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잠언 18장 9절의 말씀에서 자기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는데요. 게으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패가하는 사람의 형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무슨 얘기냐 하면 패가하는 사람이 무슨 말이냐 하면 집을 무너뜨리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게으른 사람은 그냥 게을러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는 정도, 게으르기 때문에 할 일을 못하고 있는 그 정도, 일을 안 하는 정도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게으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집을 무너뜨리는 자와 사실은 똑같다. 집을 무너뜨리는 사람의 형제라는 얘기는 그 사람이 곧 집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라는 그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게으른 것은 어떤 것인가? 게으른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엄청난 파괴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과 똑같다, 그런 표현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미국에 살 때 드라이브를 하고 쭉 가다 보면 필라델피아 시내에 여러 집들이 있는데 그 집들 가운데 어느 한 집이 빈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도로가에 잘 위치해 있는, 로케이션도 그런 대로 나쁜 집도 아닌데 비어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어떤 집이었는가? 폐가가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창문은 깨지고, 그리고 집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씩 둘씩 다 망가져 버리고 완전히 폐가가 되어 버려서 마치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정말 사람이 살 수 없는 그런 집으로 망가져 있는 집이 하나 있는 것을 보면서 제가 그 집 옆을 지나가면서 제 마음 가운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사람이 살지 않는 저 집은 왜 저렇게 완전히 폐가가 되고 말았을까? 사람이 사는 집은 저렇게 폐가가 되지 않는데 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저렇게 반드시 폐가가 되고 마는 것일까라고 하는 그런 질문이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그렇게 그냥 사람이 살지 않는 그 정도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이 완전히 폐가가 되어 버리고 망가져 버리고 완전히 살 수 없는 그런 곳으로 자꾸만 변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날 빗물이 새게 되는데,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면 빗물이 새는 것을 막을 것이고, 빗물이 샜던 그 부분에 대해서 물을 닦을 것이고 대처를 하는 것이죠. 뭔가 보완을 하고 수리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 집은 계속해서 그대로 잘 유지가 되는 겁니다. 모든 것들이 다 어느 정도 깨끗하게 관리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은 어떻게 되는가? 비가 내려서 물이 조금 새게 되었을 때 그 빗물 새는 그 부분을 아무도 처리하지 않는 겁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썩어 나가기 시작하고 구멍이 뚫리게 되고, 짐승들이 들어오게 되고, 거미줄이 생기게 되고, 결국 모든 것들이 다 변해가 버리는 거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무너지고 망가지고 완전히 폐가가 되어 버리는 그런 단계를 거치게 된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게으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게으른 사람은 일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놔두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그 사람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결국 집이 망가져 버리고 무너져 버리고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그런 폐가와 같은 상태가 되어 버린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잠언의 말씀을 우리가 읽는다고 한다면 집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게으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지런하게 그때그때마다 수선하고 관리하고 청소하고 모든 것들을 다 잘 관리해야만 그래야 집이 깨끗하게 유지가 될 수 있다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만 하더라도 매 주일마다 매주 청소를 하고 있어요.
우리 교우들이 참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서 교회 청소하겠다고 토요일마다, 바쁘면 금요일에 오시기도 하고 해서 그렇게 자원봉사하시면서 교회를 갈고닦고 쓸고 해서 예쁘게 이렇게 관리를 하기 때문에 이 건물이 그대로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결국에는 망가져 버리고, 결국에는 사람들이 있을 수 없는 그런 황폐한 곳으로 바뀌어 버리게 된다고 하는 게 어쩌면 우리가 잘 기억해야 될 그런 진리의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게으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모든 것들을 잘 관리도 해야 되고, 수선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고칠 것은 고치고, 변화시킬 것은 변화시키고, 그래서 열심히 그 모든 것들을 잘 관리하게 될 때 그 집이 세워져 나간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집은 어떻게 세워집니까? 집은 어떻게 해야 좋은 집으로 유지가 됩니까?
그것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관리하고 청소하고 그리고 모든 것들을 다 잘 해 나갈 때 그 집이 세워질 수 있는 것이죠.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가 헛되다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27편 1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해 주셔서 집은 어떻게 세워져 나가는가, 성은 어떻게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 시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해서 교훈해 주시는 말씀이,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는다고 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하는 그 교훈의 말씀을 시편 127편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그런 영적인 교훈을 해 주고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근심과 걱정 가운데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리고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2절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밤잠 자지 못하면서 깨어 있어서 그냥 불철주야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야만 집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 버리고 그리고 편안한 잠을 자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우리가 집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일은 없고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되겠죠?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오해하시면 안 되는데요.
시편 127편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리고, 우리의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하나님께서 세워 주셔야만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집이 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 버려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시편 127편에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죠? 너무나도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그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야 된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 시편 127편의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님께서 들려주셨던 말씀과 맥을 같이 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서 권면하시는 말씀이 근심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에서부터 34절의 말씀에 보면 이렇게 교훈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그러니까 이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얘기입니까?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보험을 들 필요 없다는 얘기인가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그랬으니까 은퇴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말씀인가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오늘 수고하고 애를 써서 우리가 미래를 위한 저축을 하고 대비를 하는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하는 그런 의미인가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시편 127편의 말씀도 그리고 마태복음 6장의 말씀도 우리의 노력이 전혀 쓸데없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먹이시니까, 오로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니까 하나님만 믿으면 된다, 하나님께만 다 맡겨 버리고 우리는 전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수고하고 애쓴 다음에도 여전히 불안에 떨고, 여전히 걱정하고 근심 가운데 그렇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 저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저 들에 나는 꽃도 입히시는 그 하나님께서 저 공중의 새보다도 들에 피는 꽃보다도 훨씬 더 소중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잘 보호하시겠는가를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담대하게 정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는 것,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많이 해야 되는 거예요. 많이 해야 돼요. “게으르게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나는 농사짓지 않아도, 나는 내 일을 하지 않아도, 우리 집을 세우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 줄 거야” 하면서 하나님께 다 해 줄 거라고 하는 사실을 그렇게 핑곗거리로 삼아서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는 그런 게으른 사람이 되는 것은, 그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에서 벗어난 잘못된 신앙,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편 127편에서 말씀하기를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 보호하시지 아니하면 수고가 헛되다고 말씀하고 있는 그 시편 127편의 말씀 바로 앞에 있는 시편 126편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시편 126편 5절, 6절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근심과 걱정하지 말라, 그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을 믿고 쉬라고 하는 127편의 말씀과는 정반대처럼 보이는 말씀이 시편 126편의 말씀 가운데 있는 거예요. 시편 126편에서는 어떻게 하라고요? 일하면서 어떻게 해? 울면서 일을 하라. 울면서,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참고 인내하며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수고하며 땀을 흘리는 자가 무엇을 얻을 것이다? 가을이 되면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올 것이다,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고, 씨를 뿌려야 될 그 순간에 게으르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씨를 뿌린, 그 수고에 땀을 흘린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 가을에 추수의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들려주고 있는 이 말씀.
우리가 성경에 어느 한 구절 한 구절에만 꽂혀서 우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게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균형적인 감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는데,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내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입니까? 우리 가정을 세우는 일이든지,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라든지, 아니면 사업체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라든지, 아니면 우리가 무슨 사명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든지 정말 최선을 다하고 게으르지 아니하고 열심을 다할 때, 결국 마지막 때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오는 기쁨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열매가 지금 당장 맺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고 하는 그 말씀대로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많은 기쁨과 많은 수확의 열매가 있을 줄로 믿고,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편 127편의 말씀 바로 뒤에 있는 시편 128편에서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시편 128편 2절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누가 복이 있는 사람이에요? 수고하고 애쓴 사람이, 수고한 만큼 먹는 게 그게 복이라는 얘기.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하나님 알아서 해 주세요. 나는 몰라요.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 주시겠죠?” 하면서 손 놓고 게으르고 있는 게 그게 바른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은 엉터리 믿음인 거야. 잘못된 믿음인 거예요. 참된 믿음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최선을 다해서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게으르지 않고 사역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될 바른 자세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떻게 우리 가정이라고 하는 집은 어떻게 세울 수 있겠습니까? 게으르면 집을 무너뜨리는 거라고 했는데, 집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 가정이라고 하는 집을 잘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정답은 게으르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우리 가정이 행복이 꽃피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가정 가운데 정말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게 하기 위해서, 밖에서 힘든 일이 있고 밖에서 우울한 일이 있어도 집 안에만 들어오면 행복해지고 근심과 걱정이 다 물러가고 정말 따뜻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해야 되는 거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이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사랑의 저축을 해 가야 되는 거예요. 우리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사랑의 저금통에 사랑을 자꾸만 쌓아서 그래서 조그마한 그 사랑의 그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게 될 때, 그래서 그 가정이 게으르지 아니할 때 이 가정이 아름답게 세워지게 있을 줄로 믿습니다. “왜 우리 집은 늘 괴로운가, 왜 우리 집에는 들어가기가 싫은가, 왜 우리 집은 맨날 이렇게 참 재미가 없는가, 왜 우리 집은 이렇게 슬픈 일들만 있는가” 그렇게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부터 내가 지금까지 우리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아니하였다라고 한다면, 지금이라도 사랑의 씨를 하나씩 하나씩 심어주는 그런 게으르지 아니한, 최선을 다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야 될 줄로 믿습니다.
남편을 향해서, 아내를 향해서, 자녀들을 향해서, 부모님을 향해서 따뜻한 말 한마디,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 한마디, 고맙다고 하는 말 한마디, 사랑한다고 하는 말 한마디. 우리 가정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가 최선을 다해서 조그마한 봉사와 섬김과 도움의 손길들을 내어 주는 일들을 게을리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게 될 때 그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으로 세워져 나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또한 우리 믿음의 집은 어떻게 세워져 나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이 어떻게 하면 믿음이 더 점점점점 좋아질 수 있을까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으르면 믿음의 집이 박살이 나 버리게 되어 있는 거예요. 가만 놔두면 망가지게 돼 있는 겁니다. 가만 놔두면 박살 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라고 하는 집을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 우리들의 믿음이 점점점점 세워져서 정말 흔들림이 없는 그 믿음의 집을 우리들에게 세우기 원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믿음의 노력들을 해 나가야 되는 것이죠. 기도하는 일에, 찬송하는 일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에 여러 가지 믿음의 그 노력들을 해 나갈 때 우리의 믿음들이 점점점점 성장해 나갈 수 있고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하며 기도하지 아니하고, 찬송하지 아니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게을리하고, 모든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게을리하기 시작할 때, 성경 말씀을 읽는 것도 게을리하기 시작하고, 주를 위해서 섬길 수 있는 봉사의 일들도 하나씩 둘씩 내려놓고 게을리하게 될 때 우리들의 믿음이 자꾸만 무너져 간다고 하는 것, 아무것도 안 하면 그대로 현상 유지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면 파괴되어 간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믿음의 집을 잘 세워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게으르게 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열정을 다해야 되는데 게으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포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잠언 26장 13절의 말씀에 보면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이유가 뭐예요? 집 문을 나간다고 하면 사자가 우리를 잡아먹으면 어떡하나,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길거리에서 사자를 만나면 어떡하나. 무서운 공포심 때문에 그래서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 노력하려고 하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염려가 먼저 생기는 겁니다.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닐까? 이러다가 헛수고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다가 오히려 그냥 나만 실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거짓된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주는 그런 거짓된 공포 때문에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뒤로 물러서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게으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주는 그런 거짓된 공포를 무찌르러 버리고 주님만을 믿고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도와주옵소서. 주님,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내가 지금 한 번도 해 보지 아니하는 그 발걸음을 내딛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저 바다를 향해서 내가 항해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거친 작은 파도를 보면서, 그 파도가 무서워서, 항해하기가 무서워서 두려워 떨고 항해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 옛날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들은 파도가 무서워도 배를 타고 쭉 나가게 되었을 때 신대륙을 발견하고 세계를 정복하면서 어마어마한 일들을 해냈지만, 그러나 파도가 무서워서 전혀 움직이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어느 곳에도 자신들의 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냥 그곳에서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너무나도 평범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도 이러한 두려움과 여러 가지 걱정들이 많이 있을 텐데, 우리가 주님 앞에 모든 것들을 다 근심과 염려와 걱정을 다 맡겨 버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을 우리 마음 가운데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게으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사랑을 할 때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있으면 그때부터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열심을 내는 것이죠. 그 열심을 냈던 사람이 성경에 있습니다. 누가 그랬죠? 보아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룻기 3장 1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나오미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보아스는 룻이라고 하는 여인을 보면서 그 여인이 사랑스러웠어요.
그래서 그 룻이라고 하는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쉬지 않고 열심히 모든 일을 다해서 결국에는 그 룻이라고 하는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기까지 쉬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했던 것이,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겁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보아스라고 하는 사람은 게으르지 아니한 거죠. 어쩌면 게으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아직 그만큼의 열정이 없는 이유가 뭡니까? 그만큼의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기도 제목이 무엇이어야 하냐면 사랑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옳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우리 가정을 향한 사랑, 우리 교회를 향한 사랑,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을 회복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면서 나가야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종들이 있었는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보든 말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주인이 멀리 떠나 있는 상황, 주인이 부재한 상황, 주인이 감독하지 않고 있는 그 상황 가운데서 그 종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또 다른 다섯 달란트, 또 다른 두 달란트를 얻게 된 것이죠. 이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할 수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 열심히 일했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이 일을 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은 나중에 주인이여 주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인이여, 나는 주인이 아주 굳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주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심지 않는 데서 거두고, 내 것을 착취해 가고, 나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 그저 나를 빼앗아 가기만 하는 그런 원수로 생각했어요.”
주인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없고 아무런 고마움도 없고 아무런 마음도 없었던 그 종이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어떠한 마음의 상태였는가를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겁니다. 아,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일할 수 있었을까? 이 사람들은 고마움으로 일했을 것 같아요. 주인이 나를 인정해 줘서 이만큼의 다섯 달란트를 맡기고 두 달란트를 맡겼구나. 주인이 나를 거두어 주었지. 내가 전쟁의 포로가 되어서 전쟁에서 죽을 수 있는 그런 상황에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주인이 나를 거두어 주고, 주인이 나로 하여금 이 집에 있게 해 주고, 주인이 나를 이렇게 인정해 주어서 그래서 이 집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고 하는 그 놀라운 사랑을 마음속에 생각하게 될 때, 그 주인의 은혜가 감사해서 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이 보든 안 보든 최선을 다하게 돼요.
따라서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게으르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해야 될 제목이 있다고 한다면 “주님, 사랑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우리가 믿음의 진보를 얻기 위해서도, 믿음의 집을 세우기 위해서도 주님에 대한 사랑 회복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향해서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그 사랑의 열정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단 한시도 쉬지 않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시고, 그것을 이사야 9장 6절에서 7절의 말씀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니라. 그 정사와 평강에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사랑이 그것이 꺼지지 않았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그 보혈의 공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그 구원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우리라고 한다면, 우리가 게으르게 적당하게 하면서 믿음의 집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그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해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 두 달란트 받은 종들처럼, 다윗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고 저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떠온 그 세 명의 용사들처럼,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고 하는 그 사실을 마음속에 기억하면서, 사람들이 박수 쳐주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가 여부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고 하는 그 사실을 깨닫고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