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장차 나타날 영광 (롬 8:18-27)


여러분 오늘 말씀에 집중하기 위해서 퀴즈를 하나 좀 내보려고 합니다. 퀴즈 맞춰보세요. 예. 다음의 단어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음의 단어들, 첫 번째 보증 —전세와 관련된 문젠가?—, 두 번째 증언자, 세 번째 보혜사. 이쯤 되면 답이 나오죠. 정답은요? 그렇습니다. 성령. 성령.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되시고 증언자가 되시고 또 보혜사가 되신다. 성령 하나님께서 증언자가 되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성령께서 무엇을 증언하신다 그랬습니까? 지난주 말씀을 잘 기억하시면 로마서 8장 16절에 뭐라 그랬어요?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는 증언자가 되신다 그랬습니다. 오늘은요,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지난주에 읽은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 뭐라고 하는지 어떻게 이어지는지 좀 살펴볼 필요가 있겠죠. 오늘 몇 절부터 우리가 읽었습니까? 18절부터 읽었죠. 그러면 지난주의 마지막 본문은 어디예요? 17절. 예. 17절 다시 한번 같이 볼까요? 시작.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입양되었으니까 양자, 서자 또는 친자녀보다 못한 자라는 뜻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가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상속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라는 말은 뭐냐, 그건 곧 그리스도와 형제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와 한 형제가 된 우리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상속받는 우리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그 영광을 상속받으시는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무엇도 상속을 받아야 한다?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지난주에 우리가 읽은 말씀의 결론입니다. 그렇죠? 자 여러분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고난을 받을 우리들에게 그 고난을 왜 받느냐라고 물으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있기 때문이라고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영광.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 우리들에게 두 가지가 주어지는데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영광이고 하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이라는 거죠. 그러면 여러분 이 두 가지가 딱 주어지면 벌써 머릿속으로 주판알이 —요즘 컴퓨터 시대라 주판 다 버리셨나요?— 예 벌써 계산이 딱 벌써 돌아가고 계신 분 계세요? 이거 뭐가 더 크지? 고난이 더 커요 영광이 더 커요?

이거 비교해 봐야 택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고난만 크고 영광은 별거 아니면 “이 난 그 길을 아니 가오리다” 그렇죠. 그러나 바울은 뭐라고 말합니까? 보세요. 오늘 본문의 18절에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뭐가 더 크단 말이에요? 예 그렇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현재 우리가 받는 고난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다. ‘크다’라는 말은 안 나와 있지만 예 ‘크다’라는 말이 여기 결론으로 나와 있는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비교할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비교할 거리도 아니다 그런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래의 영광이 현재의 고난을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장차 주어질 영광이 그저 단순히 우리 개인의 차원으로만 설명되어지지 않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광이 그저 “우리가 죽고 나면 좋은 데 가겠지” 정도로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그저 우리가 이 육신을 떠나면 영원히 저 영적 세상으로 가겠지”라고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장차 우리에게 주실 이 영광은 우리 한 개인의 차원을 뛰어넘는 겁니다. 우리의 영적 차원만을 넘어서는 겁니다. 그것은 영과 물질 모두를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그것을 우주적인 영광, 우주적인 미래, 우주적인 종말에 대한 약속이라고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피조물이 지금은 고난을 받고 지금은 탄식하고 있지만 그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신 새 피조물 된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교회와 더불어 그들이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영광의 회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영광의 자유를 누릴 피조물이 지금은 어째서 탄식하고 있는가? 왜 그들이 고통받게 되었는가? 여러분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이야기 기억나세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낙원에서 추방당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어떤 결과가 일어났는지 보세요. 창세기 3장 17절을 한번 보시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죄는 누가 지었어요? 아담이 지었죠. 그런데 그다음에 보세요.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죄는 아담이 지었는데 저주는 누가 받아요? 땅이 받아요. 땅이. 죄는 아담이 지었는데 저주는 땅이 받고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말은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그 죄의 영향으로 저주를 받아 고통과 탄식 가운데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증거가 뭐냐 우리가 평생 수고해야, 땀을 흘려야, 노동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피조물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아담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피조물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요즘 여러분 피조물이 고통받고 있는 것이 보이세요? 땅이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부산에도요 여기저기 개발하겠다고 땅을 파는데요, 땅을 파면 그거 그냥 개발을 할 수가 없어요. 우리 부산은 개발만 하면 뭘 지어요?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만 짓는데 지어도 그냥 보통 높이 짓는 게 아니고 더 높이 더 높이 짓고 싶어 하는데 아파트 지으려고 땅을 파면 땅이 오염돼 있어요. 예.

저기 남천동 거기도 땅이 오염돼 있고 여기 요 앞 바닷가도 땅이 오염돼 있고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돼 있어요. 원래 그랬을까요 그 땅이? 아니요 아니요. 하나님이 아름답게 주신 땅인데 땅이 오염돼가지고 땅이 화학물질 오염 물질 기름에 찌들어가지고 사람이 그냥 살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렸어요. 바다도 마찬가지죠. 바닷속에 미세 플라스틱이 가득 차가지고 물고기도 거북이도 고래도 뱃속에 뜯어보면 플라스틱이 우글우글우글합니다. 우리가 그 물고기 잡아서 먹으면 우리가 뭘 먹는 거예요? 미세 플라스틱을 먹는 거예요. 하늘에는 뿌연 미세먼지, 황사로 가득 차 있고 시커먼 연기가 예. 놀라운 얘기 해드릴까요? 제가 미국에서 살 때는요 펜실베이니아에서 살 때는 와이셔츠 일주일에 며칠을 입어도 하얀 와이셔츠 그냥 하얬어요. 깨끗했어요. 한국에서는 하루만 입고 돌아다니면 와이셔츠 깃이 시커매집니다. 왜 그럴까요? 공기가 달라서 그래요. 하늘이 나빠도 너무 나빠요.

피조물들이 간절하게 고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19절에 보세요.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들이 왜 고대할까요?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서 그 영광의 자유를 누릴 때에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피조물들도 함께 누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하나님의 샬롬(Shalom)을 회복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구속의 은총이 그저 단순히 인간의 영혼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그 영광의 자유를 함께 누리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오늘 성경 본문에 보니까 이 피조물들이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을 우리에게 아주 리얼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20절부터 한번 보세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이 그 영광의 자유가 우리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아니다 모든 피조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 갈망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허무에 굴복하는 현실 속에 있습니다. 이 허무란 뭡니까? 덧없는 거죠. 무익한 겁니다. 쓸데없는 겁니다. 우리의 존재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쓸데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겁니다. 마치 전도서 1장에 보면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헛되다. 예 전도자가 히브리말로 ‘헤벨(Hebel)’이라고 하는데요,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겁니다. 왜 이 모든 것이 헛되다고 전도자가 말합니까? 세상 가운데 영원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썩어짐의 종 노릇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 나고 자라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은 쇠하고 늙고 죽고 그리고 죽으면 썩어갑니다. 썩어 냄새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그 모든 것을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썩어지고 고통의 심판 아래에 있기 때문에, 사망의 종 노릇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헛되고 그 피조물들이 결국은 탄식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그들도 갈망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많은 철학자들이나 동양의 종교가들은 그저 그냥 그렇게 나고 자라고 쇠퇴하고 늙고 죽고 썩고 또 나고 자라고 하는 이 순환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한 것이고 영원히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라고 그래서 ‘스스로 자(自)’ 자에 ‘그럴 연(然)’ 자 자연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 영원한 윤회의 고리가 반복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그 윤회의 고리가 영원하다고 말했고 그 윤회의 고뇌 고리 순환 자체가 우리에게 고통이고 번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니르바나(Nirvana)’, 열반이라고 하는 것,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그 윤회의 고리를 끊고 그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불교의 철학이고 그것이 동양적인 사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것이 썩어지기 위해 창조한 것이 아니고 단지 하나님의 샬롬,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깨뜨린 우리의 불순종 죄로 말미암아 그것이 썩어짐의 종 노릇 하게 되었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신실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 그 구원과 회복의 과정을 계획하셨고 그 구원과 회복,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의 역사를 통해서 그 생명을 회복하게 하시고 결국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그래서 결국은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두신 참된 질서 속으로 회복되고, 그 참된 질서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샬롬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놀라운 역사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날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영원히 썩지 아니할 새로운 몸으로 우리들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도 영원히 썩지 아니할 참된 창조의 질서 안에서 그 영광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이 피조물의 탄식과 그리고 미래의 영광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피조물은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나타남과 함께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그 영광의 미래, 그 자유에 동참하는 겁니다. 어떤 게 큽니까?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이 현재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겁니다. 마치 여러분 해산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를 낳는 이 여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그러니까요 여러분 한 번 아이를 낳은 여인들이 그 아이를 낳으며 고생할 때는 “내가 두 번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없다” 그러면서 막 어떤 여자분은 제가 봤는데 남편의 머리를 막 쥐어뜯으면서 “이 웬수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줘서” 막 울부짖는 걸 봤어요. 그런데 놀라운 건요 그 해산의 고통으로 낳은 그 아기, 그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쵸?

여러분 땅 위에 사람의 생명이 태어난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습니까? 그 생명을 바라보면서 그 생명이 우리 가정에 함께하는 걸 보면서 그 아이를 키워가면서 금방 잊어버려요. 뭘 잊어버려요? 예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려요. 그러니까 그 예쁜 생명을 보면서 금방 여자들은 아이를 또 낳고 싶어진대요. 그래서 둘째도 낳고 그래서 셋째도 낳는 거죠. 그러니까 넷째인 저도 이 땅에 존재하는 거죠. 저희 어머니가 저희 큰형님 딱 낳으시고는 “아이고 내가 두 번 다시 이거 못하겠다 난 절대 안 해” 그랬으면 제가 이 세상에 존재했겠어요? 예 그러니까요 마치 그와 같이 해산의 고통처럼 고통스럽고 우리가 이 땅의 삶을 탄식하며 지나가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약속하신 피조물들이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그날의 영광이 너무나 크고 아름답고 귀하기 때문에 그 영광을 바라보며 피조물들이 그 탄식 가운데서도 오늘도 각자의 삶을, 생명을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피조물들이 탄식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탄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23절에 보십시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의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어요. 바울은 지금 우리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성령 받은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여러분 구원도 받았고 성령도 받았는데 받을 것 다 받았는데 우리가 속으로 어떻게 하며 살고 있다고요? 탄식하며 살고 있대요. “아니 나 구원받았네 기쁘게만 살 것 같은데.” 아니 성령도 주셨는데 왜 여전히 우리는 탄식하며 삽니까? 예 그렇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우리 몸의 속량함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몸의 구원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의 본성도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자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육체적으로 연약합니다. 우리는 질병에 시달리고 우리는 늙어갑니다. 마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우리도 그렇게 병석에 누웠다가 죽어갑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고 암 안 걸리세요? 여러분 예수 믿는다고 치매 안 걸리세요? 어떤 분들은 예수 잘 믿었던 분이 치매에 걸려서 나중에 “아이고 권사님 예수님 믿으세요?” 물어보면 몰라요. 그러면 “아니 예수 믿은 게 무슨 소용이 있어?” 그러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럴까요? 아무 소용이 없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물론 우리는 육신, 연약한 육신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 몸은 완전히 속량함을 받은 완벽한 몸이 아니에요. 우리는 아직도 몸의 속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5장 2절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그러니까 우리가 새로운 처소를 덧입게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몸, 우리가 덧입을 새로운 몸은 이제 죽을 것이 아니라 생명에 삼킨 바 된 온전히 새로운 생명의 몸인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새로운 몸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하루 이 연약한 육신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를 탄식하게 하는 건 우리의 연약한 몸뿐만이 아니죠. 우리의 본성,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우리의 본성,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는 우리의 본성, 우리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구원받았으면서도 뭐라고 탄식했어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전히 구원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죄의 본성 때문에 영을 따르지 못하고 내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며 그 죄의 지배함을 받는 나의 삶을 바울은 울부짖고 있다는 겁니다. 자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탄식합니다. 피조물들만 탄식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탄식하면서 살아갑니다. 성령 받은 우리들도 탄식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몸이 변화될 온전히 새로운 몸을 입을 그날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우리의 이 아직도 불완전한 죄의 영향을 받는 본성이 온전히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 됨의 온전한 성품을 드러낼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온전히 드러내게 되기를 간절히 갈망하면서 탄식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이 탄식은 여러분 절망과 좌절의 탄식이 아니라 사실은 복된 탄식입니다. 왜요? 예수님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렇죠.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애통하고 그 연약함 가운데 온전히 되는 그날을 갈망하며 사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은 분명합니다. 두 가지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잖아요. 하나는 우리 몸의 구속이 온전히 이루어질 겁니다. 우리는 그 마지막 날 주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은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겁니다. 이 연약한 육신, 타락한 몸으로부터 해방될 겁니다. 아침마다 약 한 줌씩 털어 넣어야 그래야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이 연약한 몸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게 될 겁니다. 우리의 연약한 몸은 놀라운 능력으로 부활의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나서 다시는 죄가 우리의 몸 안에 거하지 못하게 하고 그 죄가 우리의 본성을 움직이지 못하는 삶이 될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속자로 하나님 나라의 모든 권리를 누리게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거지가 왕자로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 거지의 행동거지와 그 거지의 모든 삶이 아직은 왕자답지 못하잖아요. 어색하잖아요. 우리들이 딱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 부르심을 받았는데도 우리는 예수님처럼 온전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날, 주님이 우리의 몸을 구속하시는 그날 우리를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완성시키실 겁니다. 그날이 되면, 그날이 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 모습과 같이 변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그때 일어나는 일이 바로 19절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모든 세상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심을 확인하는 거예요. 우리를 보고 “와 하나님의 자녀가 저기 있다. 예수님 닮은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들이 저기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청지기로, 그들이 하나님의 동산지기로 우리들을 다스릴 때 우리들 가운데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 하나님의 샬롬, 하나님의 질서, 하나님의 생명이 역사할 거야.” 누가 이렇게 노래합니까?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이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탄식하고 고통받는 피조물 가운데서 그들의 그 탄식과 고통을 우리가 제거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자녀라 하는 우리들이, 기독교인이라 하는 우리들이, 예수 믿는다 하는 우리들이 오히려 세상의 혼란과 고통을 더하고 오히려 세상에 피비린내를 더하고 눈물을 뿌리게 하고 피조물들을 울부짖게 만드는 일을 우리 손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일들이 너무 많이 펼쳐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우리 자신들을 보면서 깨달을 때마다 우리들은 또다시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고 내 자신 때문에 애통하고 탄식하는 이 현실. 그래서 이 세상은 피조물들의 탄식과 또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탄식으로 얼룩져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날, 우리의 몸이 온전한 구속을 입고 우리의 본성이 온전히 하나님의 맏아들의 형상을 닮게 되는 그날, 그날이 분명히 올 것을 믿습니다. 그날이 이루어지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자유를 선포하게 되고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확인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누리는 그 영광의 자유를 우리뿐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 온 땅과 바다와 하늘과 그 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함께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샬롬의 세상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믿는다고 대답을 하셨는데 그날이 올지 안 올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내가 그렇게 변화될 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여기 몇 주 전에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여기 앉아 있는데요 신부에게 제가 한번 묻고 싶어요. 저 신랑이 어떻게 변화될 줄 알고 이 사람에게 평생을 맡깁니까? 어떻게 확신하고 평생을 약속했습니까?

여러분은 우리의 미래가 이 영광으로 가득 찬 미래가 될 것을 어떻게 확신하며 사십니까? 자 여러분 성경은 우리가 이미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23절을 보십시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라고 말을 하고 있죠. 우리가 뭘 받았다고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이미 받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이미 부어져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어떻게 부어져 있느냐? 우리가 장차 받을 유업, 미래에 우리에게 주실 영광에 대한 ‘보증’으로 누구를 주셨다고요? 성령을 주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보증이 얼마나 중요해요? 여러분 여기 보증 섰다가 보증 잘못 섰다가 망하신 분 한번 손 들어보세요. 망한 경험이 있으신 분. 보증 정말 중요하죠. 여러분 전세 정말 내가 전세 집 한번 얻어보겠다고 ‘영끌’해가지고 막 정말 다 끌어모아가지고 보증금 맡기잖아요.

전세 보증금 그 전세 보증이 얼마나 중요해요 예. 그런데 우리의 미래에 우리에게 주실 그 모든 영광의 보증이 되신 분이 누구라고요? 그분이 바로 성령이시라는 겁니다. 성령이 그 모든 미래의 영광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는 말은 뭐냐, 우리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삶이 바로 우리에게 주실 그 영광의 유업에 대한 ‘맛보기’ 맛보기 맛보기 아세요? 여러분 맛보기 좋아하는 분 계세요? 시장 가면 꼭 맛보기 드셔보셔야 되는 분. 저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 딸기를 살 때는 꼭 맛보기 먹어봐야 돼요. 왜냐하면 딸기는 겉모양 봐서 몰라요. 어떤 딸기는 조그맣고 보잘것없어 보이는데 먹어보면 너무너무 달고 맛있는데, 어떤 딸기는 크고 막 새빨갛고 막 너무 맛있을 것 같아서 막 사 왔더니 먹어봤더니 오이 맛이에요. 오이 맛. 전혀 단맛도 없고 향기도 없고 그래서 뭐가 필요해요? 맛보기가 필요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장차 누릴 그 영광의 자유에 대한 맛보기가 되어 주신다.

아멘. 오늘 이 땅 가운데서 탄식하며 고통 가운데 우리가 살아내지만,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과 함께 살아가면 그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 그 영광의 자유에 대한 맛보기를 허락하셔서 우리가 그 맛보기를 통해 그날을 확신하며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완전해지는 그 영광의 날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맛보아 알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하게 사는 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성령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겁니다. 자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 대해서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구원은 지금 눈에 보이는 구원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서 살아가요.

지금 당장 내 눈에 보이고 내 손에 잡혀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꽝이라고 생각해요. 내 삶은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내 삶이 여전히 육신 가운데 썩어질 것처럼 보이니까 “아 나는 결국 썩어져 없어지고 마는 것이구나.” 지금 내 삶이 이 땅에서 조롱받고 무시당하고 고난받으니까 소위 성공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아 나는 또 그렇게 이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 그렇게 끝나는 거구나.” 그러나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소망하고 바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러나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참고 어떻게 기다립니까? 여러분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것을 맛보아 알게 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루하루 우리가 그 영광의 자유를 맛보며 고대하며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게 하시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이렇게 도우신다 그러고 있어요.

26절부터 보시죠.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탄식이 또 나오네요. 오늘 잘 기억해 보세요. 오늘 탄식하는 주체가 세 번 나왔어요. 처음에 누가 탄식한다고요?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고 있다 그랬어요. 또 누가 탄식해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탄식하고 있다 그랬어요. 여러분 세상에 탄식뿐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고 있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까지도 그 피조물의 탄식에 대해서 답이 되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해결 방식이 해결 방법이 되어 주는 게 아니라 우리도 같이 탄식하고 있다는 거예요. 거기서 그러니까 세상은 얼마나 안타까워요. 그러니까 세상은 얼마나 비극적이에요. 모든 피조물들의 탄식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탄식이 같이 어우러져서 더블, 트리플 막 그냥 온갖 비극적인 일로 가득 찬 것 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뉴스만 틀었다 하면 맨 그냥 전부 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문제다 문제다 문제다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전부 다 부정적인 얘기만 나와요. 그럼 이놈의 세상 어떻게 살아갑니까? 결국 그렇게 탄식과 고통 속에서 살다가 끝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소망이 여기 있습니다. 탄식하는 것이 피조물뿐이 아니라 탄식하는 것이 우리들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 가운데서 우리들과 함께 피조물과 함께 탄식하고 계시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피조물의 탄식이 가득한 세상일지라도 우리가 그 피조물 속에서 대답은커녕 함께 탄식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라도, 그러나 놀라운 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 속에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와 함께 탄식하시며, 심지어 기도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우리들에게 우리를 대신하여 그분이 기도하고 계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어느 한순간도 이 피조물을 그 썩어짐의 종 노릇 하도록 그냥 버려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그냥 그 피조물과 함께 썩어짐에 함께 무너져 내리고 함께 탄식하며 그 탄식과 고통의 눈물 속에 그냥 사그라져가는 인생으로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령 하나님 지금도 피조물의 고통 속에 함께 계십니다.

우리 성령 하나님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 참으로 애통하는 마음으로 그 고통당하는 피조물을 바라보며 그 고통받는 이웃들 속에서 함께 아파하며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며 눈물로 구하며, 그러나 그 목에 태인 십자가를 붙들고 더 이상 내게 힘이 없어서 주저앉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그래서 더 이상은 기도할 힘조차 없다고 그렇게 무너져 내려 있는 저와 여러분 가운데 그 순간에도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살피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마음을 살피시는 우리 하나님 앞에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오늘 탄식과 고통과 눈물 속에서도 이 피조물 가운데서 함께 그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이 하루하루를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그것만 계산하면 이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게 낙숫물 한 방울로 바위가 뚫리는 것, 그것을 바라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성령님을 붙드십시오. 우리 성령님과 함께하십시오. 성령님이 주시는 힘을 의지하십시오. 성령님이 이끄는 길로 순종하며 따라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물방울 한 방울로도 바위가 뚫리는 것을 보게 되실 겁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바위가 언젠가는 깨진다는 것을 주님 다시 오실 그날에 확인하게 되실 겁니다.

여러분, 그 영광이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보다 얼마나 큰지를 분명히 기억하시며 우리의 탄식, 피조물의 탄식, 그저 이 땅에 우리끼리 버려져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 탄식하시는 성령 하나님 여전히 역사하시며 우리를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고, 하루하루 그 성령을 따라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세워나가는 그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탄식할지라도 울며 고통당할지라도,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노래했던 시편 기자들처럼 그렇게 그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하나님 나라의 씨를 뿌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The Guarantee and the Longing for Glory

To help us focus on today’s Word, I’d like to start with a quiz. Try to guess what the following three terms common point toward. First: Guarantee. Is it related to rental? Second: Witness. Third: Advocate (Helper). By now, the answer should be clear. The answer is? That’s right—the Holy Spirit. The Holy Spirit is the guarantee of our salvation, our witness, and our Advocate. What does it mean that God the Holy Spirit is a witness? What does He testify to? If you remember last week’s message from Romans 8:16, what did it say? “The Spirit himself bears witnes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children of God.” The Spirit is the witness who testifies that we are God’s children. Today, through the Apostle Paul, we will look more specifically at the work the Holy Spirit performs.

To do that, we need to look at how the previous passage ended. We began today with verse 18, so let’s look back at verse 17. Romans 8:17 (ESV) says: “and if children, then heirs—heirs of God and fellow heirs with Christ, provided we suffer with him in order that we may also be glorified with him.” You have become children of God. Being adopted doesn’t mean we are “lesser” than natural children; it means we have become heirs who will inherit the Kingdom of God. To be an heir of God means to become brothers with Christ.

As fellow heirs with Christ, just as He is the Son of God and inherits His glory, we are told that we must also inherit one more thing: we must also suffer with Him. This was the conclusion of last week’s passage. But think about it: why must we suffer? Paul tells us today that it is because there is a glory to be revealed to us. Suffering and Glory. For us, as children of God in Christ, two things are given: the glory found in Christ and the suffering shared with Christ. If these two are placed before you, is your internal calculator already running? Which one is bigger? Suffering or Glory?

We have to compare them to choose the path, right? If the suffering were massive and the glory was nothing, we would say, “I will not walk this path.” But what does Paul say in verse 18? “For I consider that the sufferings of this present time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that is to be revealed to us.” Which is greater? Yes, the glory to be revealed is incomparably greater than our present suffering. Paul says they aren’t even worth comparing. Why? Because the future glory is a marvelous thing that far surpasses present pain. Paul shows us that this glory isn’t just explained on a personal level.

Some think the glory in Christ just means “going to a good place after we die.” Others think it only means our souls departing to a spiritual world. But the glory promised to us surpasses the individual level. It goes beyond just the spiritual dimension. It includes both the spirit and the material—all of God’s creation. Some theologians call this the promise of Cosmic Glory or the Cosmic Future. God’s creation will not simply be discarded.

The Bible teaches that while creation is suffering and groaning now, it will eventually reach a place of glory alongside God’s people—the “new creations” who are His children. Creation itself will enjoy the restoration of glory. Then why is creation groaning now? Why is it in pain? Do you remember the story in Genesis 3? Adam and Eve were expelled from Paradise for disobeying God. Their relationship with Him was broken. Look at the result in Genesis 3:17 (ESV): “And to Adam he said, ‘Because you have listened to the voice of your wife and have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you, “You shall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because of you; in pain you shall eat of it all the days of your life.’” Who sinned? Adam did. But look at what follows: “Cursed is the ground because of you.”

Adam sinned, but the ground was cursed. This means that because of Adam’s sin, the earth and all creatures within it fell under a curse, living in pain and groaning. The proof of this is that we must labor and sweat all our lives just to eat. Creation has been suffering from Adam’s time until now. Can you see the suffering of creation today? The land is rotting. Even here in Busan, when they dig up the earth for development, they find it contaminated. We just build apartments, apartments, and more apartments, higher and higher—but the ground beneath them is polluted.

The land in Namcheon-dong is contaminated, the beaches nearby are polluted; it has become land where humans cannot simply live. Was it always like that? No. God gave us a beautiful earth, but it has become soaked in chemicals, pollutants, and oil. The sea is the same, filled with microplastics. When we open up fish, turtles, or whales, they are stuffed with plastic. When we eat those fish, we are eating microplastics. The sky is filled with fine dust and yellow dust. When I lived in Pennsylvania, a white shirt stayed white for days. In Korea, the collar turns black after just one day because the air is so bad.

Creation is eagerly waiting for something. Look at verse 19: “For the creation waits with eager longing for the revealing of the sons of God.” Why does creation wait? Because when the sons of God appear and enjoy the “liberty of glory,” creation will share in that liberty, and a marvelous history of restoring God’s Shalom will take place. The Bible clearly states that God’s work of salvation and grace is not just about saving human souls, but about all of His creation enjoying that freedom of glory together. Today’s text describes the present suffering of creation very realistically. Look at verses 20 and 21: “For the creation was subjected to futility, not willingly, but because of him who subjected it, in hope that the creation itself will be set free from its bondage to corruption and obtain the freedom of the glory of the children of God.” Creation is longing for this, but it currently exists in a reality of “futility.” What is this futility? It is vanity. It is being useless. It’s the feeling that our existence and everything we do is for nothing. It’s like Ecclesiastes 1—”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In Hebrew, this is ‘Hebel’. Why does the Preacher say all is vanity? Because nothing in the world is eternal.

Everything is racing toward death. The Bible calls this “bondage to corruption.” Everything that is born and grows eventually withers, ages, dies, and rots. It smells of decay. Because everything is under the judgment of pain and the slavery of death, all is vanity. Creation is groaning, waiting for the children of God to appear so they too can reach that freedom. Many philosophers or Eastern religions say this cycle of birth, aging, and death is “natural” (자연, Jayeon—literally ‘it is so by itself’). But biblically, this is not the case.

The eternal cycle of reincarnation is not God’s will. In Buddhism, this cycle of Samsara is seen as eternal pain and suffering. Thus, Nirvana—salvation—is the cutting of that cycle and escaping existence itself. But the Bible tells a different story. God did not create things to rot. It was only our sin and disobedience that broke the Shalom and subjected creation to corruption.

And ultimately, the faithful Creator planned a process of salvation and restoration. Through the work of life in Jesus Christ, He restores that life so that God’s purpose for creation is fulfilled. Every creature will be restored to the true order God intended, enjoying Shalom in a right relationship with Him. The Bible clearly teaches us that this marvelous history is taking place. On that day, we will be reborn with new, incorruptible bodies like the resurrected body of Christ, and all creation will be reborn as beautiful life, praising God’s glory within the true order of creation.

Paul shows us both the groaning of creation and the future glory. Creation is groaning, yet it hopes to participate in the future freedom that arrives with the revealing of God’s children. The glory to come is incomparably greater than present pain. Think of a woman in labor. How great is the pain of childbirth? I’ve seen women in such agony that they scream they will never do it again. But the amazing thing is that once the baby is born—that precious, lovely new life—the joy is so immense.

Is there anything better on earth than the birth of a human life? Looking at that life and raising that child, the mother quickly forgets. Forgets what? The pain of labor. Looking at that beautiful life, she wants to have another child. That is how I, a fourth child, exist! If my mother had stopped after the first, I wouldn’t be here. In the same way, though we pass through life groaning like the pains of childbirth, the glory of the day when creation reaches freedom is so great and precious that even in the groaning, life protects itself and moves forward. Believe this.

Paul says it’s not just creation groaning, but we, the children of God, are groaning as well. Look at verse 23: “And not only the creation, but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groan inwardly as we wait eagerly for adoption as sons,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You have become children of God. Paul says we have received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Simply put, we are people who have received the Holy Spirit. You’ve received salvation and the Spirit—you’ve received it all—yet how are we living? We are living groaning inwardly. You might think, “I’m saved, shouldn’t I only be happy?” We groan because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is not yet complete. Our salvation is not finished. Our sinful nature has not yet fully disappeared.

We are still physically weak. We suffer from disease and we age. We lie on sickbeds and die in a way that looks no different from those who aren’t saved. Do Christians not get cancer? Do they not get dementia? I’ve seen devout believers get dementia and not even recognize the name of Jesus when asked. Some ask, “What was the point of believing?” Does it mean it was for nothing? No. We still live in weak flesh. Our bodies are not yet the fully redeemed, perfect bodies. We are waiting for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In 2 Corinthians 5:2-4 (ESV), Paul says: “For in this tent we groan, longing to put on our heavenly dwelling… so that what is mortal may be swallowed up by life.” Believe that the new body God gives us will not die, but will be a body of new life, swallowed up by life.

We live each day in this weak flesh, waiting for that new body. And it’s not just our weak bodies that make us groan; it is our fallen nature, which is still influenced by sin.

This is why Paul, even though he was saved, groaned: “Wretched man that I am! Who will deliver me from this body of death?” He knew he was in God’s grace, yet he cried out because his nature still struggled against the Spirit. So, we groan. Not just creation, but we who have the Spirit groan. we groan with a longing to put on a perfect new body and for our incomplete nature to be transformed to fully reflect the character of Jesus Christ. This groaning is not one of despair, but a blessed groaning. Why? Jesus said, “Blessed are those who mourn.”

The glory to be revealed is certain. The Bible speaks of it in two ways. First,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will be completed. On the last day, we will be reborn with a body like the Lord’s resurrected body. We will be set free from this fallen, weak flesh. We will be free from the body that needs a handful of pills every morning just to function. Our weak bodies will put on the clothes of resurrection with marvelous power, and sin will no longer dwell within us. God has adopted us. We have become His children. He allows us to enjoy all the rights of the Kingdom as heirs.

But even if a beggar is changed into a prince, his behavior and lifestyle might not yet be “princely.” It feels awkward. That is exactly like us. We are called as children of God and brothers of Christ, yet we aren’t perfect like Him. So on that day, when He redeems our bodies, He will complete us in the perfect image of Jesus Christ. The Bible clearly says we will be changed to be like Him. And that is when verse 19 happens. All of creation will look at us and see the “revealing of the sons of God.” They will see us and say, “Look, there are the children of God. There are the ones who truly reflect the image of God and look like Jesus.”

“When they rule us as God’s stewards and gardeners, true peace, Shalom, order, and life will work within us.” This is the song of all creation. How are we living now? Instead of removing the groaning and pain of creation, sometimes we—who call ourselves Christians—add to the confusion and pain of the world. Do we not sometimes cause more bloodshed, tears, and groaning through our own hands? We see this reality and beat our breasts, weeping for our own failures. This world is stained by the groaning of creation and the groaning of God’s children.

But I believe that the day our Lord promised will surely come—the day our bodies are redeemed and our nature fully resembles the Firstborn Son. When that day is fulfilled, we will proclaim the liberty of God’s glory. Not just us, but the land, the sea, the sky, and every creature will enjoy that liberty and praise His glory in a world of Shalom. You say you believe, but how can you be so sure? How are you certain you will be changed? We have a newly married couple here; I want to ask the bride: How did you know your groom would change for the better? How did you trust him with your life?

How can you live certain that our future will be full of this glory? The Bible says we have already received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Look at verse 23: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What did we receive? The “firstfruits.” God’s Spirit has already been poured into us. How? As a “guarantee” (earnest money) for the inheritance we will receive and the glory to come. How important is a guarantee? Has anyone here lost everything because of a bad guarantee? A security deposit for a lease (Jeonse) is so important; you gather every penny you have for it.

The One who is the guarantee for all the future glory is the Holy Spirit. What does it mean that the Spirit is the guarantee? It means the life we enjoy in the Spirit is a “taster” or a “preview” of the glory to come. Do you like free samples? When I buy strawberries at the market, I have to try a sample. You can’t tell by looking at them. Some look small but are incredibly sweet, while others are huge and red but taste like cucumbers. You need a “taster.” The Holy Spirit is the taster of the freedom of glory we will eventually enjoy.

Amen. We live today groaning in pain, but if we live with the Spirit inside us, He allows us a taste of that future freedom so that we can live each day certain of that day. The Spirit makes us “taste and see” the glory of being perfected as God’s children. This is why it’s important to be filled with the Spirit. This is why it’s important to experience the Spirit daily. Verse 25 says: “But if we hope for what we see not, then do we with patience wait for it.” The salvation we hope for is not something currently visible. But many live only for what they can see now.

They think it has to be in their hands immediately or it’s a failure. But that’s not what life is. Because our lives look like they are rotting in the flesh, we think, “I am just disappearing.” Because we are mocked or suffer in this world, we think, “I’m just ending in this pain.” No. The Lord’s promise is for what is invisible. How do we wait for the invisible with patience? Know that it is through the Holy Spirit—who lets us “taste” it—that we can live by faith, longing for and looking toward that freedom.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Look at verse 26: “Likewise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For we do not know what to pray for as we ought,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ings too deep for words.” There is that word “groaning” again. Remember today: there are three subjects groaning. First, all creation is groaning. Second, we, the children of God, are groaning. The world is full of groaning. Even we don’t have the answers; we are groaning right along with creation. The world looks tragic, full of double and triple groaning.

You turn on the news and it’s all “death, problems, difficulty.” How do we live in such a world? Do we just end in groaning and pain? But there is a marvelous hope here. It’s not just creation or us groaning; believe that God’s Spirit is groaning with us within creation and within us. That is where our hope lies.

Even if the world is full of creation’s groaning and we have no answers, the marvelous thing is that the Holy Spirit has not abandoned us. He has come into us to groaning with us, and even when we don’t have the strength to pray, He prays for us. Hallelujah! Our God is not one who abandons His creation to be a slave to corruption. Believe that He does not abandon you to crumble and fade away in tears of pain. The Holy Spirit is with creation in its pain even now.

The Holy Spirit is with you and me even now, as we look at suffering creation with mourning hearts, hurting with our neighbors and seeking the righteousness of God’s Kingdom with tears. Even when the cross on our shoulders feels too heavy and we collapse, unable to even pray, believe that at that very moment, the Spirit is with us, examining our weakness, wiping our tears, and praying for us before God. Because the Spirit is with us, we can walk the way of the cross day by day, looking toward the day of glory even amidst the groaning.

Living each day as God’s children, following the values of His Kingdom, might look like “hitting a rock with an egg” if you only use a worldly calculator. It might feel like waiting for a single drop of water to pierce a stone. But hold onto the Holy Spirit. Be with Him. Rely on the strength He gives. Follow the path He leads. Then, you will see a rock pierced by a single drop of water. On the day the Lord returns, you will see that the rock eventually broke, even if it was hit by an egg.

Remember how much greater the glory is than our present suffering. Our groaning and creation’s groaning are not left alone on this earth; the Holy Spirit, who groans with us, is still at work, leading us to the liberty of glory. Believe this, and like the Psalmist who sang, “Those who sow in tears shall reap with shouts of joy,” I pray in the name of the Lord that you will be those who sow the seeds of God’s Kingdom each day, looking toward that day of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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