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span>견딤</span>

견디는 것은 그 자리에 있는 것

견딘다고 할 때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어떻게 견디는가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같은 헬라어 단어는 누가복음 2:43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예수님의 부모와 친척들이 모두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가고 있는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남아 “머물러 있었다”고 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17:14에서도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바울을 위해하려고 베뢰아로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울은 베뢰아를 빠져 나갔지만, 실라와 디모데는 그냥 거기 “머물렀다”고 표현하고 있을 때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견디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뿌리 깊은 나무가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더라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견디는 것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견디는 것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될 수 있다. 힘들다고 그 자리를 뜨지 않아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그 위치를 지켜야 한다. 남편의 위치, 아내의 위치, 성도로서의 위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사랑이다.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도 몹시 휘어져 태어났지만 감사와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복음성가 가수 레나 마리아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그가 태어났을 때, 조산원은 아기를 타월로 감고 허둥지둥 옆방으로 가버렸고, 방문객들은 병실 밖으로 나가달라고 요구받았으며, 산모만 혼자 분만실에 남겨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는 이 정도의 중증의 장애를 가진 아이라면, 장애시설에 맡기는 편이 났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오늘날의 레나 마리아로 만든 것은 그 부모들의 사랑 때문이었다. 레나 마리아의 아빠는 장애를 가진 그 아이를 보면서, “비록 두 팔이 없어도,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로서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지켰다. 아무도 키울 수 없을 것 같은 레나 마리아를 세계적인 복음성가 가수로 키운 것은, 가장 필요한 것이 가족이라고 믿고 아빠와 엄마로 “그대로 있어준” 사랑이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 부부 사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한 순간을 참지 못하고 깨트려 버리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남편으로, 아내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

미주 지역에서 신앙인들이 보여주는 안타까운 현상 가운데 하나는 성도들이 쉽게 자신의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아니 이 같은 현상은 지역적인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다. 같은 교회에서 동고동락하다가도, 조그마한 어려움이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미련 없이 쉽게 교회를 옮겨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교회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기에, 교회를 옮겼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성도들을 정죄할 수는 없다. 때때로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경우가 반드시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이 아닌데도, 너무나도 쉽게 고민 없이 떠나는 것은 사랑의 모습이 아니다. C.S. 루이스는 교회를 옮겨 다니는 것이 사탄의 치밀한 전략에 휘말리는 것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스크루테이프 사탄이 조카 웜우드 사탄에게 보낸 16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충고한다. “교회 출석이라는 이 증세가 나아지지 않을 시에는, 차선책으로 자기한테 ‘맞는’ 교회를 찾아 주변을 헤매고 다니다가 결국은 교회 감별사 내지 감정사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1

때때로 우리는 더 이상 참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머물러 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맡은 직분을 감당하기 힘들고 어렵게 느껴질 때, 견디는 사랑이 필요하다. 때론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가 힘들고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일 수 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사랑의 모습을 지켰던 사람은 욥이었다. 모든 재산이 없어지고, 자녀들이 죽고, 자신의 몸에는 악창이 생겼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사탄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아내를 통해서 표현되었다. 하지만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욥기 1:21)

욥에게서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에도, 욥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는 있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 목차로 돌아가기

* 다음 글 읽기 – 어떻게 견딜까?

* 이전 글 읽기 – 실망할 수 있으나 낙심하지 않는다

--[註]---------------------------
  1. 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홍성사, 2000),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