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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의 유익 (잠 13:6-8)

공의, 의로움, 악, 이런 것들이 무엇일까요? 의로움이나 악이나 이런 것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생물이 아닌 것이죠. 그런데 오늘 잠언서의 말씀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냐면, 마치 공의나 악이 인격체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의가 정직한 자를 보호해 주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만든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마치 사람이 누군가를 보호해주고, 사람이 누군가를 패망하게 만드는 것처럼, 공의, 의로움, 악, 이런 것들은 인격체가 아니고, 사람이 아닌데, 마치 사람인 양, 보호해 주기도 하고, 패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아닌 것인데, 다시 말하자면 물건이나, 추상명사이거나, 아무튼 인격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들을 마치 사람인 양 표현하는 방식을 가리켜서 의인화(擬人化)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의인화라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의인화라고 하는 것은 사람처럼 표현한다는 겁니다. 사람이 아닌 것을 마치 사람인 양 빗대어 표현하는 표현 방식을 가리켜서 의인화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런 내용은 우리가 성경 해석학 시간에 다룰 내용인데, 기왕 나왔으니까,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하나님에게도 손이 있고, 하나님의 팔이 있고, 하나님의 입이 있다고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손이 짧아졌느냐?” 이런 식의 표현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마치 하나님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손이 있고, 하나님도 우리처럼 발이 있고, 하나님도 우리처럼 입이 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팔, 이런 표현을 보면서, 성경에 하나님도 손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도 팔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도 우리랑 똑같이 생겼고, “하나님도 우리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주장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인화라고 하는 표현 방식을 몰라서 하는 어리석은 주장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가 잘 이해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고,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서, 마치 하나님에게 손이 있는 것인 양, 하나님에게 팔이 있는 것인 양, 그런 식으로 의인화해서 표현하는 방식이 성경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의가 사람을 보호한다. 공의가 정직한 사람을 보호해주고, 그리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한다. 이렇게 잠언서에서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은 공의가 사람이란 얘기가 아닙니다. 악이 사람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선택한 그 공의, 우리가 행동하는 그 의로움,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악, 이러한 것이 결국에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그 선택의 결과를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의인화라고 하는 이런 표현 방법을 통해서 표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공의가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고, 악이 우리를 패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행했던 그 의로움으로 인하여, 그 의로움 때문에, 우리가 선택한 의로움 때문에, 결국에는 우리가 보호를 받게 될 것이고, 우리가 선택한 악 때문에, 그 악으로 인하여, 우리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좀 더 생생하게 잘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 마치 사람인 것인 양, 의인화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의는, 우리가 선택한 악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파생되는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게 되면, 결국에는 망하게 될 것이고, 우리가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하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보호받을 것이고, 우리가 안전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말씀이 오늘 잠언서 13장 6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분명히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왜냐하면 사탄은 우리들에게 거꾸로 말하면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향해서 어떻게 속삭입니까? 악을 행해야 빨리 성공할 수 있다. 우리가 나쁜 짓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무엇을 하든지 꿩만 잡을 수 있다고 한다면, 무슨 방법을 써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유혹을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해주고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 가운데 어떤 속삭임을 들려주고 있습니까? 네가 아무리 의로운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의를 행해봤자 헛수고가 될 것이고, 의를 행해봤자 너는 왕따를 당하게 될 것이고, 이 세상에서 결국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러한 생각들을 우리들에게 속삭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이런 황당한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공의로운 세상이었으면 좋겠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정말 선한 자에게 보상이 주어지고, 악한 자에게는 형벌이 가해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는데, 정반대로 돌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조폭들이 판을 쳐도 전혀 손도 쓰지 못하는 반면에, 정말 착한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는 일들이 우리 가운데 보이게 되는 겁니다. 선을 위해서 수고하고 의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그리고 패가망신당하는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반면에,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수십억 원을 먹어도 뇌물을 받아도 꿈쩍하지 않고, 아무런 걱정 없이 떵떵거리면서 살게 되는 그런 모습을 우리는 현실 가운데서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이 드냐면 선을 행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의롭게 살아보았자, 그것은 고생만 하는 길이다. 오히려 악과 결탁하며 사는 것이 그게 성공하는 길이라고 하는 그런 유혹을 많이 당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를 선택하고, 선을 선택하는 것보다, 악을 선택하고 속임수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는 그런 유혹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이죠.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을 베푸시고, 악을 행한 자에게는 심판하시는 하나님. 우리들의 억울한 그 사정을 알아주시고, 그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의의 길을 가다가 고난을 당하고, 슬픔을 당해도, 그래도 아무런 도움을 주시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결국에는 마지막 날에 우리들의 그 억울함을 신원해 주시고, 눈물을 닦아주시고, 하나님께서 의를 상 베푸시고 보호해 주신다고 하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읽은 13장 7절과 8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오늘 읽은 잠언서 13장 7절과 8절의 말씀은 재물 물질에 관한 잠언의 말씀입니다.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재물,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고, 유용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물질을 악한 것으로 봅니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괴롭게 만들고, 우리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물질은 다 내어버리고, 가난하게 살아야, “그게 좋은 거다”라고 가르치는 종교가 있습니다. 다 내려놓고, 다 버리고, 무소유로 살아야, 그게 진짜로 영적으로 사는 삶이라고 그렇게 가르치는 종교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기독교 일부 분파 내에서도, 우리 기독교라고 하는 아주 큰 그룹이 있는데, 이 기독교의 어떤 한 분파에서는 또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부자라고 하는 것은 천국에 갈 수 없으며, 오로지 가난한 자만이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다고 말하고, 그래서 청빈의 삶, 가난한 자의 삶을 사는 것이 그게 진짜 믿음이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것이지, 물질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 그것은 아주 악한 것이며, 따라서 참된 믿음을 가지려고 한다면, 그 모든 물질들을 다 나누어 줘 버리고 가난하게 살아야, 정말 최소한의 것만을 가지고 살아야, 그게 진짜 믿음이고, 그게 진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라고 그렇게 주장하는 기독교 일부 분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물질은 악한 것이 아닙니다. 물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축복이기도 하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하늘과 달과 별과 태양과, 그리고 이 세상,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아이고, 이 나쁜 것을 내가 왜 만들었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선 이 세상천지를 만들어 놓으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우리 인생들에게 맡기시며, 이것을 다스리라고 주신 것이고, 우리들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으로 주신 것이고, 소유로 주신 바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성경적인 관점에 의하면 악하고 나쁜 것이기에 버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재물이라고 하는 것,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있으면 좋은 것이고, 많으면 더 좋은 것이고, 그리고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유용한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할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할 수 있다고 한다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무엇입니까? 수고하고 애쓰고 땀을 흘리고 부지런히 살면, 윤택하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에요.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는 게, 하나님의 법칙이고, 내가 땀을 흘린 만큼 먹을 수 있는 것이 그게 하나님의 축복의 그 법칙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다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가지고, 능력을 가지고, 똑같은 것이 주어졌다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머리도 쓰고, 또한 땀도 흘리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많이 얻을 수만 있다고 한다면, 훨씬 더 유익한 것이고,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는 수단이 되고 도구가 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물질이 나쁜 것이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악한 것이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만들어주시는 그 축복의 도구인 이 물질이, 도구가 아니라, 우리들의 우상으로 바뀌어 버릴 때입니다. 물질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다스려야 할 대상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그 수단이며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도구이고 수단인 그 물질을 마치 우리들의 우상인 양,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우리를 만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하나님으로 대치해버리게 되는 그 순간, 이 물질은 저주가 되는 것이고, 악한 것으로 바뀌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물질이 너무나도 좋기 때문에, 물질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되는 것이죠. 이 물질이 하나님인 양, 그 물질을 경배하며, 물질 앞에 복종하게 되는, 그런 잘못된 주종 관계가 바뀌어 버리는, 하나님과 물질 사이에 바른 관계가 깨어져버리는,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될 때, 이 물질이 악한 것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이 너무나도 유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순간순간 하나님이 나를 먹여 살리시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나를 먹여 살린다고 하는 그런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는 그런 믿음의 고백을 하면서 살아야 될 텐데, 실제로 우리가 떡을 먹으면서 살기 때문에, 물질을 이용해서 살기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이 드냐면, 떡이 하나님이라고 생각이 되는 거예요. 물질이 하나님이라고 생각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하나님은 그 물질을 얻는 그런 유용한 수단으로 불과하고,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가 물질을 더 많이 얻고, 더 그 물질을 얻으려고 하는, 오히려 주객이 바뀌어 버려서, 물질이 하나님이 되어 버리는, 그런 결과가 되어 버릴 때, 물질은 악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물질이 나를 먹여 살린다고 하는,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게 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법칙을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무엇입니까? 성실하게 일하고, 땀 흘리고 수고하고 애써서, 우리가 심은 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죠. 아침부터 일찍 씨를 뿌리러 나가고, 수고하고 애쓰는 가운데, 내가 심은 만큼 거두고, 내가 노력한 만큼 거두는 것이 그게 하나님의 법칙인 것이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모든 것을 거두었다고 한다면, 이것이 내 힘과 능력으로 거둔 것이 아니라, 내가 이것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내가 얻은 것이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을 하면서, “이게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들이 나와야 되는 거죠.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다시 돌려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믿음의 고백으로 돌려드리는 거거든요. 이것은 내 힘과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입니다.”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으로 표현하는 것인 것이죠.

그런데 물질이 우상이 되는 그 순간에는 이 모든 것들이 다 깨어져 버리고 마는 겁니다. 수고하고 애써서 물질을 얻는 것이 아니라, 수고하지 않고도 얻으려고 하는 욕심이 생기는 것이죠. 도둑질을 하고 강도짓을 하기도 하고 사기를 치면서, 또한 요행을 바라기도 하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땅히 드려야 될 것을 드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물질을 맡겨주셨다고 한다면, 이것으로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선을 베풀며 살아야 하는데, 그러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허락하신 그 목적을 망각해 버린 채, 이기적인 목적으로만 나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그런 잘못된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잘못된 반응으로 나오는 것은, 왜 그런 반응이 나오는가? 물질이 우리의 우상이 되어 버렸을 때,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질이 우리들의 우상이 된다고 한다면, 사랑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죠. 내가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착취하게 되는 겁니다. 정당한 임금을 주지도 않고, 또한 내가 수고한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아니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정말 악하게 대하면서, 그래서 물질을 최대한 대로 많이 얻고자 하는, 그런 잘못된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인데, 바로 그 지점이 어떤 지점인가? 물질이 우상이 되어 버린 지점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물질이 우상이 되었을 때는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오늘 13장 7절에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수고와 땀을 흘려서 얻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얻지 못해 놓고도, 마치 가진 게 있는 것처럼, 스스로 부자인 것처럼 허세를 떠는 일들이 발생하는 겁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마치 부자인 것처럼 허세를 떠는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물의 재물이 유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재물이 항상 유용한 것이 아니라, 재물이 우리들의 우상이 되어 버릴 때 오히려 해를 당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겁니다. 13장 8절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협박을 당한다는 거예요. 협박을 당해서, 그래서 그 협박을 당해서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그 재물을 내놓고, 겨우 살아야만 되는, 목숨을 살려야 되는 그런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고요. 차라리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면, 그런 협박을 당하지 않을 텐데, 무엇이라도 좀 있으니까, 협박을 당하는 것이고, 무엇이라도 있으니까, 사기를 당하는 것이고, 무엇이라도 있으니까,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재물의 재물이 유용한 것만이 아니라, 위험성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재물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너무나도 좋기 때문에, 유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얻으려고 많이 노력을 하는데요. 그런데 모순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얻으면 얻을수록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다 손해 보고 마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마치 신기루를 쫓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다가, 물을 찾다가, 저 멀리 바라보면 오아시스가 보입니다. 신기루가 보이는 거죠. 그래서 그 저 오아시스에까지 내가 갈 수만 있다고 한다면, “물을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열심히 달려가는데, 한 200미터만 가면 있을 줄 알았는데, 200m를 가면 없어요. 그 신기루가 어디로 도망갔습니까? 또 저만치 도망가 있는 것이죠. 물질도 그런 신기루와 같은 것이어서, 유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또 위험하고, 우리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열심히 얻으려고 노력하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오히려 더 손해 보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이죠.

예전에도 한번 제가 예화를 들었습니다마는, 연상호 감독이라고 하는 분이 만든 만화 영화 <사랑은 단백질>이라고 하는 만화 영화가 있습니다. 그 만화 영화에 보면 치킨집 사장이 통닭을 만들어 파는데, 그래서 하숙생들에게 치킨을 배달해 주었는데, 이 하숙생들이 그 치킨을 먹으려고 하는 그 순간에, 통닭집 사장이 달려와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 먹으려고 하는 그 치킨, 그 통닭은, 사실은 우리 아들 닭돌이를 죽여서, 여러분들에게 준 겁니다. 꿈 많은 우리 닭돌이. 귀여운 우리 닭돌이데, 그 아이가 꿈도 피기 전에, 내가 통닭을 튀겨서, 여러분들에게 줬으니, 여러분들 맛있게 드시고, 그리고 뼈라도 잘 묻어주세요.”라고 하는 황당한 만화가 있어요. 무슨 만화가 이렇게 황당한 만화인가 생각이 드는데, 연상호 감독이 하는 얘기가 뭐냐? 무슨 얘기를 하냐면, 그게 바로 인생이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인생이다. 무슨 얘깁니까? 우리는 돈을 벌겠다고 열심히 수고하고 애썼는데, 돈을 번 것 같은데, 사실은 돈을 번 게 아니라, 무엇을 갈아 넣었어요? 우리들의 건강을 잃어버리고, 돈을 번 거예요. 우리들의 가정이 불화해가면서, 돈을 번 거예요. 가족들 간의 사랑을 나눌 시간을 손해 보면서, 돈을 번 거예요. 열심히 수고해서 돈을 번 것 같은데, 알고 보면, 건강 다 잃어버리고, 결국 손해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그게 우리 인생들의 참 어리석은 모습이고 쳇바퀴 돌아가는 삶의 모습과 같은 것이죠. 그런데 물질이라고 하는 게 바로 이런 위험성이 있는 겁니다.

물질이 한편으로는 좋은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서 우리가 충분히 벌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우상이 되어버려서, 그래서 우리가 돈을 벌겠다고 최선을 다했는데, 알고 보면 건강 잃어버리고, 알고 보면 자녀와의 관계가 깨져버리고, 우리의 가장 소중했던 것들을 다 잃어버린 채, 그런 채, 허망한 그 돈을 벌겠다고 하는 게 우리들의 모습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리는 분명하게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물질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고 하는 믿음의 고백들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는가? 물질을 많이 버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좋은 대학에 가는데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게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존전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참된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만이 우리에게 참된 소망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가난해야 된다고 말씀드리는 거 아닙니다. 돈 벌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십시오. 열심히 사십시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물질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칙은 부지런한 자가 부자가 되는 것이고, 땀을 흘린 만큼 얻게 되는 것이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그래야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늘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물질은 우리를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건 수단에 불과한 것이고, 있다가 없어질 것이고, 또 우리의 문제를 영원히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수밖에 없다.” 말씀하시며,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가 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물질이 우리를 살리는 게 아닌 겁니다. 물질이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게 아닌 겁니다. 따라서 마치 물질이 우리를 살리는 것인 양, 그것을 위해서 거짓의 길로 나아가고, 악한 길로 나아가고, 불의의 길로 나아가면서, 많은 것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길로 나간다고 한다면, 결국 그것은 우리가 패망의 길로 가는 것, 오늘 읽었던 13장 6절의 말씀처럼, 공의를, 의를 행한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지만, 악을 행한다고 한다면, 결국 그 악을 행하는 죄인은 패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 귀한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 위에서 다 쏟아내어 주셔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생수를 주셨다고 하는 그 사실을 오늘도 기억하면서, 우리들의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지만, 매 순간순간의 고백이 물질이 나의 주가 아니라, 주님만이 나의 참된 구주시라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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