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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즐거움과 근심 (잠 17:20-22)

오늘 잠언서 17장의 세 절을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특별히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서도, 잠언 17장 22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하는 말씀이죠. 무슨 이야기입니까?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치료제가 된다는 말일까요? 우리의 모든 문제들이 잘 해결이 될 수가 있겠는데, 그러나 근심과 걱정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정말 큰 아픔과 질병 가운데, 스트레스 가운데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오늘 잠언서 17장 22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지만, 어쩌면 불신자들도 깊이 공감하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보편타당한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마음속에 근심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어쩌면 만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병의 원인으로 꼽는 것이 무엇이죠?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 많은 스트레스가 사람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고,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어서, 어쩌면 모든 질병의 그 뒤에는,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어떤 한 한의사분이 계시는데요. 한의사분께서는 내원하는 환자들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 스트레스, 참 힘든 이야기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이런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느냐?”라고 이야기하면 환자들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제 얘기를 그렇게 잘 아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건데, 그 스트레스 때문에, 어깨도 결리고 허리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되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스트레스성, 많은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 해소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가 운동을 많이 한다고 할지라도, 또 영양가가 있는 음식을 아무리 잘 섭취한다고 할지라도, 스트레스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온갖 질병이 생길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 마음에 평안함, 즐거움을 갖는 것, 참 스트레스 없이 사는 그런 삶을 유지하는 것이, 어쩌면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주 중요한 비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음에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면 건강하게 살 수 있겠지만, 그러나 마음 가운데 온갖 스트레스가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마치 뼈가 말라 들어가는 것 같은, 그런 엄청난 고통과 아픔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 좋겠죠. 즐거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겠고,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근데 그게 되나요? 그게 안 되는 게 문제죠. 의사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십니다. 스트레스 좀 받지 마시라고. 스트레스를 좀 피하라고. 이런 권면을 하는데, 그 스트레스를 우리가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우리의 큰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외부적인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외부의 환경이 좋다고 한다면, 즐거운 일이 있다고 한다면, 가만히 놔둬도 마음속에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거죠. 좋은 일이 있으면 마음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아니라, 정말 힘든 일, 스트레스받는 일들, 재난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나는 일을 만나기도 하고,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사람들과의 만남 가운데서, 여러 가지 참 불쾌한 일들을 만나게 될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있는 것이죠.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싶다. 나 화내면서 살고 싶다.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싶다. 하는 분 계십니까? 없어요. 좀, 화 좀 안 내고 살았으면 좋겠고,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참 재밌게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소망인 것이죠. 근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우리 주변의 이 환경들이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는 데 우리들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우리가 즐겁기 위해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 주변을 잘 만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겁니다. 어떤 노력을 많이 합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것이죠. 돈이 좀 많이 있으면, 행복할 테니까, 돈이 좀 여유가 있으면, 근심 걱정 없을 테니까,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서, 즐거움을 얻기 원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는 겁니다. 또 우리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고, 우리 자녀들이 잘 되는 모습을 통해서, 내가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우리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주변 환경들을 좋게 만들어서, 즐겁고 좋은 일들이 많이 있게 만들어서,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기쁨을 갖게 되길 원하는, 그런 생각 가운데, 우리는 그런 노력들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들의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돈을 벌고 싶지만, 우리가 충분하리라만큼 돈을 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대로 되지 않는 것이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겁니다. 오히려 더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더 많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특별히 자녀만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잘 나간다고 한다면, 우리 자녀들이 정말 좋은 길로 가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본다고 한다면, 기쁘고 행복하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만큼 그렇게 되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소망을 가지게 되겠지만, 이 아이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엄청난 기대를 걸지만, 우리 아이들이 그 기대만큼 되지 못하는 모습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오히려 또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죠.

오늘 읽은 말씀 잠언서 17장 21절의 말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를 낳은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나 좀 즐거웠으면 좋겠는데,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우리 아이가 그만큼 똑똑하지 못한 거예요. 우리 아이가 그만큼 현명하지 못한 거예요. 자꾸만 사고를 치고,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고, 어리석은 일을 하고,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지만, 정말 가지나 가지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하는 말처럼, 아이들이 우리의 마음에 좋게, 그렇게 잘해줬으면 좋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만족하게 해주기보다는, 근심과 걱정거리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죠.


자녀만 근심거리입니까? 자녀만 근심거리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근심 걱정거리가, 우리 주변에 늘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참 우리가 좀 마음이 즐겁게 행복하게 오늘 하루 정말 즐거움 속에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게 우리들의 문제인 것이죠. 오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하루 종일 살면서 즐거운 마음 가운데 하루를 보내셨습니까? 스트레스 속에서 하루를 보내셨습니까? 어느 쪽이십니까? 즐거웠어요? 즐겁다고 하시는 분도 계세요. 근데 어떤 분들은 일하면서 스트레스받고, 사람과 만나면서 스트레스받고, 업무를 하면서 스트레스받고, 여러 가지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식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관계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기보다는,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는 가운데 있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마음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요? 우리 주변의 환경이 우리들에게 협조를 하지 않고 있는 이런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우리는 마음의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항상 기뻐하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된다? 기뻐하며 살라. 그것도 언제 기뻐하라고요? 좋은 일이 있을 때만, 아주 유쾌한 일이 있을 때만, 그때만 기뻐할 게 아니라, 항상 기뻐하며 살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시는데, 권면해 주고 계시는데, 이 말씀은 정말 어려운 말씀 같아요. 아니, 어떻게 기뻐하며 살아요? 나를 힘들게 만드는 저 못된 사람이 내 눈앞에 있는데, 지금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스트레스받게 하는 그 진상 손님이 나를 괴롭게 만들고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괴롭게 만들고 있는, 이런 현실 가운데서, 어떻게 마음속에 즐거움을 유지하고,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요?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마음속에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는 주제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비결이 있다고 한다면, 마음속에 항상 즐거움을 가지고, 마음속에 항상 기쁨을 가질 수 있는 비결 첫 번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주관하시며, 그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어떤 것이 선을 이룬다고요? 모든 것이! 좋은 일과 기쁜 일과 행복한 일과 우리의 보기에 좋은 것들만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가는 가운데 만나는 여러 가지 아픔도, 때로는 실패도,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는 그런 원수도, 우리가 만나는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이 온 세상을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일하는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마음속에 즐거움을 가지게 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났어요. 원하지 않는 정말 피하고 싶은 일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러면 절망해야 되나요? 살아가는 가운데 내 삶에 불치의 병에 걸리고 말았어요. 내가 살아가는 가운데 어떤 엄청난 사고를 만나게 됐어요. 화재가 일어나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날려버리게 됐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됐어요.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스트레스받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으로 인도해 주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요.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슬픔과 절망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보면서도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의 인생 가운데 있었던 정말 충격적인 일들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습니까? 어느 날 그는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버리는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됐어요. 자신을 보호해 줘야 될 형들이 자기를 팔아서 노예로 팔아버렸어요. 아버지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말도 틀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그 나라에 가서, 거기서 노예로 살아야 되는 정말 끔찍한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죠. 충성을 다해서 일했으나, 그러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 속에 들어가게 되는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어요.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인가? 그런 것들이 다 의미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셉을, 저 가나안 땅에 있던 요셉을 애굽 땅으로 인도하여서, 온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자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 일어났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을 보고 괴로워하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무엇을 만들어 주실 것인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우리가 보게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선한 일을 만들어 주실 것인가를 기대하며, 오히려 그 순간에 주님을 바라보며, 찬송하고 경배하고 마음속에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것이 옳은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도 역시 마찬가지. 우리의 삶이 어떤 삶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신 삶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건져주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그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 그 생각은 너무나도 좋은 생각이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위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는 어떠한 상황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절망하거나 스트레스받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히려 마음속에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 앞에 찬송을 올려드리는 것이 옳을 줄로 믿습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1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는 재앙처럼 보여요.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는 실패처럼 보여요.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는 정말 피하고 싶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들처럼 보여요.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짓밟아버려서 파멸로 이끌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 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그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해 주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한다고 한다면,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스트레스가 아니라, 오히려 감사와 기쁨과 찬송이 우리들의 입에서 즐거움으로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설교를 해오면서 수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를 말씀해 드렸고, 그 말씀을 전하면서 저에게도 이 말씀을 전했어요. 그 말씀을 전하면서 이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제 인생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왜 없었겠어요? 제 인생 가운데 정말 좌절할 만한 일들이 왜 없었겠어요? 정말 창피한 순간, 정말 좌절되는 그런 순간,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순간이 제 인생 앞에 펼쳐졌을 때, 그때 힘들어서 고통스러워서 낙망하고, 아무것도 못한 채 쓰러져버린 것이 아니라,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각나는 그 한 가지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그다음 단계로 어느 길을 예비하고 계실까? 하나님께서 더 그다음에 어떠한 길로 인도해 주실까? 하나님께서 나의 발걸음을 어떻게 인도해 내실까? 그것이 궁금하고,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들에게 어떤 길로 인도해 주실까를 생각하며, 감사와 찬송이 흘러나오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 주어진 그 순간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보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의 즐거움이 외부의 요인에 따라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요. 이 세상의 외부의 조건들이 다 해결이 돼야 기쁠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조건이 갖추어져야 행복할 것이라고, 이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믿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가장 좋은 길로 선하신 길로 인도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히려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 사명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그냥 이 세상에 아무 의미 없이 우리를 내던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각각의 사명을 가지고, 우리 인생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는데, 그 사명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마다 다 달라요. 이 사람은 이것을 잘하고 저 사람은 저것을 잘하고, 이 사람은 여기에 강점이 있고 저 사람은 저기에 강점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이고,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을 잘하게 만들어 주셨는가를 인정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사명 가운데 신실하게 순종해 나아갈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 사이에서 비교하면서 그러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죠. 비교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돈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 저 사람이 나보다 돈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가? 적게 가지고 있는가? 좋은 집에 사는가, 좋지 못한 집에 사는가? 좋은 차를 끌고 있는가? 좋은 차가 아닌 차를 끌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 사회적인 신분이 어느 정도인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키가 얼마나 크고 작고, 그리고 능력이 얼마나 많고 적고? 그것들을 일일이 일일이 재 보면서,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나은 것 같으면, 이내 교만해져 버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더라도 부족한 것 같으면, 이내 절망해 버리면서,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나이 먹어가면서 나이 많음에 대해서 자조하면서, 내가 젊지 못하다고 하는 사실에 스트레스받을 수도 있고, 내가 건강하지 못하다고 하는 그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는데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비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각의 사람들의 그 스테이지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사명과 계획이 있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들에게 부여해 주신 그 사명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사명을 발견하고 거기에 충실하게 일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부터 8절 말씀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 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모든 사람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심는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물 주는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물 주는 사람에게 너는 왜 심지 않았느냐고 따질 것이 아니고, 심는 사람에게 너는 왜 물 주지 않았느냐고 따지지 않고, 각각 그 한 역할들에 대해서 각각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거기에 자부심을 가지시면 돼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하셨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것을 주셨구나. 그것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가면 되는 것이죠. 내가 노래 못하면 어때요? 노래 말고 다른 거 잘하는 거 있잖아요? 내가 이걸 못하면 어때요? 이거 못하는 거 말고 다른 거 잘하는 거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특징을 살려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 되는 것이죠. 갈라디아서 6장 4절 5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잊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이 말씀을 영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해놓았죠. 뭐라고 번역했습니까? [NIV] Each one should test his own actions. (각각 자기 자신의 행동을 살펴야 할지라) Then he can take pride in himself, without comparing himself to somebody else, (그러면 자신을 다른 그 누구와 비교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for each one should carry his own load. (각각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져야 할 것이라)

이 사람이 하는 그 일을 보면서, 그 사람이 하는 일 앞에서 좌절하고 괴로워하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보면서, 교만하고 뻐길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서 받으 주신 그 사명이 무엇인가를 기억하며, 자기 자신이 하는 일들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찬송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종류의 그릇을 만드시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여러 지체들을 만들어 두시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눈의 역할을 하고 어떤 사람은 코의 역할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입의 역할을 하고 다양한 지체들이 있는데 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역할과 기능들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만큼 하면 돼요. 가난해도 괜찮고,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지지 않아도 괜찮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것대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사명에 따라 신실하게 살아갈 때, 그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오히려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어떻게 마음의 즐거움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마음의 즐거움을 얻는 세 번째 비결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면 기뻐요. 행복해요.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슬퍼요. 너무나도 외로워요. 너무나도 화가 나요.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고 마음의 즐거움이 생기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나 기대하고 바라는 사람은 언제나 슬픔과 절망 가운데 있는 것이죠. 마음의 즐거움은 어떻게 얻는가? 사랑을 베풀 때 나오는 거예요. 마음의 즐거움은 어떻게 얻게 되는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줄 때 마음의 즐거움이 생기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내게 잘못했어도 그 사람들을 용서해 주면 마음속에 기쁨이 생깁니다. 용서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감옥 속에서부터 건져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 달란트 빚진 종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을 때 결국 그 사람은 감옥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처럼 용서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면, 그 용서하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이 감옥에 갇혀버리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줄 때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용서하는 사람은 기쁘고 즐거운 겁니다. 누가 기쁩니까? 여러 사람들을 배려해 주고 도와주면 마음이 깊은 것이죠. 사랑을 베풀고 배려해 주면 그것처럼 기쁜 게 없어요.


제가 미국에 가서 충격적인 장면을 하나 봤습니다. 그것은 우리 목사님들이 모여 앉아서 같이 연말 송년회를 하는 자리였는데요. 그날 송년회를 하기 위해서 앉아 있는 그 자리에 한 노 부부 목사님 사모님께서 입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머리가 시험을 거란 그 할아버지께서 할아버지 목사님께서 딱 오시더니만 의자를 빼서 사모님을 앉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리고 사모님이 입었던 외투를 받아서 옷걸이에 걸어주는 거예요. 그걸 보고 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에서 대접만 받으면서 살았던 남자가 보니까,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고 엄청 충격받았어요. 너무나도 존경스러워 보였어요. 그래서 저도 그다음부터 그렇게 했는데 놀라운 것은 왜 이렇게 기쁘죠? 제 아내가 행복하는 걸 모습을 보니까 왜 이렇게 제가 행복하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정말 섬기는 모습을 섬겼는데 왜 내 마음이 기쁘죠? 이해할 수 없어요.

또 미국에서 봤던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무엇이냐면, 운전을 하는데 끼어들려고 하는 차를 막 방해하면서 손가락질하면서 못 끼어들게 한 것이 아니라, 딱 서서 들어가라고 손짓해 주는 그 운전사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막 운전해서 못 끼어들게 차를 막 붙여가면서, 절대로 못 끼어들게 어디 하면서, 운전을 배워왔던 제가, 미국에 갔더니 끼어들려고 반짝반짝했더니, 뒤에 따라오던 차가 딱 서고, 들어가라고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왜 나한테 끼어들어가라고 하지? 왜 나한테 양보를 해주지? 그걸 보고 나중에 저도 그렇게 해봤어요. 누가 들어오려고 하는 거 속도를 줄이면서, 먼저 가라고 그랬는데, 왜 이렇게 제 마음이 기쁘죠? 왜 이렇게 행복하죠? 너무나도 즐겁죠? 양보하는데 왜 이렇게 너무나도 마음이 좋은가 마음의 즐거움이 어디서 오는가? 사랑을 베풀고 용서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게 그게 기쁨이야 알고 봤더니, 그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배려해 주는 게 사실은 나에게 좋게 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12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배려하고 양보하고 사랑하는 그 모습 가운데 기쁨이 넘치는 거. 우리는 생각하기를, 우리가 이렇게 기쁨이 없는 것은 다 우리가 갖추지 못한 주변의 환경 때문이고, 내가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그렇고, 내가 이렇게 엄마 아빠를 닮아가지고 키가 작기 때문이고, 엄마 아빠가 가난해서 내가 이렇게 돈이 없어서, 나는 그런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슬플 수밖에 없고, 나는 힘들 수밖에 없고, 내 인생은 재미가 없는 인생이라고 외부 탓을 하면서 지금까지 보내왔어요. 하지만 우리의 마음의 즐거움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신뢰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그대로 본받는 게, 그게 즐거움의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에서부터 8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우리의 마음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의 기도의 제목이 있다고 한다면, 주님 더욱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어떤 어려운 상황이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보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 믿음을 더해주셔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그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한 달란트를 받았든지, 두 달란트를 받았든지, 내게 어떠한 것을 맡겨주셨든지, 주님께서 제게 주신 그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엎드리며, 주님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배려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용서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게 손해가 아니라, 그게 마음의 양약이래요. 그게 우리를 건강하게 만든대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만도 생기고, 또 슬픔도 생기고, 또 두려움도 생긴다면, 그때는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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