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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 (롬 4:25)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돌아가셨으나, 그리고 무덤에 장사 된 지 3일 만에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죠.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요?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않습니까? 가능하지 않아요. 다른 건 가능해도, 다른 건 가능해도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우리를 향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또한 우리가 믿는데요. 도대체 이렇게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우리가 믿을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을까요? 보셨습니까? 못 봤어요. 저는 봤을까요? 저도 못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우리가 함께 묵상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정말 부활하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고 하는 것, 늘 부활절 때만 되면 제가 설명을 해드렸습니다마는 다시 한번 설명해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직접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 사랑하는 엄마가 왔다 갔다고 하는 것은 내가 엄마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죠? 냉장고 문을 열어보면 알아요. 냉장고에 맛있는 반찬이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엄마가 왔다 갔구나 말하지 않아도, 만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죠. 태양이 떴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태양을 직접 쳐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보면서 아는 것이죠? 그 태양 빛에 의해서 우리가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이 사물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굳이 태양을 쳐다보지 않아도 그 태양 빛을 보면서, 태양 빛에 의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면서 태양이 떠 있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나, 장사 지낸 바 되었으나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들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죠. 한 번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은 그건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그것은 미개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이 죽었을 때, 죽기 전에는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울면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 아들을 살려주옵소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슬퍼하면서 금식하면서 제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을 거두어 가셨을 때, 다윗의 아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다윗은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마음을 정리하면서 음식을 먹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신하들이 질문을 던진 거죠. “왕이시여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아기가 죽기 전에는 금식하며 울며 그렇게 하시더니 아이가 죽었을 때 왜 오히려 음식을 드시고 이렇게 하십니까?” 그때 했던 다윗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이 아이가 죽었으니 그 아이가 어찌 내게 다시 돌아올 수 있겠는가? 다시 살 수 있겠는가? 내가 그에게로 갈 수는 있어도 그 아이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는 것.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 살던 다윗도 한 번 죽으면 사람이 다시 살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어요. 아무리 오래전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미개한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한 번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돌아가셨으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모두가 다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죠. 물론 사람의 심장이 정지가 되었지만, 그래서 사망 판정이 났지만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간혹가다 있을 수 있다고는 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나사로 현상’이라고 하는데요. 성경에 있는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에 힌트를 얻어서 그렇게 명명을 했다고 하는데요.

심정지 상태가 되어서 의학적으로 이 사람은 죽었다고 판단을 했지만, 그러나 얼마 뒤에 그 사람이 다시 깨어나게 되는 경우들이 아주 드물게, 정말 드물게 간혹가다 있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심장이 정지가 되었지만 그러나 아직 신체가 다 망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어쩌다가 보면 그런 사람들이 5분에서 10분 사이에 다시 살아나고, 그래서 장례를 치르려고 했지만 깨어나는 경우가 있어서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종종 간혹가다 들리잖아요. 예전에 한번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죽은 강아지를, 강아지의 심장이 멈추어 버렸는데 그 강아지를 붙들고 계속 마사지를 해주고 계속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 강아지가 혈색이 돌면서 다시 살아나는 그런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심장이 비록 정지가 되었지만, 그러나 아직 완전히 몸이 썩지 않고 신체의 기능이 완전히 다 망가지지 않아서, 그래서 마사지를 해주고 그렇게 하다 보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보통 언제 가능하죠? 5분에서 10분 정도 사이에는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그런 경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완전히 죽어서 3일이나 지나버린 것이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그냥 심정지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 달려서 옆구리에 창이 찔리고 그래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그 상태에서, 그 상태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흩어졌을까요? 죽은 사람에게서는 아무런 소망을 걸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할 구원자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인 줄 알았는데 무참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더 이상 기대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제는 아무런 소망을 예수님에게 걸 수 없는 상태입니다. 죽은 사람에게서 아무런 기대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그 죽으심의 방식은 나무 위에 달려서 돌아가시는 십자가형을 당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유대인들의 마음 가운데는 한 가지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 결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의로운 선지자인 줄 알았는데 순 사기꾼이었구나”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왜냐하면 신명기 21장 23절의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유대인들의 마음 가운데 나무에 달린 사람을 보면 “아, 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사람이구나, 저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구나”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돌에 맞아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나무 위에 달려 죽는 그 모습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이 의로운 선지자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까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구나, 하나님의 그 심판을 받아 죽었구나라고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소망을 다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 얼마 되지 않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기 시작한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사기꾼이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그런 심판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법한 그 유대인들의 입에서 예수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런 고백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런데 유대인들의 입에서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정말 불가능한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마음 가운데 유일신을 섬긴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 유대인들의 생각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을 인정할 수가 없는 신앙이 유대인들의 신앙이었어요.

만일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있다고 이야기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신성 모독을 하는 것이라고 해서 돌을 던져 죽일 정도로, 오늘날 이슬람교도들이 알라신 외에 다른 신이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러면 막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돌을 들어서 던지는 그런 아주 호전적인 사람들인데 그 유대인들이 뭐라고 고백하냐면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이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다”라고 하는 그런 고백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엄청난 고백이 있게 된 것이죠. 이것은 단순히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 역사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본도와 비두니아 지역을 다스리고 있는 플리니우스(플리니)라고 하는 총독이 있었습니다. 그 총독이라고 하는 사람이 로마 황제에게 쓴 편지가 역사적 유물로 남아 있는데요. 그 플리니우스가 쓴 그 편지에 보면 로마 황제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런 편지 글이 있습니다. “황제시여 지금 우리 동네에, 제가 다스리는 이 지역에 크리스천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특별하게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니고 거룩하게 살기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앙과는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고 이런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서 우리들의 문화와는 다른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 황제시여 가이드라인을 좀 주십시오. 이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하면서 골치 아파서 이 크리스천들을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느냐고 질문하는 편지가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난 다음에 얼마 되지 않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게 된 것이죠. 어떻게 이렇게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줄 알았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것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리 집에 텅텅 비어 있던 냉장고에 반찬이 가득 차 있다고 하는 거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해요? 엄마가 다녀갔구나 그것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것처럼, 정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 유대인들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예수님을 고백하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것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유대인들의 입에서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런 고백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온 세상을 점령하고 기독교가 지금까지 전달되어서 올 수밖에 없었는가 그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기적을 본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신앙이 가능했고, 기독교가 그래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 신앙이 지금까지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전달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 신앙이 가짜가 아니라 우리가 믿는 이 복음의 신앙이, 이 부활의 신앙이 참된 부활의 소식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또 우리가 이 신앙 잘 가지고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그 부활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를 지으신 것이 없어요.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셨고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시기도 하셨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면서 정말 하나님의 뜻을 펼친, 정말 죽어야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십자가 처형을 당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 시기하고 질투해서,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시기했고 질투했고,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들이 흔들릴 것을 두려워한 이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가짜 재판으로 심판해서 죽여버리고 만 것이죠. 뿐만 아니라 빌라도라고 하는 로마의 총독이 겁쟁이가 되어서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종교 지도자들과 결탁을 해서, 자신이 이 유대 지역에서 안전하게 통치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희생양 삼아서 그래서 죽여버리고 만 겁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재수 없어서 돌아가신 것 같고, 우리가 보기에는 모함을 받아서 죽은 것 같고, 그래서 정말 억울하게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러한 예수님의 죽음을 예전부터 미리 예언해 놓으신 바 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4절에서 6절 말씀에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해 놓았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세상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총독에 의해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죽음 같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 주셨는가? 바로 우리 대신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대신 죽으시는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될 형벌을 주님께서 대신 받으시고,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될 그 십자가의 죽음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시고 죽으신 죽음이라고 성경은 미리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수백 년 전부터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아니 수백 년 전 정도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타락해서 범죄했을 때부터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죠. 여자의 후손이 뱀에게 발꿈치를 상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예언에서부터 시작해서, 또 유월절 날 어린 양을 희생시킴으로 말미암아 죽지 않고 살아나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성경 곳곳에 보면 우리 대신에 대신 다른 어린 양이 희생을 당하고 그래서 우리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성경에 가득 차 있는 것이죠.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께서 억울하게 재수 없이 죽은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들의 죄를 지시고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그리고 다시 부활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이며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4장 25절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러한 일을 당하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셔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부터 24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속량이라고 하는 것은 용서해 주시고 대신 갚아준다는 얘기죠)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우리 가운데는 그 누구도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겁니다. 이 앞에 서 있는 저도 죄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나갈 수 없는 사람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우리를 대신하여서 못 박혀 죽으신 것이고, 그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죄 용서함을 받았다고 하는 이 사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하셨는데요. 다시 살아나셨는데 이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난다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 용서함을 받았다고 한다면 이제는 살아날 수가 있는 것이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죠. 죄로 인해서 우리가 망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구원받을 수 있고 다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우리들에게 주어졌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영원히 죽음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고, 우리가 다시 살 거라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2,000년 전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놀라운 기쁨을 우리가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이 부활절 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한다면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 번째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부활에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셨다고 한다면 이제는 마음대로 죄를 짓고 엉망으로 살아도 괜찮은가요? 그게 아닌 것이죠.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신부로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다고 한다면, 이제는 더 이상 마귀와 짝해서 살아가면 안 되는 거예요. 이제는 누구랑 살아야 돼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가 늘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내가 무슨 죄를 저질러도 구원을 받는다”라고 그렇게 착각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다고 한다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디에 서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 안에 있어야 되는 거예요.

구원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 밖으로 떨어져 나가서 죄를 더 짓고 악을 행하면 될까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보았다고 한다면 이제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로서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호세아 선지자가 자신의 아내였던 고멜을 다시 사 옵니다. 구원해 준 거죠. 그런데 이 고멜은 또 어떻게 해요? 죄를 짓고 남편을 배반하고 또 창기가 되어버려요. 자꾸만 나갑니다. 그런 고멜과 같은 삶을 우리가 살면 안 되는 거예요. 남편이 자기를 불쌍히 여겨서 이제 건져주었다고 한다면, 건져줬으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잘 살아야 그게 구원해 준 그 의미가 있는 것이죠. 구원해줬는데 다시 또 가면 되나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부활의 은총을 입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그런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가 기억한다고 한다면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될까요? 그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이 될지라도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죽음보다 더 센 게 무엇일까요? 없어요. 가장 절망적인 게 죽음이에요. 가장 절망적인 것이 죽음인데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그 어떤 절망적인 것도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 것이죠.

심지어 죽음마저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 능력이 하나님에게 있고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슬퍼하며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만나는 그 어떠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맞아, 죽음 가운데서도 승리하시고 부활하신 그 주님의 능력을 우리가 봤으니 이제는 우리가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겠다”고 하는 믿음의 결단들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우리 이웃들에게 전하며 보여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해주신 비유 가운데 1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임금님이 종에게, 1만 달란트 빚진 종에게 그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다 면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겨우 백 데나리온 빚진 자신의 동료를 만나서 멱살을 붙잡고 그 돈 내놓으라고 하다가, 그 이야기를 들은 왕이 다시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두었다고 하는 비유를 예수님께서 들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누굽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이기적으로 탐욕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펼쳐주며 사랑을 베푸는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구나”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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