을 인류가 개발해 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화폐입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팔고 그것을 화폐로 대체해서 화폐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한다면, 10년 뒤에 20년 뒤에 다시 그 화폐를 가지고 내가 남겨두려고 했던 그것을 다시 살 수 있기 때문에, 화폐라고 하는 것은 아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 것이죠. 그래서 이 화폐를 통해서 아끼는 방법을 개발한 것은 어쩌면 인류가 가진 개발해낸 아주 놀라운 아끼는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화폐라고 하는 것은 계속 그 가치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늘 하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화폐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늘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죠. 인플레이션 때문에 늘 물건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어서, 화폐를 바꾸어 놓으면 10년 뒤에 20년 뒤에 똑같은 양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그 화폐로 100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10밖에 살 수 없는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더 잘 보존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투자를 하는 것이죠. 투자를 해서 가치를 보존하고 더 나아가 증식시키는 그런 방법을 통해서, 그래서 아끼는 방법을 개발해 낸 게 우리 사람들이 개발해 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가 인 것이고, 어떻게 우리는 아끼는가? 어떻게 아낄 수 있는가? 경제적 결정을 통해서 아끼는 법을 우리들은 개발해 낸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그렇게 아끼는 방법이 완전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화폐를 통해서, 또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물건들을 아끼지만, 그것이 완전하지 않다 말씀하시면서,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부터 20절의 말씀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어디에 쌓아두라?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이 세상의 아끼는 방법은 한계가 있는 겁니다. 완전하지가 않는 겁니다. 썩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도둑질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빼앗길 수 있는 그런 불완전한 방법인데, 썩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고 빼앗기지도 않고 온전하게 보관하는 아끼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의 보물 어디에 쌓아두라? 하늘에 쌓아두는 방법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죠.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는 얘기는 헌금을 많이 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주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하늘에 쌓아두는 방법이 되겠지만, 그것을 포함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늘에 쌓아둘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죠.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고, 주님께서 내게 사명을 주신 그 사명에 따라 사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재물을 아끼는 방법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에베소서 5장의 말씀에서는 재물을 아끼라 말씀하지 아니하고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월을 아낄 수 있을까요? 2025년에 벌써 6개월이나 흘러버렸습니다. 이 흘러가는 이 세월 어떻게 하면 아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 세월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음식 가만히 놔둔 음식은 썩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용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 시간은 아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허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까?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잘 사용하는 겁니다. 어떻게 세월을 아낄 것인가? 세월을 잘 사용해야 잘 아끼는 방법인 것이죠. 세월은 화폐처럼 대체제가 없어요. 음식이나 다른 이 세상에 그런 이런 물질들은 화폐라고 하는 것으로 대체해서 그래서 보관이라도 할 수 있지만 세월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떠한 방법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세월을 아낄 수 있는가 잘 사용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어떻게 하면 세월을 잘 사용할 수 있습니까?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습니까? 에베소서 5장 17절의 말씀에서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세월을 잘 사용하는 방법 세월을 잘 아끼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무슨 방법으로 아낄 수 있어요?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하나님께서 어떠한 뜻을 갖고 계신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를 이해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물건을 사면 완성품이 오지 않고 조립하는 물건이 옵니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마다, 그 설계도를 보면서 설명서를 보면서 조립해야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여러분들은 그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이해하고 그리고 조립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설명서를 읽어보지 않고 무작정 조립부터 하는 편입니까? 저처럼 저는 설명서를 읽고 차분히 앉아서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나 봐요. 그래서 오면 무조건 조립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조립하다 보면 잘못 조립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나요? 다시 풀어야 돼요. 다시 풀고 처음부터 그때 다시 설명서를 읽으면서 조립을 하다 보면 시간을 2배로 써버리고 3배로 써버렸구나 후회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우리는 설명서를 읽지 않을까요? 귀찮기 때문이죠. 조급하기 때문이에요. 왜 안 읽죠? 알 것 같기 때문에 그래요. 하지만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물건을 조립하게 되면 결국 다시 풀어야 되고, 시간은 더 많이 걸리고 하지 않았던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을 겪게 되는 것을 우리가 경험해서 많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하나님께서 주신 조립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의 인생을 헤쳐나가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쿠팡 택배로 배달해 주셨어요. 우리의 인생을 삶을 배달해 주셨어요. 그걸 가지고 우리의 인생을 잘 조립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삶대로 살아야 될 텐데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인생을 허비하지 아니하고 세월을 허비하지 아니하고 세월을 아끼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생각나는 대로 조급하게 그냥 귀찮아서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아무렇게나 막 인생을 살아버린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의 세월을 허비하는 것이고 결국 낭비하는 그런 모습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점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설명서가 있습니다. 설명서가 무엇이죠? 하나님의 말씀이 설명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계획서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이 하나님의 말씀의 설명서에 따라서 우리들의 삶을 조각하고 우리들의 삶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고 한다면 때로는 귀찮을 수도 있고 때로는 따분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그냥 막 나가고 싶지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조립해 나간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세월을 아끼는 삶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나가는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라고 하는 이 말씀 우리가 분명하게 새겨들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설명서가 너무 어려워요. 조립품 설명서는 요즘에는 말도 안 써 있고 그림으로만 돼 있어서 그 그림을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상하게 설명서를 만들어 놓았는데, 성경 66권은 너무나도 방대하고 너무나도 길고 너무나도 이해할 수 없고 너무나도 어려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금요 성경 공부에 오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라.” 이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일부 드러나 있는데요.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술 취하지 말라는 겁니다. 흥청망청 밤새도록 술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해서 출근도 제대로 못하고 그런 흥청망청한 삶을 살다가는 결국 망하는 거예요. 우리의 젊은 시절에 우리의 삶을 함부로 살다가는 흥청망청 살다가는 망하는 겁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가 그런 삶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충만함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 차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우리가 이해하고, 그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성령 충만함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게 성령 충만한 삶이라고 믿습니다. 원하기는 이곳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매 순간순간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정말 세월을 아끼며 사는 그런 우리 모든 인생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5장 19절에서부터 20절의 말씀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도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와 찬미와 찬송을 부르라고 하는 이야기는 맨날 복음 성가를 부르고 있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시와 찬송과 찬미를 부르라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아낄 수 있는가? 불평하고 원망하며 쓰러질 것이 아니라, 고난과 아픔 가운데서 좌절하고 무너져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하나님의 그 계획과 섭리를 생각하며, 우리의 가는 길을 누가 아시나니? 하나님이 아시나니. 내가 모르는 그 길을 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파멸로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우리를 단련하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게 우리의 시간을 아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5장 21절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우리 성도들은 다스리고 주장하고 위에서 무엇인가 내 주장을 하는 자세로 사는 게 우리 성도의 바른 자세가 아니고 성도의 바른 삶의 자세는 피차 복종하는 자세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복종하고, 서로 서로 내 주장보다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먼저 존중해 주고, 내 뜻을 부모님의 뜻에 맞대서 싸우는 게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의 의견들에 귀를 기울이며 보이차 복종하는 것이 가정에서 교회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내가 속한 그 자리에서 우리가 알바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피차 복종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게 그게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5절에서 28절의 말씀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주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무엇이 되어야 되고,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김을 받으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섬기는 자로 오셨다고 하는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섬기는 자의 모습 비자 복종하는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이고, 세월을 아끼는 것이라고 하는 그 지혜의 말씀을 우리가 마음속에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타깝게도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신에게 주어진 한 달란트를 그냥 묵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인이 주었던 그 시간에 일을 하지 않고 그냥 놀아버린 것이죠. 세월을 허비해버린 것이죠. 왜요?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노예 멘탈리티가 있는 겁니다. 노예 멘탈리티는 뭡니까? 시키면 겨우 조금만 억지로 하는 것이고 시키지 않거나 보지 않으면 쉬는 겁니다. 노는 겁니다. 일하는 게 좋은 겁니다. 그냥 그 일을 상관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 노예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다 허비해 버리고 만 것이죠.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가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해야 되는 거예요. 내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사람이 시켜서가 아니라, 사람이 나에게 돈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것으로 이익을 얻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해야 되는 것이죠.
에베소서 6장 5절에서부터 8절의 말씀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누구께 하듯 하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사람을 섬기는 걸 주님께 섬기는 듯 해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알바 가서 일을 한다면 시간 때우는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내가 최선을 다해서 내가 봉사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일을 해야 되는 거에요. 나에게 어떤 일이 주어졌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내가 최선을 다해서 가장 좋은 결과를 나타낼까를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군대에 갔다면 도망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자원하고 내가 먼저 봉사하고, 내가 먼저 손을 들고 내가 먼저 섬기는 자가 되어서 거기서 충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예요. 누가 그랬습니까? 요셉이 그런 거예요. 요셉은 노예로 끌려가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어요. 내가 왜 이런 곳에 끌려와서 이런 노예가 되었나 억울하다 생각하지 않고, 놀랍게도 요셉은 거기서 최선을 다해서 일을 했습니다. 그 결과 창세기 39장 2절에서부터 5절 말씀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로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심으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사람들을 만나면 전부 요셉이 되고 싶대요.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대요. 그런데 요셉처럼 안 해요. 피하고 도망다니고 숨고 안 해요. 그러면서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대요. 꿈 깨라고 하세요. 그런 요셉에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억울하죠. 죄 지은 것이 없는데 억울하게 감옥에 갔어요. 하지만 그 감옥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어요. 세월을 아꼈어요. 그에 대한 기록이 창세기 39장 21절에서 23절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심에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김으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누가 그랬습니까? 다윗이 그랬어요. 다윗은 사울을 섬길 때 도망다니면서 민초들의 우두머리로 우두머리로 살 때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 거죠. 다니엘과 새 친구들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이곳은 적국이요 이곳은 내가 싫어하는 이방 민족이기 때문에 내가 충성할 수 없다 한 것이 아니라 그 느부갓네살 왕을 향해서 충성을 다했어요. 우상을 섬기라는 것은 거부했지만 그 외에 모든 것은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듯이 주를 섬기듯이 느부갓네살을 섬긴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딱 두 종류로 구분이 됩니다. 한 사람은 가능하면 일을 피하려고 하고 안 하려고 하고 일을 안 하려고 도망 다니는 사람, 또 한 사람은 시키지 않아도 자원하고 무엇인가 주어지면 최선을 다하고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똑같은 기간이 지났지만 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이런 능력도 생기고 저런 능력도 생기고 이런 재능도 생기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자꾸만 늘어나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어요. 한 사람은 이것도 안 하고 저것도 안 하고 다 피하고 다 도망 다니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시킬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똑같은 시간에 완전히 다 자신의 인생을 허비해 버린 그런 안타까운 인생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두 사람의 그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보지 않아도 뻔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과가 좋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건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주어진 1년, 2025년이 벌써 반절 지났습니다. 그동안 세월을 허비하셨습니까? 열심히 사용하셨습니까? 후회스러운 게 많죠. 저도 후회스러운 게 많아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회개하고 엎드리고 주님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이제 하반기를 맞이하게 될 텐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설명서를 따라 믿음으로 살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