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쓴 것인데요. 오늘 읽은 말씀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쓴 편지 글의 일부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바울 사도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사역을 했던 교회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면서 순회했기 때문에 어느 한 지역에서 그렇게 오래 있지는 못했는데요. 그래도 이 고린도에는 그런 대로 좀 오래 머물면서 거기서 씨를 심으며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전한, 정말 애정이 가는 교회가 고린도 교회라고 할 수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서 떠난 뒤에 고린도에서부터 들려오는 소식들을 듣게 됐는데요. 고린도에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그렇게 유쾌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문제 저런 문제, 어쩌면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오늘날의 교회들보다도 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교회가 바로 고린도 교회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멀리 떠나서 그런 고린도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바울의 마음 가운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아마 실망스러웠을 겁니다. 수고하고 애썼는데,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했는데 겨우 이 정도 모습밖에 보이지 못하느냐? 정말 수준이 떨어지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많은 실망감도 들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참 고통스러운 그런 마음도 가졌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낙심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절 말씀을 보니까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여러 문제들이 있는데, 그런 실망스러운 소식, 절망스러운 그런 느낌들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의 고백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나는 낙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렇게 바울 사도가 **”낙심하지 않는다, 절망하지 않는다”**고 하는 그 말은, 바울 사도의 마음 가운데 좀 슬프거나, 바울 사도의 마음 가운데 낙심하는 마음, 정말 기운이 빠지는 그런 느낌, 그런 감정들이 하나도 생기지 않고 늘 밝고 기쁘고 행복했다고 하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잘 이해해야 될 텐데요. 바울 사도가 이런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고린도 교회에 대한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바울 사도의 마음에 아마도 슬픈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아요. 기운이 빠지기도 했을 것 같아요. “아, 내가 수고하고 애썼던 것이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하면서 낙망하는 마음도 분명히 들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정말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우리들의 마음이 어떻게 되죠? 힘들죠. 정말 고통스럽죠.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서 이런 감정의 동요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감정이 우리의 환경에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저는 슬픈 일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고 그냥…” 하면서 그렇게 지낼까요? 아니요. 정말 안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우울하고 슬프고 기운이 가라앉고 그래요. 기쁜 일이 있으면 기쁠 수 있고 행복하겠지만, 그러나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힘든 일을 만나게 되면, 그러면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은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지 그것을 가리켜서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고요. 우리의 목표가 있다고 한다면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치매에 걸려야 가능한 일이고 우리가 아무런 정상적인 정신적인 기능을 할 수 없을 때라야 그렇게 가능한 것이지,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환경에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이 상황 가운데서 **”나는 낙심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 감정적으로 내가 흔들리지 않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실망스럽지만, 낙망하는 그런 마음들이 없는 게 아니지만, 내가 아예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면 여러 가지로 고통스럽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가 그런 상황 가운데서 어떤 결심을 했는가? “저런 나쁜 사람들, 저런 실망스러운 사람들!” 하면서 다시는 내가 고린도 교회와 관계하지 않고 이제는 고린도 교회와 정을 끊어버리겠다, 아예 관계를 하지 않겠다 그런 결심을 내린 것이 아니라, 슬픔 가운데서도 내가 기운을 차리고 더 복음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교회를 바르게 할까” 최선을 다하는, 그런 “낙심하지 않겠다, 내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떻게 바울 사도는 이런 상황 가운데서 그렇게 **”낙심하지 않겠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읽은 고린도후서 4장 7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 자기 자신만 바라본다고 한다면 내놓을 게 없어요. 무엇과 같아요? 질그릇과 같은 거죠. 그래서 우리 자신만 바라보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고, 내놓을 수 없고, 뭔가 부족한 것밖에 안 돼요. 하지만 이 질그릇 속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 보배가 담겨져 있다는 거! 그렇기 때문에 이 질그릇에 보배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죠. 만일 나 혼자뿐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거들떠 보겠습니까? 아니요. 거들떠보지 않아요. 소망이 없어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고 복음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한다면, 질그릇 가운데 보배가 있어서 그래서 우리 자신이 가치가 있는 것이고,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낙망하지 않게 되는 줄 믿습니다. 특별히 오늘 제2여전도회 회원들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 우리가 이 세상의 길을 갈 때 어려운 일들을 많이 만날 것이고, 환경을 따라서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 이 세상의 질그릇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우리들의 모습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구나, 보배를 우리가 가지고 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며 오히려 감사하고 힘을 얻는, 능력을 나타내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이 어떤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죠. 뷔페 식당에 가면 사람들이 어디에 많이 몰리나요?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으로 모입니다. 똑같은 그릇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음식이 있고, 사람들이 별로 몰리지 않는 음식이 있는 것이죠. 맛있는 음식, 정말 값진 음식들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그 안으로 막 몰려드는데, 무엇 때문에 몰려들어요? 그릇 때문에 몰려들어요? 아니요. 그릇 때문에 몰려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정말 좋은 것이 담겨 있으면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우리의 모습이 정말 연약하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품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보배를 우리가 품게 될 때, 우리가 가치 있는 인생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늘 살아가면서 이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는데요. 두 번째, 두 가지 방법으로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낙망하지 말고 용기를 얻기 위해서 기억을 해야 되는 것이죠.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것이 아니라, 보배를 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소중하게 보신다. 때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내놓을 게 있을까?” 늘 생각하게 되겠지만, 그러나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보배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얻고 힘을 얻어야 되는 것이죠.
특별히 언제 그런 우리 안에 보배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됩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 깨달아야 되는 거예요. 오늘 읽은 말씀 고린도후서 4장 8절에서부터 10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인생의 길을 가는 동안에 우겨쌈을 당하는 것 같은 그런 힘든 일이 있을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있지만, 그때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되는가? 우리가 우리 혼자가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 보배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존귀한 자요.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가운데 소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했어요.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빌립보 감옥 속에 들어가게 됐을 때, 바울 사도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저 차가운 감옥 속에 갇히게 되었을 때, 바울 사도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이 떠오를 수 있겠습니까?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했는데 왜 나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가? 왜 나는 이렇게 힘든 일, 고생을 하면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왜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보호해 주시지 않는가?” 하면서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처한 상황만 보면 절망스러울 수 있죠. 하지만 그 순간에 바울 사도는 괴로워하고 슬퍼한 것이 아니라 찬송을 했어요. 감옥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이렇게 찬양이 가능했습니까?
내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우리가 질그릇 속에 보배를 가졌기 때문에 찬양할 수 있는 것이고, 찬양할 때 놀랍게 하나님께서 그 바울 사도를 건져주시고, 또 그 일로 인해서 그 빌립보 감옥의 간수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일을 하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에는 이것이 정말 잘못된 것이고 우리 내 앞길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 일을 통해서 복음을 더 전하게 하고, 능력을 나타나게 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놀라운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죠.
따라서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도 우리가 빌립보 감옥에 갇히는 것과 같은 상황들을 만날 때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보배를 생각하면서 찬양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는 어떤 때 기억을 해야 됩니까? 우리가 탁월한 게 아니라 주님 때문에 우리가 산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면서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질그릇에 불과해요. 별로 뛰어난 게 아닙니다. 보배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거죠. 우리 가운데서 보배를 걷어내버리면 우리는 그냥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역시 겸손해야 됩니다. 고통을 당할 때에도 이 말씀을 기억해야 되지만, 잘 나갈 때에도 기억해야 되는 겁니다. 어떤 때 우리는 일들이 잘 풀릴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 쳐줄 때가 있습니다. 모든 일들이 다 잘될 때가 있을 텐데, 그런 순간에 “야, 내가 잘 됐구나!” 하면서 내가 무엇인가 된 줄로 생각하고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지게 되겠는데, 그 순간에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되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안에 보배로우신 우리 주님께서 계신 것뿐이고, 나는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자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10절, 오늘 아침에도 읽어본 말씀이시죠.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 자신의 모습을 자랑할 게 아닙니다. 질그릇은 자랑해 봤자 질그릇이에요. 질그릇이 다른 걸로 변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우리 안에 있는 보배가 소중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소중하게 보신다고 하는 사실을 보면서, 더욱더 겸손하고 **”나와 같은 이런 연약한 자에게 주님께서 오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죠. 복음을 전할 때도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나처럼 연약한 질그릇 가운데도 오셨고, 주님께서는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도 역사해 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게 될 때 그 복음 전파가 제대로 된 전파가 되는 것이고, 오늘 우리 예수비전교회도, 특별히 오늘 제2여전도회 회원들 한 사람 한 사람,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가 연약한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이 사실을 날마다 날마다 고백하는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의 발걸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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