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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 가라지가 알곡으로 변화될 수 있는가?

– 이국진

알곡은 처음부터 알곡이었고 가라지는 처음부터 가라지였다는 사실 때문에 이 비유에서 예정론적 메시지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1 하지만 이 비유는 예정론을 설득하기 위해서 전해진 메시지가 아니다. 물론 예정론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아주 강력한 은혜의 메시지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우리는 나의 장점이나 업적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직 내가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이며(고전 15:10),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기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엡 2:8-9).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의 최고의 고백은 예정론이다. 만세 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인 은혜로 나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는 예정론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겸손한 고백의 최고봉이다. 하지만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그러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주어진 비유가 아니다.

이 비유는 때가 되면 추수하는 날이 이르러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때가 돌아오는 것처럼 결국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있을 것이라는 비유이다.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시는 목적은 그 날이 다가오기 전에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메시지를 위해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가 주어진 것이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10)는 메시지처럼, 영적인 의미에서 추수의 때가 다가오기 때문에 지금 당장 회개해야 한다는 촉구의 메시지이다.

결국 전에는 가라지로 비유되는 악인들의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심판의 때를 상징하는 추수의 때가 되기 전에, 알곡으로 비유되는 의인으로 돌아서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알곡과 가라지는 변화 자체가 불가능한 것들인데, 즉 알곡이 가라지가 될 수 없고 가라지가 알곡으로 변할 수 없는 것들인데, 이 점은 실제 영적인 상황과는 대조가 된다. 지금 우리가 가라지와 같은 상태라면 회개해서 알곡과 같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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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성수,『십자가로 읽는 예수님의 비유』(미스바, 2011),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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