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의를 위해 산다면, 박해가 아니라 박수를 받아야 마땅한 것 아닐까? 왜 의를 위해 사는 자에게는 고난이 닥치는 것일까? 그런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말은 그냥 위로하는 말일까?

의를 위해 산다고 하면 박수를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의를 위해 살다보면, 박수가 아닌 박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하신다. 이러한 사실이 상당히 불편할 것이지만, 사실이다. 성경은 무릇 그리스도 에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고(딤후 3:12), 실제적으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참된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아왔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비난을 당하고 욕을 먹고 핍박을 받아왔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의를 위해 살다가 박해를 받는 것은 불쌍한 일이 아니라 복된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모든 박해가 복된 것은 아니다. 일부러 문제를 야기하고 그래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 자신이 의를 위해 살다가 고난을 받은 것이라고 떠벌리는 극단적인 성도들을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고난을 당한 것은 의를 행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해서 그런 결과를 빚게 된 경우가 많고, 더 나아가 무례하게 행동했기 때문인 경우도 많고, 국가의 실정법을 어겼기 때문인 경우도 많다.

의를 행하다가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주님을 생각하면서 이를 참아낸다면 복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겠지만, 죄를 저지르고 불법을 행하다가 어려움을 겪는다면 칭찬을 받을 일이 아니다(벧전 2:19-20). 우리는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며,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부러 다른 사람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의를 위해 박해를 당한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선동에 속아넘어가지 않을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지혜롭게 행동하고, 온유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무례하지 않게 행하고, 국가의 실정법을 잘 지키려고 해도 믿음으로 사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르게 되어 있다. 왜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 관련이 없이 발생할 리는 없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과 고통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아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착한 사람이 보상을 받고 악한 사람이 징게를 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의를 행하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상당히 당황스럽다. 그러면서 믿음의 확신이 흔들리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기뻐해야 한다. 하늘에서 우리를 위한 상이 크기 때문이다(마 5:12).

사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가장 큰 박해를 당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아무런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하늘의 상을 생각하며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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