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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성취 (잠 13:9-12)

우리가 수요일마다 잠언서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 가운데 있는데, 오늘은 넉절의 말씀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의에 대해서, 겸손에 대해서, 그리고 성실함에 대해서, 또한 우리의 노력에 대해서 교훈해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한 절씩 한 절씩 살펴보면서,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잠언서 13장 9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의의 빛이, 그리고 악인의 등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빛, 여기서 말하는 등불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문자 그대로 빛, 등불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의인이 집 안에 불을 밝혀두면, 그 빛이 계속해서 빛나게 될 것이지만, 악인의 집에 켜놓은 등불은 얼마 가지 않아서 꺼진다는 이야기일까요? 그렇지 않죠. 등불이라고 하는 것은 악인이든 의인이든 똑같습니다. 의인이 등불을 켜든, 악인이 등불을 켜든, 쓴 만큼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의인이라고 해서 등불이 더 오래간다거나, 악인이라고 해서 등불이 일찍 꺼지는 법은 없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햇빛과 비를 의인과 악인에게, 선인과 악한 자들에게 골고루 비추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다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의인에게나 나쁜 사람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의인의 빛, 악인의 등불이라고 이야기할 때, 이 빛과 등불이라고 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불을 진짜 불, 진짜 등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징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텐데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등불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빛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빛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등불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명성, 명예, 이름을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의인의 이름은, 의인의 명성, 의인의 명예는 더 드러나고, 더 사람들이 박수 쳐주고, 더 사람들이 칭찬해 줄 것이지만, 악인의 이름은 무시를 당하게 될 것이고, 악인의 명성은 땅에 떨어질 것이고, 악인의 명예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 불이나 빛이나, 등불이라고 하는 것이 이름이나 명예나 명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충분히 상상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등과 등불과 빛이 생명이나 목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의인의 생명은 보장을 받을 것이지만, 악인의 목숨은 파멸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갚아주시겠지만, 악인은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말하는 빛이나 등불이 생명 혹은 목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이 소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의인의 소망은 이루어지고, 의인의 소망대로 모든 일들이 풀릴 것이지만, 그러나 악인의 소망은 허무하게 끝나버릴 것이고, 악인이 가지고 있는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완전히 멸망해버릴 것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 등불이나 빛을 소망이라고 하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악인이 괜찮아 보일 수 있습니다. 악인이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의인의 경우에는 지금 이 순간에는 형편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보잘것없고,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누추한 상황 가운데 있고, 그러나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떵떵거리면서 사는 그런 모습들을 우리가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인데요. 그러나 오늘 이 잠언서에서 알려주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이냐면, 그러나 의인은 결국에는 그 빛이 빛나게 될 것이고, 악인은 그 등불이 꺼져버릴 것이라고 하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가 선택할 것이 무엇입니까? 악이 아니라 의를 선택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의로운 믿음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서 13장 10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교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교만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겸손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오늘 잠언서 13장 10절 말씀에서는 권면을 듣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교만의 반대말로, 히브리 평행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요. 교만에서는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 교만의 반대말로 무엇을 제시하고 있냐면, 권면을 듣는 자가 지혜가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사람은 누구이고, 겸손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최고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권면하고 권고하고 충고를 해도, 자기가 제일 최고이기 때문에, 교만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교만한 사람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이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싸움만 일어나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하는 말씀이 오늘 잠언서 13장 10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이 정말 교만한 사람인지, 다른 사람의 권면과 충고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인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회계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향해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교만한 사람인가?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닫아버린 사람인지, 아니면 그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고, 혹시라도 내가 잘못된 것은 없는지, 나 자신을 돌이켜보고, 또 돌이켜볼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사람인지, 귀를 열고 있는 사람인지, 우리 자신을 진단해 보아야 할 것이고, 만일 우리가 교만한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오늘이라도 지금 당장 우리가 회개하며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둘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말을 듣지 않아요. 정말 말을 듣지 않아요. 정말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들었으면 좋겠는데, 충고를 해주고 싶은데, 마음을 닫아버리고 듣지를 않으려고 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일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야기해주고 싶고, 저 사람이 저렇게 가면 안 되는데, 이런 식으로 가면 큰일 나는데 권면해주고 싶고,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놀랍게도 그런 권면을 즐겨 듣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듣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나는 듣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그러나 조금만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으면, 조금만 내 생각과 다르다고 생각이 된다면, 이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아무런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막아버리는 그런 일들이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결국 다툼만 일어나게 되고, 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이 말씀을 우리 모두가 새겨들을 수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잠언서 13장 11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간다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도대체 망령되이 재물을 모은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도대체 “망령”되다고 하는 말의 의미가 뭘까요? 우리가 평상시 잘 안 쓰는 말로 번역을 해놓아서,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망령되이 재물을 모은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망령되이 재물을 모으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성경을 읽다가 의미가 잘 통하지 않거들랑, 어떻게 하면 됩니까? 바로 그다음 행을 보면 됩니다. 히브리 평행법적인 표현들이 있기 때문에, 그다음 문장이, 바로 그 앞에 문장을 설명해 주는 그런 힌트를 주기 때문에, 다음 문장을 보면 좋겠는데요.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 간다고 말을 하고, 그다음에 말하고 있는 그 구절이 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망령되이 모은 재물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뭔가요? “손으로 모으지 아니한 제물”을 의미하는 히브리 평행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어떤 때는 같은 의미로, 어떤 때는 반대 의미로, 어떤 때는 발전적인 의미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앞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뒤에 문장을 보고, 뒤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앞의 문장을 보아서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망령되이 모은 재물이라고 하는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런데 그 말에 대한 다음 행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반대의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손으로 모은 재물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망령되이 모은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손으로 모으지 아니한 재물을 의미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림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요. 망령되이 얻은 재물이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혼 메 헤벨”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혼”이라고 하는 것이 재물이라고 하는 것이고, 부유함이란 말이고, “메”라고 하는 것은 “무엇 무엇으로부터”라고 하는 말이고, “헤벨”이라고 하는 말은 숨, 증기 이런 것을 의미합니다. 아벨이라고 하는, 가인과 아벨이라고 할 때, 그 아벨이라고 하는 이름이 “헤벨” 증기, 숨이라고 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죠. 얼마 있지, 살지 못하고, 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짧은 인생을 간 그 인생을 아벨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헤벨에서 나온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숨으로부터 증기로부터, 실체가 없는 정말 짧은 너무나도 조그마한 것으로부터 생겨난 부유함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과 대비가 되고 있습니까? “코베츠 알 야드” 코베츠라고 하는 것은 수확을 의미합니다. 거둬들인 것을 의미합니다. “알”은 “무엇 무엇에”라고 하는 것이고, “야드”라고 하는 것은 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손에 의해서 모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코베츠 알 야드”인 것인데요. 이 망령되이 얻은 재물과 손으로 모은 것이 서로 반대 개념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앞뒤 문장을 봐가면서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손으로 모은 재물이 무엇일까요? 손으로 모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손을 사용해서 부귀를 얻고, 손을 사용해서 재물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러면 발로 돈 벌면, 그것은 해당이 안 되나요? 아니면 손이 아닌 다른 걸로, 목소리로, 노래 불러서 돈을 번다든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손이 아닌 다른 걸 통해서 번 것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것인가요? 아니요. 다 해당이 됩니다. 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노력을 통해서 얻는 재물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죠. 제유법적인 표현으로서, 그래서 이 손으로 얻은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노동력을 통해서만 땀을 흘려가서 해서만, 그렇게 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형태의 얻음이든지, 어떤 형태의 재물이든지, 예를 들자면 지적 재산권을 통해서 얻은 재물이든, 아니면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서 얻은 재물이든, 아무튼 내가 무슨 방법을 쓰든지 간에 나의 노력과 수고와 애씀과 그리고 우리의 신실한 그 노력들에 의해서 얻은 재물을 가리켜서, 통 털어서 “손으로 모은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것과 정반대 되는 개념이라고 하는, 그러니까 이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숨으로써 얻은 재물, 증기로써 얻은 재물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내가 노력하지 않은 채 벌어들이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도둑질하거나, 강도짓을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남의 것을 착취하거나, 또는 요행을 통해서 벌어들이는 것, 이런 것들은 그야말로 증기를 통해서 얻은 부귀, 숨과 같은 것을 통해서 얻은, 망령되이 얻은 재물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강도 짓을 하더라도 수고가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이렇게 <종이의 집>이라고 하는 그 드라마를 보니까, 스페인 드라마를 보니까, 강도짓을 하려고 해도, 엄청 머리 쓰고 엄청나게 그냥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게 돈을 버는 것을 알 수가 있겠는데, 아무튼 여기서 말하고 있는 숨에 의한 소득, 증기에 의한 소득, 망명 때 얻은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큰 의미로 봐서, 정당하지 않은, 우리가 건전하게 수고하고 일해서 얻은 이익이 아닌 잘못된 방법,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서 얻은 그런 재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결국 그것이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땀을 흘리고 수구와 애씀을 통해서 부귀를 얻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계속해서 늘어나겠지만, 그게 아니라 일확천금을 꿈꾸고 그냥 내 수고와 노력 없이, 그냥 거저 생기는 그런 것들은 쉽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열심히 일해야 되는 것이죠. 수고하고 애써야 되는 거예요. 목자라고 한다면, 양떼를 잘 쳐야 되는 것이고요. 꽃집을 한다고 한다면 꽃을 잘 가꾸고, 잘 팔아야 되는 것이고요. 음식점을 한다고 한다면, 음식을 아주 잘 만들어서 성실하게 대접하면서 돈을 벌어야 되는 것이고, 우리가 하는 그 모든 분야에서든지 내가 성실하게 노력하고 애써서, 그렇게 수익을 얻어야 한다고 하는 그런 교훈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잠언서 13장 12절의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 소망이 이루어지면 생명나무와 같다. 하지만 소망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음이 상하게 된다고 하는 이야기인데요. 당연한 이야기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축구 경기를 보니까, 축구를 하는 그 양 팀이 팽팽하게 공격을 하고 수비를 하고, 막 그렇게 하다가, 언제 그 균형이 무너집니까? 골 하나 들어가면, 그 균형이 확 무너져 버려요. 그 골 넣기 전에는 양 팀이 팽팽해요. 서로 그냥 그렇게 열심히 치고받고 치고받고 하는데, 공을 골을 한번 넣게 되면, 골을 넣은 팀에서는 갑자기 잘하게 돼요. 힘이 솟아요. 그러면서 더 잘해요. 그런데 골이 먹힌 팀은 어떻게 됩니까?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수비도 엉망이고, 공격도 안 되고, 조급하고, 그러면서 모든 것들이 망가져버리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요. 어쩌면 이 잠언서 13장 12절의 말씀의 생생한 예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소망이 이루어져야 더 힘이 생기고, 더 힘이 생겨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더 많이 노력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소망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소망이 이루어지나요? 소망이 이루어지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면 될까요? 물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수고를 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파수꾼이 깨어 있어 철저하게 지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지키시지 않는다면, 지키는 자의 수고가 헛될 수밖에 없고, 아무리 집을 열심히 잘 짓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된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종종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기도만 하면 된다고 착각하고, 그래서 기도했으니까, 이제는 아무것도 안 해도, 기도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잘못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서부터 8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오.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오.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오.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이 말씀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고,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하면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마치 이 세상에 육신의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면서,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찾아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찾아야 된다는 거예요. 뭐 하려면? 찾으려면, 찾아야 돼요.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구해야 돼요. 문을 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돼요? 문을 두드려야 돼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겁니다. 지금 문을 열고 싶은데, 마음속으로만 “문이 열렸으면 좋겠네” “내 앞을 가로막고 있고 문이, 닫혀져 있는 저 문이 좀 열렸으면 좋겠네.” 생각하면서, 가만히 그 문이 열리기만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문이 열리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문을 두드려야 돼요. 두드리면 열릴 것인데, 안 두드리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열리지 않는 거예요. 찾아야 되는데, 찾지 않고 “어디 갔나?”라고만 하고 있으면, 못 찾는 거예요. 찾아다녀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가서 우리가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옛날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했던 베드로와 그 일행들에게 찾아가서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무런 고기도 잡지 못했다고 하는 그 베드로의 말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라.”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이 베드로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미 해봤어요. 해봐도 한 마리도 안 잡혔어요. 거기에 그물을 안 던진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던졌는데, 한 마리도 안 잡혔어요. 그러니 지금 가서 던져봤자, 무슨 고기가 잡힐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고, 그래서 해봤자 안 된다고 하는 그 절망이 그의 마음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베드로는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교만은 다툼만을 일으키고, 그러나 겸손한 자는 권고를 듣는다고 했는데,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겸손하게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지금 나의 경험과 지금 내가 방금까지 했던 그 모든 경험으로 봤을 때는 고기 한 마리도 낚을 수 없는 실망의 자리요. 아무런 소득이 없는 자리요. 헛수고의 자리인 저 갈릴리 호수에, 그곳에 그물을 던진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게 내 마음속의 생각인데, 그런데 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 앞에 귀를 기울이고 겸손하게, 말을 하는 겁니다. “주여, 밤새도록 고기를 낚지 못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지겠나이다.” 그러고서 그물을 던졌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이죠.

고기는 어떻게 잡는가? 고기 어떻게 잡아요? 예? 고기 어떻게 잡아요? 그물을 던져야 잡아요. 호숫가에 서 있으면 잡는 게 아니고, 어떻게 해야 잡아요? 들어가서 그물을 던져야 잡는 거지, 밖에 서서 가만히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고기가 잡히는 게 아니다 이 말이에요. 문을 두드려야 문이 열리고, 찾아야 찾아질 것이고, 구해야 얻는 것이지, 소망만 가지고 얻었으면 좋겠다. 나는 왜 이런 이 모양 이 꼴인가? 하면서 생각만 하고, 아무런 움직임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아무것도 얻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경험과 실패의 그 확신들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던졌을 때, 놀랍게도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게 된 것이죠.

사마리아 성에 있던 4명의 나병 환자들에게는 이제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감싸고 있는 그 상황 가운데서, 사마리아 성의 모든 음식이 떨어져 버리고, 이제는 그 자리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엄청난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여기 있어도 죽을 텐데, 이러지 말고 우리가 저 아람 진영에 가서, 적군의 진영에 가서, 먹을 것 좀 달라고 해보자.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먹을 걸 줄 리가 있습니까? 유대인들도 뭐 싫어서 내쫓아버린 그 나병 환자들이 적군인 아람 진영으로 가서, 먹을 걸 달라고 한다면 먹을 것을 준다고 하는 보장이 습니까?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고, 소용없는 일이고, 미친 짓이고, 하나마나한 짓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4명의 나병 환자들이 그 아람 진영을 향해서 가는 거예요. 가서 먹을 것을 달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도 기적이 거기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아람 군대는 다 사라져 버리고, 그 안에 수많은 먹을 것들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우리는 소망으로 바라기만 하면서, 노력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크리스천들 중에서는 성경을 오해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고 하는 말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실 거라고 하는 그 말씀을 철저하게 오해해서, 내가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기도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실망하고 좌절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거예요. 소망이 더 이루어지면, 마음에 상처만 받는 거예요. 소망이 이루어져야 힘이 나고, 기쁨이 생기고, 능력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당연히 기도해야 되겠지만,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될 최선의 일을 다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우리 가정은 왜 이렇게 가정이 평화롭지 못합니까? 가정이 왜 이렇게 아픕니까? 하나님 앞에 울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 가정 가운데서, 내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내가 어떻게 삶이 바뀌어야, 우리 가정이 더 행복해지겠습니까? 그래서 문을 두드려야 돼요. 행복한 가정의 문을 열기 위해서, 들어가야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고 한다면, 문제 옆에서 가만히 서 있을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들어가서, 하나씩 하나씩 제껴봐야 되는 거예요. 야 문제를 제껴보면, 그 문제가 엄청나게 큰 줄 알았는데, 문제가 큰 게 아니라, 사실은 아주 조그마한 거 하나가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너무나도 작은 문젠데, 그것만 바꿔버리면 되는 그런 문제가, 조그마한 게 있는 것인데, 그냥 옆에서 지레 겁먹고, 찰싹거리는 그 파도 보고 그 바다를 향해서 나아가지 않는 거죠. 고기가 저 많이 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육지에서만 서서 아무것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걱정만 하고 있는 그런 어리석은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이 있는 것이죠.

참 감사한 것은 제 아내는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엄청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처음 결혼하고 엄청 싸웠어요. 엄청 싸웠어요. 힘들었어요. 근데 이렇게 우리가 평생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힘든 세월들을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가 그냥 소망만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소망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실천을 옮기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드는 거죠. 생일이면 “여보, 9월 2일이 내 생일이야” 알려주는 거예요. 까먹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지나가니까, 미리미리 한 달 전부터 두 달 전부터 저에게 알려줍니다. 9월 2일이 내 생일인 거 알지? 알지? 자꾸 얘기해요. 그러면 “아 맞구나” 해서 선물이라도 주면, 선물 받고 좋아해요.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너무나도 좋아요. 그러니까 또 해주고 싶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분들을 보면 우리 남편이 내 생일 알아주나? 안 알아주나? 말 안 하고, 어떻게 해 주나? 기다리고 있어요. 근데 정말 못 알아주고, 그냥 지나가요. 그러니까 마음에 상처를 받고, 이런 무심한 남편, 이런 좋지 않은 남편, “나는 불행해” 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제 아내는 저한테 얘기를 해요. “오늘은 뭐 먹고 싶어”라고 얘기를 하면 사줘요. 어깨라도 좀 주물러줬으면 좋겠다고 하면 주물러줘요. 말 안 하면, 안 해요. 말 안 하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아무런 변화도 없어서, 그래서 실망하는 것보다, 좋은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하고, 저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해서, 그래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 시작하고, 기쁨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점점점점 좋은 가정으로 만들어져 가는 겁니다.

구하면 얻을 것이고, 찾으면 찾을 것이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인데, 문이 열리는지 안 열리는지, 그냥 밖에서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열릴까 기다리다가, 문이 안 열리니까, 낙망하고 실망하고 왜 내 인생은 이렇게 문이 닫혀 있을까? 그리고 또 실망하고, 좌절하고 더 깊은 수렁으로 내려가는 겁니다.

우리는 늘 안타깝게도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죠. 잘못된 선택을 할 게 아니고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면 열리게 되는 것이고, 열림으로써 소망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 더 기쁨이 생기고, 그래서 더 자신 있게 나갈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더 나은 길로 나가는 것이죠.

그런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고 하는 그 자기만족, 자기 스스로를 안위하는 그런 모습으로서만 하면서,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가 전혀 없는 것 가운데 실망하고, 소원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있는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들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문제가 커 보이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교회 저 뒤에 스크린 모니터가 하나 있는데, 얼마 전부터 모니터는 반절만 나옵니다. 그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전문가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되나? 어떻게 해결해? 해결될 방법이 없어요. 언제? 쳐다만 보고 있으면, 아무런 해결책이 없어요. 쳐다만 보고 있으면, 백날이 지나가고, 1년이 지나가도 아무런 해결책이 없어요. 근데 어제 임 목사님이랑 저랑 같이 사다리 타고 올라갔어요. 텔레비전을 떼어 봤습니다. 그 텔레비전을 이 앞에서 테스트했더니, 텔레비전은 정상이에요. 텔레비전 문제가 아니구나. 케이블을 떼어다가 이 앞에다 또 테스트를 했더니, 잘 나와요. 케이블도 문제가 아니구나. 케이블 그 전 단계에 있는 분배기가 있는데, 그 분배기를 떼어가지고 테스트를 해보니, 분배기가 문제구나. 분배기를 저 1층에 가 가지고 안 쓰는 분배기 떼어다가 연결해 주고 했더니, 금방 해결이 돼요.

서있을 때는 문제가 너무나도 크고, 우리 인생의 문제가 왜 이렇게 큰가? 아무것도 되지 않는구나. 내가 문을 두드리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열리지 않아요. 그런데 문제 앞에 가서, 이거 떼어보니까, 그거 문제 아니고, 이거 떼어보니까 문제 아니고, 이거 떼 보니까 문제 아니고, 이거 떼어보니까, 요 조그마한 거 하나가 문제예요.

저 뒤에 거 고치는 김에, 이 앞에 것도 한 번 고쳐보자 해가지고 가져갔는데, 잘 될 줄 알았더니, 또 안 돼요. 그래서 뭐가 문젠가? 텔레비전이 문제가 했더니, 텔레비전 문제 아니에요. 케이블이 문제인가, 케이블이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까지 잘 되던 분배기가 문제인가 했더니, 분배기가 문제예요. 분배기가 자꾸 고장 나는 거 같아요. 그런데 분배기 남는 게 없어요. 큰일 났습니다. 그런데 임 목사님이 서랍에서 하나 찾아왔어요. 목사님, 이게 서랍에 남아도는 분배기 같은데, 이거 될까요? 한번 해봅시다. 됐어요.

문제가 어렵냐면, 하나도 안 어렵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감당치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 가정의 문제도 어려워 보이지만, 어려운 이유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서 있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하나도 건들지 않고 그냥 밖에 서 있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이야기하고 대화를 하고 하나씩 하나씩 내가 바꾸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하나씩 하나씩 바꾸어 나가게 된다고 한다면, 소원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생명나무니라.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지 않고, 소원이 더디 이루어지게 되면 “마음에 상처만 받을 것이다”라고 하는 말씀을 오늘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은 늘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의를 선택하기보다는 악을 선택할 때가 많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듣기보다는 나에게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쓴소리 앞에 우리들의 귀를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고, 성실하게 수고하여 부를 얻기보다는 요행을 바라거나, 잘못된 방법을 취하려고 할 때가 많고,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기보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왜 내 인생은 이렇게 불행한 것인가? 한탄만 하고, 신세를 저주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보혈의 피를 흘려주신 것은 바로 우리들의 그러한 잘못된 판단과 잘못된 행실을 치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피로 저희들을 깨끗이 씻겨 주셔서, 더욱더 겸손하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사탄은 우리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자극해서 선을 선택하기보다는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겸손의 자세로 들어가게 만들기보다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으로 인해서 불편해하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다면, 나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하면서, 교만해 버리려고 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이끌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사탄의 유혹 앞에 무너지지 않게 해 주옵소서. 주님의 보혈로 저희들의 심령을 씻겨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둘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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