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비유풀이의 위험

– 이국진

종종 비유는 서로 묵시적으로 합의된 의미를 전달하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용어들을 가리켜 알레고리 용어(allegorical term) 또는 창고용어(stock term)라고 한다. 창고에서 꺼내서 쓰는 것과 같은 용어라는 뜻이다. 이러한 단어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서 그 단어를 말할 때마다, 당시의 청중들은 당연히 그 용어가 지칭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동시대에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용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단어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포도원은 대체로 이스라엘을 뜻했다. 추수(harvest)는 종종 심판의 때를 나타냈다. 포도원 주인은 주로 하나님을 의미했다. 이러한 단어들을 가지고 비유를 제시하면, 모두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코끼리 하면 공화당을 나타내고 당나귀하면 민주당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이 항상 그런 의미로만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언어는 화자에 의하여 독창적으로 창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부 이단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비유풀이라는 것이 유행한다. 이 해석법에 의하면, 잎은 전도자로 해석하고 새는 영으로 해석하며 가지는 제자로 해석한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해석해야 할 정당한 근거가 제시된 적이 없다. 하지만 같은 용어라 할지라도 문맥에 따라서 다른 의미로 사용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천편일률적으로 비유풀이를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루시퍼”만 해도 그렇다. 루시퍼는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대로 사탄의 이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주교 미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루시퍼라고 부르는 동영상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 동영상을 보면서 경악을 금하지 못한다. 왜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을 루시퍼라고 부르는가? 루시퍼(lucifer)는 계명성(a morning star)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이다. 이사야 14:12에서 한 때 천사였던 자가 타락하여 사탄이 된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lucifer, a morning star)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원래 광명의 천사였던 자(lucifer)가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16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여기서 광명한 새벽별이 바로 계명성(lucifer)을 가리킨다. 계시록에서는 계명성이 예수님을 지칭하는 비유로 사용된 것이다. 이것은 어린아이란 말이 긍정적으로 사용되어서 “어린아이와 같아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사용되면서 동시에 부정적으로 사용되어,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이 유치했다”고 사용될 수 있는 것과 같다. 루시퍼는 긍정적으로 사용되어 밝은 빛이 되신 예수님을 의미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사용되어 한 때 밝은 천사였지만 타락해버린 사탄을 지칭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의 한 의미만을 선택하여 루시퍼(계명성)는 무조건 사탄을 지칭한다고 천편일률적으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이다.

비유의미 1의미 2
루시퍼 (계명성)타락한 천사, 사탄(사 14:12)그리스도 (계 22:16)
어린 아이겸손한 자 (마 18:4)미성숙한 신앙 (고전 3:1; 13:11; 엡 4:14; 히 5:13)
부르짖는 사자악한 권력자 (습 3:3)여호와 하나님 (암 3:8)
말씀 (마 13:19)천국의 아들들 (마 13:38)
마음 (마 13:19)세상 (마 13:38)

같은 단어라 해도 맥락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 성경은 악한 권력자들을 “부르짖는 사자”라고도 비유한다(습 3:3). 그런데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부르짖는 사자”라고도 비유한다(암 3:8). 부르짖는 사자의 특성에 빗대어 하나님을 묘사하기도 하고 악한 권력자들을 묘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문맥에 따라서 부르짖는 사자는 악한 자를 의미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무조건 악한 권력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 13:3-9, 18-23)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밭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바로 뒤에 나오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 13:24-30)에서는 씨가 천국의 아들들이나 악한 자들을 가리키고 밭은 세상을 가리킨다. 같은 단어라 할지라도 맥락에 따라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천편일률적인 비유풀이 방식을 지양하고, 유사점이 무엇인지 집중하면서 비유를 바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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