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비유의 분류

– 이국진

흔히 학자들은 비유를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누어 분류하곤 했는데, 그 분류가 학자들마다 다르고 모호해서 비유를 연구하는 학도들이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굳이 비유를 분류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비유를 해석하는 데 그리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유를 논의할 때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다음과 같은 용어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크게 비유는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직유(直喩, simile)로서 “재판장 같은 하나님”이란 표현과 같이 어떤 것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드러난 비유를 뜻한다. 즉 재판장이라는 비유의 언어는 하나님이라는 대상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적 표현인데, 그 누가 이 표현을 보더라도 무엇을 무엇에 비유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직유라고 한다.

이러한 개념과 반대되는 개념은 은유(隱喩, metaphor)인데,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눅 13:32)와 같은 표현에서처럼, “여우”가 무엇을 지칭하는 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방식의 비유를 의미한다. 이러한 은유는 약속된 사람들끼리 그 은유가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는 지 알 수 있을 뿐, 그 외의 사람들은 어렴풋하게 눈치는 챌 수 있지만 100% 확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은유는 그 해석이 어렵다. 예를 들어,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여서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할 때, 도대체 그 기름은 무엇을 나타내는 은유일까? 해석하는 자들마다 그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심지어 과연 그게 은유일지 아닐지도 확신할 수 없다. 비유의 해석은 언제나 쉽지 않지만, 직유보다는 은유를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야기 형태로 된 비유로는 각각 시밀리튜드(similtude)알레고리(allegory)가 있다. 종종 시밀리튜드를 비사(比事)라고 번역하고 알레고리를 풍유(諷諭) 또는 풍자(諷刺)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거의 실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로의 번역은 번역으로서의 효과가 거의 없기에 그냥 이 책에서는 시밀리튜드와 알레고리란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굳이 알레고리를 우리 말로 번역한다면 우화(偶話)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시밀리튜드는 직유와 같은 비유 이야기이다. 어떤 이야기가 어떤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진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천국은 마치 겨자씨 한 알이 땅에 심겨서 자라는 것과 같다는 표현은 시밀리튜드에 해당한다. 겨자씨 한 알이 땅에 심겨서 자라는 것을 말하는 이유는 천국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말하기 위한 것이고, 그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시밀리튜드에 해당하는 비유로는 더 좋은 것을 주는 아버지의 비유(마 7:9-11; 눅 11:11-13), 누룩의 비유(마 13:33; 눅 13:20-21), 무화과 나무의 비유(마 24:32-44; 막 13:28-29; 눅 21:29-33), 비유들은 모르는 사이에 자라는 씨의 비유(막 4:26-29), 다시 찾은 양의 비유(눅 15:4-7), 다시 찾은 드라크마의 비유(눅 15:8-10), 무익한 종의 비유(눅 17:7-10) 등이 있다.

이에 반해서 알레고리는 비유된다는 사실이 암시는 되어 있지만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경우이다. 예를 들어, 농부가 밭에 씨를 뿌렸는데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새가 와서 먹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알레고리에 해당한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처음에 해주실 때에는 그저 농사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저 농사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의도한 것이었음이 나중에 분명해졌다. 이렇게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암시하고는 있지만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이야기체로 된 비유를 가리켜 알레고리라고 한다.

그러나 시밀리튜드에는 알레고리적 요소가 내포되어있을 가능성이 많아서, 시밀리튜드와 알레고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학자들마다 이 차이를 모호하게 규정함으로 더욱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로버트 스타인은 시밀리튜드는 “일상 생활 중에 흔히 일어나는 사건을 거론하는 것으로써 시작되는” 반면 알레고리는 “그리 흔치 않는 특정한 사건을 거론하는 것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해서 학도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1 하지만 알레고리와 시밀리튜드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비교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가 드러나 있지 않는가이다. 직유처럼 비교하는 대상과 비유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은 시밀리튜드이다. 하지만 은유처럼 직접적으로 비교의 대상과 연결되지 않은채 표현되는 이야기는 알레고리가 된다.

시밀리튜드를 알레고리로 착각하고 해석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무화과 나무의 비유(마 24:32-44; 막 13:28-29; 눅 21:29-33)는 인자가 오기 전에 여러 가지 징조가 일어날 것임을 가르치기 위하여 주신 비유인데,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것이며 잎사귀가 연하여진다는 것은 독립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때 오해가 발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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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버트 H. 스타인,『예수님의 비유: 해석원리와 적용』(새순출판사, 198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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