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평하게 하는 자

회평하게 하는 자

전쟁은 승자가 없는 것이다. 결국 그 싸움의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겠지만, 승자라고 해서 피해가 없는 게 아니다.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게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 중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 있다면, 평화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국가 사이에만 전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전쟁이 있다. 안타깝게도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할 사람들끼리 싸운다. 부부가 싸우고, 부모와 자식이 싸우고, 더 나아가 사랑이 넘쳐야 할 교회도 싸운다. 이렇게 싸움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다. 화평을 추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겠지만, 싸우고 다투는 자들은 사탄의 자녀들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싸우면서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싸우면서 정의롭지 못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은 정당하고, 싸우는 이유도 정당하다. 정당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바로 사탄의 속임수이다. 사탄은 우리가 정당한 이유, 의로운 분노 때문에 싸우는 것이라고 속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베드로는 제사장이 보낸 체포조가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에 칼을 빼들었다. 예수님은 죄가 없었으므로, 그 체포조가 악당들임에 틀림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보호하는 것은 의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향해서 칼을 칼집에 도로 넣으라고 하셨다. 칼을 쓰는자가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망할 것이라고 하셨다. 성경은 싸움과 다툼은 우리의 정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약 4:1).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화평을 추구해야 한다. 싸워서 악을 물리치는 것은 악을 이긴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 진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고한다(롬 12:20-21). 지는 것처럼 보여도 이긴 것이고, 손해보는 것처럼 보여도 그게 이기는 것이다. 이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 십자가이다. 예수님은 싸우지 않으셨다.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다.

그러니까 이 말은 악이 판치고 있는데도 그냥 소란을 피우지 않고 시끄럽게 하지 않고 덮어두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참된 평화는 고여 있어 잔잔하지만 썩은 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 시끄럽게 흘러 내려가지만 생명이 살아있는 시냇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화평의 방법을 추구하면서도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는지는 쉽지 않은 숙제이다. 우리는 정의를 추구한다는 것이 폭력적이 되기 쉽고,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이 불의 앞에서 무기력해지기 쉽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정의를 추구하되(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되), 평화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게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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