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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자는 데 왜 고난이 있는가?

사랑의 정의에서 왜 “고난을 견뎌야 한다”고 하는가? 미움은 미움을 낳지만, 사랑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며, 모든 얽힌 것들을 녹여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사랑의 정의에 “고난을 견뎌야 한다”고 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들의 소박하고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사랑에는 고난이 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사랑에 고난이 따를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에 늘 실패한다. 사랑을 하면 환영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사랑을 하면, 모든 것이 다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마냥 행복한 것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다. 사랑에는 고난이 따르게 되어 있다. 아주 오래 전에 히트를 친 배명숙 작사, 조용필 작곡의 “창 밖의 여자”에서 조용필은 애타게 외치며 부른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나는 이 노래의 전반부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오직 단 한 소절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를 반복하여 부르는 여기에 나의 필(느낌)이 꽂혔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행가에서도 사랑이 결코 아름답고 좋고 행복한 것만이 아니라, 아픈 것이며 괴로운 것임을 노래했는데, 우리는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애써 외면한다. 사랑하면 누구나 환영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하지만 사랑을 하려고 하면, 고난이 따른다. 사랑을 베풀어 주려는데 오히려 대적하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만나게 된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시편 109:4)

사랑을 갈급해 하면서도 정작 사랑을 베풀려면 외면하고 대적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이런 예를 우리는 다윗과 사울에게서 본다. 다윗은 사울을 사랑했다.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을 위해 다윗은 충성을 다했다. 전쟁터에 나가 싸웠고, 사울의 명령을 따라 무엇이든지 했다. 다윗은 사울왕의 딸 미갈의 남편이었다. 사울을 위해서 악기를 연주했고,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결코 다윗은 사울을 해하지 않았다. 나중에 사울이 죽었을 때, 다윗은 진심으로 애통해 하였다. 하지만 다윗의 사랑에 대하여,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로 응답했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 다윗은 노래했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나는 기도라”가 된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 기도 자체였다.

어쩌면 다윗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그대로 미리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도 인류를 사랑하는 길에 다윗과 같은 고난의 길을 가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가신 십자가의 길은 격려 받고 환영받는 길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도망갔고 예수님을 배반했다. 모두가 손가락질 하며 침을 뱉었다. 채찍으로 때렸고 가시 면류관과 홍포를 입혀 조롱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가는 그 길은 오히려 비난과 조롱뿐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고난을 견디셨다(히브리서 12:2-3).

사랑하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의 길은 고난의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의 15번째 정의는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러한 고난을 피하지 않았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고난을 받았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당한 고난을 담담하게 이렇게 기술한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종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린도 후서 11:23-27)

바울은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성공이 보장된 사람이었다. 좋은 출신 성분에 좋은 교육까지, 당시에 아무도 부러워할 것 없이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바울 사도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 전도 여행의 길을 사명으로 알았기에, 바울은 한 군데 정착해서 삶을 꾸릴 수도 없었다. 순회 전도자에게 결혼이 불가능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가정을 꾸리려면 한 곳에서 정착하여 삶을 살아야 했지만, 바울 사도는 그럴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성직자들은 종교적 책무 수행하고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선교여행이 사명이었던 바울은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야 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그대로 전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길을 떠났는데, 그가 얻은 것은 고난뿐이었다. 여기서 바울은 중단하지 않고 그 고난을 견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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