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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신랑

– 이국진

그런데 예수님은 들러리들 중에 기름을 충분하게 준비해 놓았던 처녀들과 그렇지 못했던 처녀들의 이야기로 영적인 교훈을 하셨다. 이 비유에서의 첫 번째 유사점(tertium comparationis)은 신랑이 예상보다 늦게 오는 상황이 마치 마지막 때가 아직 오지 않는 영적인 상황과 닮았다는 것이다. 악하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이 결국 종말을 고하게 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소망은 성경에서 강조되어 왔고,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기대해왔다. 하지만 이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재림(parousia)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때가 오지 않는다고 실망한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종말은 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 속에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오기로 했던 신랑이 오지 않는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이 비유에서의 두 번째 유사점은 신랑이 예기치 못한 시간에 온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예기치 못한 시간에 닥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열 명의 들러리들이 다 졸고 자는 동안에 갑자기 신랑이 왔으니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상황을 말씀하셨다. 들러리들은 신랑을 기다렸는데 오지 않자 지쳐서 모두 잠이 들었다. 이러한 사실도 이 비유가 영적인 현실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유사점이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의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심판의 때가 오지 않기 때문에 심판의 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잊고 산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현재의 상태가 계속 될 것이고 영원히 심판의 때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그런 심판의 때를 거부하면서 산다. 신자들도 마지막 때를 망각하며 살 때가 많다. 이 모든 현상들은 열 명의 들러리들이 다 졸고 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 비유는 신랑이 갑작스럽게 예기치 못한 시간에 들이닥치게 되는 것을 통해서 심판의 날이 갑작스럽게 우리들에게 다가올 것임을 가르치는 비유이다. 주의 날은 밤에 도둑 같이 임할 것이라는 것(마 24:42-44; 눅 12:39-40; 살전 5:2; 벧후 3:10; 계 3:3; 16:15)이 성경 전체에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심지어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까지 말씀하셨다(마 13:32).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 중에는 재림의 때 즉 종말의 때를 계산해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에 있는 내용들을 계산하고 연구해서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알아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계산은 근거가 희박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을 유혹한 바 있고 또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통해서 재림의 때를 알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예언들이 모두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이러한 잘못된 주장들은 앞으로도 많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종말의 때가 알려질 수 있다는 뜻인가?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은 언제든지 믿음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갑작스러운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도둑이 드는 것에 대해서 철저하게 보안을 준비한 사람은 아무리 도둑이 갑작스럽게 온다고 한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종말의 때가 갑작스럽게 오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일 뿐이지, 종말의 때를 알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비유에서 등장하는 신랑이 누구를 가리키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종종 신랑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해석하고 열 처녀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1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니까 이러한 해석은 그럴 듯 해 보인다. 하지만 이 비유에서의 중요한 유사점은 늦어짐에 있다. 신랑이 오는 것이 늦어지는 것처럼 종말의 때가 늦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있다. 이 비유에 신부가 등장하지 않는 것도 그 유사점이 늦어짐 자체에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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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성수,『천국은 어떤 나라인가?』(횃불, 1993),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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