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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악의 기원

– 이국진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때, 두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하나님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악이 발생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악이 발생하도록 만드셨다고 한다면, 그것은 형용모순(形容矛盾, oxymoron)이 될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악에 어떤 식으로든 원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에는 난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악이 이 세상에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만일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 악이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한다면, 악이 하나님을 능가하거나 적어도 하나님과 대등하다는 결론이 생길 수 있고, 그렇다고 한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악을 이기고 최후의 승리를 하실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과연 전능하신 하나님이 악이 이 세상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실 수 없었는가 하는 하나님의 전능성에도 질문이 던져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설명이 나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독자적으로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통제 속에서 제한적으로만 들어온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결국 악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악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하나님의 전능성에도 손상을 받지 않는 설명이 된다. 하지만 두 번째 설명도 난점을 가지고 있다. 만일 하나님의 허용 속에서 악이 이 세상에 들어왔다면,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에 대한 근원적인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어떤 식으로 대답해도 난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셩경에서는 하나님과 악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즉 하나님은 악을 조장하지 않으시는 거룩한 하나님이시다. 즉 하나님이 모든 악에 대한 근원이 아니며 악에 대한 책임이 없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 하지만 이와 동시에 악이 하나님을 능가하거나 동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애굽의 바로 왕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내어보내지 않은 것이며, 욥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사탄은 오직 하나님의 재가 속에서 그 허용범위 내에서만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죄와 악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사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주장하기는 논리적으로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악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는 가라지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함에 있어서 농부와는 상관없이 원수가 있어서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밭에 가라지를 뿌린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마 13:25, 28). 이러한 설명은 악에 대한 상반되는 두 가지 설명 가운데, 첫 번째 설명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원수의 짓이다. 동시에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천명한다. 가라지는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냥 방치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결국 추수 때에 처리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악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적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비유는 마치 하나님은 현존하는 이 세상의 악에 대해서 속수무책인 것처럼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다. 밭의 주인이나 농부는 가라지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다. 밭의 주인과 농부는 가라지가 뿌려져 자라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밭의 주인과 농부는 추수 때가 되기 전에는 가라지를 손댈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다. 그런 점에서 밭의 주인과 농부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드러내주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밭의 주인이 다른 대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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