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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계시냐? (마 2:1-12)

예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탄생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정말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구나”라고 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옛날 우리 인류를 향해서 약속해 주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해 주셨는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았고, 약속을 성취하는 것은 미루어지는 것만 같았고, “도대체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서 아무것도 안 하시나” 이런 실망감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정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그 이야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그냥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그 약속이 그냥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계시는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은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늘 실망하죠. 또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서로 친구들과, 또 많은 사람들이 약속을 하면서 지내는데 그 약속들을 잘 지키지 않고 파기하는 일들을 경험할 때마다 많은 상처를 받고는 합니다.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능력이 없어서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돈을 빌려놓고 갚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갚을 능력이 없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죠. 동업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 잘 지내보자”고 이야기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들이 깨어져 버리고 처음 했던 그 약속들을 하나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그런 결과들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이 변해버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호흡이 끝나버리면 지키려고 해도 지킬 수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언젠가 목숨이 끊어져 버리는 분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약속을 이루시는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이죠. 못 하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약속을 이루실 수 있는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신실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이 변하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이루시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인류가 처음 타락했을 때부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타락해 버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밟게 하는 그런 일을 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는데, 정말 그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사실 구약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에 주셨던 ‘약속의 책’이라고 하는 의미인 것이죠. 그래서 이 구약성경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늘 여러 모양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향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 후손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고 하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모세를 향해서는 너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킬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다윗을 향해서는 네 후손을 통해서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왕국을 만드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들이 바라볼 때는 성취가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는데 그 약속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늘 실망하고 많이 포기하고는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등장하게 되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사람일까” 하고 기대를 하면서 바라보았지만, 그 사람들은 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사사들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사사가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인가” 했지만, 그 사사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부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삼손이라고 하는 사사는 방탕한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기드온이라고 하는 사사는 이후 그 모든 것들이 다 끝나버렸고, 그 아들 아비멜렉이 오히려 압제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무엘이라고 하는 선지자가 나타났을 때는 “정말 좋은 선지자가 우리에게 왔구나” 생각했지만, 사무엘의 말년에 판단력이 흐려지고 그의 아들들은 사무엘처럼 정의롭게 행하지 못하고 결국 약해져 버린 모습을 우리가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다윗이라고 하는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골리앗을 무찌를 때만 해도 “이 다윗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런 다윗의 모습에서 신하를 배신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전쟁터로 보내서 죽여버리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통치자가, 백성을 위한 통치자가 오히려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아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까? 점점 하나님의 약속들이 희미해져 갈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고통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나라로 끌려가면서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져 버렸고, 포로의 삶을 살아야만 했었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헬라 왕국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게 되었고, 헬라 왕국이 없어지는가 했더니 다시 로마 나라가 이스라엘을 정복하면서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외세의 침입 가운데서 고통스럽게 실컷 일했지만 모든 것들을 다 빼앗겨버리고 겨우겨우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도대체 하나님의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절망스러운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아기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신 것이죠. 하나님의 약속이 그냥 흐지부지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신실하셨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나가시는 그 이야기를 우리가 바라보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소망을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약속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러면 너희에게 응답하겠고” 말씀해 주셨고,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하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때로는 우리가 고아처럼 느껴져요. “하나님은 나를 돌아보지 않는가?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가?” 하는 그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할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실망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소망 가운데 바라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길을 인도하실 때, 과연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지금 우리가 그 결과를 바라보지 못했지만, 지금 우리가 고난의 터널을 지나갈 수도 있겠고 정말 실망스러운 상황 가운데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그 약속을 변치 아니하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또 믿음으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약간 당혹스러울 수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구세주로, 메시아로 보내셨는데 그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모습이 아무런 힘도 없고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하는 사실 때문입니다. 도대체 아기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가 물려주는 젖을 빨아야만 하고, 헤롯이 죽이려고 한다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아무 힘도 없는 아기 예수님으로 오셨다고 하는 것은 참 우리가 볼 때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게 바로 ‘하나님의 역설’이에요.

이 세상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구원해 내시는가?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바꾸어 나가시는가? 그것은 강력한 힘을 통해서, 엄청난 파워를 통해서 이 세상을 뒤집어엎어 버리는 것이 아니에요. 오늘날 수많은 교회 내에서 성경적이지 않고 이 세상의 방법을 추종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상의 힘을 길러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어야 되고 성공해야 되고 우리가 높은 지위에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더 잘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렇게 선포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의 본성에 너무나도 잘 맞아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열광하고 그게 복음인 줄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바꾼 것은 무엇일까요?

돈이 이 세상을 바꾼 것인가? 권력이 이 세상을 바꾼 것인가? 파워가 이 세상을 바꾼 것인가? 아니란 말이에요.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보디발이 가정을 바꾼 게 아니고, 보디발의 집안에서 노예로 일하던 요셉이 그 가정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교도소장이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교도소장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옥에 억울하게 죄수로 끌려와서 낮은 자리에 있던 요셉이 그 감옥의 분위기를 바꾼 겁니다. 바로 왕이 파워를 가지고 있었지만 바로가 무엇을 해낸 것이 아니라, 바로의 신하로서 요셉이 이 세상을 먹여 살리는 엄청난 일들을 해내게 된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칼을 가지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거라고 말씀해 주시고, 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칼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랑의 방법으로, 희생의 방법으로, 주님의 방법으로 이 세상이 변화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말씀해 주신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늘 마음속에 기억하며 묵상해야 하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오른편 뺨을 때리면 맞장을 떠서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다시는 나에게 도전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밟아버려서 완전히 짓눌러버려 본때를 보여줘야 된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 뺨도 돌려대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너희를 핍박하고 박해하면 그들을 짓밟아 버려서 힘으로 그들을 눌러버릴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게 바로 주님의 방법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무엇과 같은가, 천국이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이 천국이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하실 때 천국이 무엇과 같은가, 엄청난 군대와 같다고 말씀하지 않았어요. 주님께서는 이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이것이 엄청난 파워와 같다고 말씀해 주지 않고 오히려 겨자씨와 같다, 누룩과 같다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있는 줄도 모르는 그런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 같은데, 그 겨자씨 한 알이 땅에 떨어지면 자라나서 수많은 새들이 그 안에 깃들일 만큼 풍성한 나무가 되고, 누룩이 그 밀가루 반죽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을 때 보이지 않았지만 밀가루 전체의 반죽을 부풀려서 빵을 만드는 그런 것이 바로 천국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무엇인가? 이 세상의 힘으로, 칼과 총으로, 능력으로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바꾸고 희생으로 바꾸고 십자가를 지는 주님을 따르는 삶이 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하는 소식은 온 세상에 기쁨이 되는 소식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찾아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라고 하는 예물을 주님 앞에 드렸다고 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라고 했는데, 이 동방이 어느 곳을 가리키는 것이죠? 이스라엘의 동쪽이면 어디죠? 우리나라인가요? 수많은 이단이 성경에 나오는 동방이 우리나라라고, 동쪽에 있는 우리나라를 가리킨다고 하면서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메시아가 나고 제2의 예수님이 나타난다고 하는 그런 말로 수많은 사람을 현혹시키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동방이라고 하는 것은 기껏해야 이스라엘 동쪽에 있는 요르단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고, 더 나아간다고 한다면 페르시아 지역까지는 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 동방의 박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아마도 페르시아 지역, 옛날 저기 바벨론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이 예수님의 탄생을 바라보고 왔을 거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먼 곳에서 그들은 유대인도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 찾아와서 경배하려고 했던 것이죠.

이들은 원래 유대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 경배했다고 하는 것은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단순히 유대인만의 구세주가 아니라 온 민족의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주님 앞에 나아오면 받아주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보면서도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디에서 태어날 거라고 알았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경배할 생각을 할 수도 없었고, 예루살렘 사람들은 왕이 태어났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소동만 할 뿐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고, 헤롯 대왕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지 예수님을 경배할 수 없었던 것인데요. 놀랍게도 누가 경배했는가? 저 멀리 유대인들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저 이방의 점성가들이 와서 주님 앞에 엎드렸다고 하는 것인데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주님께 나아가는 자가 복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높은 위치에 있고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그게 복된 것이죠. 예수님이 어떤 주님이신가? 온 세상의 구주로 오셨는데 누가 그 주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나아가는 자들이 그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어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는데요. 정말 좋았을까요, 별로였을까요? 정말 좋았습니다. 정말 좋았는데 안 오신 분들은 아쉬울 것 같아요. 그 좋은 것이 있는데도 안 왔으니까요.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것은 엄청나게 좋은 축복이요, 우리에게 큰 복음의 소식인데 예수님이 왔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도 가까이 있어도 가지 못하고 알고 있으면서도 가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 앞에 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지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누가 주님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가? 누가 주님이 주시는 그 은총을 누릴 수 있는가? 빨리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고, 많은 돈을 가지고 오고 실력을 쌓아야, 어떤 단계에 올라가야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여는 자가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매 순간순간마다 주님을 부르시고 주님을 누리시는 그런 삶의 축복들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그냥 혼자 울지 말고 혼자 답답해하지 말고 우리를 친히 찾아오신 그 주님을 마음속에 영접하면서 주님 앞에 엎드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만나실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특별히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어디입니까? 베들레헴의 누추한 곳으로 오셨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예수님이 탄생했다고 하는 소식을 알게 되면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예루살렘의 왕궁이었어요. 그 왕궁에 당연히 예수님이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그 왕궁에 없었어요. 그런데 만일 예수님께서 왕궁에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평민들이 갈 수 있나요? 만날 수 있나요? 못 만납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시설 가운데 아무나 막 들어갑니까? 청와대에 막 들어갑니까? 다 제지당하잖아요. 다 못 들어가게 하잖아요.

만일 예수님께서 저 왕궁에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돈 없는 사람은 못 들어갈 거예요. 힘없는 사람은 못 들어갈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아무나 다 오라”는 의미에서 베들레헴의 낮고 천한 곳에서, 누추한 곳에서 태어나셔서 오늘 우리가 누구든지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받아주시고 영접해 주신다고 하는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또 이 성탄의 계절에 저희들의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 앞에 나아가고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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