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주기도문 강좌 3 –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주기도문 강좌 2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소서

주기도문 강좌 4 –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주기도문 강좌 목록으로 돌아가기

+

+

1. 제1청원이 필요한 이유 

주기도문 강좌 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의 제목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겨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무시되고 더럽혀지고, 폄훼당하는 그런 현실들을 우리가 만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이런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죠.

어디서 더럽혀집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서 더럽혀지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하는 그런 비아냥거림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무시당하고 더럽혀지고 있는 것이죠. 특별히 우상을 숭배하는 현장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은 더럽혀지는 겁니다. 우상숭배를 하게 되면, 하나님이 아닌 것에게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고요, 하나님은 무시를 당하는 것인데요.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위치로 올리는 것이 우상이 되겠죠.

따라서 단순히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만들어진 우상만이 어떤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만이 우상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다양한 우상들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때로는 재물이 우상이 될 수도 있겠고, 또한 우리 자식들이 우상이 될 수도 있겠고, 성공이 우상이 될 수가 있겠고, 명예가 우상이 될 수가 있겠고, 탐욕이나 쾌락이나 이 세상에 좋은 모든 것들이 다 우상이 될 수가 있는데요.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갈망하고 예배하고, 그렇게 환호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은 땅바닥에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은 어디서 더럽혀지는 겁니까? 성도들이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그 성도들을 잘 돌봐주셔서 모든 것들이 잘 풀려나간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그 크리스천들을 보면서, 성도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선한 일을 하게 될 때,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게 되는 것이죠.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게 되는 것처럼, 너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라고 말씀해 주신 것인데요.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은 성도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고 잘 될 때, 또는 선한 일을 할 때, 모든 일들이 잘 될 때,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돌려주게 되겠지만, 그러나 성도가 무시를 당하고, 문제들이 생기고, 또는 악한 일을 하게 될 때는, 하나님의 이름이 무시를 당하게 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죄를 짓게 될 때, 하나님의 이름은 무시를 당하게 되는 것이고, 더럽혀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인데, 그 말은 어떤 상태로 변화시키게 해 달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 달라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네.”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두려워 떨 수 있는 그런 단계로 가게 되는 것이죠.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둥과 우레를 발하게 될 때, 이스라엘 민족들은 벌벌 떨면서 그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고 진노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그 사실 앞에서 정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하는 것이 증명이 될 때,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이름을 올려드리게 되는 것이죠.

바알과 아세라 신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그 현장 가운데서, 바울과 아세라 신에게는 응답이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불이 떨어지는 그 모습을 볼 때,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야말로 진짜 하나님이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드러내게 된 것이죠. 블레셋 군인들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완전히 몰살시키려고 할 때, 하나님의 이름은 더럽혀졌습니다. 골리앗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을 욕하고 비난하는 거죠. 그럴 때 다윗이 나타나서 그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그것을 통해서, 과연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구나라고 하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때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을 올리게 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가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 가운데 들어갔지만, 거기서 살아있는 것을 보게 될 때, 그 주변에 그 모든 일들을 목격한 사람들이 하나님이야말로 진짜 하나님이고, 이 세상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겨지고 영광을 올리게 된 것이죠.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실제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다고 하는 것을 실감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정말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우리들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지는 역사가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이 두 번째 기도의 제목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두 번째인가요? 첫 번째인가요? 첫 번째! 그렇죠. 첫 번째 기도 재목이죠.

2.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가?

두 번째 기도의 제목은 뭡니까?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하는 것이 두 번째 기도 제목이죠. 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해 달라. 임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의 제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뭐죠?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 다른 말로 하면 “천국”입니다. 천국이랑 같은 말이에요. 하늘, 하늘나라, 천국, 하나님의 나라, 신의 왕국, 하나님의 왕국, 다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번째 기도 제목이 뭐냐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지게 해 주세요”라고 하는 이야기는 “천국”이 오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의 제목, “하나님, 천국이 오게 해 주옵소서.” 천국이 오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인데요. 그렇다고 한다면 천국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천국이라고 하는 말을 생각할 때는 성경적인 개념으로 천국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적인 개념, 미신적인 개념으로 천국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성경의 이야기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그 언어를 가지고 성경을 번역하고 설명해 준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기 좋게 이 성경의 개념들을 번역을 한 건데요. 그래서 천국이라고 번역을 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천국 하면, 어떤 개념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나라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오랫동안 옛날부터 살아오던 사람들이 천국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 하면 무엇을 생각합니까? 극락, 천국과 지옥, 극락과 지옥. 그런 개념으로 천국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 우리가 죽게 되면, 그러면 가게 되는 두 곳 중에 하나, 지옥에 가든지, 천국에 가든지, 극락에 가든지, 지옥에 가든지 할 때, 그 개념으로 우리가 천국을 이해해 온 것이죠.

하지만 성경적인 개념은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천국이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과는 약간 개념이 좀 달라요. 물론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개념은 그것보다는 훨씬 더 큰 개념으로 천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뭐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뜻합니다. 대한민국은 무슨 공화국이에요? 민주공화국이죠. 그 얘기는 모든 국민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 권세를 가지고, 모든 권세가 국민에게서부터 나온다라고 하는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 겁니다. 대한민국이 아닌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냐면, 모든 권세가 하나님에게서부터 나오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고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의 성경적인 개념이 뭐냐면, 하나님이 왕이시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가 천국인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게 될 텐데, 그 죽어서 가는 천국도 천국인 이유는 모든 것이 다 완벽하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천국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나라에 가면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 하에 있기 때문에 그곳이 천국인 것이죠. 그런데 죽어서만이 천국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도, 천국이 될 수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찬송가 가사에 보면,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주 성경적인 개념에서 표현을 잘한 거예요. 지금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다고 한다면, 지금도 우리가 천국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3. 제2청원을 기도하는 이유 – 누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가?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게 된다고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주기도문에서 두 번째 기도의 제목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는 기도의 제목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그것은 지금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누가 다스리고 있어요? 악마가 다스리고 있는 것 같거든요. 사탄이 다스리고 있는 것 같거든요. 이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있습니까? 악마 사탄이 다스리고 있습니까? 대답 한번 해보실래요. 1번 하나님이 다스리고 있다. 2번 악마가 다스리고, 사탄이 다스리고 있다. 1번입니까? 2번입니까?

크게 봐서는 1번이고, 현재 우리가 늘 느끼는 것은 2번처럼 느껴지고, 이렇게 정답을 말해버리면, 강의하는 사람이 굉장히 힘들어지는데, 예수비전교회의 실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크게 보아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온 우주의 최고의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최고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하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 발생하는 것이 없는 겁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어야 떨어지는 것이고,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서 일어나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하자면 모든 것이 지금 현재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느끼고 있는, 피부로 와닿는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안 다스리시는 것 같아요. 피부로 느끼기에는, 왜 만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고 한다면, 그 통치가 선한 통치여야 되잖아요? 하나님께서 다스린다고 한다면 의로운 통치가 이루어져야 되잖아요? 공의로운 통치가 이루어져야 되잖아요? 그래서 정말 착하고 신실한 사람들에게는 상을 주어야 마땅하고,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심판해야 마땅하고, 우리가 수고하면 수고한 만큼 받을 수 있게 만들어줘야 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져야, 그게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라고 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실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엉망 칭찬인 거죠. 엉망진창이에요. 선한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해요. 고통을 당해요. 그런데 악한 사람은 계속 승승장구해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먹고 잘 살아요. 그것도 몇 대에 걸쳐서 잘 살아요.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가 있어요? 악을 행하는 자는 계속해서 몇 대를 거쳐서, 악을 행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정말 신실한 사람들은 빌어먹고 있다. 이 말이에요.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단 말이에요. 도대체 이런 황당한 세상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누가 다스린다고 하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마귀, 악마, 사탄이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느껴지게끔 하는 세상이 우리 가운데 펼쳐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기도문 가운데서 제2청원, 두 번째 기도의 제목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의 제목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런 불합리한 이런 상황들이 어서 빨리 종식되고, 정말 선하신 하나님, 정말 의로우신 하나님, 정말 공평하신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해달라고 우리가 실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기도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실 이 두 번째 기도도 하나님을 위한 기도입니까? 우리들을 위한 기도입니까? 우리들을 위한 기도예요. 1, 2, 3 청원은 하나님을 위한 기도, 4, 5, 6, 7 청원은 우리를 위한 기도라고 하는 그런 분석을 할 때가 많이 있는데, 사실 이 첫 번째 기도도 우리를 위한 기도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두 번째 기도도 역시 우리들을 위한 기도가 되는 것이죠.

4. 이 세상이 엉망진창이 된 이유

여기서 우리는 도대체 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번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 세상은 엉망 칭창이 돼 버렸을까요? 왜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는 한다고 하는데, 왜 하나님의 다스림은 우리의 피부에 와닿지 않고, 정말 사탄이 다스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이런 상태가 된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라고 질문을 던져봐야 되는 거죠. 왜 이렇게 돼버렸습니까? 그것은 창세기가 답변을 해주는 거죠.

천지 창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만드신 것이죠.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는 좋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이 세상은 정말 좋은 것이고 정말 선한 것이고 너무나도 좋은 것이 이 세상이었습니다.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왕국인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인간들에게 이 세상을 다스리라고, 사람들에게 권한을 위임해준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아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와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인데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을 잘 다스리며 하나님의 나라로 계속 가꾸어 가야 할 책임이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것이 아니라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거역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리고 이 세상이 잘 돌아가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게 된 것이죠. 하나님이 아닌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선악과죠. 선악과는 자기 위치에 있어야 괜찮은 겁니다. 선악과라고 하는 나무도 크게 봐서는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 에덴동산에 있으면서 보면 됩니다. 즐기면 되는 겁니다. 선악과가 여기 있구나. 향기를 맡으면 되는 겁니다. 즐길 수 있는 겁니다.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거 먹지 마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안 먹으면서 그 자리에 있으면, 그 나름대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고, 또 하나님의 계명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고,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역할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그 선악과라고 하는 그 나무를 어디의 위치로 올려버렸냐면, 하나님의 위치로 올려버린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그 선악과를 갈망하면서, 그리고 그것을 먹어버리고 말았는데요. 결국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화려한 것을 약속하지만, 전혀 화려한 것을 주지 아니하고, 약속한 화려한 것을 주지 않고, 결국은 우리를 죽여버리고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이 우상이거든요. 결국 그 선악과로 인해서 사람은 죄악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결국 이 세상이 망가져 버린 겁니다.

사람들만 망가진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함께 망가져버려서, 이 세상이 사탄이 지배하는 것과 같은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죠.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의 최종적인 결과는 무엇입니까? 죽음이죠. 죽음을 향해서 가는 인생이 되었고, 죽음을 향해서 모든 것들이 달려가는 것이 되어버린 겁니다. 사탄의 통치는 결국 죽음인 것이죠. 그 죽음을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결국 사람들은 수고하고 애쓰며 땀을 흘려서 먹을 것을 취하지만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었고, 이 세상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수고한 만큼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엉겅퀴를 내며, 엉겅퀴가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영양가도 있고, 그런데 아무튼 여기서 말하는 엉겅퀴라고 하는 의미는 진짜 그런 우리에게 유익한 그런 엉겅퀴라기보다는 우리를 참 힘들게 하고 찌르고 하는 그런 못된 것을 상징하는 그런 걸로 엉겅퀴를 내는 것이고, 가시를 내는 것이고, 아무튼 이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아주 괴롭히는 주변 세상으로 싹 바뀌게 된 겁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었을 때는 모든 것이 다 보기 좋고, 모든 것이 다 행복했던 그 세상이었는데, 사탄이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을 장악해 버리고, 그리고 이 세상의 것을 하나님의 위치로 올려버리게 된 결과, 모든 것이 뒤집어져 버린 결과, 결국 이 세상은 죽음을 향해서 가게 되고, 결국 모든 것들이 우리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배신해버리는 그런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죠. 따라서 이중적인 구조가 생긴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기는 하지만, 그러나 실제적으로 우리는 사탄의 지배 가운데 살아가고, 죄의 지배 가운데 살아가고, 결국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 이중적인 구조가 생겨버리게 된 것이죠.

5. 예수님의 구원 사역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들을 그 사탄의 지배로부터 건져내시는 겁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그리고 부활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죽음을 예수님께서 이겨버리시고, 사탄의 최후의 병기를 완전히 까부시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권세를 완전히 짓밟아버려서, 완전히 쓰러뜨려버려서 이제는 사탄이 손을 쓰지 못하게, 이제는 사탄이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사탄의 그 소나기에서부터 건져낸 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러한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시면서, 이러한 구원이 다가왔다고 하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이냐면 병자들을 고쳐주셨어요. 병자들을 고쳐주신 이유가 무엇이냐면, 바로 이 병자라고 하는 것은 사탄의 지배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지배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병이 있겠어요? 죽음이 있겠어요? 무슨 슬픔이 있겠어요? 무슨 외로움이 있겠어요? 고통이 있겠어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게 맞죠.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하는 것이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결국에는 죽음을 향해서 가는 걸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 죽음의 증상들이 뭘로 나타나요? 질병으로 나타나고, 고통으로 나타나고, 슬픔과 애통함과 외로움과 등등 여러 가지 문제들로 자꾸만 나타나게 되는 것인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사탄의 권세를 완전히 박살 내버리고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그 시대가 온다고 하는 것을 예고하기 위해서, 예고편으로 보여주신 것이 무엇이냐면 병자들을 고쳐주신 거예요.

그래서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은 사탄의 지배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을 이제는 하나님의 지배 가운데로 회복시키는 것이었고, 그것을 보면서 이제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가까이 왔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사람들로 하여금 바라보게 만들고, 그 하나님을 소망하게 만들고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인데, 그래서 예수님의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었던, 하나님의 나라가 온 것을 보여주는 예표하는 상징하는 그런 기적이 바로 그런 기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수님께서 어느 날 병자를 고쳐요? 안식일 날 고치시는 거예요. 하필이면 왜 안식일 날 고쳤을까요? 안식일 날 고쳤으니까, 그러니까 모두가 다 병자를 고친다고 박수 쳐야 되는데, 박수 치던 사람들이 안식일 날 고치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내기 시작하는 거예요. 왜 안식일을 어기느냐라고 막 항의하기 시작하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시급한 것도 아닌데, 한편 손 마른 사람 안식일이 아니라, 그다음 날 고치면 안 고쳐지나요? 손 마른 사람이 하루 늦게 치료해 주면 죽나요? 아무 문제도 없고, 그다음 날 치료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예수님께서는 놀랍게도 그 안식일 날 그 한 편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는 겁니다.

왜 그런 사람들의 반발과 그런 저항이 있을 것을 아시면서도, 왜 굳이 안식일 날 고쳐줍니까? 왜냐하면 바로 사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드러내게 해 주기 위한 것이죠. 안식일 날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안식일 날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의 날이죠. 하나님께서 6일 동안의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리고 다 완성된 것을 기념하고 축하하고 즐기기 위해서 안식일을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그날에 하나님께서 일을 쉬신 것이죠. 창조가 다 됐다. 완성됐다. 하나님의 나라가 끝났다. 완성됐다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것이 안식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그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을 기념하는 그 안식일 날에 누가 있어요? 불완전함이 있는 거죠. 망가진 게 있는 거죠. 사탄의 지배를 받는 그런 고통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안식일을 제대로 된 안식일로 만드시기 위해서, 안식일이 진짜 안식일이 되게 만들기 위해서, 그 안식일 날 그 병자를 고쳐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큰 역사적 흐름을 보면 창조와 타락과 그리고 그 타락에 이은 사탄의 지배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를 주의 권세 가운데서 해방시켜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죠. 그렇죠?

6. 여전히 힘든 이유

근데 문제는 뭐예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됐다고 하는데 차이가 별로 없어요. 차이가 별로 없어요. 왜 여전히 우리가 힘들어요? 여전히 우리는 죽고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고통이 있고 여전히 여러 가지 사탄의 지배를 받는 것 같은 그런 상황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게, 우리들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림을 보면 한번 이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보면 제가 그렸는데, de jure. 라틴어로 “법적으로”라고 하는 말입니다. 법적으로 보면, 영적으로 보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 이래로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떤가? de facto라고 하는 말은 라틴어로 “실제적으로”라고 하는 말입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됐는데, 아직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닌 거예요. 아직 우리가 죄 가운데 있는 거, 사탄의 통치를 받는 거예요.

우리는 법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데, 법적으로는 그런데, 영적으로는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무엇이 자꾸 나타나냐면, 사탄의 지배를 받고, 사탄의 지배 가운데 있는 행동들이 자꾸만 나타나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죠.

7. 빨리 죽어 천국에 가야 할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기도문을 알려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건데요. 이것은 아직도 사탄의 지배가 아주 팽배해 있어서, 우리들을 사탄의 그 지배 가운데 힘들게 있게 만드는데 이러한 사탄의 통치가 끝나버리고, 이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정말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정말 완벽하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까요? 언제 완성될까요? 죽으면,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의 모든 질서를 끝내면, 그러면 완벽하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진짜 백성으로 명실상부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그러면 하나님 빨리 죽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일까요? 하나님 빨리 종말이 오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일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죽어야 완성이 되고, 그리고 재림이 돼서 이 세상의 질서가 완전히 끝나버려야, 우주적인 종말이 오든, 개인적인 종말이 오든, 그때가 돼야 우리의 신분이 이제 100% 완벽한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니까, 그러니까 이 기도는 그러니까 빨리 하나님 죽게 해 주세요. 빨리 종말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런 기도의 제목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예전에 요한, 요한계시록 강좌를 하면서 “마라나타”라고 하는 그 제목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요. “마란 아타” 주여 “아타” 오시옵소서라고 하는 아람어죠. 그런 그 기도의 제목을, 저기 요한의 기도를 설명하면서 자세히 설명했는데, 혹시 기회가 되신다면 다시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목표는,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한다는 얘기는 빨리 죽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도 아니고, 종말이 빨리 오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도 아닙니다.

종말이 빨리 오는 게 좋은 거냐? 내가 빨리 죽는 게 좋은 거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이나, 종말은 그것은 우리의 영역을 떠나 있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 가운데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 앞에 맡겨주고,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에 보내주셨다고 한다면, 그 보내주신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그것이 바른 건전한 신앙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에게 할 일이 있는 겁니다. 나이가 젊든, 많든, 그리고 이제는 너무 연로해서 할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역할이 있어요. 그리고 그 역할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그 역할을 생각하지 않고, 자꾸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에, 나보다 젊은 사람과 비교하고,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에, 별 볼 일 없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그 사명들이 다 있어요. 그 사명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8. 제2청원의 의미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빨리 오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우리가 종말이나, 빨리 끝내게, 내 인생 끝내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그러면 이 기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며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가 될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그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들의 삶 가운데,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게 돼야 되는 것이죠. 우리는 늘 의지가 약해서 늘 사탄의 지배를 받으며 삽니다. 그래서 늘 죄에 빠지기 쉬운 것이죠. 성도라고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보다는 누구의 명령에 더 잘 들어요? 사탄의 말을 더 잘 들어요. 그래서 미워하라고 하는 그 말에 우리가 순종하고, 탐욕을 부리라고 하는 그 말에 우리가 순종하고, 자꾸만 사탄의 말을 듣고 살아갈 때가 많은데, “주님”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하나님, 제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셔서, 내 마음이 사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그래서 내 삶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처럼 살아가게 해달라고 하는 것, 다시 말하자면 죄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일 수가 있겠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제2 청원이 제6청원 제7 청원과 일맥상통하는 기도의 제목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 거죠.

뿐만 아니라 이 기도는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고통받는 자들을 위한 기도일 겁니다. 지금 사탄의 지배로 인해서 여러 가지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질병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있는 자들, 또는 여러 가지 외로움을 느끼는 자들, 또한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 저들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단순히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 플러스 우리들의 현재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정말 그런 고통의 삶이 아니라, ”기쁨의 삶으로 바뀌게 해 주옵소서. “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해 주옵소서라고 하는 그런 기도의 제목이 되는 것이고요. 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종식이 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일 수도 있겠고, 저 장애인들이 차별을 받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그 장애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게 해 주고, 사회가 개선이 되고 하는 그런 기도의 제목이 될 수가 있겠고, 또한 이주민들이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고 고통 가운데 있는데,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겠고, 갑질에 피해를 당하고, 여러 가지 참 부당한 차별로 눈물짓는 사람들에게도, 정말 그 모든 것들이 다 해결이 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하는 기도의 제목이 될 겁니다.

돈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모든 불의와 고통에서 건져 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의 제목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도의 제목은 지금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을 행하며, 그리고 정말 사악한 일들을 하면서도 뻔뻔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징벌을 내려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을 행하고 있는데, 그런 악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정말 주인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정말 다스린다고 하는 사실들이 그런 사람들에게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지금 통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드리는 기도는 아닙니다. 조금 전에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지금 다스리고 계셔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그런데 그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들 가운데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거든요. 그런데 느껴지지 않는데 정말 하나님의 통치가 정말 느껴지도록,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하나님이 정말 역사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정말 이런 엄청난 일들을 하고 계시는 구나라고 하는 사실들이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9. 같은 기도의 다른 설명

그래서 보면, 지금까지 설명해 준 걸 보면, 1 청원하고 2 청원하고, 그 기도가 명확하게 구분이 됩니까? 1 청원했던 이야기, 2 청원 때 목사님이 또 하시고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까? 또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예? 일맥상통합니다. 다음에 우리가 제3청원을 할 텐데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라고 하는 기도의 제목도 사실은 일맥상통한 기도예요.

우리가 연구를 하다 보니까, 제1청원은 이런 기도의 제목이겠다. 2 청원은 이런 기도의 제목이겠다. 3 청원은 이런 기도의 제목이다 하면서, 자꾸 분리하고 그 특색들을 막 이렇게 막 대조시키려고 하는 그런 열심과 경향들이 많이 있는데요. 사실은 하나의 기도요. 하나의 기도요. 하나님께서 다스리게 하는 것이 진짜 지금 우리들에게도 느껴지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죠 그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겨달라고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는 것이고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고요.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왜 같은 이야기예요? 그것은 유대인들이 흔히 하는 히브리식 평행법적인 표현 때문이기도 합니다. 같은 의미의 표현을 한 번 이야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서 표현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서 표현하는 반복 대조하는 그런 표현법들에 따라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맨 처음 시간에 제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이 똑같은 것이 아니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면서, 그 어떤 점들이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렸는데, 누가복음에는 1, 2, 3 청원 중에서 몇 개만 있습니까? 1, 2 청원만 있고, 3 청원이 없어요. 어? 왜 빼먹었죠? 빼먹어도 돼요! 의미가 중요한 거예요. 의미가. 하나만 해도, 돼요. 하나만 해도 돼요. 다만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저렇게 표현하고 한 그 의미가 과연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가를 우리가 살펴본다고 한다면, 의미들을 더 확장하고 더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구하는 기도의 제목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은 제3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2인칭 명령이 아니라, ”네가 이걸 해라“ 명령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야, 와라.“라고 하는 기도문으로 돼 있죠. ”하나님의 나라야, 오소서.“ ”하나님의 나라여, 오소서“라고 하는 기도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런 것을 이해하시면서, 제2 청원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