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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식과 같은 말 (잠 18:6-8)

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무엇일까요? 제일 쉬운 게 뭐죠? 공부가 제일 쉬운 거죠? 아닙니까? 요리가 제일 쉬운가요? 청소가 제일 쉬운가요? 무엇이 제일 쉬운가요? 그렇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과 연관해서 생각한다면, 말하는 것이 제일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감이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말하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말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마음을 전달해 주는 것인데, 이 말로써 내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제대로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과는 관계없는 전혀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내 의도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내는, 그런 잘못된 말이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곤 해서, 참, 말이라고 하는 게 어렵다. 정말 이 말로써 그 말하는 바 목적을 이루어야 될 텐데, 말로써 그 목적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저도 오늘 말을 보면서, 말을 생각하면서, 이 말이라는 게 정말 너무나도 어렵구나! 참 곤란한, 너무나도 어렵다고 하는 것을 늘 실감하면서 사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말을 하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하고, 차라리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뻔한 그런 상황들을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하는 그런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정말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좋을까요? 19세기 비평가라고 할 수 있는 토마스 칼라일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했던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했을까요?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고 하는 말을 해서 아주 유명한 말이 됐습니다. 아주 말을 잘하는 것보다도, 정말 근사하게 유려하게 말을 잘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침묵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우리가 말을 잘 못한다고 한다면, 말을 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고, 말을 해서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말을 해서, 여러 가지 나쁜 일들이 생긴다고 한다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좋은 것일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정말 어려운 것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말을 하지 않는 게, 그게 훨씬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불이 위험하니까 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죠. 불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불로서 얻을 수 있는 유익들이 너무나도 많은 겁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도 있고, 이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그런 기능도 있고 해서, 그 위험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을 잘 활용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말이라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들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고, 여러 가지 역효과를 내는 것이, 그게 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묵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비행기 사고가 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습니다. 이번에 보니까 캐나다에서 비행기가 또 뒤집혔어요. 큰일 났습니다. 이번 5월에 제가 우리 둘째 딸 결혼을 하기 위해서, 미국에 가기로 해서 비행기표를 끊었는데, 캐나다를 거쳐서 가는 비행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비행기 사고가 요즘 계속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계속해서 연이어 나고 있으니까, 해외여행은 전혀 꿈꾸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일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죠. 최근 우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참 보호를 받아야 하고, 사랑을 받아야 될 그 대상으로부터, 오히려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고 하는, 그런 끔찍한 뉴스를 들었는데,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학교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선생님을 의심의 눈초리로 불신하면서, 다가가지 않아야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본다고 한다면, 참 가슴 아픈 일들이 교회 내에서도 많이 벌어지곤 합니다. 교회에서 시기와 분쟁이 있고, 질투가 있고 또한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일들이, 정말 사악한 일들이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목회자나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그런 잘못된 행위가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아예 내버려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역시 말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요. 말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이어서, 그래서 여러 가지 잘못된 결과들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아주 위험한 것인데, 정말 그 위험 중에서도 정말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답이 아닌 것이죠.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말을 잘하는 법을 배워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요? 말하는 법을 잘 배워야 하는 것이죠. 우리는 아기 때 걸음마를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걷는 법도 배웠고, 뛰는 법도 배웠고, 달리는 법을 배웠던 것처럼, 우리가 어린아이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아장아장 걷다가, 이제 제대로 잘 걷고 뛰고 달리는 그런 능력을 배양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말을 배워야 하는 것이죠. 말을 어떻게 배워야 됩니까? 우리가 태어나서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옹알옹알하다가, 그러다가 “엄마” “아빠”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그래서 단어를 배우고 문장을 배우면서,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이 말을 배울 때 어떻게 어디까지 배워야 되는가? 그냥 문장을 만들고 의미를 전달하는 정도까지만 배우는 게 아니라, 정말 말을 잘하는 법까지 배워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아장아장 걷다가, 걷고 달리고 뛰고 하는 그것까지 배울 수 있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을 배운다고 한다면, 그냥 문장을 말하고, 그리고 그 의사를 잘 전달하는 정도까지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 넘어서서 말에 대해서 배워야 될 그 분야가 있는 것이죠.


어떻게 말을 해야 될 것인가? 잘못된 말이 아니라, 정말 그 말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말로써 사람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그런 말을 배우고, 용기로서 정말 사람들을 함께 모으고 같이 함께 되는, 그런 엄청난 말의 파워를 배우는 데까지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들에겐 선생님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대상은 결국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배우는 것일 수밖에 없고, 우리 친구들을 보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배우는 것인데요. 걷는 것 뛰는 것 이런 것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나 이런 분들을 통해서, 우리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대로 우리가 제대로 잘 걷고 뛰고 달리는 것까지 배울 수 있었지만, 이 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더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없었던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아주 충격적인 장면이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제가 한 5학년 때인가 6학년 때인가 됐었을 때 나이였어요. 동네에서 아이들이 막 놀고 있는데, 그때 엄마가, 어떤 엄마가 나와서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싹 욕을 해대면서, 왜 집에 안 오냐고 뭐 xx야 하면서, 집에 와서 밥 처먹어! 우리 아이들을 향해서, 그렇게 욕을 해대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이 참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말을 잘 배워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부모님에게서 말을 잘 배우지 못했고, 뿐만 아니라 우리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친구들이 욕을 해대고, 비아냥거리고 무시하고 그리고 여러 가지 악한 이야기들을 하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가 자라왔기 때문에 우리가 말을 잘 배우지 못한 것이죠.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교회에서도 서로 사랑의 말을 하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간혹 가다 들리게 되는 이 차가운 이야기들이, 그게 정상적인 우리가 해야 하는 말인 줄 알고, 우리가 말을 잘 배우지 못해 왔던 것이 어쩌면 우리들의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어느 교회 당회를 가보니까요. 당회 안에서 막 욕하고 싸우고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우리 교회는 안 그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런 교회가 있어요. 실제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우리 모두가 다 말에 어리석은 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 말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안 좋은 안타까운 그런 결과들을 어 보게 되는 것이고, 차라리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던 그런 일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우리 주변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말을 제대로 잘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서, 오늘 잠언서 18장 6절 7절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의 입술은” 무엇을 일으키고?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무엇을 자청하느니라? “매를 자청하느니라.” 7절 말씀.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말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말로써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그 말로써 내가 망하고 모두가 다 곤란 가운데 빠지게 되는, 그런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 우매한 사람들이 하는 말의 결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우매한 자처럼 말을 할 게 아니라, 지혜로운 자처럼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지혜로운 자의 말이 되겠습니까? 자문 18장 8절 말씀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그러니까 어떤 말을 해야 된다는 이야기예요? 남의 말을 하지 않는 게, 그게 지혜로운 자의 말이라 하겠습니다. 남의 말하는 것은 재밌나요? 재밌어요. 내 얘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내 얘기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재미있고, 그것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그래서 그것은 마치 별식과 같다는 거예요.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서, 그 음식을 너무나도 기쁘게 즐겁게 받아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의 이야기, 남을 험담하고, 비난하고 하는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귀에 별식과 같이 쏙쏙 들어가고, 정말 재미있게 말을 할 수 있는 게 남의 말을 하는 것이다. 남을 흠잡는 것이고, 남을 비난하는 말이 그런 것과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 말이 나에게 대해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면 어때요?


너무나도 마음이 아픈 거죠. 누가 나를 향해서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고 있고, 욕하고 있다고 하는 걸 생각하면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괴로운 그 일인 것이죠. 내가 당하지 않고, 내가 아니라고 생각이 드니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정작 그게 내가 그 대상이라고 한다면, 정말 그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최근 안타깝게도 어떤 유명한 연예인이 죽었다고 하는 뉴스가 지난, 이번 주인가요? 계속 들리게 되었습니다. 자살이라고 그렇게 뉴스가 났습니다마는, 사실은 누가 죽인 건가요? 신문이 죽인 거예요 기자들이 죽인 거예요. 그 연예인을 향해서 온갖 조롱성, 그런 기사들을 막 써냈던 그런 기자들이 죽인 것이고, 동료들이 죽인 것이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아냥거리고, 그렇게 하는 그런 나쁜 말들이 그 연예인을 죽인 것이죠. 누가 죽인 거예요? 사람들이 죽인 거예요. 사람들이 그 연예인에 대해서 욕하고 비난하면서,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면서, 결국 그 사람을 죽이고 만 것이죠. 그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 법정에서는 증명도 되지 아니하고, 이 세상 법정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냥 지나갈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 죄에 대해서 낱낱이 심판을 당할 거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하는 남의 말들이 사실은 사람을 죽이는 엄청난 독약과 같은, 독침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어떤 말을 하지 않아야 되는가? “남을 비난하고 비방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말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어떤 말을 하지 않아야 됩니까? 잠언서 18장 13절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어리석은 말이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말은 사연을 듣지 않은 채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사연을 알아보지도 않고, 자초지종이 어떻게 되는가를 살펴보지도 않고,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하고, 보이는 대로 분노하고,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의 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황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지식을 가지고, 내가 알고 있는 조그마한 정보만을 가지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착각해서, 함부로 말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인데, 그렇게 어리석은 말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결국 어떻게 되는가? 내가 욕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죠.

특별히 우리 자녀들을 대하면서 자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무엇인가 잘못한 것 같고, 아이들이 무엇인가 정말 심각한 일을 저지른 것 같아 보였을 때에도, 그냥 그것만을 보고 분노하면서, 때리고 책망하고 욕할 게 아니라, 왜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아이의 마음을 들어보고, 그 아이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들어보고, 내가 이 아이를 위해서 하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내가 이 아이가 이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방지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아니하고, 다만 화가 나 있다고 한다면, 분노하기 시작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화가 나 있을 때에는, 화가 나 있을 때는 말하지 않는 게 좋아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화가 화가 난다고 하는 그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내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부분만을 보면 화가 나게 되어 있어요. 보이는 것만을 보면 분노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상황에 이끌게 된 전체 이야기를 다 살펴보면, 이 조그마한 정보가 아니라, 전체를 살펴보게 된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황에 이끌게 된,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다 이해하게 되면, 그래서 그 상황이, 우리가 다 이해하게 되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아이에게 해줘야 될 것이 무엇인지, 이 아이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내가 더 도와줘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사연을 알아보지 않고, 자초지종을 알아보지 아니하고, 그저 분노한 상태에서 함부로 말하고, 반응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라고 알 수가 있겠습니다. 분명한 거 하나, 화났을 때는, 내가 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고, 다 이해하기 전까지는, 충분히 다 이해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나의 화를 말로써 풀어내는 것은 어리석은 자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에 우리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에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다들 분노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는데요. 이렇게 분노에 가득 차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진영에 속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말에 대해서는 귀를 닫아버리고, 눈을 감아버리고, 진실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오로지 분노에 분노를 더하면서, 욕하고 비난하고, 그 어떤 증거를 내밀어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아니하면서, 분노에 차서, 사연도 듣기 전에,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분노하는 그런 분노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이러한 어리석은 자들이 가득 차 있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 성도들이 계속해서 어리석은 자의 대열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지혜로운 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아야 됩니까? 잠언 19장 19절의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를 내면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데,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떤 말을 해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말일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혹시 지난번 시간이 어떤가요? 그때 우리는 잠언서 18장 4절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요. 나중에 다시 한번 들어보시면 좋겠고, 요약해서 오늘 그때 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고 한다면, 첫 번째는 마음에 선한 것을 쌓아야, 그래야 우리는 선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지혜로운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의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우리의 마음 가운데 계속해서 선을 쌓아야, 그래야 지혜로운 말, 선한 말이 나온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어떻게 말을 해야 합니까? 성급하게 말할 것이 아니라 아주 깊이 생각하고 말해야 되는 것이죠. 야고보서 1장 19절에서 20절 말씀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우리는 말하기 전에 생각해 봐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이 말을 하면 어떤 결과를 빚을 것인지,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어떠한 일들이 또 벌어지게 될 것인지, 몇 수를 앞에 보고서 생각해야 되는 거죠.


바둑을 두는 데 있어서 초보는 어떻게 둡니까? 아다리를 쳐서 먹을 게 있으면 그냥 먹어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내 대마가 잡히는 거예요. 근데 고수는 어떻게 합니까? 전혀 의미가 없는 것 같은 바둑돌을 여기다 두고 저기다 두고, 몇 수 앞을 내다보고 하나씩 하나씩 바둑을 두는 거죠. 우리의 말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할 것이 아니라, 대체로 생각나서 말하는 말은 다 잘못된 말이에요. 옳은 말이 하나도 없어요. 그 말을 하기 전에 몇 번씩 몇 번씩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과연 이 말이 사람을 용기를 북돋어주는 말이 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이 말이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하게 만드는 말이 될 것인가? 이 말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일하게 만들 수 있는 말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 말이 사람들을 절망 가운데 의기소침하게 만들 수 있는 말인가? 이 말이 정말 공동체를 살리는 말인가? 이 말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말인가? 계속해서 또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봐서, 정말 따뜻한 말을 해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의 말을 해야 되고 겸손하게 대답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잠언서 15장 1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부드럽게 인자하게, 온유하게 유순하게 대답해서, 아무리 싸나운 말들이 내게 공격으로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똑같은 것으로 또 공격할 것이 아니라, 유순한 대답을 할 수 있는 하는 것이 그 지혜로운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도 못해요. 늘 아차 안 그랬어야 되는데, 아차 이 말하면 안 됐는데, 아차 다르게 이야기할 걸, 너무나도 늘 실수하고 실수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나아가서 엎드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 도와주옵소서. 이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고, 함께해 주시고,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치유해 주시고, 도와주셔서 우리가 속한 그 공동체 가운데 사랑이 넘치고 행복이 넘치는 우리 가정이, 교회가, 이 사회가 하나님의 그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들의 따뜻한 말로 정말 따뜻한 공동체가 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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