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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망대와 견고한 성 (잠 18:10-11)

오늘 우리가 잠언서 18장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잠언서 18장 10절 말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견고한 망대이기 때문에 누가 그리로 달려가는가, 의인이 달려가서 거기서 그 안에 망대로 들어가서 거기서 안전함을 얻는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다고 했으니까 사람들 가운데 의인이 되어야만 그렇게 하나님께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다고 하는 그런 의미라기보다는, 하나님께 달려가는 바로 그런 사람이 의인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견고한 망대이기 때문에 그 망대 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가 안전함을 얻는다고 이렇게 비유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는데, 도대체 망대가 무엇이길래 우리들에게 안전함을 주는 것일까요? 우리가 지금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망대하고는 거의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죠, 우리는 망대를 별로 경험해 보지 않습니다. 도대체 망대가 무엇이길래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서 안전함을 얻는, 이 망대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까 한번 우리가 살펴보았으면 좋겠는데요. 사사기 9장 50절에서부터 55절의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데베스에 가서 데베스에 맞서 진 치고 그것을 점령하였더니 성읍 중에 견고한 망대가 있으므로 그 성읍 백성의 남녀가 모두 그리로 도망하여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간지라. 아비멜렉이 망대 앞에 이르러 공격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그것을 불사르려 하더니 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리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아비멜렉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 하니 그 청년이 그를 찌름에 그가 죽은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각각 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아비멜렉이라고 하는 사람이 데베스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군대를 이끌고 가서 그 성읍 사람들을 다 잡아버리고 다 무찌르기 위해서 다 나갔는데 그 성 사람들이 전부 망대 속으로 숨어 들어가 버렸어요.

대 성읍 사람들이 전부 망대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망대의 문을 잠가버리고 그 위로 올라가 버렸고 그것을 어떻게 불을 질러서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그 망대 위에서 여인이 던진 맷돌 짝에 이 아비멜렉의 두개골이 깨져서 죽어버린 것이죠. 정말 최고의 장수였던 이 아비멜렉이 정말 싸움이라고 하면 남한테 뒤질 것이 없는 정말 뛰어난 장수였던 이 아비멜렉이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는가 한 이름 없는 여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죠. 위에서, 망대 위에서 던진 맷돌에 맞아 죽게 되는 이야기가 에피소드가 사사기 9장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그 무서운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할지라도 그 성읍 사람들이 전부 망대 속으로 들어가고 그래서 수비를 하고 또한 대응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그리고 그 전쟁 가운데서 이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정말 요새와 같고 정말 전략적인 가치가 뛰어난 그 건축물이 바로 망대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따라서 하나님이 누구인가? 여호와의 이름이 무엇인가? 우리들에게는 마치 망대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그 망대 안으로 들어간다고 한다면 우리가 보호를 받을 것이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 망대 속에 우리가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잠언서 18장 10절 말씀이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망대가 중요하기 때문에 망대를 쌓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옛날에는 힘 있는 사람들이 옆 마을을 쳐들어가서 그들이 농사지은 거 다 빼앗아가 버리고 조금만 힘이 있으면 다른 지역에 가서 거기서 양과 소들을 다 빼앗아 오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고 있던 그 시대 사람들은 어느 때에 왜적이 쳐들어와서 자신들의 모든 수고와 모든 땀방울을 헛수고로 돌려버릴까, 언제 우리가 이런 적의 공격을 받아서 다 모든 것을 다 털려버릴까 근심과 걱정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망대를 쌓으려고 엄청나게 많이 노력한 것이죠. 망대를 쌓아놓고 대비를 하는 겁니다. 망대를 쌓아놓고 왜적의 침입을 대비하려고 했던 것이 고대 세계 사람들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 최초로 망대를 쌓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성경에 보면 제가 망대라고 표현하니까 잘 모르시겠다고 생각을 하실 것 같은데, 인류 역사상 최초로 망대를 쌓으려고 했던 사람은 노아의 홍수 후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시날 평지로 가다가 이제 망대를 쌓기로 했어요. 그게 뭐죠? 바벨탑을 쌓기로 한 거예요. 바벨탑. 바벨탑을 쌓으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는데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있었던 두려움이 무엇입니까? 그 어떠한 공격 혹은 홍수, 어떠한 위험 앞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안전해질 수 있겠는가, 그 탑을 쌓아야 되겠다. 우리나라 성경에서 바벨은 탑이라고 번역해 놓고 다른 곳에는 망대라고 번역해 놓아서 바벨탑과 망대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둘 다 히브리어로 똑같은 단어입니다. 믹돌이라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인데요. 그래서 이 믹돌을 쌓는 것이죠. 망대를 쌓는 겁니다. 탑을 쌓는 겁니다. 그래서 그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늘 끝까지 그 망대를 세우고 탑을 세워서 그래서 어떠한 왜적의 침입에도 우리가 보호를 받고 설사 홍수가 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그 길을 모색하겠다 했던 것이 바로 바벨탑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 망대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를 위험에서부터 적의 공격으로부터 또는 여러 가지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이 망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요. 오늘 잠언서 18장 10절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면 그런데 진짜 망대가 무엇이냐라고 하는 것이, 여호와의 이름이 견고한 망대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이냐면 다른 망대들은 견고한 망대가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사람이 쌓은 망대, 사람이 지은 그 망대들은 어느 정도 우리를 보호해 줄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우리를 안전하게 해줄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의 완벽한 망대가 될 수가 없고 그 망대는 견고한 망대가 될 수가 없고, 무엇이 가장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망대인가 무엇이 우리들에게 가장 견고한 망대인가, 하나님이 우리의 완전한 망대이시고 하나님이 진짜 우리의 보호자이시며 우리의 피난처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잠언서 18장 10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망대라고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안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때때로 이 망대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벨탑 같은 경우에는 그 바벨탑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는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시니까 그들은 더 이상 쌓을 수가 없고 그냥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아비멜렉의 경우, 조금 전에 아비멜렉의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데베스 사람들은 그 망대 속으로 들어가서 아비멜렉을 무찌르기도 했지만 그러나 데베스 사람들이 아니라 세겜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가, 이 아비멜렉이라고 하는 사람이 쳐들어가서 그 망대가 있었지만 그 세겜 사람들을 천 명이나 죽여버리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망대가 있다고 해서 다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망대가 있는데 승리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데는 망대가 있어 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고 그냥 망가져 버리는 그런 경우도 있다 할 수가 있겠습니다.

기드온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사사기 8장 17절에 보면 브누엘의 망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망대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들에게 안전을 담보해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그야말로 가장 믿을 만한 완벽한 망대일 수 있겠는가 하면 완전한 망대가 될 수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우리가 참으로 피난처로 삼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인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안전한 피난처라고 하는 사실을 믿고 주님에게로 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이름이 견고한 망대니까 우리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다고 했는데요.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달려가야 하나님에게로 갈 수 있는 것일까요?

망대야 있으니까 망대 속으로 가면 되는 것이고 망대가 저기 있으면 저쪽으로 가면 되고 망대가 이곳에 있으면 이쪽으로 가면 되고 망대는 눈에 보이니까 우리가 갈 수가 있겠지만, 어떻게 하나님에게 갈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에게 우리가 어떻게 갈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까? 여호와의 이름이 망대라고 했으니까 하나님의 이름에게 우리가 가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 어떻게 가야 그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망대가 되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적처럼 써가지고 다니면 됩니까? 아니요.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니죠.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갈 수가 있습니까? 주님께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일을 전혀 안 해도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두 차례에 걸쳐서 말씀드렸는데요.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 하나님에게 간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가 견고한 망대 대신 우리 주님에게 피하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15장 9절에서 10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피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주님이라고 하는 망대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신 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그 말씀대로,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주님에게로 피하는 길, 주님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주님 안에 있을 수 있는가 항상 주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그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게 그게 바로 주님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 9절, 10절을 금방 본 거죠. 그다음 요한일서 3장 23절에서 24절 말씀에서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어떤 사람이 주님 안에 거한다고요?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소적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집에 있다가 교회로 와야 하나님의 이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직장 생활을 하다가 빨리 끝내고 교회당 안으로 들어와야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는 게 그게 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기게 되는데요. “목사님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고 한다면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늘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산다고 한다면 그러면 우리가 정말로 견고한 망대 안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가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정말 우리가 아무 문제 없이 우리가 정말 보호를 받는 그런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 확실합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을 것 같아요. 정말입니까? 여호와의 이름이 견고한 망대와 같아서 그의 이름에 들어가는 자가 안전함을 얻는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는 정말로 정말로 안전합니까? 정말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까? 정말로 이 세상의 모든 일들 가운데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까? 라고 질문을 던질 수가 있는 것이죠.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우리가 살다 보면 믿는 자가 오히려 고난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들을 우리가 많이 목격한다고 하는 게 문제예요. 왜 그럴까요?

성경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간진다면 우리가 안전할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왜 우리들에게는 고난이 있고 왜 우리들에게는 아픔이 있고 왜 이런 어려움들이 우리들에게 있습니까? 질문을 던져주게 되는 것이죠. 그때 우리가 이 주님의 말씀을 읽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에서 12절 말씀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니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는데 아무런 바람도 없고 아무런 풍랑도 없고 아무런 고통도, 아무런 근심도 없이 정말 편안한 아무 문제가 없는 인생을 보장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수많은 고통들이 있을 수 있어요.

바울 사도의 경우를 본다고 한다면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에 엄청난 고난이 있었습니다. 태장으로 맞고 돌을 맞기도 하고 여러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엄청난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 그 사역을 감당해야만 했었던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정말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정말 그 길이 쉽지 않구나라고 하는 것을 늘 실감합니다. 내가 정말 의롭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면 반드시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고,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게 되어 있고, 이상해요. 악을 행하면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는데, 선을 행하려고 하고 의롭게 살려고 하면 오히려 더 사람들이 더 미워하고 더 나쁘게 하는 경우를 더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오늘 이 잠언서의 말씀과 우리의 현실과의 그 괴리감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거나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8절, 39절의 말씀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를 완전히 박살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로는 연단을 주시기도 하고 시련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손 놓아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냥 포기해 버렸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품으시고 마침내 은혜 베풀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인내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잠언서 18장 11절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부자에게는 재물이 견고한 성이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부자는 돈을, 자기 재물을 의지하면 그게 괜찮다 보장이 된다 그런 의미인가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부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을 그런 견고한 성읍으로, 견고한 망대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부자는 누구를 망대로 생각하는가? 하나님을 망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망대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재물을 망대로 여기기 때문에, 그래서 높은 성벽같이 여기기 때문에 그 재물을 의지하면서 재물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다, 재물이 나를 편안하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만 정말로 그 재물이 부자를 보호해 주나요? 그렇지 않은 것이죠. 재물이 우리에게 안전함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실감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9절에서부터 21절의 말씀에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해 주시면서 부자는 많은 재물이 있는 것 때문에 안심하고 이제는 됐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신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그 망대처럼 보였던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이죠.

따라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이 세상의 헛된 것에 우리의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망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망대로 여기고 주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주님께 피하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 위하여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기 위해서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울부짖을 때 그 부르짖음을 외면하시면서까지 우리를 피난처 삼아 주신 그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오늘 또 주님만을 바라보고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주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날마다 누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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