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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왕상 7:13-26)

지난 시간에 우리는 솔로몬이 왕궁을 “몇 년 동안” 건설했다는 이야기를 살펴보았죠? 벌써 까먹으셨습니까? 13년 동안 건설했다고 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그다음 구절인데, 다시 성전을 어떻게 꾸미고 지었는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설명해 주는 내용이 7장 13절에서부터 마지막 절 말씀까지, 성전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꾸미고, 그 안에 기구, 성전의 기구들은 어떤 기구들을 들여놓았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창세기 7장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솔로몬의 성전의 기둥 2개를 채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둥에 이름을 붙여주었는데요. 어떤 이름을 붙여주었나요? 야긴과 보아스라 하는 이름을, 그 성전 기둥에 붙여서 불렀다고, 그렇게 한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이 성전에 이 기둥이 꼭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기둥이 없으면 어떻게 되죠? 건물이 서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그 든든한 기둥이 제대로 서 있어야만, 그 건축물이 제대로 잘 서 있을 수가 있는 것이죠. 만일 그 기둥이 무너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건물 전체가 무너지게 돼 있는 겁니다.

기둥이 무너져서, 건물이 무너진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삼손의 이야기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손은 마지막에 자기를 인도하는 소년에게 부탁을 합니다. “나를 건물 중앙에 있는 그 기둥 사이로 인도해 달라” 부탁을 해서, 삼손이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내게 힘을 주시옵소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옵소서.” 기도하면서, 그 기둥을 밀어 넘어뜨릴 때, 그 다곤 신전이 완전히 무너져서, 그 안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러니까 기둥이 무너지기 때문에, 그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없었던 이야기가 사사기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따라서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둥을 제대로 잘 세워놓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어떻게 했는가 기둥을 잘 세우기 위해서 전문가를 불러왔습니다. 두로, 이방 지역이죠? 두로라고 하는 지역에서 히람이라고 하는 기술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 히람이라고 하는 기술자는 놋을 아주 잘 다루는 청동 주물 기술자였습니다. 그 사람을 이용해서, 그 당시에 가장 든든한, 가장 좋은 그 기술을 사용해서, 성전의 두 기둥을 든든하게 세움으로 말미암아, 성전이 든든하게 서울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죠.


그렇게 기둥을 세워놓고 난 다음에, 그 기둥에 이름을 붙였는데, 야긴과 보아스다. 그렇게 이름을 붙여주었는데요. 이 야긴이라고 하는 말과 보아스라고 하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야긴이라고 하는 말에 의미가 무엇일까요? 야긴이라고 하는 말의 뜻? 커닝을 누가 아주 잘했습니다. 하단에 보면, 쓰여 있어요. “저가 세우리라.” 야긴이라고 하는 말은 어떤 뜻이라고요? “저가 세우리라.” 보아스라고 하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에게 능력이 있다.” 대단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다 신학 박사인가요? 너무나도 대단합니다. 이 두 기둥을 세우면서, 그 두 기둥에 이름을 붙였는데, 야긴이라고 하는 기둥과 보아스라고 하는 이름을 세워 이름을 명명해 준 것이죠.


그런데 이런 명 기름을 붙였다고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가 눈으로 보기에는, 이 건물이 무엇에 의해서 지탱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기둥에 의해서 지탱이 되고, 기둥이 그야말로 기둥이다. 기둥이 기둥 역할을 해야, 그래야 건물이 제대로 서 있는다고, 우리는 생각하기가 쉬운 것이죠. 하지만 그 기둥에 이름을 붙이면서, 무슨 얘기를 하냐면, 야긴, 누가 세우느냐? 기둥이 아니라, 그분이 세우신다. 보아스, 기둥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능력이 있다. 그분에게 능력이 있다고 하는 그런 믿음의 고백이 담긴 이름을 기둥에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얻어야 할, 그런 가르침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둥이 건물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기둥이 건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지탱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를 향해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시편 146편 3절에서 5절 말씀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가 누구에게 소망을 두어야 한다고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된다! 누구에게 소망을 두면 안 된다고요? 사람에게, 높은 사람에게, 권력자에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이죠.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사람들을 절대로 의지하지 말고, 사람들을 다 무시하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아니요. 중요해요. 권력자들도 중요하고, 힘 있는 사람도 중요하고,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그런데 중요하지만, 필요하지만,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 누군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역시 기둥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에 있어서 이 성전이 든든하게 서기 위해서는 기둥이 필요할까요? 필요하지 않을까요?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지탱하시니까, 성전에 기둥을 안 넣어도 괜찮은 건가요? 아니요. 넣어야 돼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니까, 교회당 건물을 지을 때 피뢰침을 안 넣어도 괜찮은가요? 아니요. 피뢰침 세워야 돼요. 필요해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고 한다면, 그러면 화재보험은 안 들어도 괜찮은가요? 아니요. 화재보험도 필요해요. 다 필요해요.

하지만 우리가 거기서 머무는 게 아니라,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하고, 우리들에게 다 있어야 할 것이지만,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나가야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세우시는 분은 누구라고요? 하나님 만이, 우리의 오로지 의지할 한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훈련했어요. 신명기 8장 3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로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내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 40년 동안에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셔서, 그 만나를 먹고살았습니다. 사람이 힘을 내기 위해서는 먹어야 돼요? 안 먹어도 돼요? 먹어야 돼요. 음식물을 먹어야 돼요. 그런데 그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만나를 먹으면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 있었어요. 그 배워야 될 교훈이 뭐예요? 음식물이 나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니라, 음식물이 나를 내 생명을 유지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이 나를 살리시고,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 되시고, 하나님이 나를 살리시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된다고 하는 사실을, 40년 동안, 광야 생활 속에서, 이 만나를 주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도록 훈련시켜 주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삶 속에서도 많은 것들이 다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를 살리는 것이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이 무엇인가? 이 세상의 돈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살리시고,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다고 하는 이런 믿음의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종종 우리는 기둥을 우상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건물 가운데 기둥이 있어야, 그래야 그 건물이 안전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그 기둥을 보면서 이 기둥을 우상처럼 생각하는 거죠. 이 기둥이 무너지면 안 돼. 이 기둥이 무너지면 큰일 나. 이 기둥이 무너지면 건물이 무너질 거야. 그러면서 기둥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머지, 기둥을 신격화하고, 기둥 앞에서 절하고 경배할 수가 있어요. 목사님, 기둥한테 절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렇게 말하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에게 있어서 기둥이 무엇입니까? 때로는 돈이 우리들의 기둥처럼 생각될 때가 있어요. 때로는 건강이 우리들의 기둥처럼 생각될 때가 있어요. 때로는 자식들이 우리의 기둥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고, 때로는 내 남편이 기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때로는 성공하는 것이 우리의 기둥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고, 또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는 것, 때로는 명예 이런 것들이 나의 기둥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고, 그래서 그것을 갈망하면서 그 앞에 절하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죠. 물론 기둥이 필요할 겁니다.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둥이 필요하죠. 하지만 그 앞에 기둥 앞에 절하고 경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우리들에게 돈이나 건강이나 자식이나 그 어떠한 것도 우리의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솔로몬은 그래서 성전을 짓고 기둥을 세웠는데, 그 기둥이 성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기둥이 있기 때문에, 성전이 제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성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이 성전은 하나님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능력 있는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탱하신다고 하는 의미에서, 그 두 기둥의 이름을 야긴과 보아스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우상으로 생각하면서 살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때로는 자식이 우상이 될 수도 있고요, 때로는 돈이 나의 우상이 될 수도 있고, 이 세상에 썩어질 것들을 우상으로 생각할 때가 많이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야긴”이라고 하는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돈이 나의 기둥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리라. 돈을 보면서 돈을 위에서 맹목적으로 굴종하고 엎드릴 것이 아니라, “보아스”라고 하는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돈에게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능력이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세우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그게 복된 길이오, 그게 참된 생명의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날마다 날마다 기억해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혹시라도 우리가 의지하고 싶은 것들이 생길 때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야긴과 보아스를 생각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야긴과 보아스를 생각할까 하다가 제가 노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AI를 이용해서 야인과 보아스 노래를 하나 만들었는데요. 한번 봅시다. “야긴과 보아스, 성전 안에 있는 두 개의 기둥, 야긴과 보아스 그가 세우리라. 그에게 능력이 있다. 성전을 지탱하는 것은 기둥이 아니야. 성전을 세우는 것은 기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세우시고, 지탱하시지. 야긴과 보아스. 기둥처럼 보이는 것이 무너진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 기둥이 세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이야. 우리의 모든 소망 주님께 두어야 해. 오직 주님이 세우시고 지탱하시지. 야긴과 보아스. 기둥처럼 보이는 것이 무너진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 성전을 지탱하는 것은 주님의 손길. 그가 세우리 그의 계획 속에서. 오직 주님이 세우시고 지탱하시지. 야긴과 보아스. 기둥처럼 보이는 것이 무너진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 성전을 지탱하는 것은 주님의 손길 그걸 세우리라. 우리는 그의 계획 속.” 지금 끝났어요. 대단하죠? 컴퓨터가 다 한 겁니다.

우리는 기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절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기둥이 세우는 게 아니라, 기둥이 있어야 성전이 제대로 된 성전이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셔야,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야, 제대로 설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우리가 기둥처럼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져 나갑니다. 특별히 우리 연로하신 에녹회 회원 여러분들의 기둥들이 지금 얼마나 많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무너져 내렸나요? 허리가 나갔습니까? 무릎이 더 이상 말을 안 듣습니까? 손이 말이야 안 듣습니까? 귀가 안 들리십니까? 이제는 재정적인 능력도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까? 그럼 슬퍼해야 되나요? 아니에요. 왜냐하면 우리를 세우시는 것은 기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의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우리 에녹회 회원들을 보면서, 이 세상의 기둥들은 하나씩 하나씩 무너져 버리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 교회의 가장 든든한 기둥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소망이 우리가 의지, 의지할 언젠가는 무너져 버릴, 언젠가는 쓰러져버릴 것에 우리의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온전히 소망을 두면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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